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도 여명이 동 터온다”
- “운도 실력이 바탕이 되어야 한다”
- “먹이 찾아 대륙 횡단하는 철새의 생존본능 배워야”
- 김승연 회장의 일관되고 신속한 의사 결정이 성공 요인
- 베테랑으로 구성된 인수 추진팀 팀워크도 한몫
- “그룹이 감내할 수 있고 매각사가 만족할 가격”
- 한화가 대우조선해양 매각을 위한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된 과정은 ‘강한 자가 살아남는 것이 아니라, 살아남은 자가 강한 것이다’는 말을 떠올리게 하는 한 편의 드라마였다. 한국 M&A사(史)를 새롭게 쓴 한화의 대우조선해양 인수 과정 풀스토리.
그러나 대우조선해양을 완전히 품에 안기까지는 적지 않은 진통이 따를 전망이다. 본계약 및 매각대금 납부 시점을 둘러싸고 매각주체인 산업은행과 한화그룹 간 입장차가 크기 때문이다. 산업은행은 일정을 앞당기려고 하는 데 반해, 한화는 예정된 일정에 따라 진행하자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MOU 체결이 예정보다 늦어진 것도 이 때문인 것으로 전해졌다.
여기에 대우조선해양 노조가 끼어들어 문제를 복잡하게 만들었다. 대우조선해양 노조가 한화의 자금 동원력을 믿지 못하겠다는 뜻을 밝힌 것. 한화가 이를 확실히 보장해야 정밀실사를 허용하겠다는 게 대우조선해양 노조의 입장이다. 그러나 한화는 매매대금의 5%를 지급한 뒤 곧바로 정밀실사에 나설 계획이다. 한화그룹 홍보담당 장일형 부사장의 설명이다.
“매각대금 완납 시점을 두고 산업은행과 이견이 있어 MOU 체결이 다소 늦어졌다. 그러나 이제 MOU가 체결된 만큼 3~4주간 재무구조 등 대우조선해양 전 분야에 걸쳐 현장 확인 실사를 한 뒤, 연말까지 본 계약을 체결할 예정이다.”
한화에 대한 의구심은 크게 두 가지. 대우조선해양을 너무 비싸게 샀다는 것과 한화가 과연 인수자금을 마련할 능력이 있느냐 하는 점이 그것이다. 한화가 대우조선해양을 인수하기 위해 제시한 가격은 6조~6조5000억원인 것으로 알려졌다. 대우조선해양의 기업가치는 11월13일 종가(1만3650원) 기준으로 2조6124억8380만원. 따라서 한화가 대우조선해양 지분 100%를 인수한다고 해도 4조원 안팎의 경영권 프리미엄을 주는 셈이 된다.
한화 관계자는 이에 대해 “대우조선해양의 기업가치는 월스트리트발(發) 금융위기로 현재 과도하게 낮게 평가된 상태”라면서 결코 비싸지 않다고 강조했다. 대우조선해양 주가의 고점에 비해서는 오히려 싸게 인수한 셈이라는 것. 이 관계자는 이어 “자금 동원 역시 재계 일각의 의구심에도 불구하고 전혀 문제가 없다”고 자신감을 내비쳤다.
한화가 6월14일 기자간담회에서 밝힌 바에 따르면 자기 자금을 3조원 이상 마련할 계획이다. 대한생명과 한화건설 등을 상장하고 유휴 부동산을 매각하면 충분히 조달할 수 있다는 것이다. 대한생명도 올 5월 누적 결손금 2조3000억원을 전액 해소하면서 상장이 가능해졌다. 한화 관계자는 “시장 상황이 어려워지긴 했지만 대한생명 주식 매각은 가능한 방법이 얼마든지 있다”고 밝혔다.
확고한 인수 의지
한화의 대우조선해양 인수 과정을 되짚어보면 이런 자신감은 충분히 이해할 만하다. 한화 관계자들은 “김승연 회장의 강력한 인수 의지 및 리더십, 인수팀의 시의적절한 대응 전략, 상대 그룹의 ‘자살골’ 등이 어우러져 막판 뒤집기에 성공할 수 있었다”고 분석했다.
올 4월 한화가 대우조선해양 인수전 참여를 공식 선언했을 때만 해도 여론은 호의적이지 않았다. 경쟁 그룹에 비해 약체라고 평가한 때문이다. 포스코가 가장 유리한 위치에 있다는 평가를 받았고, GS그룹과 두산그룹이 그 뒤를 이었다. 한화는 뒤늦게 인수전에 뛰어든 현대중공업과 함께 ‘2약(弱)’으로 분류됐다.
무엇보다 포스코는 자금 동원력에서 가장 좋은 점수를 받았다. ‘국민기업’이라는 명분도 있었다. 또 GS는 정유사업과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다는 점을 부각시켰다. 두산 역시 풍부한 M&A 경험을 바탕으로 다크호스로 평가받았다. 다만 현대중공업은 경쟁 업체인 대우조선해양 기업 비밀을 들여다보기 위한 차원에서 인수전 참여를 선언한 게 아니냐는 의심을 받았다.
그러나 이때도 한화 관계자들은 “무엇보다 김승연 회장의 인수 의지가 확고한 만큼 두고 보면 알 것”이라고 자신감을 내보였다. 한편으론 한화가 대우조선해양을 인수한 후에는 그룹의 주력으로 키우겠다는 명분을 설파해나갔다. 대우조선해양 임직원들을 향해서는 고용 승계 보장을 약속하면서 진지하게 접근했다.
10월 24일. 산업은행 정인성 부행장이 “한화컨소시엄을 대우조선해양 지분매각을 위한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했다”고 발표하고 있다.
“그런 고비 때마다 김승연 회장의 ‘내공’이 돋보였다. 1981년 그룹 회장에 취임한 이후 정아그룹(현 한화리조트), 한양유통(현 한화갤러리아), 대한생명 등의 인수전을 진두지휘하면서 쌓은 경험이 이번에도 빛을 발휘한 것이다. 인수팀이 낙담하고 있을 때 김 회장의 판단은 달랐다. 김 회장은 ‘1 대 1 대 1로 셋이 붙는 것보다 1 대 1로 붙는 게 낫다. 포스코와 GS그룹이 50대 50의 지분으로 컨소시엄을 구성했다고 하는데, 우리나라에서 동업으로 성공한 경우가 있는가. 최상의 조합이라지만 오히려 더 안 좋을 수도 있다. 낙담하지 말고 끝까지 최선을 다하라’고 격려했다.”
김 회장의 예상은 적중했다. 대우조선해양 인수를 위한 본입찰서 제출 마감 시한을 두 시간여 앞둔 10월13일 오후 1시 무렵(마감시간은 3시). 한화그룹의 대우조선해양 인수팀에 급보가 날아들었다. 포스코와 공동으로 입찰에 참여한 GS그룹이 인수 포기를 선언할 것이란 내용이었다. 사실이라면 막판 대역전극을 노릴 수 있는 천재일우의 기회였다.
“끝까지 최선을 다하라”
즉각 비상대책회의가 소집됐고, 인수팀원들이 백방으로 사실 확인 작업에 나섰다. 그러나 확인 작업은 쉽지 않았다. 당사자인 GS와 포스코는 ‘시인도 부인도 않는’ NCND(Neither Confirm Nor Deny) 입장을 고수했다. 매각 주체인 산업은행 역시 마찬가지. 그러나 곧 소문은 사실로 확인됐고, 이날 오후 6시경 GS그룹은 입찰 포기를 공식 선언했다.
한화는 먼저 산업은행의 태도부터 살폈다. GS그룹이 포기한다 해도 포스코의 자격을 인정할 수 있는 상황이었기 때문. 포스코가 입찰 자격을 상실하면 게임은 의외로 싱겁게 끝날 수도 있었다. 산업은행이 어떻게 결정할지 재계가 숨죽여 지켜보고 있었다. 한화 관계자의 설명이다.
“GS그룹이 입찰 포기를 포스코에 미리 알렸기 때문에 포스코가 단독으로 입찰에 응할 줄 알았다. 그런데 공동으로 입찰서를 제출했다.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법무팀과 외부 법무법인 등의 자문을 거친 결과 포스코의 입찰 자격에는 문제가 있다는 결론이 나왔기 때문이다.”
한화는 이를 토대로 산업은행을 압박했다. 포스코의 입찰 자격을 인정하면 소송도 불사하겠다는 강경 자세를 보인 것. 한편으론 여론에도 호소했다. 한화의 강력한 ‘압박 작전’에 포스코가 먼저 손을 들었다. 산업은행의 결정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겠다고 한발 물러선 것.
결국 산업은행도 한화의 손을 들어줄 수밖에 없었다. 입찰 마감 열흘 뒤인 10월24일, 산업은행 정인성 부행장은 “한화컨소시엄을 대우조선해양 지분 매각을 위한 우선협상자로 선정했으며, 연내에 최종 매매계약을 맺을 계획”이라고 공식 발표했다.
외견상 한화가 결정적인 승기를 잡은 계기는 GS그룹의 중도 포기다. 그러나 한화 측은 “운도 실력이 있어야 따른다”면서 “그룹 차원의 적절한 대응 전략이 경쟁사들의 전략적 오판을 불러왔다”고 강조했다. 한화가 국민연금을 컨소시엄에 끌어들이기 위해 끝까지 설득작업을 전개한 게 대표적이다. 결과적으로 국민연금이 인수전 불참을 선언, 다른 경쟁사를 선택하지 못하도록 하는 부수적인 수확을 거뒀다는 것이다.
2~3년 전부터 인수 검토
한화가 대우조선해양 인수전에 공식적으로 뛰어든 것은 올 4월. 본입찰을 불과 6개월 앞둔 시점이었다. 경쟁사들은 일찌감치 인수 추진 의사를 밝히고 물밑 작업을 진행해왔다. 이에 비하면 한화의 인수전 참여 선언은 때늦은 감이 없지 않았다. 그러나 내부적으로 한화는 2~3년 전부터 대우조선해양 인수에 관심을 갖고 있었다. 한화 관계자의 설명이다.
“2005년 4월에 이미 그룹 경영기획실에서 대우조선해양 인수 타당성 검토에 착수했다. 김 회장이 조선산업을 미래 유망산업이라고 봤기 때문이다. 이어 지난해 1월 태국 방콕에서 개최된 ‘해외사업 진출 전략회의’에서 ‘해외사업 추진 6대 실행 테마’를 수립했다. 이후 경영기획실 내에는 글로벌 경영을 체계적으로 진행하고 평가할 태스크포스가 확대 구성됐다. 외국계 전략 컨설팅사에 의뢰해 M&A 타당성과 시너지 분석을 해본 다음 본격적으로 검토하기 시작했다. 한때 하이닉스반도체와 대우인터내셔널이 인수 후보로 거론됐으나 계열사 CEO의 의견 등을 모은 결과 대우조선해양으로 최종 결정했다.”
중요한 순간마다 김승연 회장은 직접 회의를 주재한 후 곧바로 그룹 방침을 확정했다. 이에 따라 한화그룹은 돌발 상황에서도 효과적이고 빠른 대응이 가능했다.
김 회장은 강력한 의지만 보인 게 아니다. 중요한 순간마다 김 회장이 직접 회의를 주재한 후 곧바로 그룹 방침을 확정했다. 이에 따라 한화그룹은 돌발 상황에서도 효과적이고 빠른 대응이 가능했다. 입찰 가격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제시한 것도 김 회장이었다. 한화 관계자의 설명이다.
“구체적인 액수는 밝힐 수 없지만 인수 자문사는 굉장히 높은 가격을 제시했다. 인수전을 승리로 이끌기 위해선 그 정도는 돼야 한다는 의견이었다. 그러나 김 회장은 무리하게 써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외부에서는 김 회장이 무조건 높은 가격을 쓸 것이라는 예측이 있었다. 이에 대해서는 시인도 부인도 하지 않는 전략을 구사했다. 대신 내부적으로 대우조선해양의 실질적 내재가치를 반영하되, 그룹이 재무적으로 감당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매각 주체인 산업은행도 만족할 수 있는 가격이어야 한다는 방침이 일찌감치 서 있었다.”
신용과 의리
한화가 대우조선해양을 최종 인수하게 되면 자산 총액이 29조3000억원으로 늘어나 재계 8위로 올라서게 된다. 민영화된 공기업 포스코와 KT를 포함하더라도 톱 10에 랭크된다.
한화는 대우조선해양 인수를 계기로 여러 측면에서 시너지 효과를 기대하고 있다. 우선 대우조선해양은 유조선 등 에너지 관련 선박 부문에서 76%의 매출을 올리고 있다. 여기에 에너지 사업을 영위하고 있는 (주)한화, 한화석유화학 등은 해외 자원 개발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한눈에 봐도 사업 연관성이 크다.
대우조선해양 해양플랜트사업 부문도 한화건설의 도움으로 한 단계 도약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한화건설은 중동 및 아프리카에서 석유화학 및 발전 플랜트를 시공한 경험이 풍부하다. 한화건설의 이런 노하우는 대우조선해양 발전에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
한화는 또 보험, 증권 등 금융업도 그룹의 한 축으로 육성하고 있다. 여기에서 쌓은 다양한 경험 역시 선박 파이낸싱 등에 활용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그뿐 아니라 방산업체인 (주)한화와 대우조선해양 함정사업 부문의 시너지 효과도 기대하고 있다.
우연이긴 하지만 두 기업의 문화도 비슷한 측면이 있다. 한화의 경영 철학은 ‘신용과 의리’이고, 대우조선해양의 핵심가치는 ‘신뢰와 열정’이다. 이 점 역시 한화가 대우조선해양을 끌어안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한화의 비전은 ‘2011년 매출 45조원, 해외 매출 비중 40%’이다. 한화는 글로벌 기업 대우조선해양 인수에 성공함으로써 비전 달성에 성큼 다가섰다는 평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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