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가의 투자 전문가이자 수학자인 니콜라스 탈레브는 우리가 미래에 대해 고민하고 예측하는 것이 사실은 굉장히 작은 망원경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것과 같다고 지적한다. 역사와 사회는 예측하지 못한 사건들 때문에 도약하는 것인데 우리는 어리석게도 한발 한발 기어가는 세계라 믿으려고 한다는 것이다.
18세기까지 사람들은 이 세상의 백조는 모두 하얗다고 믿었다. 그렇지 않은 백조를 본 일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제임스 쿡 선장이 호주에서 검은 백조를 발견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검은 백조의 발견은 조류학자들에게 아주 흥미롭고 놀라운 일이었겠지만, 이 이야기는 우리에게도 상징적인 의미가 있다.
관찰과 경험을 통해 수년간-혹은 수백, 수천년- 학습한 지식에는 한계가 있다는 것, 그리고 우리가 아는 지식이란 언제든 붕괴될 여지가 있다는 것이다. 그것도 불확실하고 일어날 것 같지 않은 단 하나의 사건으로 말이다. 수천년 동안 수백 만마리의 백조가 흰색이었지만, 검은 백조를 본 일이 없다고 해서 모든 백조가 하얗다고 단언할 수는 없는 것이다.
‘블랙 스완’에는 칠면조 이야기가 나온다. 천일 동안 매일 주인은 칠면조에게 먹이를 가져다주었다. 주인이 먹이를 주는 것이 생활의 규칙이었고 흔들리지 않는 고정관념이었다. 그러나 추수감사절 직전 매일 먹이를 갖다주던 주인이 칠면조를 죽인다. 칠면조는 죽는 순간 지난 천일동안 주인이 먹이를 가져다준 것이 사실은 오늘 나를 죽이기 위해서였다는 것-단편적인 사건들이 독립적인 것이 아니라 사실은 그 영향이 계속 증폭되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을까?
예상치 못한 사건이 미래에 일어난다면 과거의 경험만 믿고 쌓아올린 지식은 붕괴될 수 있다. 저자가 말하는 블랙 스완은 ‘극히 예외적이고 알려지지도 않았고 정말 가능성 없어 보였지만 일단 등장하고 나면 엄청난 파급효과를 가져오는 사건’을 뜻한다.
우리는 결코 예견할 수 없다
블랙 스완의 이야기가 흥미를 끄는 것은 그것이 인간 본연의 욕망과 연관되어 있기 때문이다. 인간이 가장 알고 싶어하는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미래다. 인간은 언제나 미래를 알고 싶어했다. 아무리 과학기술이 발달하고 지식이 늘어나도 미래는 결코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새해가 되면 올해의 운세를 알고 싶어 역술가를 찾아다니고, 회사는 고도의 수학적 기법에 슈퍼컴퓨터까지 동원해 각종 예측모델을 만들어 미래에 일어날 일을 알고 싶어한다. 이 책의 10장에도 카라바조의 ‘점쟁이’라는 그림이 나온다. 그림 속의 점쟁이는 자신의 미래를 알고 싶어하는 청년을 야릇한 눈빛으로 바라보면서 청년의 반지를 훔치고 있다. 미래에 대해 뭐라고 말하는 사람들한테 우리는 완전히 ‘봉’이다. 이를 알면서도 우리는 역술가를 찾아간다. 환율도 예측하고 에어컨 수요도 예측하고, 주가지수도 예측하고, 유가도 예측한다.
이 책의 16장을 보면 올림푸스 카메라의 렌즈뚜껑 같은 물체가 땅에 떨어져 있는 사진이 나온다. 사진에 올림푸스 카메라 렌즈뚜껑이라는 설명은 없다. 그동안 보아왔던 검정색 동그란 플라스틱에 ‘OLYMPUS’라는 글자가 하얗게 써 있어서 그렇게 생각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오른편 페이지에는 렌즈뚜껑 같은 물체가 사실은 굉장히 커서 어떤 남자가 자기 키 절반만한 그 렌즈뚜껑을 손에 잡고 있는 사진이 나온다. 이 사진 두 장으로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것, 즉 ‘내가 알고 있는 게 전부가 아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일까. 그것은 인간이 본능적으로 지닌 오류 때문이다. 인간은 자신이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을 과신하는 오만함에 빠져 있다. 이런 오만함 속에서 미래를 예측한다. 또 모든 사건은 예측할 수 있다고 믿는다. 혼란스러운 현실을 범주화하고, 설명할 수 있는 모델을 만들고 과거의 풍부한 경험과 지식을 동원해 완벽한 예측 모델을 만들었다고 자신한다.
인간의 본능적인 오류가 일으킨 역사 속의 블랙 스완 사례를 한번 살펴보자.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프랑스군은 독일군이 제1차 세계대전 때와 마찬가지로 프랑스 북부로 공격할 거라고 믿고 그곳에 정예부대를 배치했다. 남쪽의 독일 접경지대는 마지노선을 구축해놓았기 때문에 완벽한 방어선이라고 자신했다. 독일군이 설마 험난한 중부 아르덴 삼림지대로 넘어올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나 독일군은 중부 삼림지대로 들어와 한달 만에 프랑스를 점령했다.
보다 최근 사례로는 롱텀캐피탈 매니지먼트의 사례가 있다. 이 회사는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머턴과 숄즈를 비롯 뉴욕 금융계의 천재들을 모아 유가증권의 가격모델을 개발했다. 그리고 산출된 가격모델과 시장가에 차이가 나는 금융상품에 투자했다. 특히 유동성이 낮고 수익성이 높았던 러시아 채권을 주로 매입했는데, 가격이 떨어지면 모두 처분하면 된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러시아가 모라토리엄을 선언하면서 채권가격이 폭락하고 아무도 사지 않는 상황이 발생하고 말았다. 머턴이 노벨경제학상 수상 소감으로 “측정 가능하다고 해서 리스크를 줄일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이다”라고 말해놓고, 정작 자신은 파생상품 가격모델을 과신했던 것 같다. 이 두 사례는 일어나지 않을 것 같아도 가능성이 제로는 아닌 위험을 과소평가하면 실패 원인이 될 수 있다는 교훈을 주고 있다.
그렇다면 왜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그들은 예측이 빗나갈 가능성을 염두에 두지 않았으며 전혀 일어나지 않을 것 같아도 가능성이 제로는 아닌 위험을 과소평가했다. 첫째는 정확성을 생각하지 않고 예측치를 내놓는 것 자체를 중요시했기 때문이다. 계획을 위한 예측을 할 때는 예측치보다 예측의 정확성이 더욱 중요하다. 둘째는 예측 대상이 되는 변수가 무작위적 특성을 갖는다는 점을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결국 주어진 예측치가 옳은 것처럼 보여도 여기에서 상당히 빗나갈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는 것이다.
평범의 왕국, 극단의 왕국
저자는 책 속에서 재미있는 이야기를 제안했다. 전체 인구 중 1000명을 무작위로 뽑아서 운동장에 나란히 세워놓는다고 할 때 우리가 생각하는 가장 뚱뚱한 사람을 상상해서 표본에 집어넣어보자는 것이다. 이 사람의 몸무게를 일반인의 3배 정도인 180~240kg이라고 하자. 하루에 섭취하는 칼로리 순으로 줄을 세워놓는다고 해도 가장 많이 먹는 사람이 평균인 사람보다 5배 정도일 것이다. 그런데 내가 만약 7000kg이 넘는 몸무게를 가진 사람이 있어서 이 표본에 추가하겠다고 하면 다들 말도 안 되는 이야기라고 할 것이다.
자, 이제 1000명의 사람을 다시 세워보자. 여기에 딱 한 명을 추가하는데 그는 마이크로소프트의 설립자인 빌 게이츠이다. 그의 재산은 800억달러가 넘는다고 한다. 나머지 1000명의 재산을 다 합치면 아마 수천만달러일 것이다. 여기서 다시 아까 말한 몸무게 순서대로 1000명을 나란히 세운다고 할 때 빌 게이츠의 재산은 무게로 환산하면 자그마치 230만kg이 된다.
전세계의 베스트셀러인 해리포터의 작가 조앤 롤링을 줄 세우면 어떨까. 작가 1000명을 뽑아서 일렬로 줄을 세울 때 1000명의 작가가 출판한 책을 다 합치면 몇백만부를 넘을 텐데 조앤 롤링은 3억7000만부를 팔았으니, 칼로리로 따지면 200배의 밥을 먹는다는 이야기다.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은 물리적인 문제가 아니라 인간이 만들어낸 사회적인 문제이기 때문이다. 몸무게, 우리가 먹을 수 있는 음식의 양, 치과 의사 한 사람이 하루에 진료할 수 있는 환자의 수가 존재하는 것은 평범의 왕국이지만, 부의 축적과 책 판매, 구글 사이트의 검색횟수, 금융시장의 변화와 같이 엄청난 증식효과를 갖는 사건은 극단의 왕국에서 일어나는 일이다.
검은 백조와 맞장뜨기
우리는 살면서 여러 가지 블랙 스완 사건을 겪지만 여전히 블랙 스완을 알아보지도 못하고 실패로부터 배우지 못할 때가 많다. 발생하지 않은 사건은 우리에게 여전히 추상적인 영역으로 남아 있기 때문이다. 이론에 들어맞는 것, 익숙한 것, 구체적인 것, 숫자로 꾸며진 것(저자는 헛소리라 말하지만), 모두 우리가 좋아하는 것이다. 우리는 아직 추상적인 것, 무작위적인 것을 이해할 만큼 진화하지 못한 것일까.
리처드 도킨스의 ‘눈먼 시계공’이나 브라이언 아서의 ‘복잡계 경제학’이 우리의이목을 끈 이유는 이 세계가 거창한 설계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 아닌 무작위세계임을 설명했기 때문이다. 세상의 모든 개체가 컴퓨터로 연결된 현대의 네트워크는 블랙 스완의 영향을 증폭시키고 있다.
저자는 정확한 예측에만 집착하지 말고 실제로 일어나는 현상을 보고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을 의심하고 고민해봐야 한다고 말한다. 우리가 경험하지 못한 것, 우연적 사건, 불확실한 것을 많이 시도해보라고 한다. 물론 우리는 일상의 99.9%는 계획하고 생각했던 일로 채워지는 평범의 왕국에서 살고 있다. 그러나 0.1%의 블랙 스완이 있는 극단의 왕국에 들어갈 가능성도 항상 열어놓아야 한다.
이 책은 경영학, 경제학의 전공 이야기와 난해한 그래프가 가득한 교과서가 아니라 논리의 함정에 빠져 있는 우리를 구해줄 재미롭고 위트가 빛나는 문장으로 가득하다. 저자는 자신을 레바논인이 아니라 레반트인이라고 말한다. 레반트라는 말은 지금의 레바논, 시리아 등 지중해 연안지방을 가리키는 말이지만, 이는 단순한 지리적 의미보다는 ‘동쪽에 있는 문명의 나라’로 인식되던 레반트의 풍요로운 정신세계를 담은 말이라 할 수 있다. 이 책을 읽고 있으면 미래를 알고 싶어 안달하면서도 과거를 기계적으로 돌아보기만 하는 우리들에게 저자가 “좀 더 인간스러워지고, 좀 더 바보스러워지라”고 말하며 웃고 있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