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황제의 꿈’ ‘밤의 대통령’‘강안남자’ 등 숱한 베스트셀러를 탄생시킨 대중소설가 이원호씨가 ‘신동아’에 전쟁소설을 연재한다.
- 제목 ‘2014’는 이 작품의 시점(始點)인 2014년을 뜻한다. 북한 어뢰정의 귀순에 이은 한국 공군기의 미사일 피격으로 시작되는 남북 간 교전,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 전개되는 이동일 대위와 송아현 기자의 위험한 사랑, 김정일에 반기를 든 북한군 강경파의 도발로 막판 대반전의 드라마가 펼쳐지는데….<편집자>
백령도 주둔 해병 제7사단 직할 특공중대 중대본부(COHQ) 상황실.
백령도 서북단의 최전방 진지인 특공중대 지하 상황실에는 영상감시 시스템인 MD-15가 설치되어 있다. MD-15는 한국의 남동전자사가 개발해 실용화된 전천후 영상감시 장치로 매일 11시 정각에 서해안 상공을 가로질러 동해안으로 넘어가는 전략정찰기 SR-72가 보내온 사진을 TV 영상식으로 화면에 나타내는 것이다. SR-72는 SR-71 블랙버드의 후속 모델로 고도 25㎞ 상공을 마하 4의 고속으로 비행하는 터라 북한이 보유한 소련의 SA-5 지대공 미사일로 요격이 불가능하다. 한국 공군은 5대의 SR-72를 보유하고 있는데 25㎞ 고도에서 찍어 모니터 화면으로 보내는 영상이 매우 선명해서 북한군 어깨의 견장까지 뚜렷하게 보인다.
“아니, 이거 어떻게 된 거야?”
중대본부 감시병 조성재 상병이 소리쳤을 때 당직 선임하사관 안태일 중사는 손톱을 깎는 중이었다.
“뭐가 말이냐?”
평소 덜렁대는 성격으로 자주 기합을 받는 조성재여서 안태일은 머리도 들지 않고 물었다. 지금은 SR-72가 장연 근처의 북한 서해 함대 사진을 전송해올 시간이었다.
“이것 보십시오. 어제 오전까지는 제5파견대의 함정이 모두 14척이었는데 오늘은 10척이나 비었습니다.”
조성재의 떠들썩한 목소리에 상황실 안의 시선이 모였다. 자리에서 일어선 안태일이 조성재의 뒤로 다가가 섰다.
“보세요, 4척밖에 없습니다.”
안태일은 조성재가 가리킨 모니터 화면을 보았다. 선명한 색상으로 북한 서해함대 제5파견대 기지가 화면에 떠 있었는데 전투함은 모두 4척이다. 스틱스미사일 4기를 장착한 구형 오사급 전투함 2척에 2기를 장착한 소홍급 2척.
“어제까지 있었던 소주급 4척과 오사급 3척, 그리고 어뢰정 3척이 보이지 않습니다.”
“야, 강 병장.”
머리를 돌린 안태일이 앞쪽의 강영도를 보았다. 강영도 앞의 모니터에는 제5파견대 북방 95㎞ 지점의 남포항이 떠 있을 것이었다. 북한 서해함대 사령부다.
“그쪽은 어떠냐?”
“별다른 이상은 없습니다.”
제대 말년인 강영도가 시큰둥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이동 중인 함정은 7척이지만 전체로는 대동강급 구축함 2척에 호위함 3척을 포함해서 어제와 변동 없습니다.”
눈을 가늘게 뜨고 강영도의 모니터 화면을 본 안태일은 이동 중인 7척이 오사급 2척에 어뢰정 5척인 것을 확인했다. 그놈들은 중국 쪽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 안태일이 입맛을 다시면서 말했다.
“그놈들이 이쪽으로 오는 모양이다.”
SR-72가 제5파견대 기지 남쪽 5㎞ 지점부터는 비취지 않는다. 그 지점부터는 해군 레이더 영역인 것이다. 제5파견대기지 장진항은 백령도에서 직선거리로 27㎞밖에 되지 않는다. 북측 해군 함정들의 최전선 기지로 마치 육지의 최전방 초소와 같다.
같은 시간, 해안가의 특공중대 제3소대 벙커 안에서 대형 망원경으로 바다를 보던 김동수 일병이 소리쳤다.
“적함 출현, 현재 분계선 북방 2㎞ 지점에서 남진 중!”
벙커 안에는 6명의 소대원이 있었지만 아무도 놀라지 않았다. 근래 들어 북한 함정은 분계선 1㎞ 지점에서 선수를 동쪽으로 돌려 돌아갔기 때문이다.
“적함은 소주급 4척, 오사급 3척, 그리고 어뢰정 3척입니다!”
김동수가 다시 소리쳤을 때 고스톱을 치던 한용만 병장이 큭큭 웃었다.
“저 자식이 제법 잘 읊는구나, 기합 준 보람이 있다니까.”
“꽤 정연한 대열인데.”
레이더 화면에서 시선을 든 안기호 대위가 이제는 망원경을 눈에 붙이면서 말했다. 참수리 317호는 지금 분계선 남쪽 3㎞ 지점에서 대기 중이다.
“계속 내려옵니다.”
옆에선 부정장 박민수 중위가 역시 망원경을 눈에 붙인 채 말했다. 그러나 말투에는 여유가 있다. 317호 좌측 300m 지점에는 자매함 318호가, 그리고 1㎞ 우측에는 역시 참수리 2개 편대가 배치되었고 2㎞ 후방에는 구축함 익산호가 버티고 있다. 망원경을 눈에 붙인 안기호가 말했다.
“위협기동이다.”
안기호의 목소리에 웃음기가 있다. 함정들은 속력을 내어 달려왔는데 제법 위협적이다.
“적함이 분계선 1㎞ 전방까지 접근했습니다.”
김동수가 다시 보고했을 때 한용만 병장이 까진 똥피를 보고 투덜거렸다.
“어? 인마, 그걸 까버리면 어떡해?”
그는 쌍피를 들고 있었던 것이다.
“적함이 분계선 500m까지 접근!”
망원경에서 눈을 뗀 김동수가 한용만을 보았다. 초조한 표정이다.
“한 병장님, 적함이 거침없이 옵니다!”
“시끄러, 새꺄.”
했지만 한용만이 일어섰으므로 판은 멈춰졌다. 벙커 총안에 거치된 망원경으로 다가간 한용만이 눈을 붙였다. 그러자 화면의 아래쪽에 푸른색 숫자로 나타난 거리가 보였다. 625m이다. 그 순간 눈을 치켜뜬 한용만이 침을 삼켰다. 적함 10척은 이미 분계선을 400m나 넘어온 것이다.
“잘 들어. 넌 지금 기회를 놓치고 있는 거야. 알아?”
“안다.”
“나 같은 여자는 절대 찾을 수 없을 거야. 그것도 알아?”
“당연하지.”
“뭐가 당연하다는 거야?”
“어디 너하고 똑같은 여자가 있겠니? 쌍둥이도 자세히 보면 다 다른데.”
“야, 이 자식아.”
“이걸 그냥.”
이동일이 쓴웃음을 짓는다. 송아현은 국제일보의 사회부 기자로 이번 백령도 사건만 일어나지 않았다면 오늘부터 1박2일 예정으로 동해안 여행을 가기로 했던 것이다. 이동일의 느긋한 태도에 기분이 상했는지 송아현의 눈초리가 더 치켜 올라갔다. 송아현은 이동일보다 두 살 아래인 스물일곱이었는데 당찬 성격에 순발력이 뛰어났다. 이동일을 세 번째 만날 때까지 오빠라고 부르더니 이후 슬슬 말을 내리고 나서 지금은 반말이 반 이상 섞여있다.
“미안해, 아현아.”
이동일이 다시 말했을 때 영상화면이 꺼졌다. 송아현이 전원을 끈 것이다. 그때 벙커 안으로 중대장 서경석이 들어섰다.
“선배님, 가시죠. 제가 모셔다 드리겠습니다.”
7월23일 09시05분이다. 이동일도 서경석과 함께 벙커를 나왔다.
서경석과 함께 헬기장으로 걸으면서 이동일은 수평선을 덮은 남북한 함정들을 본다. 보기에는 장관이었지만 어선들은 출항이 금지되어 며칠간 고기를 잡지 못할 것이다.
“저것들이 죽여 달라고 대드는 것 같지 않습니까?”
불쑥 서경석이 말했으므로 이동일이 머리를 들었다. 이동일의 시선을 받은 서경석이 말을 잇는다.
“어제 넘어온 어뢰정장처럼 그냥 모두 이곳 모래밭에 기어올라왔으면 좋겠네요.”
“그럼 쏠 거야.”
서경석의 분위기에 말려든 이동일이 웃음 띤 얼굴로 북한 함정들을 보았다.
“어제는 돌아가느라 정신이 없었지만 앞으로는 그런 함정에 대고 쏠 거라고.”
“구경거리가 되겠습니다.”
“웃을 일이 아냐.”
했지만 이동일의 얼굴에는 쓴웃음이 번져 있었다. 서경석에게 어제 어뢰정 정장 김만성이 한 말을 전해줄 수는 없다. 헬기장이 가까워지면서 로우터의 폭음이 귀를 울렸고 마른 풀잎이 휘날렸다.
“선배님 서울 휴가 가면 술 한 잔 사주십쇼.”
경례를 하면서 서경석이 소리쳐 인사를 했으므로 이번에는 이동일도 정식으로 답례를 했다.
“그럼, 승리!”
어쩐지 충성이란 구호는 좀 약한 느낌이 들어서 일부 군인들이 자발적으로 사용하기 시작한 구호가 ‘승리’다. 서경석도 다시 경례를 하면서 소리쳤다.
“승리!”
7월23일 09시35분.
해병사령관 정용우 중장이 방으로 들어서는 작전참모 최재창 대령을 보았다.
“너, 어떻게 생각해?”
불쑥 정용우가 묻자 최재창은 순간 긴장한다. 난데없이 물었지만 엉뚱한 대답이 나오면 그야말로 골로 간다. 더욱이 요즘은 신경이 예민해진 시기 아닌가?
“도발입니다.”
어깨를 편 최재창이 똑바로 정용우를 보았다. 정용우는 강골이다. 육본 작참부장 박진상과 호흡이 맞지만 둘 사이엔 약간 경쟁의식이 있다. 강골도 말로만 강골이 있는데 정용우는 실제로 몸으로 부딪는 강골이다. 작년에는 해참총장한테 대들어서 사령관 진급하자마자 잘릴 뻔했다. 그것도 별것 아닌 보급품 문제로 대든 것인데 일설에는 정용우가 목숨을 걸고 해병대 사기를 올렸다고 했다. 실제로 그 사건 이후 해병대 사기가 올라갔다. 대답해놓고 숨을 죽인 최재창은 정용우의 얼굴에 슬슬 웃음기가 떠오르는 것을 보았다. 맞혔다. 그때 정용우가 말했다.
“넌 별을 달면 머리 회전수를 늦춰야 된다. 명심하도록.”
별 소리만 들으면 심장 박동이 빨라진다고 하던데 지금 최재창이 그꼴이다. 혼기가 찬 처녀가 시집가라는 말을 들었을 때나 같다는 놈도 있다. 그런데 최재창은 혼기가 넘었다. 사령부로 오기 전 연대장 시절에 2년이나 진급이 밀렸다. 정용우의 말이 이어졌다.
“중부전선에 북한군 초소장 한 놈이 넘어왔는데 전선의 병력을 줄이고 있다는 거야. 그런데 위성사진에도 나타나지 않고 특이동향이 없어, 뭔가 수상해.”
“동부전선으로 이동시키는 것이 아닐까요? 놈들은 위장이동에 익숙합니다.”
“그래서 합참과 육본이 분주하게 대가리를 부딪고 있는 것 같다.”
그러더니 정용우가 팔목시계를 보는 시늉을 했다.
“부관은 언제 오나?”
“30분쯤 전에 헬기로 출발한다는 보고가 왔습니다.”
이동일을 말하는 것이다.
머리를 끄덕인 정용우가 혼잣소리처럼 말했다.
“그 자식 백령도 출신이라 쓸모가 있군.”
7월23일 오전 10시55분.
군복 차림의 이동일이 이태원의 커피숍 안으로 서둘러 들어선다. 이층 커피숍에는 손님이 송아현 한 명뿐이다. 손등으로 이마의 땀을 닦은 이동일이 다가와 앞쪽 자리에 앉는 동안 송아현은 물끄러미 시선만 주었다.
“보고하고 나온 길이야. 12시까지는 시간이 있어.”
모자를 벗은 이동일이 말했을 때 송아현은 쓴웃음을 지었다.
“나도 취재한다고 나왔어. 생색내지 마.”
“요즘은 좀 상황이 안 좋다.”
하고 이동일이 말을 받았지만 송아현은 외면했다. 그러더니 카운터에 앉은 종업원에게 소리쳐 커피를 시켰다. 이동일이 손을 뻗쳐 송아현의 물잔을 집으면서 묻는다.
“상황이 긴박하다고 해도 넌 실감이 안 나겠지?”
“이런 일이 어디 한두 번이야?”
되물은 송아현이 똑바로 이동일을 보았다. 오전에 말은 그렇게 했지만 송아현은 이동일을 만나려고 이곳까지 온 것이다. 이동일이 서너 모금 물잔의 물을 비우더니 긴 숨을 뱉고 나서 말했다.
“긴장하고 있다가 널 보면 다른 세상에 온 것 같은 착각이 들어.”
“다른 세상 맞아.”
그렇게 말을 받는 송아현의 표정은 차분하다. 오전에 쏴대던 분위기하고는 딴판이다. 머리를 조금 숙인 터라 송아현이 올려뜬 눈으로 이동일을 보았다.
“나도 거기가 다른 세상사람 같아서 처음에는 좀 신비감이 일어났지.”
“뭐? 거기?”
“말꼬리 잡아서 분위기 깨지 마.”
입을 다문 이동일이 어깨를 늘어뜨렸을 때 송아현을 말을 이었다.
“하지만 슬슬 면역이 되더니 지겨워지려고 해.”
그때 종업원이 다가와 커피잔을 내려놓고 돌아갔다. 커피숍 안은 조용하다. 종업원의 발자국 소리만 울렸다가 그쳤다. 그때 이동일이 말했다.
“며칠 지나면 다시 조용해질 거야. 그러니까 이번 주말에 같이 대전에 가자.”
“대전에는 왜?”
했다가 송아현이 이맛살을 찌푸렸다. 입술까지 조금 내밀어져 있다. 송아현의 부모가 대전에 살고 있는 것이다.
“오버하지 마.”
커피잔을 쥔 송아현이 외면한 채 말을 잇는다.
“그런 건 용기나 힘으로 되는 일이 아니라고, 이 양반아.”
“인사는 드려야지.”
“됐어.”
“결혼을 허락해달라고 할거야.”
송아현이 입을 다물었다. 이동일은 아직 송아현에게 결혼 이야기를 꺼낸 적이 없다. 1년 전 취재차 백령도를 찾아온 송아현을 안내한 것이 인연이 되었지만 만난 횟수는 얼마 되지 않는다. 이동일이 백령도에서 근무하던 6개월 전까지만 해도 한 달에 한 번 정도였다. 사령부로 온 후에는 한 달에 두세 번 정도나 될까? 서로 바빴지만 성격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이동일은 자제력이 강했고 송아현은 좀처럼 마음을 열지 않았다. 송아현은 그것이 남자란 동물에 대한 속성을 파악했기 때문이라고 대놓고 말했는데 그래서인지 진도가 늦은 편이다. 커피잔을 두 손으로 감싸 쥐고 이동일이 똑바로 송아현을 보았다.
“군인 아내가 되어줄래?”
“유별나.”
외면한 채 말했던 송아현이 머리를 들고 이동일의 시선을 받았다. 검은 눈동자가 흔들리지 않는다.
“다시 한 번 말해봐.”
“이동일 아내가 되어줄래?”
“조건은?”
“장난 말고.”
어깨를 늘어뜨렸다가 다시 세운 이동일에게 송아현이 말했다.
“알았어.”
“알았다니, 그게 대답이냐?”
“할게.”
“싱겁구먼.”
말은 그렇게 했지만 이동일의 얼굴에 웃음이 떠올랐다. 심호흡을 한 이동일이 말을 이었다.
“고맙다. 나, 긴장했었어.”
“그런 것 같더라.”
따라 웃은 송아현이 그때서야 커피잔을 들더니, 한 모금 삼켰다.
“우리 엄마가 제일 좋아할 거야. 내가 몇 년 전부터 결혼을 안 한다고 했거든.”
송아현이 웃음 띤 얼굴로 이동일을 보았다.
“내가 자기를 친구로만 만난다고 했어도 꼭 데려오라는 거야.”
7월23일 오전 11시18분. 오산 제22공군기지에서 이륙한 KF-24 편대 4기가 서해안 백령도 북방의 전술좌표 424지역을 날고 있다. 편대장 윤재복 소령이 편대기와의 통신 버튼을 눌렀다.
“A-1, 하향 레이더를 확인하라.”
지상을 비추는 하향 레이더에는 반경 30㎞의 바다가 스크린에 나타나 있다.
“적 함대는 그대로다. 아군 함대는 조금 왼쪽으로 이동을 했고.”
동북쪽 19km 지점에서 대치하고 있는 남북한 함대가 그대로 비친 것이다. 어젯밤에 출동한 E편대가 찍어온 사진을 본 터라 윤재복은 시큰둥했다. 22공군기지에서는 지금 다섯 번째 문제의 해상으로 시위비행을 하고 있는 것이다. 4대의 KF-24기는 마하2의 속도로 함대를 향해 다가갔다.
KF-24가 한국 공군의 주력기로 등장한 것은 2012년 8월부터였으니 만 2년이 되었다. 미국 맥도널드 더글러스사의 F-15기를 모델로 한국 공군은 2004년부터 공격기의 자체 제작에 들어가 2010년에는 시험비행에 성공했고 2011년부터 생산에 들어갔으니 그야말로 눈부시게 빠른 진전이었다.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을 받은 데다 한국의 전자산업이 비약적으로 발전한 것도 KF-24 탄생에 이바지했다. 현재 한국 공군은 전투기인 KF-24와 공격기인 KF/A-24기를 각각 160대, 120대를 보유하고 있는데 올해 말까지는 60대가 더 생산될 것이었다. KF/A 기종은 미국의 F/A-18 호네트와 비슷하게 보였지만 주익의 삼각폭이 더 넓고 수평 미익(尾翼)도 넓어서 마치 화살촉 같은 모습이었다. 최고 마하3의 속력에 최대무기 탑재량이 8.5t인 1인승 공격기 겸 전투기로 한국 공군사를 장식하게 될 명품이지만 아직 한 번도 실전에 투입되지 못했다는 약점이 있다. 주익을 거의 삼각으로 젖히며 두 개의 수직 미익을 날카롭게 세우고 날아간 KF-24편대는 1분도 되지 않아서 목표 상공에 도달했다.
“2회 턴하고 돌아간다.”
윤재복이 짧게 말하고는 캐노피 밖, 이제 육안으로도 보이는 함대를 응시했다. 4대의 KF-24는 이미 고도를 1000피트로 낮추고 있었으므로 아래쪽에서는 고막이 터질 것 같은 분사음이 울릴 것이었다. 앞장선 윤재복은 남북한 함대의 중간부분인 분계선 위를 자로 그은 것처럼 뻗어나갔다가 곧 하늘로 기수를 솟구쳤다. 편대기들도 마치 곡예비행을 하는 것처럼 뒤를 따른다. 7000피트까지 솟아올랐던 윤재복은 기체를 왼쪽으로 비틀고는 이제 오른쪽에 떠 있는 함대를 내려다보았다. 남북한 함대는 마치 한가롭게 고기를 잡는 어선단 같았다.
“도대체 저놈들은 무슨 속셈으로 저러고 있는 거야?”
윤재복이 혼잣소리로 말했지만 옆을 따르던 박 대위가 들었다.
“어뢰정을 돌려받으려는 게 아닐까요?”
고도를 다시 낮췄으므로 높아진 공기밀도에다 기류가 불안정해지는 바람에 기체의 진동이 심해졌다. 스틱을 힘주어 쥔 윤재복이 힐끗 랜턴을 보았다. 정상이다. G슈트에 약간 압력이 가해졌지만 이쯤은 아무것도 아니다. 4대의 KF-24는 다시 고도를 3000피트로 낮추고는 두 함대의 중심 부근을 향해 좌측으로 횡진했다. 속도는 300노트였으니 시속 640㎞다.
“이번에 롤(횡진)하고 돌아간다.”
윤재복이 함대 사이의 공간을 바라보며 말했을 때였다.
“미사일 경보!”
헬멧을 울리는 목소리에 윤재복은 퍼뜩 경보장치를 보았다. 암람 옆쪽의 경보등이 번쩍이고 있었다. 그리고 랜턴에 흰점으로 다가오는 4개의 미사일을 보았다. 거리는 14㎞, 지대공 미사일이다.
“전속력 회피!”
악을 쓰듯 외친 윤재복이 기수를 급상승시키면서 애프터버너를 가동시켜 속도를 최대로 내었다. 미사일은 장연 서남쪽의 미사일 기지에서 쏜 것이다.
“미사일 4기 접근!”
그때 다시 헤드셋을 울리는 목소리에 윤재복은 그 와중에도 이맛살을 찌푸렸다. 남쪽 해상에 떠 있던 조기경보기가 미사일 경보를 한 것이다.
“거리 10㎞!”
박 대위의 다급한 목소리가 울렸을 때 4대의 KF-24는 전속력으로 흩어지는 중이었다.
“이런 빌어먹을!”
랜턴을 내려 본 윤재복이 이를 악물었다. 미사일 2기가 제 3번기를 향해 날아가고 있었던 것이다. 나머지 2기는 2번기인 박 대위와 5번기 조 대위를 따르고 있었지만 거리가 많이 벌어졌다. 회피기동을 잘한 것이다. 그러나 3번기 서 대위와 미사일 간의 거리는 4㎞로 가까워져 있다. 그 순간 윤재복은 스틱을 비틀어 기체를 횡전시켰다. 주익이 수평으로 놓였을 때 앞을 지나가는 3번기와의 거리는 2400m가 되었고 미사일은 3100m 거리로 나타났다.
윤재복이 미사일을 겨냥하고 암람의 버튼을 누르는 데는 2초도 지나지 않았다. 흰 가스를 품으면서 주익 양쪽에서 2개의 한국형 사이드와인더인 KAAM-220이 발사되었다. KAAM-220의 유효 사정거리는 20㎞다. 200m 근거리에서도 발사가 가능하며 전장 250cm, 직경 13cm, 중량 80㎏인 능동추적 공대공 미사일로 자체 레이더 장비로 유도되기 때문에 발사 후 즉시 이탈해도 된다. 윤재복은 발사 즉시 기체를 횡전시켜 바다 쪽으로 곤두박질쳐 내려갔다. 그때였다. 미사일 경보음 간격이 밭아지며 더 빨리 울렸으므로 윤재복은 랜턴을 보았다.
“이런 지기미.”
눈을 치켜뜬 윤재복이 입술 끝을 비틀었다. 미사일 두 발이 따라오고 있다. 다른 한 발은 서 대위와 박 대위를 쫓던 놈 같다. 미사일은 북한제 피바다-25, 속도는 마하6, 전장 5m 직경이 30cm이며 사정거리는 160㎞인 능동추적 지대공미사일. 그때 갑자기 아래쪽에서 치솟아 오른 점 세 개가 보이더니 뒤쪽 미사일이 폭발했다. 그렇지, 잊고 있었다. 아군 순양함에서 지대공미사일을 쏜 것이다. 그러나 앞쪽은 너무 가깝다. 거리 500m.
“편대장!”
헤드셋에서 서 대위의 외침이 들린 순간 윤재복은 채프를 뿌리며 급회전을 했다. 그 순간 윤재복은 눈앞이 하얗게 변한 것을 보면서 의식이 끊겼다.
“아앗!”
한국형 이지스순양함 대구호의 사령실에서 낮은 외침이 터졌다. 육안으로도 KF-24기 한 대가 미사일에 맞아 폭발하는 것이 보였기 때문이다.
“아아아.”
사령실 안에는 10여 명의 장교와 부사관이 모여 있었는데 모두 그것을 보았다.
“함장님.”
부함장 김태민 중령이 다시 함장 오순일 대령을 불렀다. 옆에 서 있던 장교들의 시선이 모아졌다.
“기다려.”
오순일이 갈라진 목소리로 말하고는 헛기침을 했다.
“미사일은 다 떨어졌다. 그러니까.”
“하지만.”
“사령부에서도 다 보았을 것이다.”
오순일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눈을 치켜뜬 오순일의 시선을 아무도 맞받지 못한다. 그때 작전장교 유성환 소령이 외면한 채 말했다.
“47초.”
북한의 제 23대공 미사일 전대에서 미사일이 발사된 지 47초가 지났다는 말이었다. 그것은 오순일을 재촉하는 것이나 같다. 그때 무전기의 벨이 울리더니 앞쪽 영상화면이 켜졌다. 화면에 나타난 인물은 제2전대 사령관 이종호 소장이다. 제23대공미사일 전대에서 미사일을 발사한 지 13초 후에 사령관과 통신을 요청했으니 이만하면 빠른 등장이다.
“뭐야?”
눈을 치켜뜬 이종호가 대뜸 물었으므로 오순일이 부동자세로 섰다.
“사령관님, 적 23미사일 전대에서….”
“알아!”
버럭 소리친 이종호의 기세는 사나웠다. 그 이종호의 모습을 대구호 사령실 안의 모두가 보고 있다. 그때 이종호가 소리치듯 물었다.
“지금 얼마나 지났어?”
“예! 57초 지났습니다!”
뒤쪽에서 기다렸다는 듯이 유성환이 소리쳤을 때 이종호가 눈을 부릅떴다.
“시발놈아, 바로 맞받아 쳐야지, 나한테 물어보면 어쩌란 말이냐!”
그러더니 뭔가를 이쪽으로 던졌는데 진짜 날아오는 것 같아 모두 움찔했다.
“이젠 늦었어! 개새끼야! 대기해!”
대통령 박성훈은 철저한 중도, 상호주의자다. 그는 연방제니 3단계 통일 따위의 국민이 이해하기 어려운 말은 전혀 사용하지 않았다. 북한에 원조를 해주면 꼭 그 대가를 받았다. 물질 대신의 대가는 얼마든지 있는 것이다. 무조건식 퍼주기 관행은 철저히 금지했으며 그것만으로도 대다수 국민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았다. 상호주의는 선에는 선, 악에는 악으로 대응하는 것이다. 오전 11시35분, 대통령 박성훈은 과천 종합청사 근처에 위치한 집무실에서 국방장관 임기태의 화상보고를 받는다.
“대통령님, 11시22분경에 오산 제22공군기지에서 발진한 KF-24 편대 중 한 대가 백령도 북방 북한의 미사일 기지에서 발사한 지대공 미사일에 맞아 격추되었습니다.”
임기태가 굳은 표정으로 말을 잇는다.
“어제 백령도의 어뢰정 귀순 사건으로 남북한의 함정들이 분계선을 사이에 두고 대치한 상황에서 발생한 것입니다.”
박성훈이 힐끗 화면 아래쪽의 시계를 보았다. 사건이 발생한 지 13분이 지났다.
“조종사는?”
박성훈이 묻자 임기태의 표정이 더 굳어졌다.
“현장에서 기체와 함께 산화했습니다.”
“아군의 대응은?”
“현재 양측이 대치 중이고 미사일 4발 외에는 적의 도발이 없습니다.”
그러면 적의 도발에 즉각 대응을 하지 못한 셈이다. 심호흡을 한 박성훈이 다시 물었다.
“왜 즉시 반격을 못했습니까?”
“당황했던 것 같습니다.”
임기태의 시선이 처음으로 내려졌다가 올라갔다. 미사일을 발사한 북한군 기지를 향해 이쪽에서도 즉각 미사일을 쏘았어야 했다. 그것이 전면전이 되더라도 현지 지휘관은 교전수칙대로만 하면 되는 것이다. 분수에 맞지 않게 멀리 생각할 필요가 없다. 그것은 비겁, 우유부단의 증거밖에 되지 않는다. 박성훈이 잠자코 있었으므로 임기태가 말을 잇는다.
“그래서 함대의 지휘관을 문책했습니다. 그리고….”
그때 임기태가 힐끗 옆쪽을 보더니 곧 준장 계급의 장군이 앞에 놓은 쪽지를 읽었다.
“대통령님, 지금 분계선에 배치되었던 북한군 함대가 일제히 철수하고 있습니다. 옹진반도 쪽으로 내려오던 북한 공군기 3개 편대 12대도 기수를 돌려 돌아가고 있다는 겁니다.”
“빌어먹을.”
박성훈이 입술만을 움직여서 그렇게 말했으므로 소리는 나지 않았다. 화면을 끈 박성훈이 머리를 들자 비서실장 한창환이 옆으로 조금 비켜섰다. 한창환은 박성훈의 통신 내용을 다 듣고 본 것이다. 한창환이 말했다.
“대통령님, 안보회의를 소집했습니다만.”
“당연히 해야지.”
북한 함대가 철수한다고 보류할 수는 없다. 이쪽은 이미 선제공격을 당한 상태인 것이다. 한창환이 말을 잇는다.
“합참은 전군에 비상대기 명령을 내렸으며 한미연합사 휘하의 미8군도 비상대기 상황입니다.”
전시작전권 이양이 2015년 12월이어서 아직 한미연합사가 가동되고 있는 것이다.
대통령 관저와 집무실이 과천으로 옮겨온 것은 2013년이다. 관악산 끝자락에 위치한 7층 건물을 집무실과 비서실로 사용하고 있지만 규모나 시설 면에서 예전 청와대와 비교가 안 된다. 이제 청와대는 특급호텔 청와가 되었으며 주변의 넓은 부지는 국민공원으로 바뀌었다. 박성훈이 대선 때 했던 약속을 지킨 것이다. 국민들은 과천 대통령 집무소를 ‘산본장’이라고 불렀는데 1층에서 5층까지를 비서실과 경호실이 사용했고 6층에는 대통령 집무실이 있다.
7월23일 오후 12시30분.
6층 집무실과 옆 회의실에 모인 안보회의 참석자는 30명 가까이 되었다. KF-24기가 격추된 지 한 시간이 지났다.
“뻔하지 뭐.”
이곳은 산본장 1층 대기실, 해병대 사령부 작전참모 최재창 대령이 옆에 서 있는 사령관 부관 이동일 대위에게 말했다. 이동일이 눈만 껌벅이자 최재창이 말을 잇는다.
“전군 비상대기, 북한 측에 강력 항의, 유엔에 제소, 연합사 특별 기동훈련, 대북방송 수위 높임, 대북 장성급 회담 요구, 개성공단 잠정폐쇄, 오늘부터 인도적 차원의 지원을 포함한 모든 지원 중단….”
그러고는 이동일에게 묻는다.
“또 있냐?”
“즉각 대응하지 못한 함대 지휘관의 처벌도 발표한 것 같습니다.”
“그, 시발놈. 병신.”
욕설을 내뱉은 최재창이 힐끗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그들은 지금 안보회의에 참석한 해병대 사령관 정용우를 수행하고 온 것이다. 대기실에는 그들 같은 수행원이 100여 명이나 들끓고 있었으므로 혼잡했다. 벽에 등을 붙이고 선 최재창이 말을 잇는다.
“개새끼들이 어뢰정 값을 열 배로 받아갔구만.”
“이것으로 끝날까요?”
하고 이동일이 물었더니 최재창은 쓴웃음을 지었다.
“4년 전 천안함사건 때보다는 낫다. 미사일이 날아오는 것을 수만 명이 보았으니까 말야.”
“…”
“그날 비 왔지?”
“언제 말씀입니까?”
“2010년, 월드컵 축구할 때 말이다.”
손바닥으로 턱을 쓴 최재창이 말을 잇는다.
“우루과이하고 8강전을 할 때였지. 모두 들떠 있었잖아? 난 그날 비번이어서 마누라가 준비해 온 붉은 악마 옷을 입고 응원을 했다. 마누라하고 같이 동네 광장에 나가서 말이다. 대-한.민.국!”
최재창이 목소리를 좀 크게 내는 바람에 앞을 지나던 육군 대령 하나가 돌아보았다. 모른 척한 최재창이 말을 잇는다.
“그런데 갑자기 빗발이 굵어지면서 번개가 치는 거다. 우르릉. 꽝. 짜라라락!”
“…”
“그 순간 내 머리털이 곤두서는 느낌이 드는 거다. 그래서 마누라를 끌고 집으로 돌아와버렸다.”
“…”
“왜 그런지 아냐?”
“모르겠는데요.”
“천안함 피습으로 죽은 해군 46명이 떠오른 거다. 그놈들이 하늘에서 눈물을 쏟는 거 같았어.”
“…”
“석 달도 안 되었는데 우릴 다 잊고 대-한.민.국. 하시오? 우릴 위해서 한번 이렇게 모여 외쳐주시기나 했소? 빈소에 꽃만 놓고 묵념으로 끝냅니까? 아직도 우리가 어떻게 죽었는지도 모른다고요?”
말을 그친 최재창이 번들거리는 눈으로 이동일을 보았다.
“그놈들이 그렇게 말하는 거 같아서 난 집에 와서도 축구 안 봤다.”
“그대로 졌지요?”
했지만 최재창은 대답하지 않는다.
그때 6층의 회의실에서 대통령 박성훈이 마침 말씀을 하는 중이었다. KF-24기 격추사건으로 소집된 안보회의에서 결정된 사항은 다음과 같다.
1) 전군 비상대기, 한미연합사사령관 지휘하의 데프콘(Defense Readiness Condition)3 발령
2) 모든 통신, 접속 수단을 동원하여 북한의 만행에 대한 항의
3) 유엔에 제소
4) 백령도 중심으로 대규모 기동훈련
5) 대북방송 수위 높임
6) 남북한 군 장성급 회담 요구
7) 개성공단의 한국 측 출입 인원을 20% 규모로 감축
8) 오늘부터 대북 지원 전면 금지
대기실에서 최재창이 예상한 내용과 단 하나도 다르지 않았다. 말을 마친 박성훈이 문득 생각이 났다는 표정으로 해군참모총장 김동균 대장을 보았다.
“그, 함대 지휘관 말예요. 이지스함 함장이던.”
“예, 오순일 대령입니다. 대통령님.”
“비상!”
한용만이 악을 썼다.
“비상벨을 눌러라!”
적함은 선수를 이쪽으로 향한 채 횡대로 벌려 아직도 곧장 달려오고 있다. 마치 해안에 상륙하려는 것 같다.
낮 12시38분, 해병 대위 이동일이 합참의 지하벙커 C동 F룸 앞으로 다가갔다. 문 앞에 서 있던 특전사 중사가 손을 내밀자 이동일이 출입증을 꺼내주었다. 출입증을 받은 중사가 식별기에 붙였다가 떼고는 옆으로 비켜섰다. 그 순간 육중한 철문이 소리 없이 열리고는 시멘트 통로가 드러났다. F룸은 통로 끝의 왼쪽 문이다. 10m 거리의 통로 양쪽은 시멘트벽이었지만 이쪽은 다 노출되어 있을 것이다. 왼쪽 철문 앞에 섰을 때 저절로 문이 열리는 것을 봐도 그렇다. F룸 안에는 합참의장 장세윤 대장, 육참총장 조현호 대장, 해군 참모총장 김동균 대장, 육본 작전참모부장 박진상 중장, 그리고 해병사령관 정용우 중장까지 거물들이 다 모였다. 거기에다 대령과 중령급 참모들이 20명 가까이 되었는데 위관급은 눈을 씻고 봐도 없다. 방으로 들어선 이동일을 먼저 찾아낸 사람이 해병대 작전참모 최재창 대령이다. 손짓으로 이동일을 부른 최재창의 얼굴은 굳어져 있다. 최재창이 다가선 이동일에게 눈을 치켜뜨고 말했다.
“야, 똑바로 말해.”
그러고는 따라오라는 눈짓을 했으므로 이동일은 뭘 똑바로 말하라는지도 모르면서 뒤에 붙었다. 최재창이 데려간 곳은 해병사령관 정용우 앞이다.
“아, 왔구먼, 이놈입니다.”
그 순간 방 안이 잠깐 조용해졌다. 정용우는 합참의장 장세윤 대장, 육참총장 조현호 대장, 육본 작전참모부장 박진상 중장과 구석 쪽 테이블에 둘러앉아 있었던 것이다. 얼어붙은 이동일이 정용우 앞에 부동자세로 섰다. 실내인 데다 F룸 안이다. 촌티 나게 경례는 하지 않았다. 그때 정용우가 말했다.
“이놈이 내 부관으로 오기 전에 그곳 중대장이었습니다. 그쪽 사정은 훤할 겁니다.”
그러더니 이동일에게 묻는다.
“네가 백령도에서 특공중대장으로 있었지?”
“예, 사령관님.”
“넌 지금부터 합참 소속 연락관이다. 즉시 백령도로 날아가 상황 보고를 하도록. 이상.”
해놓고 정용우가 힐끗 옆에 서 있는 최재창을 보았다.
“최 대령한테 지시를 받아.”
정용우의 시선이 돌려졌으므로 이동일은 부동자세를 취한 다음 최재창을 보았다. 최재창이 몸을 돌리면서 눈짓으로 따라오라는 시늉을 했다.
F룸은 넓다. 150평쯤 될 것이다. 사방이 전자장비로 덮여 있고 테이블도 10여 개, 앉아 있거나 서 있는 장군, 영관급으로 어수선한 것 같지만 자세히 보면 질서가 있다. 예를 들어서 안쪽 헤드 테이블에 앉아 있는 누군가 한마디하면 웅성대다가도 대번에 조용해졌다가 움직이는 것이다. 최재창은 이동일을 F룸 구석으로 데려가 마주보고 섰다. 바로 옆이 화장실이었다.
김동균이 조심스럽게 말했을 때 박성훈이 헛기침을 했다.
“전군에 본보기가 되도록 처리하세요.”
“예. 직위해제를 시켰습니다만.”
해놓고 박성훈의 눈치를 살핀 김동균이 말을 잇는다.
“즉시 군법회의에 회부하겠습니다.”
이것 하나가 최재창에겐 생각 밖의 일이었다.
차가 산본장의 정문을 나왔을 때 작전참모부장 박진상 중장이 옆에 앉은 허병구 준장을 보았다.
“역시 이렇게 끝나는군.”
“예, 저희들 예상과 하나도 다르지 않습니다.”
박진상으로부터 대충 내용을 들은 터라 허병구가 말을 잇는다.
“순양함 함장을 강력하게 처벌하는 것만 빼고 말씀입니다.”
“시위용이지, 언론용이기도 하고.”
잇사이로 말한 박진상이 길게 숨을 뱉는다.
“시발놈, 북한이 미사일을 쐈을 때 바로 퍼부어버리는 건데 병신새끼.”
“그럼 북측 함정들은 대응 안 할 수가 없었을 것이고 10분쯤 후에는 전멸되었겠지요.”
“북측 해안포가 짖어대면 아군 전폭기가 때렸을 것이고.”
“북측 공군기가 밀려오면 한미연합사의 전폭기가 맞받아치겠지요.”
그러면 전면전이다. 64년 전의 6·25는 전쟁이 3년을 끌었지만 지금은 며칠이면 끝난다. 그때 박진상이 머리를 돌려 허병구를 보았다.
“해병대 정용우한테 내가 좀 만나자고 연락해.”
그러고는 목소리를 낮췄다.
“비밀로.”
7월23일 18시30분.
이동일은 오늘 송아현을 두 번이나 만나고 있다. 백령도에서 돌아온 후에는 송아현이 합참 근처의 커피숍으로 찾아왔지만 지금은 이동일이 신문사 근처의 카페에 앉아 있다. 이동일이 퇴근을 하자마자 이곳으로 달려온 것이다.
“자, 대위, 뭘 하고 싶나?”
이제는 옆쪽에 앉은 송아현이 물었으므로 이동일이 풀석 웃었다. 이곳은 시내 중심가인 소공동이다. 카페 안은 손님이 가득 차 있어 혼잡했고 소음도 컸지만 방해는 되지 않는다.
“모레가 주말이니까 오늘 백화점에 가서 뭘 샀으면 좋겠는데.”
이동일이 송아현의 귀에 입술을 붙이고는 말을 잇는다.
“어머니, 아버지 선물 말야.”
“아냐, 필요 없어.”
정색한 송아현이 머리를 저었지만 이동일이 말을 이었다.
“너야 그렇지만 난 불편하고 불안해. 그리고 한국인 풍습상 빈손으로 가는 건 예의가 아니야.”
“풍습 좋아하네.”
“내가 생각해보았는데 어머니한테는 가방하고 아버지는 허리띠나 지갑이 낫겠다.”
“미쳤어?”
머리를 반대쪽으로 뗀 송아현이 이동일을 노려보았다.
“돈이 어딨다고 그런 걸 사? 술하고 과일이면 돼.”
“딸 달라고 가는 놈이 그러면 안 되는 거야. 넌 가만있어.”
“아, 싫어.”
머리까지 저은 송아현이 자리에서 일어서며 말했다.
“밥이나 먹으러 가자.”
“밥 먹고 나서 사지 뭐.”
따라 일어선 이동일이 앞장 서 카운터로 다가가며 말했다.
“넌 가만있어. 이런 일에 나서는 거 아냐.”
그때 주머니에 든 휴대전화가 울렸으므로 이동일은 심호흡을 했다. 발신자 번호를 보았더니 최재창이다. 이동일이 휴대전화를 귀에 붙였을 때 송아현은 카운터로 다가가 계산을 했다.
“예. 참모님.”
먼저 문 밖으로 나온 이동일이 응답했을 때 최재창이 말했다.
“지금 즉시 3호차를 끌고 C지점으로 이동하도록.”
“예. 참모님.”
“10시 정각까지는 대기하고 있어야 한다.”
그러고는 통화가 끝났을 때 송아현이 밖으로 나왔다. 이동일의 표정을 본 송아현은 입을 열지 않는다. 눈치를 챈 것이다.
밤 10시 정각이 되었을 때 장충동 한정식집 대원의 후문으로 최재창이 나왔는데 양복 차림이었다. 후문 앞은 차 한 대가 겨우 빠져나갈 만한 골목이었고 끝 쪽에 밴 한 대만 세워져 있을 뿐 주위에 행인도 보이지 않았다. 좌우를 둘러본 최재창이 힐끗 뒤쪽에 시선을 주더니 골목으로 나왔다. 뒤를 따라 나오는 사내는 역시 사복 차림의 정용우다. 서둘러 골목을 나온 둘이 밴의 뒷문을 열고 들어섰을 때 운전석에 앉은 이동일이 뒤를 돌아보았다.
“가자.”
최재창이 지시하자 이동일은 밴을 발진시켰다. 뒤쪽에 나란히 앉은 둘은 말이 없다. 요정에서 나왔는데 술을 마신 것 같지도 않다.
밴이 국제호텔의 지하 주차장으로 들어섰을 때는 그로부터 40분쯤 후였다.
“저기 있군.”
뒷좌석에서 머리를 뽑아 앞쪽을 보던 최재창이 손을 들어 주차장 왼쪽을 가리켰다.
“저쪽 검정색 밴 옆에 붙여라.”
저쪽도 밴이었고 운전석에 앉은 사내만 보일 뿐이었다. 차를 후진시킨 이동일이 저쪽 밴 옆에 나란히 붙여 세웠을 때였다. 뒤쪽 문이 열리면서 양복 차림의 사내 두 명이 안으로 들어섰다. 백미러를 올려다본 이동일이 숨을 들이켰다. 육본 작참부장 박진상 중장과 정보참모 허병구 준장이다. 육군의 실세, 이동일은 얼굴만 안다. 그때 최재창이 이동일에게 말했다.
“넌 밖에 나가서 경계해.”
이동일은 서둘러 차 밖으로 나왔다.
7월24일 오전 9시25분.
회의실에서 나온 송아현이 책상에 앉더니 서랍을 열었다. 서랍 안에 넣어둔 휴대전화가 붉은 등을 깜박이고 있다. 휴대전화를 든 송아현의 몸이 2초쯤 굳어졌다가 풀어졌다. 발신자에 박기성의 번호가 찍혀 있었기 때문이다. 김 기자가 투덜거리며 옆자리에 앉았으므로 송아현은 자리에서 일어섰다. 송고가 늦다고 김 기자는 부장한테 깨진 것이다. 사무실을 나온 송아현은 복도 끝 쪽의 자판기 옆으로 다가가 섰다. 그러고는 휴대전화에 발신자 번호를 띄운 다음 버튼을 누른다. 그러자 신호음이 세 번 울리더니 박기성이 응답했다.
“응, 회의 중이었어?”
낮지만 맑은 목소리, 1년 반 만에 듣는데도 전혀 어색하지가 않다. 귀에 익숙해져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갑자기 웬일이야?”
송아현은 자신도 자연스럽게 말을 뱉었지만 제가 듣기에도 어색했다. 억양도 없고 말끝이 떨리기까지 했다. 그러자 박기성이 짧게 웃더니 말했다.
“나, 어제 오후에 도착했어. 서울 지사로 다시 발령이 난거야.”
“…….”
“잘 있었어?”
하고 박기성이 뒤늦게 안부를 묻는 순간 송아현의 얼굴에 쓴웃음이 번졌다. 인간은 생각하는 동물이라지만 그것을 잊지 못한다면 살아갈 수 없을 것이라는 사실을 박기성이 가르쳐준 셈이었다. 여자를 옷 갈아입듯이 바꾸는 남자. 그런데도 여자들은 상처를 계속해서 받으면서도 갈아입는 순서를 기다리는 것이다. 그때 박기성이 말을 잇는다.
“오늘 저녁에 밥이나 먹자. 어때? 리치호텔 라운지에서 8시….”
“됐어.”
송아현이 짧게 말했더니 박기성은 3초쯤 가만있다가 묻는다.
“화났니?”
“전화 끊어.”
휴대전화를 귀에서 뗀 송아현이 길게 숨을 뱉는다. 그 순간 가슴이 먹먹해지면서 속이 울렁거렸다. 박기성의 제의를 거부한 것이 개운하지도 않다. 머리를 든 송아현이 햇살에 환하게 퍼진 창밖의 거리를 내려다보았다. 박기성은 세계 최대 투자회사인 골든브리지사의 한국 지사원이다. 하버드 박사로 미국 이민 4세. 그래서 모든 사고가 미국식이다. 심호흡을 한 송아현이 휴대전화를 다시 들고 단축버튼을 눌렀다. 이동일의 번호를 누른 것이다. 그러나 벨이 열 번 울릴 때까지 이동일은 응답하지 않았다.
7월24일 오전 10시40분.
한미연합사 사령관 겸 미 제8군사령관 제임스 우드워드 대장은 앞에 놓인 서류에 사인을 했다. 전자결재 시대가 된 지 오래였지만 군은 관행을 존중한다. 솔직히 해커는 종이로 만든 결재 서류는 훔쳐보지 못하는 것이다.
“좋습니다. 그럼 내일.”
펜을 내려놓은 우드워드가 앞에 앉은 한국군 합참의장 장세윤 대장을 보았다.
“볼만하겠군요. 장 장군.”
“그렇겠지요.”
장세윤의 표정은 조금 가라앉아 있다.
데프콘 3가 발령된 상황이어서 전군은 휴가, 외출이 금지된 상태이며 한국군 작전권이 한미연합사 사령관에게 넘어간 상황인 것이다. 따라서 내일 백령도에서 실시하는 대규모 상륙 훈련에 대한 우드워드의 승인이 필요했다. 장세윤의 분위기를 눈치챘는지 우드워드가 위로하듯 말했다.
“북한 측에 충분히 위협이 될 것입니다. 장 장군.”
지금 장세윤의 앞에는 E-3 훈련에 대비한 서류가 놓여 있다. E-3는 비상상륙훈련으로 백령도 주둔 해병 7사단이 주력이다. 해병대는 지금까지 한 번도 E-3를 발령하지 않았는데 마침내 내일 그 위력이 드러날 것이었다. E-3가 발령되면 7사단 전체가 출동하는 것이다. 상륙전대 100여 척과 상륙함, 이지스 순양함과 구축함 등 제2함대 대부분이 동원되며 공군은 조기경보기의 지휘하에 작전이 끝날 때까지 호위한다. 그러나 무엇보다 E-3의 주력인 해병 7사단의 위력은 엄청났다. 사단은 직할 헬기연대를 보유하고 있었는데 이 또한 상륙 헬기전대다. 헬기연대는 1개 대전차 대대와 1개의 공격대대. 그리고 1개의 정찰·수송 대대로 구성되었다. 각 대대는 50대씩의 헬기를 보유하고 있어서 150대의 헬기가 한꺼번에 뜨는 것이다. 공격 대대의 헬기AH-253은 한국이 생산한 최신형으로 대전차 미사일과 4기씩의 공대공미사일, 지역 제압용 무기인 벌컨포와 로켓포를 장착하고 있어서 하늘의 요새나 같다. 또한 정찰·수송용 헬기인 AH-39는 해병 20명을 싣도록 설계되었는데 역시 대전차미사일과 3포신의 20㎜ 게틀링건, 로켓포를 갖췄다. 서류를 든 장세윤이 자리에서 일어서자 우드워드가 손을 내밀며 말했다.
“장군, 훈련 끝나고 골프 한 게임 칩시다.”
“대통령님, 내일 오전 10시 정각에 백령도 해병 7사단의 비상상륙훈련이 실시됩니다.”
모니터에 비친 국방장관 임기태의 얼굴이 지쳐 보였으므로 대통령 박성훈은 소리죽여 숨을 뱉는다. 임기태는 육참총장 출신으로 지금 대장들의 한참 선배다. 임기태가 말을 잇는다.
“해병 7사단을 포함한 관련 부대는 준비 태세에 들어갔고 전군은 대기 중입니다.”
“알았습니다.”
박성훈이 버릇처럼 모니터 아래에 떠 있는 시간을 읽는다. 2014년 오전 7월24일 10시47분이다.
7월24일 오전 10시55분.
사령관실로 들어선 이동일이 경례를 하자 정용우가 시선을 들었다. 경례에 답례 따위는 하지 않는다.
“너, 지금 백령도로 가.”
정용우가 말하고는 옆에 서 있는 작전참모 최재창을 보았다.
“설명해.”
정용우는 이런 식이다. 큰 것만 지시하고 자세한 건 부하에게 맡긴다. 처음에는 귀찮아서 그런 줄 알았더니 부하를 부리는 요령 같다. 최재창이 이동일에게 몸을 돌리고 말했다.
“내일 훈련 때 헬기연대에 사단 수색대대가 탑승한다. 수색대대장한테 너도 동행한다고 말해놓았다.”
최재창이 어깨를 부풀렸다가 내리고는 말을 잇는다.
“넌 사령관이 보낸 감독관이야. 그래서 헬기연대장의 지휘기에 타도록 조치했다.”
“알겠습니다.”
그때 최재창이 몸을 돌려 정용우를 보았다. 그러자 정용우가 헛기침을 했다.
“너 대구호 함장이 어떻게 했는가 들었지?”
대구호라면 이지스 순양함, 그때 정용우가 말을 잇는다.
“만일 헬기 연대장이 대구호 함장놈처럼 굴었을 때를 대비해서 널 보내는 거다.”
그러더니 정용우가 싱긋 웃었다.
“그땐 쏴 죽이고 네가 지휘해.”
(2장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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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한 시간쯤 전에 백령도로 북한 어뢰정 한 척이 기어올라왔다.”
최재창의 표정은 해안으로 거북이 한 마리 기어 왔다는 것처럼 보였다. 그래서 눈만 껌벅이는 이동일을 향해 최재창이 말을 잇는다.
“시발놈들이 위협기동을 하는 것처럼 10척이 아군 초소 2㎞ 지점까지 급속 남진을 했다가 일제히 선수를 돌려 돌아갔는데 말야.”
“…….”
“그중 어뢰정 한 척이 그대로 내달려 백사장 위로 올라와버린 거야.”
“…….”
“어뢰정에는 여덟 명이 타고 있었는데 정장인 대위가 부하들을 인솔하고 투항한 거다. 특공중대장 보고를 들으니 몇 달 전부터 모의를 했다는 거다.”
그러고는 최재창이 쓴웃음을 지었다.
“지금 분계선은 난리다. 북한 쪽엔 대동강급 구축함을 비롯해 20척 가까이 모여 있고 아군도 비상 상태야.”
그럴 만했다. 어뢰정 한 척이 통째로 넘어온 것이다. 그래서 F룸에 모인 군 수뇌부가 생생한 현장중계를 원하고 있다. 더욱이 자신의 부관이 사건이 발생한 특공중대의 중대장 출신이니 정용우가 나설 만했다.
2010년 3월26일의 천안함 피습사건은 일시적으로는 한국군의 참담한 패배로 보였다. 국론이 분열되었으며 군에 대한 불신을 조장하는 무리도 늘어났다. 군 내부에서도 지난 10년 동안 대북 포용정책의 기조에 따라 주적(主敵)의식을 의도적으로 약화시킨 게 사실이다. 그러나 이른바 3·26사건 이후 군의 자세가 정립되었다. 주적의식이 확고해졌으며 군 수뇌부의 어설픈 햇볕 장성들은 자연스럽게 도태되었다. 그것이 3·26효과다. 또한 미국의 전시작전권 이양 시기도 늦춰졌으며 대한민국 내부의 반정부 세력을 확실하게 구분할 수 있게 되었다. 2012년에 탄생한 박성훈 정권은 자유민주주의체제를 기반으로 한 철저한 상호실용 정권이다. 쉽게 말하면 준 만큼 받고 받은 만큼 준다는 개념인 것이다. 특히 국방에 대해서는 대통령 박성훈이 전군 수뇌부 회의석상에서 말한 일화가 전군(全軍)에 구두로 전해졌다.
“적이 왼쪽 뺨을 치면 즉시 오른쪽 뺨을 쳐주고 발길로 배를 한 번 더 차야만 될 것이다.”
그렇게 말했다는 것이다. 군인은 단순한 명령, 금방 이해할 수 있는 표현을 좋아한다. 심약한 사병 일부만 빼놓고 전군의 사기는 높아졌다.
중부전선, 제9사단 15연대 제2대대 1중대 3소대의 소대본부 벙커 안.
벙커의 총안을 통해 보이는 북한군 초소와의 직선거리는 1200m. 망원경으로 북한군 초소를 바라보던 선임하사 유한철 중사가 소대장 백기식 중위에게 말했다.
“오늘은 초소장놈이 보이지 않습니다.”
“버섯이나 따러 갔겠지.”
시멘트벽에 등을 붙이고 시사문제집을 보고 있던 백기식이 건성으로 말했다. ROTC 출신인 백기식은 다음달에 제대할 예정이어서 취직시험 공부에 매달려 있다.
“소대장님, 오늘밤에 소대 회식을 해도 되겠습니까?”
유한철이 묻자 백기식은 문제집을 덮었다. 제대 말년이어서 소대 업무는 대부분 유한철에게 맡겨놓은 것이다.
“무슨 일 있는 거야?”
“오늘이 2분대장 오진영 하사 생일이랍니다. 그래서….”
“요란스럽게 하지는 말고.”
“염려하지 마십시오.”
“괜히 저쪽 놈들한테 자극을 주지 말란 말야.”
그때 무전병이 다가와 백기식에게 무전기를 내밀었다.
“소대장님, C벙커에서 교신입니다.”
C벙커는 3분대의 진지였고 소대본부 벙커에서 북동쪽 70m 거리에 있다. 무전기를 귀에 붙였을 때 3분대장 최 하사의 목소리가 울렸다.
“소대장님, 전방 300m 지점에 북한군 한 놈이 있습니다.”
퍼뜩 눈을 치켜뜬 백기식이 손목시계부터 보았다. 13시15분이다.
“뭘 하고 있는 거야?”
“글쎄요, 바위 밑에 쪼그리고 있는데 북한군 초소장 같습니다.”
“뭐라고? 초소장?”
놀란 백기식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이쪽에서는 매일 보는 터라 모두가 북한군 초소장은 물론이고 전사들 얼굴도 안다. 북한군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때 최 하사가 말을 이었다.
“그리고 이쪽에 몸을 노출시킨 채 자꾸 수신호를 보냅니다. 귀순하려는 것이 분명합니다.”
“내가 그쪽으로 가겠다.”
무전기를 건네준 백기식이 심호흡을 했다. 벙커 앞쪽은 골짜기여서 북한 측 시야의 사각(死角)이 많은 곳이었다. 따라서 귀순하기에 가장 적당한 장소가 될 것이다.
“그 자식이 버섯 따러 간 게 아니었어.”
통화가 벙커 안에 울린 터라 긴장하고 있는 유한철에게 백기식이 쓴웃음을 짓고 말했다.
“초소장 귀순이면 큰 건수다.”
따라서 오늘 2분대장 생일파티는 취소될 것이었다.
육본 작전참모부장 박진상 중장이 육본으로 돌아왔을 때는 14시26분이었다. 퇴근시간이 지나 있었지만 백령도 사건으로 참모본부의 간부들은 대기 중이었고 육참총장도 돌아와 상황실에 있다.
“고물 어뢰정 한 척이 골치를 썩이는군.”
털썩 자리에 앉은 박진상이 큰소리로 말했을 때 정보참모 허병구 준장이 다가와 섰다.
“부장님, 9사단 15연대 지역에서 북한 초소장 한 명이 귀순한다는 보고가 왔습니다.”
“귀순한다니?”
“예, 넘어오려고 아군 벙커 앞 골짜기에 숨어 있답니다. 날이 어두워지면 올라올 것 같다는대요.”
“15연대 어디 지역이야?”
“2대대가 맡은 철봉산입니다.”
허병구가 옆쪽 벽으로 다가가더니 지휘봉으로 대형전광 지도의 한 점을 가리켰다.
“올해는 귀순자가 부쩍 늘어나는데.”
지도를 보던 박진상이 혼잣소리처럼 말했다.
“귀순자로 부대를 편성해도 되겠다.”
“귀순해오면 즉시 연대본부로 이송하라고 했습니다만.”
바짝 다가선 허병구가 박진상을 보았다.
“보안을 유지해야 되지 않겠습니까?”
“물론이지, 하지만 기무사 쪽에 연락을 하도록.”
박진상이 말을 잇는다.
“위장 귀순자인지 가려내야 될 테니까.”
2011년 이후로 북한군의 귀순이 늘기 시작했는데 한국 측에서는 공식 발표를 자제했다. 민간인 탈북자와 달리 북한군의 귀순은 대단히 민감한 사항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올해는 상반기인 현재까지 귀순자가 300여 명이나 되었다. 작년과 비교하면 절반 가까이 늘어난 것이다.
“수용소를 늘려야 되겠는데.”
총장에게 보고를 하려고 일어나면서 박진상이 혼잣소리로 말했다. 중부전선 제24사단 지역에 귀순자의 수용소가 세워져 있는 것이다. 그곳에는 이미 1000여 명의 북한군 귀순자가 재생교육을 받고 있다.
“충성!”
서경석 대위가 절도 있게 경례를 했지만 이동일은 건성으로 답례했다. 14시47분, 특공중대는 비상대기 상태였는데 중대장 서경석은 지친 표정이었다. 이미 사령부와 기무사 조사관한테 시달리고 난 후라 이동일의 출현이 반갑지 않은 것 같다.
“난 연락관이야, 아마 조사는 다 했을 테니까 이쪽 상황만 파악하면 돼.”
일단 서경석을 안심시킨 이동일은 앞쪽의자에 앉았다. 그러고는 주위를 둘러보는 시늉을 했다. 중대본부 벙커 안은 전과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다. 시멘트벽에 붙어 있는 북한 함정 식별도에 이동일이 써놓은 주의사항도 그대로 있다.
“중대장님 오셨습니까?”
벙커 안으로 들어선 안태일이 경례를 했는데 얼굴에 반가운 기색이 역력했다.
“응, 너, 요즘에도 술 많이 마셔?”
이동일이 불쑥 묻자 안태일은 쓴웃음을 지었다.
“아닙니다.”
18개월 동안 함께 생활해온 터라 알건 다 아는 사이인 것이다. 이동일 앞에 선 안태일이 묻지도 않았는데 보고했다.
“구축함 2척에 사리원급 경비정 2척, 소주급 유도탄정 4척에 코마급 3척, 그리고 사로센급 어뢰정 2척, 522mm 어뢰를 장착한 어뢰정 5척까지 모두 18척이 분계선 북방에 떠 있습니다.”
안태일이 해상의 함정 수를 막히지도 않고 보고했을 때 이동일이 얼굴을 펴고 웃었다.
“안 중사 진급할 때가 된 것 같다.”
“감사합니다.”
앞쪽에 앉은 서경석은 가만히 있었다. 이동일은 해사 2년 선배이기 때문에 잘 안다. 해사 시절부터 리더십이 강했고 성적이 우수해서 많은 후배가 따랐다. 5개월 전에 이동일의 중대장 업무를 인계받을 적에 서경석은 영광이라고까지 생각했던 것이다. 그때 이동일이 머리를 돌려 서경석을 보았다.
“어뢰정 정장을 만났을 때 특별한 일은 없었나?”
“별로.”
서경석이 머리를 한쪽으로 기울였다가 생각난 듯 말했다.
“이곳이 특공중대 경비지역인 줄 알고 있었습니다.”
“당연하지, 놈들은 중대장 이름도 알아.”
“배에서 내리더니 무조건 사단장님을 만나게 해달라고 해서 곧 연대 참모님이 오셔서 안정시켰습니다.”
그러고는 일단 군 막사 안에 격리해 놓은 것이다. 어뢰정은 바닷가로 올라왔지만 말짱하다. 자리에서 일어선 이동일이 벙커 총안에 설치된 대형 망원경 앞에 섰다. 그러자 스코프에 늘어선 함정들이 육안으로 보였다. 이곳에서는 양쪽 함정이 다 보인다. 옆으로 다가온 안태일이 말했다.
“아군은 순양함 1척에 구축함 2척, 호위함 5척이 주력입니다.”
그리고 참수리 편대가 있다. 해상전력은 순양함 한 척의 화력만으로 북한의 함정 모두를 제압하고도 남을 것이다. 함대함 미사일인 SN-5를 24기 장착하고 있는 데다 동시에 12개의 목표를 향해 미사일을 발사할 수가 있기 때문이다.
“10년 전의 서해해전과 같은 상황은 일어나지 않겠지요.”
뒤쪽에 서 있던 서경석이 말을 잇는다.
“그러고 보니 천안함 폭침사건도 4년 전이 되었군요.”
그 사건 이후 한국 해군의 대잠수함 공격 및 방어 기능은 비약적으로 발전했다. 실패를 경험 삼아 뼈를 깎는 것 같은 노력을 했기 때문이다. 또한 정부의 지원도 획기적으로 늘어나 첨단 장비가 갖춰졌다. 그때 이동일이 팔목시계를 보고 나서 말했다.
“손님을 만날 시간이 되었군.”
그러고는 쓴웃음을 짓고 둘을 보았다.
“VIP가 되고 싶은 손님 말야.”
“한 달쯤 전부터 연습을 했습니다.”
어뢰정장 김만성 대위가 재떨이에 담뱃재를 털면서 말했다. 검게 탄 피부에 마른 체격이었지만 눈빛이 강했고 태도는 당당했다. 앞쪽에 나란히 앉은 두 사내는 잠자코 시선만 준다. 김만성이 말을 이었다.
“일렬횡대로 늘어서서 최대 속력으로 남조선 영해까지 내려온 다음 편대장의 지시에 따라 일제히 돌아가는 겁니다.”
“그렇다면 한국군을 도발시키겠다는 의도 같은데.”
양복 차림의 사내가 말했는데 기무사의 수사관 윤성구 중령이다. 머리도 반쯤 벗겨진 데다 눈시울도 늘어져서 가게 아저씨 같다. 윤성구가 물었다.
“한국군이 발포하면 어떻게 대응하라고 지시를 받았습니까?”
“남쪽 영해에서는 대응하지 말고 넘어와서 쏘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윤성구가 옆에 앉은 이동일을 보았다. 이동일은 합참의 연락관 역할이니 무시할 수가 없다. 그러나 이동일은 입을 열지 않았고 김만성의 말이 이어졌다.
“맞습니다. 한 달도 더 전부터 우리가 남쪽을 건드려서 불씨를 일으킨다는 소문이 돌고 있었습니다. 그 총알받이로 우리를 내세운다는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이번에는 이동일이 묻자 김만성은 담배연기를 힘껏 빨았다가 구름 같은 연기를 내뿜고 나서 말했다.
“우리는 남조선 해군의 상대가 되지 않으니깐요. 그러니까 미끼로 내세우고는 전쟁의 불씨를 일으키려는 것이지요.”
다시 둘은 입을 다물었고 김만성의 목소리에 열기가 띄워졌다.
“아, 생각해보십쇼, 아군 배가 남조선군의 포탄에 맞아 폭파되면 분이 나서 가만있겠습니까? 이참에 전쟁 한번 붙어서 죽나 사나 한번 해보자는 놈들이 많겠지요, 그 이유를 만드는 것이라고요.”
“…….”
“내가 대위지만 군 생활 20년입니다. 평양놈들 머릿속은 다 들여다봅니다.”
“같이 좀 봅시다.”
하고 윤성구가 말했더니 김만성이 피식 웃는다. 담뱃진이 밴 이가 누렇다.
“우리 군도 나뉘어 있습니다. 강경파, 온건파로 나뉘어 있다고요, 이번 일은 강경파놈들 작전입니다.”
“그렇군.”
윤성구가 맞장구를 쳤더니 김만성도 말을 잇는다.
“그래서 내가 놈들의 작전을 역이용했지요, 돌아가라는 명령을 못 들은 척하고 곧장 내달려버린 겁니다.”
그러더니 김만성이 지금 생각해도 통쾌한지 검은 얼굴을 펴고 웃는다.
“담배 피우겠소?”
9사단 15연대 정보참모 민석기 중령이 담뱃갑을 내밀었을 때 사내는 머리를 들었다. 마른 체격에 두 눈에는 핏발이 서 있었지만 다부지게 다문 입술은 고집이 있어 보였다. 사내는 두 시간 전에 2대대 1중대 지역에서 귀순해온 북한군 초소장이었다.
“고맙습니다.”
담뱃갑을 받는 사내의 이름은 한복일, 북한 제208경보병여단 제3대대 2중대장이며 124 초소장인 인민군 상위, 나이는 34세이고 고향인 원산에 홀어머니와 여동생 하나가 있는 미혼남, 군 생활은 16년, 남포군관학교를 졸업하고 공산당에 가입한 지 9년이 되었다는 것이 지금까지 밝혀진 내용이다. 민석기가 라이터를 켜 내밀자 한복일은 담배 연기를 폐 가득히 삼켰다가 뱉었다. 22시15분, 연대본부 건물 안은 조용했고 소회의실 안에도 잠깐 정적이 덮였다. 슈퍼마켓에서 미역을 사오라고 했었는데… 문득 아내의 부탁을 떠올린 민석기는 입맛을 다셨다. 아내는 산후 조리로 미역국을 먹기 시작하더니 출산 넉 달째가 되는데도 미역을 찾는다. 옆에서 가벼운 헛기침 소리가 울렸으므로 민석기는 허리를 폈다. 방 안에는 기무사 파견대의 상사 한 명과 정보참모실의 고 대위가 동석하고 있는 것이다.
“그럼 귀순 동기를 들어볼까요?”
뻔한 질문이었고 지금까지 7명째 군관급 귀순자를 맞는 민석기는 그 대답을 대신해줄 수도 있었다. 그때 한복일이 입을 열었다.
“자유로운 세상에서 능력대로 살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그럼, 그렇지, 하고 쓴웃음이 나오려고 했지만 민석기는 정색하고 머리를 끄덕였다. 귀순자 열 명 중 여덟 명은 이렇게 말한다. 한복일의 말이 이어졌다.
“군 생활에 지쳤습니다.”
“그렇겠지요.”
“어머니한테서 연락이 두 달째 끊겼는데 돌아가신 것 같습니다. 놈들이 숨기고 알려주지 않는 것이 분명하다고요.”
한복일이 붉은 핏줄이 짙어진 두 눈으로 민석기를 보았다. 그런 경우가 흔하다. 전방의 군인이 충격을 받을까봐 정보를 차단시키는 것이다. 길게 숨을 뱉은 한복일이 말을 이었다.
“곧 초소가 폐쇄될 것이라는 소문이 돌고 있습니다. 여단 본부에서는 벌써 초소 병력의 3분지 1가량을 빼갔는데 우리는 그것을 위장하려고 하루 16시간씩 초소 근무를 한단 말입니다.”
긴장한 민석기가 눈만 크게 떴고 한복일의 목소리가 방을 울렸다.
“며칠 전에 저한테 여단의 장갑지원 중대장을 맡으라는 지시서가 왔습니다. 다른 전사들도 지시서를 받았는데 초소에는 이제 5분지 1 병력만 남는단 말입니다.”
한복일의 말이 사실이라면 전선에 이상상황이 발생하고 있다. 중부전선의 초소병력까지 빼내 어디로 이동시킨단 말인가?
7월23일 08시23분.
“소문이라지만 어쩐지 찜찜하군.”
육본 작참부장 박진상 중장이 참모 허병구 준장에게 말했다. 오늘도 참모실 분위기는 활기에 차 있었는데 어젯밤의 이상 유무를 보고받는 중이었다.
“208경보병여단이 이동한단 말인가?”
의자를 돌린 박진상이 벽에 붙은 전광지도를 보았다. 208경보병여단의 주둔지가 금방 노란색 선으로 나타났다. 허병구가 조종한 것이다. 208여단은 수비부대로 분류되어 노란색이다.
“그렇다면 어디로? 그리고 208과 대체할 부대는?”
박진상이 연거푸 묻자 허병구가 들고 있던 파일에서 서너 장의 사진을 꺼내 책상위에 놓았다.
“오늘 아침에 전송된 208여단 지역의 위성사진입니다. 이상이 없습니다.”
“어제 백령도로 기어올라온 놈은 북한 함대가 한국군의 사격을 유도하려고 일제히 내려왔다고 했어.”
사진을 보지도 않고 박진상이 말을 잇는다.
“몇 달 전부터 내려오는 연습을 했다는 거야. 놈들은 전쟁의 불씨를 만들려고 고물 함정들을 미끼로 내놓았다고 했어.”
“그럴 가능성도 있지요.”
하고 허병구가 어중간한 대답을 했을 때 박진상이 혀를 찼다.
“얀마, 너 나하고 술 자주 마신다고 그따위 대꾸를 하냐?”
“잘못했습니다.”
“백령도와 15사단 귀순자 사이에 공통점이 있는 것 같아서 마음에 걸린다.”
“분석해보겠습니다.”
“컴퓨터만 보지 말고 대가리를 굴려.”
“예, 부장님.”
“이 빌어먹을 테이프와 사진들.”
사진을 흘겨본 박진상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어쨌든 사진 가지고 총장한테 보고하러 가자, 진급하려면 총장을 자주 만나야 된다.”
휴대전화의 스크린은 작았지만 화질이 선명해서 송아현의 얼굴이 깨끗하게 드러났다.
“그럼 오늘은 시간이 없단 말야?”
이맛살을 찌푸린 송아현이 이동일을 쏘아보았다. 뒤쪽으로 쟁반을 든 종업원이 지나가고 은은한 음악소리까지 들린다. 송아현은 지금 회사 빌딩의 아래층 커피숍에 앉아 영상통화를 하는 것이다.
“미안해, 지금 서울로 날아가면 바로 보고를 해야 되고, 오늘 저녁은….”
“아. 됐어.”
말을 자른 송아현이 손가락을 권총처럼 만들고 이동일을 겨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