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 중구 장충동에 위치한 신세계건설 본사. (작은사진) 신세계건설 협력회사였던 코디오건설 전 대표가 공개한 각종 문건.
정씨의 주장에 따르면 전남 보성이 고향인 그는 부산의 한 대학에서 토목공학을 전공했다. 1979년 삼성종합건설에 입사해 사회생활을 시작했고 전국의 공사현장을 다니며 경력을 쌓았다. 1989년 처음 T사를 세워 독립한 그는 주로 삼성종합건설(현 삼성물산)과 관련된 사업을 맡아 회사를 키웠다. 1991년 6월 삼성그룹 회장상(‘이건희상’), 1998년 3월 서울시장상(한강 9공구 공사 공로상) 등을 받기도 했다. 정씨는 “1993년 구포열차 사고로 인해 삼성 측 물량이 끊기면서 경영에 어려움을 겪었고 1994년 3월 부도를 맞았다”고 말했다. 그는 또 “1998년경, 당시 신세계건설 사장이던 박OO씨의 도움으로 신세계와 처음 인연을 맺었다. 박OO씨는 삼성종합건설에 근무할 당시부터 나와 잘 알던 사이다”라고 말했다.
신세계그룹의 계열사로 1997년 설립된 상장회사 신세계건설은 신세계이마트, 신세계백화점 등 주로 신세계그룹 관련 건설 공사를 맡아 수행한 종합건설회사다. 주거사업(청담 피엔폴루스 주상복합 등), 리조트사업(힐튼 남해 골프·스파 리조트 등), 환경사업(경안천 생태공원공사) 등에도 진출해 있다. 2009년 12월 현재 ㈜신세계가 대주주(32.41%)이며 이명희 신세계그룹 회장이 9.49%, 정용진 그룹 부회장이 0.8%의 지분을 가지고 있다. 지난해 3854억원의 매출을 올렸으며 건설시공능력은 국내 건설사 중 45위(2009년 기준)다.
20여 권 다이어리에 로비내역 기록
코디오건설 전 대표인 정씨는 최근 ‘신동아’와의 인터뷰에서 신세계건설이 이마트 등 각종 공사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정·관계를 상대로 전방위적인 로비를 벌였다고 폭로했다. 특히 정씨는 자신이 공사에 참여했던 공사현장 50여 곳 중 20곳 정도에선 자신이 직접 로비를 주도했다고 주장했다. 정씨는 “모든 대관(對官) 업무(로비)는 신세계 측의 요청을 받고 진행했으며 공무원, 정치인, 기자들에게 수백~수천만원의 현금을 건네거나 향응을 베풀고 심지어 성접대를 제공한 적도 있다. 그동안 신세계와 관련된 각종 관청 대상 민원 및 인·허가에 따른 일체경비로 쓴 돈은 총 21억원가량 된다”고 주장했다.
‘신동아’는 정씨와 두 번에 걸쳐 인터뷰를 진행했다. 첫 인터뷰는 6월25일 서울 명동의 한 커피숍에서 있었다. 두 번째 인터뷰는 7월1일 서울 은평구에 위치한 정씨의 자택에서 진행됐다. 이 두 번의 인터뷰 외에도 ‘신동아’는 여러 차례 전화 인터뷰를 통해 그의 주장을 청취했다. 정씨와의 인터뷰 내용은 정씨의 양해하에 녹음기록으로 남겼다. 정씨는 인터뷰 과정에서 신세계건설과 코디오건설의 관계, 각종 로비내역, 로비를 받은 정치인·공무원·기자의 명함 100여 장, 2008년경부터 신세계 측에 보낸 각종 탄원서와 편지 등이 포함된 A4 용지 60쪽이 넘는 문건을 ‘신동아’에 공개했다.
두 번의 인터뷰에서 정씨는 자신의 살아온 이력, 신세계그룹과의 인연, 1999년 이후 신세계의 협력회사로 진행한 사업 등에 대해 비교적 상세히 설명했다. 인터뷰 도중 그는 여러 차례 흥분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지만, 비교적 정확히 자신의 입장을 밝혔다. 꽤 오랜 시간이 지난 일들에 대해서도 일관된 진술을 했다. 그는 자신이 작성한 문건에 대해 “지난 10여 년간 써온 20여 권의 다이어리에 적혀 있는 것들을 정리한 것”이라고 밝혔다. 다이어리 내용을 일일이 확인하며 중요한 내용을 글로 엮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