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캠프인 7800m까지를 구축하고, 나와 박무택 대원이 정상 공격에 나섰다. 박무택은 내가 아끼고 사랑하는 산악인이자 8000m급 이상 네 개 봉을 함께한 혈연 이상의 사이였다. 둘이서 앞서거니 뒤서거니 눈길을 헤치며 정상을 향했다. 꽤 많이 오른 것 같은데 아무리 가도 정상은 보이지 않았다. 우리는 체력의 한계를 느끼기 시작했다. 분명히 정상이 머리 위 어딘가에 있을 것만 같았는데…. 탈진 상태에서 어느새 산소도 떨어져가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밤이 오고 만 것이다.
우리는 로프에 의지한 채 빙벽의 중간에 매달려 있었다. 설벽의 튀어나온 바위 턱에 엉덩이만 살짝 걸치고 동이 틀 때까지 비박을 하기로 결심했다. 잠 못 이루는 자의 밤은 길다지만, 밤이 그렇게 길고 긴 것인 줄 그때 처음 알았다. 절벽 로프에 매달려 엉덩이를 걸친 채 우리는 칸첸중가 8000m 어디쯤에서 서로의 이름을 불렀다.
“무택아, 자면 안 된다.”
그곳에 매달려 혹여 잠이 들면 얼어 죽는다는 것을 우리는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어째서 산을 오르는가
추위는 둘째치고, 온몸이 탈진 상태여서 눈만 살짝 감아도 그대로 잠이 들 것만 같았다.
“홍길이 형, 자요?”
5초쯤? 아니 7초쯤? 잠들었을까. 박무택이 부르는 소리에 깜짝 놀라 바위 턱에 간신히 올려놓았던 엉덩이가 떨어지는 기분이 들었다. 그네를 타듯 몸이 빙벽 밖으로 휘청 나갔다가 돌아올 무렵 다시 바위 턱을 찾아 엉덩이를 걸쳤다.
“무택아, 너도 자면 안 돼! 잠들면 죽는다.”
그렇게 빙벽에 매달려 깜빡깜빡 졸 때면 우리는 허공에서 그네를 타고 다시 제자리 찾기를 반복했다. 밤새 얼마나 많이 서로의 이름을 불렀던가.
다행히 칸첸중가의 신은 우리가 그곳에서 하룻밤 비박을 할 수 있게끔 허락해주었다. 로프를 붙잡고 10여 시간 쪼그려 앉아 사투를 벌이며 서로의 이름을 부르는 사이 어느새 멀리 동이 터왔다. 그때 본 그 빛을 잊을 수가 없다. 어둠이 물러나며 붉은빛이 산악으로 올라오는데, 탈진해 있던 몸에 갑자기 기운이 돌았다.
지금 생각하면 삶의 기쁨이란 바로 그런 것이 아닌가 싶다. 아침에 태양이 떠오르고 밝은 빛이 비추어 우리가 살아 있고, 깨어나 일어설 수 있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삶이란 기쁨인 것이다.
사람들은 내게 많은 것을 묻곤 한다. 어째서 산에 오르는지, 무엇이 가장 어려웠는지, 중도에 포기하고 싶은 마음은 들지 않았는지, 또 그 모든 것을 이뤄낸 후에는 도대체 무엇을 할 것인지….
지금까지 그래왔듯이 아마도 생이 다하는 날까지 나는 결코 안주하지 않는 삶을 살 것이다. 끝없는 도전이야말로 진정한 내 삶의 모습이며, 내가 걸어가야 할 길이라고 확신하기 때문이다.
꿈을 향해 거침없이 도전하라
현재에 만족하고 안주하는 것은 나태한 사람들이 하는 행동이라고 생각한다. 그들은 결코 그 이상의 삶을 살 수 없다. 나 역시 히말라야 16좌 등반을 하는 동안 무수한 고비를 넘겼다. 죽음의 문턱까지 이르렀던 적도 여러 번 있었으며, 사랑하는 사람들을 잃는 슬픔도 겪어야만 했다. 등정에 성공했을 때보다 중도에 눈물을 삼키며 돌아서서 다음을 기약해야 했던 경우가 더 많았다. 하지만 좌절하고 주저앉았다면, 만약 내가 히말라야를 등지고 남들처럼 도심에서 샐러리맨과 같은 평범한 삶을 살았다면 어땠을까?
나 자신이 먼저 스스로를 용서할 수 없었겠지만, 그건 분명 살아도 사는 것이 아니었을 것이다. 세상은 언제나 도전하는 사람들의 것이다. 역사는 바로 도전하는 사람들에 의해 씌어졌다. 현재의 세상을 이룬 이들은 바로 불굴의 도전정신을 가진 사람들이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에도 도전하는 사람들에 의해 세상이 변화되며 재창조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