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제적으로 자부심 느끼는 나라 만들고 싶다”
- “당내 기반 취약…의원들과 접촉 넓혀 만회”
- “MB, 현대 이미지보다 시장 치적으로 집권”
- “정제된 발언이 박근혜 내공”
- “김문수 어려움 이해”
그는 ‘차기’ 얘기에 대해선 손사래를 친다. 집권여당 최고위원 입장에서 정권 초기에 다음 정권을 운운하는 것은 대통령에 대한 예의가 아니고, 별 의미도 없다는 판단 때문일 것이다. 언론에서 정 최고위원을 ‘차기’ 반열에 올려놓고 물을 때마다 그가 하는 말은 이런 내용이다. “우리가 등산을 할 때 산꼭대기만 보고 갈 수는 없고, 실제로 꼭대기가 잘 보이지도 않는다. 과정이 중요한데 그 과정을 가다 보면 정상에 갈 수도 있는 것이다.”(방송 인터뷰)
‘대권’에 대한 ‘의지’ 피력
정 최고위원의 보좌진에게 인터뷰 섭외를 했을 때도 돌아온 첫마디는 “대권 얘기를 묻겠다면 안 하겠다고 할 것”이었다. 그러나 11월10일 오후 국회도서관 5층 의원열람실에서 만난 정 최고위원은 ‘차기’와 관련한 질문에 조금 머뭇거리기는 했지만 굳이 에둘러 답변하지 않았다. 2시간여 진행된 인터뷰 말미엔 ‘의지’가 강하게 묻어나는 발언도 했다. 그의 한 측근은 “정 최고위원이 오늘처럼 차기 대권에 관해 구체적으로 많은 말을 한 것은 처음”이라고 했다.
정 최고위원은 10월30일 한나라당 최고위원회의에서 박근혜 전 대표를 겨냥한 것으로 비치는 발언을 했다. 전날 치러진 10·29 재보선에서 한나라당 후보가 연기군수 선거에 낙선한 것을 두고서다. “우리 당 연기군수 후보가 당선되지 못했는데, 돌이켜 보면 과연 최선을 다했는지 아쉽다. 물론 열심히 한다고 무조건 당선된다는 보장은 없지만 그렇게 하는 게 공당의 의무가 아닌가 생각한다.” 선거 막판 당 지도부는 박 전 대표에게 긴급 지원유세를 요청했지만 박 전 대표 측은 국정감사 일정 등을 이유로 고사한 바 있다.
▼ 박 전 대표를 염두에 둔 발언이란 얘기도 나오던데요.
“꼭 박 전 대표를 겨냥한 건 아니지만…. 박 전 대표가 갔으면 분명히 도움이 됐겠죠. 박희태 대표가 두어 번 다녀왔는데, ‘후보 유세차량에 박근혜 전 대표 사진은 두 개나 붙어 있는데 내 사진은 없더라’고 웃으면서 말하더군요. 그래서 저희들끼리 앉아서 ‘박 전 대표가 갔으면 좋았을 텐데’라는 얘기를 한 적 있어요.”
▼ 박 전 대표가 지원유세를 왜 거부했을까요.
“그건 제가 잘 모르죠.”
▼ 박 전 대표와는 장충초등학교 동기동창이고, 이전에는 함께 테니스도 치셨다던데요.
“전엔 그랬는데, 박 전 대표께서 수년 전 어깨를 다쳤다던가? 그때부터는 안 쳤어요. 저도 2년 전 겨울에 등산을 하다 넘어져서 어깨를 조금 다쳤는데 그래도 테니스 치는 데는 문제없어요.”
“난 테니스 칠 수 있다”
▼ 박 전 대표의 정치력이나 정책 역량, 리더십 같은 것을 어떻게 평가합니까.
“우선 정치적인 힘이 있고요. 지금 이명박 대통령 빼고는 정치적인 스포트라이트를 가장 많이 받죠? 장점이 많아요. 가장 큰 장점은 발언을 짧게 하는데 언론에서 볼 때 요점을 잘 지적해서 국민에게 공감을 얻더군요. 그런 정제된 발언이 박 전 대표의 내공이라고 볼 수 있죠.”
김문수 경기도지사는 2012년 비상(飛上)을 꿈꾸는 또 한 명의 잠룡(潛龍)이다. 김 지사는 최근 사회적 이슈로 떠오른 수도권 규제완화 문제를 놓고 수도권 입장을 대변하는 데 올인하고 있다. 정 최고위원은 경기도정을 이끌고 있는 입장을 이해한다고 했다.
▼ 김문수 지사가 수도권 규제완화의 ‘전도사’ 역할을 자임하는 것도 차기 대권행보라는 시각이 많은데요.
“김 지사의 말 중에서 단어 한두 개만을 놓고 봤을 때는 강하다는 생각을 할 수 있어요. ‘되놈보다 더하다’ 같은. 그렇지만 전체적으로 보면 이해가 가는 부분도 없지 않아요. 워낙 절박하게 느끼니까 그런 말까지 한 것 아닐까요.”
▼ 경기도의 사정이 정말 어려운 것 같은가요.
“이인제 의원이 경기도지사 할 때 수원에서 저녁식사를 같이 한 적이 있는데 그 때도 비슷한 불만을 피력하더군요. 아파트는 짓게 하면서 공장은 못 짓게 하는 바람에 경기도 전체가 베드타운이 됐다고요. 그때 제가 관심을 가진 건 이인제 지사는 김영삼 대통령과 가까운, 한동안 ‘양아들’로 불린 실력자인데도 그런 문제를 풀지 못하나 하는 것이었죠.”
“수도권 규제논란은 와각지쟁”
정 최고위원은 “어느 교수가 수도권 규제를 둘러싼 다툼은 ‘와각지쟁(蝸角之爭·달팽이 뿔끼리 싸우는 것처럼 하찮은 싸움)’이라고 하더라. 대화의 여지가 충분한데도 이러고 있다”고 답답해 했다.
▼ 사실 ‘차기’ 논의는 너무 이른 감이 있습니다만 현실적으로 정 최고위원도 유력한 차기 대권주자로 꼽히고 있는데요.
“정치인이야 국민께서 기대해주시고 성원해주시면 좋죠. 힘이 나죠.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도 하게 되고요. 저도 그런 말을 들으면 아직 부족한 점이 많지만 정진을 해서 잘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 대권을 염두에 두고 정치를 하나요?
“제가 6선 의원인데, 처음 국회의원선거에 출마할 때 정치를 한다기보다 공직에 몸담는다는 생각을 했어요. (대선에 출마했던) 2002년 어려운 시간이 있었을 때는 정치를 계속해야 하는지에 대해 고민도 했어요. 무기력감, 자책감도 많이 느꼈고. 어쨌든 무소속 의원을 오래했는데 한나라당에 와서도 대의원과 국민이 잘 봐주시니 능력이 부족하지만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는 거죠.”
그는 7·3 전당대회 대표 경선에서 박희태 후보에 이어 2위를 했다. 박희태 후보는 대의원 투표(70%)와 여론조사(30%) 결과를 합산해 모두 6129표를 얻었고 정몽준 후보는 5287표를 획득했다. 그러나 일반국민을 대상으로 한 여론조사에선 정몽준 후보가 46.9%의 지지를 받아 30.1%에 머문 박희태 후보를 완전히 따돌렸다.
정 최고위원은 이 대목에 큰 의미를 부여하는 듯했다. 국민이 잘 봐주니 열심히 해야겠다는 말끝에 “제가 바깥세상을 이해하는 편이니까 국제적으로 우리 국민들이 자부심을 느낄 수 있는 그런 나라로 만드는 데 일조했으면 하는 생각”이라고 했다. 그는 FIFA(국제축구연맹) 부회장 활동, 현대중공업 경영 등 ‘글로벌 이력’을 갖고 있다.
▼ 꿈을 이루기 위해선 당내 기반도 중요하지 않을까요?
“제가 당에 들어온 지 한 1년쯤 됩니다(그는 대선 직전인 지난해 12월3일 이명박 후보 지지를 선언하며 한나라당에 입당했다). 소속 의원들을 많이 만나서 그분들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듣고 저도 제 의견을 꾸준히 말하는 게 제일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해요. 의원들이 참석하는 각종 회의와 모임에 가능한 한 열심히 참석하려고 해요.”
정 최고위원은 요즘 ‘소통’의 중요성을 부쩍 강조하고 있다. 개인적 소통만이 아니라 당 내부의 소통, 당정 간의 소통이 모두 그의 관심사라고 한다.
▼ 얼마 전 정부가 금융위기 문제와 관련 아침에 당정회의 하고 오전에 발표한 것을 놓고 강한 어조로 비판했는데요.
“당정 간 소통에 분명히 문제가 있다고 봐요. 경제위기 상황을 맞아 비상체제니까 그럴 수도 있겠지만 정부와 여당이 상의하는 모양새를 갖춰야 국민에게 신뢰를 줄 수 있어요. 개선돼야 할 부분이죠.”
박근혜, 5배 앞서 나가
▼ 당내 의사결정 과정에 미비점이 있다고 보나요.
“기본적인 민주주의 절차가 중요하다는 이야기를 했죠. 한 사람의 천재가 (의사결정을) 할 수도 있지만 여러 사람이 모여서 논의하고 좋은 결론을 내리는 것이 민주주의라고 생각해요. 최고위원회의도 일주일에 두 번, 아침에 한 시간가량 하는데 그래선 심도 있는 논의가 이뤄지기 어려워요. 이런저런 의제가 있다고 알려주는 정도에 그치죠. 최고위원회의부터 운영 방식을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봐요. 토요일이든 일요일이든 오후에 만나서 현안을 놓고 충분히 논의하는 게 필요해요. 한나라당은 민주당과 달리 집단지도체제이기 때문에 함께 책임지기 위해선 더욱 생산적인 회의가 돼야지 의례적으로 흘러선 안 되는 것이죠.”
정 최고위원이 이처럼 당 안팎의 소통 문제에 큰 관심을 보이면서 각종 현안에 대해 적극적인 목소리를 내는 반면, 박근혜 전 대표는 드러나는 행동을 되도록 자제하고 있다. 정가에선 두 사람의 지지도 격차 때문이라고 해석한다. 여유 있게 앞서 가는 박 전 대표는 ‘오버’할 필요 없이 페이스를 유지하는 게 유리한 반면, 쫓는 입장인 정 최고위원은 접촉면을 넓히면서 색깔을 보여야 한다는 것이다.
‘내일신문’의 의뢰로 한길리서치가 9월9일부터 11일 사이에 성인 8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박 전 대표는 이명박 대통령을 제외한 현 여권 인사 중 가장 정치적 영향력이 큰 인물로 선정됐다. 박 전 대표가 가장 정치적인 영향력이 높다고 평가한 응답자는 44.7%로 압도적이었고 그 뒤는 정몽준 최고위원(8.9%)이었다. 이어 이상득 의원(5.6%), 박희태 대표(5.3%), 홍준표 원내대표(4.9%), 한승수 국무총리(4.9%) 순이었다. 다른 인물을 꼽은 수치를 다 합쳐도 박 전 대표보다 적다.
한나라당 지지층만을 대상으로 해도 박 전 대표는 48.7%, 정몽준 최고위원은 11.6%였다. 각 언론과 여론조사 기관이 차기 대선을 염두에 두고 실시하는 대통령 적합도 조사에서도 결과는 비슷하게 나온다.
▼ 차기 대통령 적합도 조사에서 박 전 대표와 정 최고위원 간 차이가 꽤 나는데요. 별 의미가 없는 결과라고 보나요?
“의미가 있죠. 박 전 대표가 많이 나왔다는 게 우선 의미가 있고요. 저도 어느 정도 나왔다면…. 사실 지난 대선에서 많은 분이 이명박 후보를 찍었는데, 그분들은 아직도 제가 한나라당 의원이란 인식이 약해요. 이제 당에 들어온 지 1년이 됐으니 앞으로 많이 노력해야죠.”
“2002년 준비기간이 짧았다”
정 최고위원이 2012년에 대선고지 등정에 나설 경우 ‘대권 재수(再修)’다. 그는 2002년 대선 때 ‘국민통합 21’을 창당해 대권에 도전했다 민주당 노무현 후보로의 후보단일화에 합의한 뒤 투표 전날 노 후보 지지를 철회한 바 있다. 그가 당시에 느꼈다는 ‘무기력감’은 정치권에서의 세(勢) 불리를, ‘자책감’은 노무현 후보와의 섣부른 후보단일화를 의미하는 것 같았다.
▼ 2002년을 회상할 때 가장 후회되는 부분, 지금이라면 그렇게 하지 않았겠다 싶은 부분은 뭡니까.
“당시 오만했다고나 할까, 그때 저는 준비를 안 하고 있었어요. 그러다 그해 가을쯤 돼서 예상후보 가운데 제가 여론조사에서 1위를 했다고 하더군요. 현역 국회의원인 제가 국민이 기대하는데 나서지 않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해 출마했는데 역시 준비 기간이 너무 짧았어요. 또 정치는 목표가 비슷한 사람들이 같이 해야 하는데, 무소속이나 다름없는 한계, 그런 게 있었죠.”
▼ 노무현 후보와의 단일화가 파국을 맞은 것도 결국은 목표가 다른 사람과의 만남 때문이었겠군요.
“(무소속이나 다름없는 한계를 느끼는) 그 과정에 노무현 후보와 단일화 논의가 있었는데 저희는 성실하게 응했지만 상대편에서도 과연 성실하게 했는지, 그런 부분에 지금도 아쉬운 생각이 듭니다. 당시 노무현 후보는 단일화를 하지 않겠다고 했었는데, 저는 성장배경이나 생각이 달라도 같이 일만 할 수 있으면 국민을 통합하는 계기가 될 거라고 봤어요. 그래서 정책합의를 하자고 했죠. 외교는 이렇게 하고 정치는 저렇게 하고, 그런 대화를 많이 나눴고 문서도 만들었어요. 그러나 나중에 판단해보니 상대방에서 성실하게 응하지 않았더군요. 하여간 2002년에 좋은 경험을 했다고 생각합니다.”
정 최고위원은 노무현 대통령이 성공하기를 바랐다고 했다. 그러다 끝내 실망하고 만 것은 노 대통령이 재임 중 “대한민국 역사는 정의가 패배하고 불의와 기회주의가 승리한 역사”라고 말했을 때였다고 한다. 정 최고위원은 “선조들이 지혜와 희생으로 나라를 일궜는데, 그런 발언은 아주 부적절하다고 생각한다”며 얼굴을 찌푸렸다. 그는 전당대회 직후 “한나라당 국회의원이라면 누구든지 목표는 2012년에 한나라당이 정권재창출에 성공해서 대한민국 안정에 일조해야 한다는 것이다. 누가 돼야 한다는 것은 그 다음의 문제”라고 강조한 바 있다.
▼ 정권재창출의 목표가 같은 사람과 함께 해야 한다는 교훈을 여전히 지니고 있는지.
“그렇죠. 우리 한나라당 의원들이 그런 생각을 하는 게 당에도 좋고 국민을 안심시키는 방법이죠. 물론 당내 경선과정을 거쳐서 이긴 사람이 후보가 되겠지만 가장 기본적인 전제는 우리가 경선을 치르든 뭘 하든 한나라당이 2012년 정권재창출에 성공할 수 있도록 분위기를 만드는 데 참여하고 협조해야 한다는 게 기본이죠.”
정 최고위원은 최근 ‘친이’(親李·친 이명박)계를 중심으로 접촉면을 넓혀나가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정 최고위원은 지난 10월10일 국회 외교통상통일위원회 국정감사차 방문한 미국 워싱턴에서 이재오 전 최고위원을 만났다. 이 전 최고위원은 4·9 총선에서 낙선하고 미국연수 길에 오르기 전까지 MB 진영의 ‘군기반장’으로 불렸고, 지금도 여권 내에서 상당한 세를 형성하고 있다.
“예전엔 혼자여서 동네북 돼”
▼ 이재오 전 최고위원을 만난 이유와 대화 내용이 궁금한데요.
“제가 거기까지 가서 안 만나고 왔으면 오히려 이상하지요. 이 전 최고위원을 안지 10년도 더 됐을 걸요. 저와 이 전 최고위원, 최형우 전 의원이 같이 식사도 자주 했어요. 지금 이 전 최고위원이 어려운 시기를 겪고 있으니 간 김에 만난 거죠. 한나라당에 기여한 일이 많으니까 앞으로 역할이 있을 것으로 기대합니다.”
▼ 당내 이재오계가 차기 대선후보 경선 때 활발히 움직이지 않을까요?
“4년 후 있을 일이고…. 2012년 정권재창출이 가장 중요해요. 그러기 위해선 평상시 한나라당이 잘해야죠. 그러자면 이 전 최고위원도 역할을 해야 하는 것이고요.”
▼ 요즘 특별히 가깝게 지내는 의원들은 누구인가요.
“같은 상임위(외교통상통일위) 소속 의원들과 자주 어울리고, 아침에 같이 축구 하는 의원들도 있어요. 테니스 모임도 있고….”
정 최고위원은 복잡한 여권의 역학구도 속에서 지금의 세 불리를 만회하고 입지를 다질 수 있을까. 그는 지난 18대 총선 때는 서울로 진출해서 ‘뉴타운 조성’을 공약으로 내세웠다가 검찰 수사까지 받는 곤욕을 치렀다. 그는 “정치판에 제대로 들어왔다는 느낌이 들었다”고 했다. 하지만 그를 상대로 해서는 지난해 한나라당 대선후보 경선 때 이명박·박근혜 후보가 치렀던 수준의 검증은 없었다.
▼ 앞으로 대권에 도전하려면 수많은 검증 절차를 거쳐야 할 텐데요.
“예전에는 혼자 있으니까 여·야 의원들이 나를 많이 공격했어요. 동네북이 되다시피 했는데, 문화관광위 국정감사 때 축구협회장 하면서 몇백억원을 횡령했다는 말을 들었어요. 또 2002년 월드컵이 끝난 뒤에는 내가 붉은악마 회장에게 마약 복용 문제를 폭로하겠다면서 선거운동을 요청했다고 주장하는 의원도 있었고요. 저는 그런 데 별로 신경도 쓰지 않았지만 의원들이 발표하니까 언론에서 크게 보도하고, 앉아서 나쁜 놈이 됐었죠.(웃음)”
▼ 내년 1월 치러지는 축구협회장선거에 불출마를 선언했더군요.
“16년째 축구협회장으로 있으면서 제가 할 일을 충분히 했다고 봐요. 그리고 축구협회장이 굉장히 힘든 자리예요. 축구 대표팀 감독직이 독배를 들고 있는 자리라고들 하는데, 감독이 독배를 들고 있을 정도면 회장은 어떻겠어요? 그런 자리에 16년 동안 있었다는 게 스스로도 믿기지 않아요.”
“헨리 키신저가 묻기에…”
▼ 축구협회장 자리를 떠난 것도 정치에 전념하기 위해서인가요?
“아무래도 시간을 내기 어려우니까…. FIFA 부회장은 2011년까지 하게 돼 있는데, 그때 FIFA 회장선거에 나갈지 안 나갈지는 아직 생각 중입니다. FIFA 사람들은 제가 할 차례라면서 출마를 기정사실화하고 있어요. 미국 국무장관을 지낸 헨리 키신저 박사를 만났을 때 ‘FIFA 회장선거와 차기 대통령선거 가운데 어디에 나갈 생각이냐’고 묻기에 ‘둘 다 나가고 싶은 심정’이라고 했죠.(웃음)”
▼ 정치인으로서 본인이 갖고 있는 경쟁력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글쎄 뭐, 조심스럽긴 한데, 지금 우리나라 국민소득이 2만달러 정도고, 미국은 4만달러쯤 되죠? 그런데 미국 같은 4만달러 국가도 국민들 관심은 온통 ‘경제’에 쏠려 있어요. 역시 경제가 중요하죠. 저는 경제를 공부했고 경제에 관심도 많아요. 특히 우리나라는 경제 문제와 함께 안전보장을 위한 외교 역시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정 최고위원은 서울대학교 경제학과를 나와 미국 매사추세츠공과대학교 경영대학원에서 경영학 석사, 존스홉킨스대에서 국제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는 최근 야당은 물론, 한나라당 일각에서도 제기되고 있는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 경질론’에 단호하게 반대했다. 또 정부의 금리인하 정책에 “적절한 조치”라며 환영하는 등 지금의 정부 경제팀에 후한 점수를 줬다.
11월 7일 서울 신라호텔에서 열린 한국국제교류재단 주최 강연회에서 정몽준의원과 콜린 파월 전 미국 국무장관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지금은 세계가 하나가 돼 금융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시점입니다. G20 정상회의나 재무장관회의 같은 데서 다 결정하는데 우리나라만의 별도 정책이 있을 수 없죠. 이런 상황에선 어떤 분이 장관 자리에 앉아도 똑같아요. 강만수 장관 책임론이 나오는데, 책임져야 될 게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없고 새로운 정책대안도 없어요. 사람만 바꾸는 것은 시간낭비죠.”
3조원 재산 3분의 1 토막
정 최고위원은 이번 금융위기로 재산상의 손실을 봤다고 한다. 지난 3월 3조6043억875만5000원의 재산을 신고한 그는 “올해 초 주가가 한창 좋았을 때와 비교하면 3분의 1 수준보다 더 떨어진 것 같다”고 했다.
▼ 이명박 대통령은 ‘경제 살리기’를 내걸어 당선됐지만 오히려 경제 문제 때문에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전세계 경제가 어렵기 때문이겠죠. 다른 측면에선 현 정부가 초기부터 어려움에 처한 이유로 이런 것을 생각해볼 수 있어요. 미국은 대통령이 바뀌면 적게는 2000개에서 많게는 2만개 공직의 주인이 교체됩니다. 우리 경우엔 이명박 정부가 새로 들어섰지만 여전히 지난 정부 때 임명된 사람이 꽤 있고, 그들과 손발이 잘 맞지 않아 산뜻하게 출발하지 못했어요. 또 지난 10년 동안 (현 집권세력이) 국정운영 경험, 행정경험을 쌓지 못한 것도 원인이 되겠죠. 흔히 ‘잃어버린 10년’이란 표현을 쓰는데 국가 정통성과 정체성이 훼손된 것은 맞다고 생각해요.”
정 최고위원은 14대와 17대에 이어 18대에서도 외교통상통일위원회에서 활동하고 있다. 국회 한미의원외교협의회 회장인 그는 미국 대선에서 버락 오바마 후보가 당선된 직후 한나라당이 설치한 한미관계특위 위원장을 맡았다. 일부 언론에선 정 최고위원을 ‘오바마 효과’의 최대 수혜자 중 한 사람이라고 평가한다. 당내 대표적 ‘미국통(通)’으로서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 시절 대미 특사로 워싱턴에 다녀오기도 한 그가 오바마 정부 핵심 인사들과의 인맥을 바탕으로 향후 대미 외교에서 목소리를 낼 수 있을 것이란 시각이다.
정 최고위원은 11월5일 한나라당 최고위원-중진 연석회의에서 “한나라당은 보수정당이라고 하는데, 이번 미국 대선 결과를 교훈 삼아 변화의 흐름을 타야 한다”고 강조했다. 오바마 당선인이 2012년 대선에서 재선에 성공하면 같은 시기 선출되는 우리나라 차기 대통령과 호흡을 맞추게 된다.
▼ 오바마 당선인이 승리한 배경과 의미는 무엇이라고 봅니까.
“미국 국민이 변화를 선택한 것이죠. 우리는 10년 만에 보수정권을 탄생시켰지만 미국은 ‘200년 만의 변화’라고 표현하더군요. 링컨 대통령 시대의 남북전쟁이 이제야 실제로 종결됐다고도 하고요. 변화의 의미는 참 큰 것 같습니다. 우리 입장에선 가장 중요한 동맹국가의 변화를 관심 깊게 지켜보고 잘 이해할 필요가 있어요.”
▼ 정 최고위원은 이명박 대통령과 같은 ‘현대’ 출신이라는 점이 부담이 되지 않을까요?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그분이 대통령이 된 것은 서울시장 시절 업적이 발판이 됐다고 생각해요.”
“지난 10년 동안 국가 정통성과 정체성이 훼손됐다”는 말과 관련, 그는 “나는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특정 계층이 아니라 모든 계층에 혜택을 줄 수 있는 제도다. 문제가 있긴 하지만 인류 역사상 이보다 더 좋은 제도는 없다고 본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