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네시스 쿠페의 힘은 주체하지 못할 정도로 강력했다. 단숨에 차 옆 풍경이 뒤로 사라지고, 달릴수록 시트에 몸이 파고드는 느낌은 경험한 자가 아니면 절대 알 수 없다. 반면 ‘디자인의 혁명’이라 평가되는 쏘울은 어디에 내 놓아도 눈길을 끈다. 자존심 세고 개성 강한 ‘도시 트렌드세터(Urban Trendsetter)’에게 딱 어울리는 차다.
제네시스 쿠페 380GT
글로벌 정통 스포츠카
상상 초월의 파워, 관념의 한계를 뛰어넘다
‘녀석’을 첫 대면한 건 지난 11일7일 저녁이었다. 어둠 속을 미끄러지듯 달려오는 날쌘 ‘흑표범’은 주위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그 주인공은 바로 검정 제네시스 쿠페 380 GT(풀 옵션, 3600만원). 각진 곳이라곤 단 한 군데도 볼 수 없는 유려한 몸체에 지면과 맞닿을 듯한 하부, 일견에도 공기저항지수(0.32)가 극도로 낮은 스포츠카의 전형이었다. 짧은 오버항과 긴 휠베이스, 낮은 프런트와 높은 리어의 스포츠 쿠페 특유의 다이내믹한 조형미는 한 마리의 잘 빠진 흑표범을 연상시켰다. 보는 것만으로도 달리고 싶은 욕망이 샘솟는 그런 차였다.
국내 최초로 시도된 프런트 전면부의 다크 크롬 라디에이터 그릴은 이 차의 경쟁자가 누구인지 직감케 했다. 꿈의 스포츠 쿠페라 불리는 인피니티 G37과 아우디 TT가 바로 그들. 휠 하우스에 꽉 들어찬 대구경 19인치 브리지스톤 포텐자 타이어와 세계 최고의 브레이크 시스템 업체인 이탈리아 브렘보사의 빨간색 캘리퍼도 휠 사이로 그 모습을 드러내며 야생미를 더했다. 날카로운 표범의 눈을 닮은 헤드램프는 G37과 TT의 그것보다 더 매섭다. 전체적으로 도전적이고 공격적인 분위기가 차 외관을 감싸고 돌았다.
현대자동차는 지난 10월10일 제네시스 쿠페를 출시한 후 약 25일 만에 1000대 넘게 팔았다. 고성능 쿠페가 일부 마니아의 전유물인 시대는 이미 지났다는 반증. 현대차는 “앞으로 우리나라에서도 외국처럼 기업 CEO가 대형 스포차카에서 내리는 모습을 흔히 볼 수 있을 것”이라고 예측한다. 현대차는 내년 쿠페 판매목표를 내수 5000대, 수출 3만5000대로 잡았다. 국내 업체로는 최초로 글로벌 고성능 스포츠카 시장에 출사표를 던진 셈이다.
실질적인 국내 최초의 스포츠카
현대차의 이 같은 자신감은 제네시스 쿠페의 엄청난 파워와 성능에서 비롯됐다. 현대차는 1990년 국내 최초의 쿠페인 스쿠프를 시장에 내놓은 후 1996년에 티뷰론, 2001년엔 투스카니를 연이어 출시했지만, 스포츠카의 본령인 후륜구동의 대형 플랫폼을 가진 쿠페 스포츠카는 제네시스 쿠페가 최초다. 카 마니아들이 제네시스 쿠페를 ‘실질적인’ 국내 최초의 정통 스포츠카라고 평하는 것도 바로 그 때문이다.
제네시스 쿠페 200 Turbo(2300만~2900만원)는 배기량 1998cc의 2.0 세타 I4 TCI 엔진이 장착됐는데, 동급 경쟁 수입차종인 아우디 TT(I4 2.0 TCI엔진 장착)보다 최대출력과 최대토크에서 모두 앞선다. 시속 100km까지 도달하는 데 시간(제로백)은 8.5초. 기존 국산 쿠페와는 상대도 되지 않는 파워를 가졌다. 제네시스 쿠페 380 GT(3000만~3600만원)에 얹어진 V6 3.8 람다 RS 엔진은 기존 제네시스의 3.8 람다 엔진을 스포츠카용으로 개조한 것으로, 현대차 엔진 라인업 중 최고출력(303마력)과 최대토크(36.8kgf·m/rpm)를 자랑한다.
쿠페 380 GT는 전장이나 폭 등 차량 크기뿐 아니라 최대출력과 토크 면에서도 경쟁차종인 인피니티 G37에 절대 뒤지지 않는다. 100km까지의 도달시간은 불과 6.5초. 고속도로나 자동차 전용도로에서 눈 깜짝할 새에 저 멀리 사라지는 슈퍼카의 성능을 모두 갖췄다. 최대출력이 167마력인 전륜구동의 투스카니 2.7과 비교하면 시쳇말로 게임이 되지 않는다. 녀석을 처음 보는 순간, 그 즉시 달리고 싶은 충동이 일어나면서 가슴속에 감춰진 무한질주의 본능이 살아났다. 이런 설렘을 애써 감추고 시승차의 키를 넘겨받는데 현대차 직원이 한마디 툭 던졌다.
“조심하세요.”
지금껏 시승차를 많이 몰아봤지만 이런 경고를 받기는 처음. 전에 없던 노파심에 “갑자기 왜 그러느냐”고 물으니 직원은 그저 “밟아보면 압니다”라고만 했다. 차문을 열고 운전석에 앉았는데 마치 전투기 조종석에 앉은 느낌이었다. 스포츠카 고유의 저중심 운전석은 운전자의 몸을 뒤에서 잡고 있는 양 안정감이 돋보였다. 무언가에 폭 싸여 안긴 느낌이랄까. 센터플로어 박스에는 기존 제네시스에 얹힌 잡다한 액세서리 기능의 스위치들이 사라진(심지어 그 흔한 내비게이션도 없다) 대신, 오디오(JBL, 6체인지 CD)와 공조시스템 조작용 스위치만이 가지런하게 자리를 잡고 있다. 한눈에도 고속주행을 하면서 재빨리 조작할 수 있도록 배치하려 노력한 흔적이 역력하다. 인테리어 또한 외관과 비슷하게 역동적이고 하이테크한 분위기.
뒷좌석도 생각보단 넓었지만 몸이 비대하거나 키가 큰 사람이 앉으면 조금 불편할 듯 보였다. 하지만 흔히 스포츠카의 단점으로 지목되는 트렁크의 협소함은 어느 정도 극복했다. 평상시에도 골프백 하나와 다른 짐들이 충분히 들어가고 뒷좌석을 접으면 골프백 2개와 웬만한 잡동사니를 실을 수 있는 공간이 확보된다.
제네시스 쿠페를 시승 중인 기자. (위) 표범의 눈 같은 리어램프와 헤드램프(아래).제네시스 쿠페 차량 내부. 모든 스위치가 고속 주행에 적합하게 배치됐다.
이제 시동을 걸 차례. 쿠페는 5가지 전 모델에 스마트 키 시스템이 구축돼 시동은 버튼만 누르면 끝. 부루르릉. 시동을 걸었건만 정지상태에선 차량 소음이 거의 없었다. 예상외의 정숙함에 오히려 황당함이 몰려왔다. 무릇 스포츠카는 적당한 소음이 있는 게 제격인데 쿠페는 정통 대형 세단인 기존 제네시스만큼 소음을 잡아냈다. 핸들은 스포츠카답게 조금 작지만 그 안에 오디오와 각종 조작 스위치가 붙어있었다.
가속 페달에 발을 대는 순간, ‘부웅’하며 차가 튀어나갔다. 정말 발만 댔는데도 그랬다. 계기판의 엔진회전수(rpm)가 순간적으로 3000을 넘어섰고 기자의 머리는 뒤로 젖혀지며 헤드레스트를 몇 번씩 받았다. 현대차 직원의 “조심하라”는 말을 그제야 이해할 수 있었다. 말 그대로 폭발적인 힘이었다. 시내 주행은 여간 조심스럽지 않았다. 밟아도 금세 옆의 차들이 시야에서 멀리 사라졌다. 속도가 워낙 빠르다 보니 의도하지 않아도 직각 끼어들기가 가능했다. 서울 외곽 자유로에 차를 올려놓고 차량 틈새를 비집고 나아갔다. 시속 160km를 넘는데 가속 페달의 10%도 채 밟을 필요가 없었다. 한마디로 시내 주행에선 힘이 남아돌아 어쩔 줄을 모르는 차, 달리고 싶어도 제대로 달릴 수 없는 차가 바로 제네시스 쿠페였다. 비유하자면 우리 안에 갇힌 표범 신세라고나 할까.
녀석의 질주본능을 제대로 실험하기 위해 인천공항도로로 향했다. 정차시의 정숙함과 달리 가속을 하면 차량 아래쪽에서 우웅, 우아앙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발가락에 주어지는 힘에 따라 그 소리도 따라서 커졌다. 속도감이 발가락에서 온몸으로 전해졌다. 현대차는 운전자에게 속도감을 맛보게 하기 위해 일부러 엔진음과 배기음을 듣기 좋을 정도로 조정했다고 한다. 이번엔 시속 100km까지의 도달 시간을 알아봤다. 가속페달을 끝까지 밟았는데 뒷바퀴가 헛돌면서 먼지가 나는가 싶더니 이내 100km에 도달했다. 몇 번 다시 쟀지만 현대차의 공식 자료보다 0.3~0.7초가 더 짧았다. 평균 기록은 6초. 급가속을 하는데도 자동변속에는 전혀 무리가 없다. 중간에 덜컹거리는 느낌이나 힘이 달린다는 느낌은 없었다. 6단 자동변속기의 위력은 대단했다.
최고성능의 안전장치
쿠페 380 GT의 특기할 점은 자동변속 상태에서도 수동 변속기 조작을 맛볼 수 있다는 사실이다. 클러치가 없는 자동변속 상태에서 1단부터 6단까지 운전자의 입맛에 따라 변속기를 수동조작하며 속도를 조절할 수 있다. 정통 스포츠카답게 쿠페의 뒷바퀴는 앞바퀴보다 20mm 더 크다. 이 또한 고속주행에서 안정감을 주는 요인 중 하나다. 코너링도 완벽했다. 시속 200km 이상 속력에서도 한편으로 쏠리지 않고 핸들의 조작에 따라 경박하게 픽픽 움직이지도 않는다. 쿠페에는 운전 성능을 높이기 위해 각 바퀴의 회전수 차이를 자동으로 제어하는 차동제한장치가 설치돼 눈길, 빗길, 흙길 등 미끄러운 노면에서 차가 밀리는 현상을 막아준다. 실제 빗길에서 미끄럼방지 장치 스위치를 누르자 험악한 운전에도 불구, 차는 스스로 균형을 찾았다.
시속 200km를 넘어도 타코메타(엔진 회전수·rpm) 계기판은 레드존(엔진 한계허용 수치)에 범접할 기회를 주지 않는다. 그러나 계기판상 최고 속도인 280km로 주행해보는 것은 아쉽게도 포기해야만 했다. 그날따라 인천공항도로와 영종도엔 차가 매우 많았기 때문이다. 힘은 펄펄 남아도는데 달릴 곳이 없었다. 시승의 마지막은 세계 최고의 고성능 브레이크인 이탈리아 브렘보사의 브레이크를 실험할 차례. 150km 속도에서 급브레이크를 잡았지만 핸들이 떨리거나 차량이 옆으로 밀리는 현상은 없었다. 다만 속도에 따른 전방 미끄러짐 현상은 어쩔 수 없었다. 다른 차량보다는 덜 미끄러진 느낌이었지만 밀린 거리를 실제 측정하진 않았다.
이 차에는 급제동이나 핸들 급조작 같은 위험상황에서 차 자신이 알아서 각 바퀴의 제동력을 조절하는 최첨단 전자제어시스템이 장착돼 있다. 차체자세 제어장치, VCD가 바로 그것이다. 4개의 휠 스피드 회전수와 경로 이탈, 흔들림 등의 각종 정보를 요(Yaw) 센서가 감지해 중앙 인식장치로 보내면 쿠페는 스티어링휠 센서의 꺾임량을 종합 판단해 네 바퀴의 제동력을 각각 독립적으로 조절한다. 외국 드라마에 나오는 인공지능 슈퍼 카 ‘키트’를 실제 만난 기분이었다.
단 3일의 시승이었지만 쿠페 380 GT로부터 받은 느낌은 강렬했다. 몇 초 만에 차 옆의 풍경이 백미러에서 사라지는, 달릴수록 몸이 운전석을 파고드는 느낌은 아마 평생 잊지 못할 경험으로 내 머리에 각인될 것이다.
▼쏘울
디자인의 ‘마지막 혁명’
비정형과 의외성이 벌이는 재기와 발랄의 잔치
어머, 저 차 뭐야. 이거 외제 차 아니야?”
기아자동차가 지난 9월22일 출시한 신개념 CUV(Crossover Utility Vehicle) 쏘울을 시승한 3일 동안 기자는 마치 연예인이 된 기분이었다. 제네시스 쿠페는 그 위용 때문에 가까이 다가서는 사람이 별반 없었지만 쏘울은 마치 길거리에서 애완용 동물을 만난 것처럼 직접 만지거나 심지어 쓸데없이 다가와 바퀴를 발로 차보는 사람도 있었다. 정지 신호를 받아 멈춰서면 옆 차의 승객들이 쏘울을 가리키며 서로 이야기꽃을 피우는 모습도 쉽게 접했다.
온 나라가 불황의 공포에 숨죽이고 있는 이때, 쏘울의 생산공장인 기아차 광주공장은 즐거운 비명을 지르고 있다. 쏘울은 10월말까지 출시 후 38일간 무려 5574대가 팔려나가는 대기록을 세웠다. 쏘울의 이 같은 인기는 바로 전대미문의 파격적 디자인에서 비롯된다. 쏘울은 차량 크기부터 우리에게 생경하다. 경차처럼 작아 보이지만 알고 보면 소형차보단 넓고 높으며 대형 SUV보단 작고 낮다. 언뜻 BMW의 미니 쿠페가 떠오르지만 실제 자를 가져다 재면 쏘울이 훨씬 크고 높다. 사실 CUV, 즉, 크로스오버 차량의 콘셉트 자체가 SUV의 스타일에 미니밴의 다목적성과 세단의 승차감을 접목시킨 것.
쏘울을 처음 대했을 때 떠오른 이미지는 장난기 많은 아기 코끼리였다. 뭉뚝한 엉덩이에 날렵하게 내려오는 후드와 프런트 라인이 어우러진 모습이 그런 이미지를 자아냈다. 어딘지 모르게 귀엽고 장난기가 넘치는 모습, 젊고 재기 발랄한 느낌이었다. 쏘울의 파격적 디자인은 터스크(코끼리 상아) 모양의 범퍼와 볼륨감 있는 후드의 전면부, 전고후저(前高後低) 형태의 공격적이고 강인한 측면부가 만나면서 완성된다. 쏘울을 첫 대면했을 때 대부분의 사람은 “어, 저 차는 뒷부분이 더 낮네”라는 반응을 보인다. 차량은 보통 공기저항을 줄이기 위해 앞을 낮게 하고 뒤를 높이는 게 상식. 그런데 쏘울은 그 불변의 법칙을 가볍게 깨버렸다.
쏘울의 디자인 총괄 담당 피터 슈라이어 기아차 부사장은 유럽 스타일 차량 디자인의 대부로 알려진 인물. 그의 디자인 철학은 ‘직선의 단순화’로, 실제 쏘울은 모두가 직선으로 연결된 듯하면서도 날카롭지 않고 부드러운 인상을 준다. 쏘울은 이미 2006년 디트로이트 모터쇼에서 유럽형 콘셉트카로 첫선을 보여 호응을 받은 바 있다. 일찌감치 대박을 예약해둔 상태.
앙증맞은 쏘울의 계기판(위)과 소리의 크기에 따라 빛이 변하는 라이팅 스피커(아래 오른쪽 ). 센터페시아 정중앙에 자리잡은 둥근 스피커가 눈에 띈다.
개성 만점 트렌드세터의 차
쏘울이 젊은 세대에게 사랑받는 또 다른 이유는 주행감의 색다름과 가격 대비 주행성능에 있다. 자그마한 핸들과 앙증맞은 계기판, 요철 등 도로의 온갖 사정이 엉덩이에 그대로 전해지는 유럽식 스타일 쇼버도 우리에겐 이색적이다. 주행감마저 톡톡 튄다. 같은 가격대의 동급 차량에 비해 연비도 우수하다. 1.6 가솔린 모델(1275만~1820만원) 4개 종류의 최고출력은 124마력, 연비는 13.8km/ℓ. 동급 경쟁차 미니 쿠페보다 차체는 크지만 출력과 연비는 더 크고 좋다. 2.0 가솔린 모델(1670만~1893만원)은 최고 출력 142마력에 연비 12.9km/ℓ, 1.6 디젤 모델(1515만~2067만원)은 최고출력 128마력에 연비가 무려 15.8km/ℓ에 달한다.
2.0 가솔린 최상급 모델을 몰고 대전까지 경부고속도로를 달렸는데, 가속 때 간헐적으로 들리는 약간의 소음만 제외하면 SUV의 넓은 시야를 확보한 상태에서 고급 세단을 모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힘도 좋다. 시속 160km까지는 차에 무리가 전혀 가지 않았다. 또한 유럽형 스타일이 가지고 있는 코너링의 문제는 나타나지 않았다. 더욱이 무게중심이 위에 있는 SUV의 경우 코너링에서 세단보다 차체가 기울고 미끄러지는 경향이 있는데, 쏘울은 120km의 속력에서도 흔들림이나 미끄러짐 없이 부드러운 코너링을 자랑했다.
개성을 강조하는 차이니만큼 고객의 선택 폭(커스터마이징 브랜드 ‘튜온’) 또한 넓다. 쏘울은 엔진에 따라 크게 4가지로 나뉘지만 구입하는 사람의 취향에 따라 176가지를 고를 수 있다. 엔진에 따라 4가지, 차량색깔 11가지, 차에 문신을 넣는 보디데칼 등 튜온의 스타일링 튜닝킷 선택사양 4가지가 따로 있어 선택할 수 있는 경우의 수가 그만큼 많아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거리에서 자신의 차와 완전히 똑같은 사양의 쏘울을 만날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보면 된다.
자존심 세고 개성 강한 도시의 트렌드세터(Urban Trendsetter)에겐 딱 어울리는 차가 바로 쏘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