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12월호

가장의 실패 보듬은 아내의 ‘위대한 가족애’

이정현 국회의원·한나라당

  • 입력2008-12-02 16: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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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장의 실패 보듬은 아내의   ‘위대한 가족애’
    나는 대학졸업 후 박봉의 정당 사무처 당직자로 살아왔다. ‘내 집 마련’은 전업주부인 아내의 꿈이었다. 아내는 남편 월급만으로 살림하고 두 아이를 키우고 꼬박꼬박 저축해 29평형 아파트를 장만했다. 아는 대학교수가 이민을 가면서 급하게 내놓은 걸 아내가 무리해 저지른 것이었다.

    2001년쯤 애들이 커가자 아내의 소망은 32평형 아파트가 됐다. 남편 수입으로는 엄두를 내기 힘들었다. 어느 날 아내는 신문 경제면에서 부동산 경매기사를 읽었다. 하루는 “경매에 입찰하기 위해서는 집값의 10%를 갖고 있어야 한다”며 은행에서 1000만원을 찾아다 내게 주고는 “해보라”고 했다.

    ‘깡통 주식’과 ‘내 집 마련’

    나는 정당 생활에 바빠 법원에 못 갔다. 대신 아내 몰래 주식을 샀다. 단기간에 승부를 보려고 신용대출까지 얻어 2000만원을 투자했다. 결과는 처참했다. 한 달 반 만에 깡통을 찼다. 아내에게 실토하자 고통스러운 구박이 이어졌다. 나는 과거에도 여러 번 주식에 실패했고 고향 선배에게, 지인에게 돈을 빌려줬다 떼인 적도 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내에게서 전화가 왔다. 34평형 아파트를 계약했다는 것이다. 살던 집 팔고 새집으로 넓혀 이사 가는 데 빚이 9000만원이라고 했다. 기절초풍할 얘기였다. 내 수입에 그 정도의 부채는 깔려 죽을 만한 액수였다. 사무실에서 체면도 잊고 아내에게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이후 1주일간 다퉜다. 평소에는 겁 많고 내성적인 사람이 집 살 때만은 완전 복부인으로 돌변한다. 보통 배짱이 아니다.



    한동안 이자 부담에 허덕이고 있었는데 뜻밖의 일이 찾아왔다. 2004년 한나라당은 ‘차떼기’로 엄청난 국민적 비난을 받고 있었다. 박근혜 당시 대표는 대표직에 오르자마자 “마지막으로 한 번만 더 기회를 달라”고 호소하며 한나라당 소유 천안연수원을 국가에 헌납하고 여의도 중앙당사도 매각했다. 사무처도 구조조정했다. 당은 당사 매각대금으로 사무처 당직자들의 퇴직금을 정산했다. 차떼기 사건과 구조조정의 과정에서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던 거액이 내게 들어왔다. 상당액의 빚을 갚을 수 있었다. 주식으로 까먹은 돈 때문에 받아온 구박으로부터도 해방됐다.

    그 뒤 우리 집 ‘복부인’은 한 번 더 일을 저질러 서울 관악구의 좀 더 너른 아파트로 갈아탔다. 이번엔 찍소리 못하고 동의했다. 아내의 예상대로 두 번째 아파트도 살 때보다는 많이 오른 가격에 팔았다. 그 덕에 지금 나와 우리 꼬맹이들은 편안한 공간에서 지내고 있다.

    ‘구형 그랜저’의 행복

    정당인은 대개 선거 때가 되면 가장으로서의 경제적 능력이 위축된다. 지난해 한나라당 대선후보 경선 때 나는 당 사무처에서 나와 박근혜 후보 캠프의 대변인으로 활동했다. 2002년 대선 땐 이회창 한나라당 후보 선대위 전략기획단장을 맡아 이 후보의 당선을 위해 전력을 쏟았지만 졌다. 2004년 총선 땐 고향인 호남에서 한나라당 후보로 출마해 낙선했다. 2002, 2004, 2007년의 반복되는 실패로 나는 낙담했고 어김없이 우리 가정에도 경제적 어려움이 들이닥쳤다. 그러나 아내는 잘도 인내해주었다.

    나는 올 4월 총선에서 한나라당 비례대표 국회의원에 당선됐다. 처음으로 중형차(수백만원짜리 구형 중고 그랜저) 한 대를 구입했다. 아내가 온 가족 명의로 무배당 생명보험도 들어놓고 있었다는 걸 알게 됐다. 나도 모르게 한 일이어서 이번 재산신고엔 누락됐다.

    가장이라면 누구나 살면서 실직 등 실패를 겪을 수 있다. 요즘 같은 경제난은 가정에 심각한 위기를 부를 수도 있다. 운이 좋게도 나는 집 친구 덕분에 이를 극복하고 기 펴고 산다. 시골에서 빈손으로 상경해 가정을 꾸리고, 내 집 마련해 조금씩 넓혀가면서 오순도순 사는 일. 중산층, 서민의 평범한 삶 같지만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내 집 친구와 같은 ‘주부의 위대한 가족애’ 없이는 불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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