‘그 길에서 나를 만나다’ : 하페 케르켈링 저, 박민숙 역, 은행나무, 366쪽, 1만원
이른 아침 민박집에서 햅쌀밥으로 든든히 배를 채우고, 배낭 속에는 꽉꽉 다져 두 주먹을 합친 것만한 주먹밥을 넣었다. 간밤에 조용했던 마을 어디에서 그 많은 사람이 머물렀을까 싶다. 서늘한 새벽공기를 가르며 길을 나서는 여행자들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전날 오후 전남 남원 인월리에 있는 지리산길 안내센터를 출발해 산내면 매동마을까지 9km가량을 걸었다. 이 길은 경남과 전남, 전북 3개도 5개 시군의 100여 개 마을을 하나로 잇는 ‘지리산 둘레길’ 300km 가운데 3코스에 해당한다. 오늘은 매동마을에서 출발해 산허리에 걸린 다랑이논길을 따라 굽이굽이 걷다 상황마을을 거쳐 등구재를 넘는다. 여기가 지리산 둘레길 1코스다. 전북과 경남의 경계, 이정표에는 이런 안내문이 붙어 있다.
“거둑등 타고 넘던 고갯길 등구재. 거북등을 닮아 이름 붙여진 등구재. 서쪽 지리산 만복대에 노을이 깔릴 때 동쪽 법화산 마루에 달이 떠올라 노을과 달빛이 어우러지는 고갯길이다. 경남 창원마을과 전북 상황마을의 경계가 되고 인월장 보러 가던 길. 새색시가 꽃가마 타고 넘던 길이다. 지금은 이곳을 찾는 이가 드물지만 되살아난 고갯길이 마을과 마을, 그리고 사람을 이어줄 것이다.”
안내문을 세운 지 얼마 안 됐지만 문안을 바꿔야 할 것 같다. 재를 넘는 이들의 발걸음이 잦아졌다. 아직 완성된 길도 아니고 시범구간이 열렸을 뿐인데도 지난 4월부터 6개월 동안 지리산 둘레길을 다녀간 이가 4만명이 넘는단다. 지리산에 다녀왔다고 하니 모두들 “천왕봉은 올랐어?”라고 묻는다. 멀리서 구경만 했다. 지리산 자락을 빙 둘러 가서 ‘둘레길’ 아닌가.
사람들이 걷는다. 낭창낭창 걷는다. 타달타달 걷는다. 쉬엄쉬엄 걷는다. 산길은 산길인데 수직으로 오르는 게 아니라 수평으로 간다. 정상에 오르지 못했다는 아쉬움도 없다. 길을 잃을 염려도 없다. 그래서 다리만 편한 게 아니라 마음도 편하다. 사람들은 ‘걷기’에 마음을 쏙 뺏겼다.
간세 부리면서 걸어라
걷기로 치면 제주 올레길이 먼저 ‘떴다’. 제주말로 ‘놀멍 쉬멍 걸으멍’ 하는 제주길은 2007년 여름부터 시작해 지금까지 162km에 이르는 10개 코스가 완성됐다. 제주도 바닷길을 따라 걷다 야트막한 오름을 오르며 걷는 아기자기한 올레길은 아직 절반밖에 잇지 못했다. 이 길을 잇는 데 앞장서고 있는 이가 서명숙 (사)제주올레 이사장이다.
‘시사저널’ ‘오마이뉴스’ 등 언론이라는 ‘전쟁터’에서 살아온 그가 2006년 홀연히 스페인 산티아고 길로 떠났다. 야고보가 복음을 전도하기 위해 걸었다는 순례자의 길을 걸으면서 ‘제주 올레길’의 영감을 얻었다. 여정의 막바지에 만난 한 영국 여자가 던진 말을 듣고 벼락을 맞은 듯 감전됐다고 한다.
“우리가 이 길에서 누린 위안과 행복을 다른 사람들에게 나누어줘야만 한다. 당신은 당신 나라로 돌아가서 당신의 까미노(길)를 만들어라. 나는 나의 까미노를 만들 테니.”
그는 고향 제주도에서 ‘길 만드는 여자’가 되기로 결심했고, 끊어진 길은 잇고 사라진 길은 찾아내며 1년 넘게 제주도를 누볐다. 7개 코스가 완성될 무렵 펴낸 책이 ‘제주 걷기 여행’(북하우스)이다. 제주 올레길 안내책자로 생각하고 이 책을 펼친 사람들은 어리둥절할지도 모르겠다. 서귀포에서 보낸 저자의 어린 시절 이야기부터 십자매(저자의 절친한 여성 동지들)들의 넘치는 애정과 수다에 정신을 팔다, 이제 본격적인 올레길인가 보다 하면 갑자기 ‘산티아고 길’로 접어들어 한참을 간다. 마치 자동차로 가면 10분 거리지만 2시간 넘게 숲길을 걸어가는 이의 ‘미련스러움’을 보는 것 같다. 빙 둘러 가지만 보고 느끼는 것은 풍성하다. 그리고 책 속의 모든 내용은 결국 ‘올레길’로 통한다.
저자는 산티아고 길을 걷는 동안 ‘느릿느릿 걷기’가 신념이 됐다, 그에 따르면, 한 달치 여장을 꾸려 넣은 무거운 배낭으로는 빠르게 걷는 게 애시당초 무리고, 느리게 걷지 않고는 풍경에 집중할 수도, 생각에 머무를 수도 없다. 그래서 순례자는 ‘빠름’보다 ‘느림’을 추구한다. 얼마나 빨리 여정을 끝내느냐보다는 이 길에 얼마나 오래 머무르느냐에 존경이 바쳐진다.
이런 깨달음을 제주도로 옮겨놓으니 어느새 ‘간세다리’ 예찬론자가 된다. ‘간세다리’는 저자의 어릴 적 별명이자, 게으름 피운다는 뜻이다. “간세 부리면서 걸어라!” 이 말쯤은 알아들어야 올레꾼이다.
지리산 둘레길, 제주 올레길을 답사한 김화성 기자(동아일보 스포츠전문기자)에 따르면, 지리산 둘레길이 아버지와 아들이 걷는 길이라면 제주 올레길은 엄마와 딸이 도란도란 걷는 길이란다. 누구랑 걸으면 어떻고 혼자 걸으면 어떠랴.
800km를 걷는다고? 네가 미쳤구나
제주 올레길에 결정적인 영감을 준 ‘산티아고 길’에도 한국 여행자가 급증하고 있다고 한다. 요 근래 산티아고 여행에 관한 책도 국내서, 번역서 합쳐서 10여 권이나 출간됐다. 그 길을 걷고 나면 모두 시인이 되고 명상가가 되는 모양이다.
하지만 산티아고 여행서의 진수는 독일 코미디언 하페 케르켈링이 쓴 ‘그 길에서 나를 만나다’(은행나무, 2007)이다. 2006년 독일에서 출간되어 200만부가 넘게 팔렸고, 유럽에서 야고보 길(국내에는 산티아고 길로 통하지만 최종 목적지인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에 예수의 제자인 사도 야고보의 무덤이 있다 하여 유럽인들 사이에서는 야고보 길로 알려져 있다) 순례여행의 붐을 일으킨 책이다.유럽인들이 순례 여행을 시작하는 피레네 산맥 부근 프랑스의 작은 도시 생장피드포르의 이름 모를 카페에 앉아 하페는 도대체 자신이 왜 이 순례길에 오게 되었는지 되새김질한다. 몇 달째 그의 몸은 휴식을 원했지만 주인은 이를 모른 체했고, 결국 담낭이 터져버렸고 심근경색이 의심되는 상태에서 병원 응급실로 실려 갔다. 그는 인생에 ‘작전타임’을 부를 때라는 것을 깨달았다.
서점으로 달려가 여행 책자 코너에서 첫 번째로 걸려든 책이 ‘기쁨의 야고보 길’이었다. 그는 그 책을 발견하던 순간의 느낌을 일기장에 이렇게 쓴다. “초콜릿은 경우에 따라 사람들을 행복하게 하고, 위스키는 사실 예외적인 경우를 빼고 늘 그렇지만, 겨우 길 따위가 기쁨을 가져다준다고?” 이 오만불손한 책에 반감을 느끼며 집어 들었다가 그날로 다 읽은 뒤 그는 순례 여행을 결심한다. 한 층도 걸으려 하지 않던 자칭 ‘카우치 포테이토’인 그가 11kg의 배낭을 메고 매일 20~30km씩 한 달 이상 걷는 순례 여행을 하겠다고 나서자, 한 친구는 이렇게 대꾸했다. “아이고, 이젠 네가 아주 미쳤구나!”
길을 나서긴 했지만 그는 매일 통증이 심한 다리를 주무르며 잠자리와 먹을거리에 대해 불평하고 신의 존재를 의심하며 언제라도 포기하고 돌아갈 생각만 하는 심드렁한 순례자였다. 하지만 긴 순례길은 그를 서서히 바꿔놓는다.
“모든 것이 하나가 된다. 나의 호흡, 나의 발걸음, 바람, 새의 노랫소리, 물결치는 옥수수밭, 그리고 피부로 느껴지는 신선한 기분. 나는 조용히 걸어간다. 걷는 동안 내가 내 발로 길을 밟는 건지, 길이 내 발을 밟는 건지? 길 위에 죽어 있는 고양이와 같은 추함이나 눈 덮인 산봉우리의 아름다움도 아무런 인상을 남기지 않는다. 아무런 강요가 없는 상태는 순수, 신선의 경지다. 기쁨을 주지 않지만, 고통 또한 주지 않는다.… 내가 아무 생각도 하지 않고 아무것도 표현하지 않아도 나는 항상 거기에 존재한다. 길 위에서 나는 항상 한 가지와 맞닥뜨린다. 그건 바로 ‘나’다.”
나를 비우면 신이 그 곳을 채운다
야고보의 길은 순례자에게 ‘나는 누구인가?’라는 의문을 던져주고 스스로 답을 찾게 만든다. 그러다 어느 날 그들은 길 위에서 신을 만난다.
“어느 때부터인가 누구나 길에서 울기 시작합니다. 길이 사람을 그 어느 때에 이르게 하죠. 그러면 그냥 거기 서서 울부짖게 돼요.”
네덜란드에서 온 라리사가 이런 말을 했을 때 그는 유치한 소리라고 여겼다. 하지만 스페인인 아스토리가 포도밭 한가운데 서서 마른 하늘에 벼락 치듯 그는 갑자기 울기 시작했다. 왜 그랬는지 표현할 수도 없다. 지쳐서? 기뻐서? 모든 감정이 한꺼번에 밀려들어서? 포도밭에서 운다고? 웃지 않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난 것이다. 그날 그는 일기 마지막에 이렇게 쓴다. ‘나는 신을 만났다!’
길을 걷다가 아무런 생각이 없어지는 상태, 즉 완전하고 담담한 공허는 진공의 상태다. 신은 그 진공을 채운다. 하페는 계속 적는다.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의 생각을 비웠다고 느끼는 사람은 인생에서 깨달음을 얻을 수 있는 단 한 번의 기회를 가진다는 것이다.”
야고보의 길이 하페에게 안겨준 선물은 신과의 만남뿐만 아니라 사람과의 만남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게 오랫동안 혼자였던 적이 없다. 어느 순간 대화가 눈물겹도록 그리워진다. 진정한 친구들을 만나고 싶다. 그래서 순례자의 길에서 만난 동지들은 가치를 따질 수 없는 재산이 된다. 늘 명철한 분석가인 리버풀 출신의 앤이 그렇고, 뉴질랜드 출신의 지혜로운 쉴라, 암스테르담에서 온 요세는 마지막까지 동행을 한다. 그중에는 눈을 마주치는 것조차 불쾌하고 고통스러운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신이 길 위에서 그런 이들과 만나게 하신 이유가 있었다. 그들을 통해 가슴속에 쌓아둔 분노를 발견하고, 자신의 어두운 내면을 확인하며 자신을 돌아보게 된다.
물론 이 모든 축복은 용감하게 길을 나서는 사람들에게만 허락된다. 자신을 놓지 않으면 새로운 것으로 채워질 수 없다. 그래서 오늘도 많은 이가 편안한 집과 빠른 자동차를 놓고 두 발로 길을 나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