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b>아마티아 센, 살아 있는 인도</b><br>아마티아 센 지음 이경남 옮김 청림출판<br>원제 : The Argumentative Indian
그러나 우리가 세계를 얼마나 알고 있을까 하고 자문해보면 대답이 선뜻 나오질 않는다. 세계는 고사하고 아시아에 대해서도 우리는 여전히 무지하다. 무지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다. 빗장을 흔드는 외부 성화는 갈수록 거세지는데 우리 사회는 여전히 경직된 사고를 고집한다.
‘살아 있는 인도’는 조국 인도의 앞길을 가로막는 경직된 정치 분위기에 대한 비판이자 ‘열린사회와 그 적들’을 향한 경고적 자기 분석이다. 그는 인도에 대한 여러 가지 가능한 독법(讀法) 가운데 ‘다원주의’에 초점을 맞췄다. 그는 인도의 빈곤, 계급 차별, 종교 대립을 해소하고 나아가 인도·아대륙의 평화를 이룰 수 있는 제도는 다양한 목소리를 인정하는 민주주의뿐이라고 믿는다. 그런 점에서 이쪽과 저쪽의 이분법에만 익숙해 있는 우리에게 센 교수가 제시하는 인도라는 다면체는 ‘열린 사회’를 향한 관문이기도 하다.
▼ Abstract
종교 다원주의의 오랜 전통에도 불구하고 최근 인도 정계를 장악하고 있는 것은 힌두교 원리주의자들이다. 이들이 내세우는 새로운 민족주의는 인도 고유의 충만함을 유지한다는 명목으로 세계와 상호작용하는 것을 거부한다. 하지만 인도에는 1억4000명 이상의 무슬림이 있다. 이는 영국과 프랑스 국민을 몽땅 합친 것보다 많은 숫자다. 미국의 정치학자 새뮤얼 헌팅턴 하버드대 석좌교수가 ‘이슬람 문명’이라고 정의한 문명권에 있는 나라 중 인도만큼 많은 무슬림이 존재하는 나라는 없다.
인도를 고정된 시선으로 해석하는 것은 내부의 세력만이 아니다. 인도 전통은 유별나게 종교적이라거나, 비과학적이라거나, 계급이 배타적으로 분화되어 있다고 생각하는 서구의 오리엔탈리즘도 인도의 과거와 현재를 단순화하기는 마찬가지다. 서구와 대조되는 스테레오 타입으로 고정된 동양의 모습으로는 인도의 실체를 잡을 수 없다. 문화적, 지적 교류를 따지고 들기 시작하면 무엇이 서구적이고 무엇이 동양적(혹은 인도적)인지 구분 자체가 어려워진다. 사상의 기원은 순수성이 쉽게 보존되는 그런 영역이 아니다.
우리는 사상과 관습이 무서운 속도로 나라와 지역의 경계를 넘나드는 시대에 살고 있다. 이른바 문화적 개성이 화두로 떠오르는 시대다. 어떤 획일화된 서구적 양식이나 내용이 없는 ‘근대성’으로 문화를 평준화하려는 것은 위험한 발상이다. 하지만 세계화에 대한 인식도 시급히 재정리해야 할 현실적 문제다.
세계화에 대한 저항은 말 그대로 세계적이고, 여러 측면에서 세계의 불평등을 부각시킨다는 점에서 바람직한 현상일 수도 있다. 그러나 세계화는 새로운 개념도 아니고 무용지물도 아니다. 어떤 지역이 다른 곳에서 일어나는 개발과 진보를 통해 혜택을 입을 수 있다면, 그것은 사상과 사람과 상품과 기술이 이동하기 때문이다. 물론 그러한 이동이 서구의 제국주의적인 일방통행식으로 진행된다면 단호히 저항해야 마땅하다.
▼ About the author
1933년 인도 벵골에서 출생한 아마티아 센은 1953년 인도 캘커타대를 졸업한 후 영국 케임브리지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빈곤과 불평등에 시달리는 인도의 현실에 깊은 관심을 가진 센은 기아의 원인에 관한 연구에 주력해 식량 부족의 실질적 해결책을 개발하는 데 앞장섰다.
후생경제학, 소득분배론 분야에서 권위 있는 이론을 제시한 그는 빈곤의 정도를 측정하는 센 지수를 개발해 빈곤층의 경제력 향상에 결정적인 수리 모형을 마련했다. ‘가진 것 없는 사람들의 조리 있고 통찰력 있는 지원군’ ‘경제학의 마더 테레사’ 같은 찬사를 받는다. 경제학에서의 윤리와 철학을 복원한 공로로 1988년 아시아인 최초로 노벨 경제학상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