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2년 한반도 안보환경 불안정.’ 전시작전통제권 전환 연기가 공식화되는 과정에서 정부가 들고 나왔던 첫 번째 이유다. 그러나 군 일각에서는 “군사비 투자를 아까워하는 청와대의 속뜻이 진짜 이유 아니냐”는 볼멘소리가 터져나온다. 전작권 전환을 위해 군이 요구해온 예산을 줄 생각이 없는 정부가 다음 정권에 ‘고민거리’를 떠넘긴 것 아니냐는 비판이다. 여기에 마침 궤도에 오른 내년도 예산안 작성 프로세스는 새로운 싸움을 예고하는데…. 군이 전작권 전환 연기를 선뜻 반길 수만은 없는 까닭, 그 복잡한 속내를 들여다보았다.
발끈한 국방부는 이날 “한국군은 연합방위를 주도할 충분한 능력을 보유하고 있다”는 내용의 보도자료를 냈다. 장광일 국방부 정책실장도 “전작권 전환 연기는 북한의 2차 핵실험 등 안보환경의 변화 때문이지 우리 군의 능력은 충분하다”고 강조하고 나섰다. 대놓고 말은 못하지만 전작권과 관련해 청와대가 은연중에 내비친 인식을 반박하고 나선 모양새. 대부분의 언론이 주목하지 않았던 이 작은 해프닝은 군 일각에서 ‘전작권 전환 연기를 선뜻 반기지 못하는 이유’를 풀이할 의미심장한 바로미터다.
“문제는 C4I다”
“까놓고 얘기해 이번 연기의 가장 본질적인 이유는 결국 돈 문제 아닌가. 이명박 정부가 군사 분야에서 이른바 ‘경영적 합리성’을 추구하면서 많은 예산을 투입하고 싶어하지 않는다는 사실은 공공연한 비밀이다. 전작권 전환을 위해 군이 요구하고 있는 감시정찰자산이나 무기체계를 들여올 돈을 쏟아 부을 생각이 없으므로 대신 이를 싼값에 미국으로부터 빌려 쓸 수 있는 기간을 최대한 늘리자는 게 이번 연기의 진정한 속내라고 본다.”
익명을 전제로 털어놓은 군 당국 고위관계자의 토로는 꽤나 직설적이다. “충분한 시간을 두고 완벽하게 준비하자는 전환 연기의 명분 자체에는 반대할 이유가 없다”면서도 그 안에 담긴 속내에 대해서는 동의하기 어렵다는 것. 보수적인 군의 정서상 연기를 반가워하는 목소리가 절대적일 것이라는 세간의 추측과는 다른 뉘앙스가 군 일각에서 흘러나오고 있는 것이다.
물론 청와대 등 권력핵심에서 이 문제를 다뤄온 당국자들의 시선은 사뭇 다르다. “그간 전환 프로세스가 착착 진행돼 65% 수준에 이르렀으며 2012년에 전환해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군의 설명은 실상을 들여다보면 사실과 거리가 있다는 설명이 대표적이다. 이들이 가장 먼저 꺼내는 문제는 C4I(전술지휘통제) 체계 구축을 완료해 미군과 연동하는 과제다.
그간 전작권 전환 연기를 주장해온 정치권과 예비역단체들은 “2012년은 한미 대선과 중국의 권력이동, 북한의 ‘강성대국의 문을 여는 해’ 등이 겹쳐 불안한 시기이므로 연기해야 한다”고 주장해왔고 이번 연기 발표에서도 일부 이러한 논리가 거론되긴 했지만, 청와대 안보라인 당국자들이 공식 발표 이전부터 내비친 속내는 사뭇 달랐다. 양국의 대선 같은 정치적 스케줄을 군사적 사안인 전작권 전환 연기의 논거로 삼는 것으로 워싱턴이 설득될 리 없다는 것. 대신 전환 준비 문제, 특히 C4I 능력에 대한 우려야말로 한국과 미국의 수뇌부가 공히 고심할 수밖에 없는 사안이라는 이야기였다.
특히 중점적으로 거론되는 것은 북한의 장사정포 공격에 대비한 이른바 대화력전(對火力戰)에 사용되는 C4I다. 장사정포의 공격을 감지해 그 위치를 파악하고 이를 다시 어떤 무기체계를 동원해 파괴할 것인지 선정해 타격하는 일련의 과정을 자동으로 처리하는 것이 이들 C4I체계의 핵심. 이러한 기능을 수행할 ‘두뇌’에 해당하는 대화력전 수행본부는 주한미군 2사단이 맡아오다 2005년 ‘10대 임무 전환’ 프로그램에 따라 한국군 3군사령부로 이관됐다.
당시 제기된 가장 큰 우려는 미군이 무인정찰기 등 정찰수단부터 다연장로켓(MLRS) 같은 타격수단까지 실시간 처리가 가능한 ADOCS(자동화종심작전협조체계) 등의 C4I 체계를 운용한 반면, 한국군의 대화력전 C4I체계는 이에 크게 미치지 못해 상당히 지연된다는 사실이었다. 대응이 수초만 늦어져도 피해규모가 확연히 달라지는 것이 대화력전의 특성인 만큼 이러한 격차는 조속히 극복되어야 할 과제로 지목됐고, 특히 한국군 대화력전 수행본부에서 미군이 운용하는 타격자산에 공격지시를 하달하기 위해 꼭 필요한 미군과 한국군의 C4I 연동 문제는 가장 큰 걸림돌이었다.
이 때문에 대화력전 수행본부가 전환된 이후에도 한국군은 미군의 이동형 ADOCS체계를 대여해 JADOCS(합동자동화종심작전협조체계)로 만드는 방식으로 을지프리덤가디언(UFG) 등 주요 훈련에 임해왔다. 당초에는 한국군의 통합 C4I체계인 KJCCS(한국형 합동지휘통제체계)를 조기에 구축해 이를 미국 측 ADOCS와 연동함으로써 문제를 해결하려 했지만, 현재까지 두 체계의 연동은 시험단계 수준인 것으로 전해진다. 한미 양측이 연동을 위한 암호 알고리즘 호환 등 복잡한 난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수년 전부터 협의체를 가동해왔음에도 논의가 여전히 지지부진했다는 것이다.
글로벌호크 도입 연기의 속뜻
미국 공군의 고고도 무인정찰기 글로벌호크.
이러한 이유로 군은 전작권 전환이 예정돼 있던 2012년 이전에 고고도 무인정찰기인 글로벌호크를 도입하기로 하고 2005년부터 미국과 관련 협의를 진행해왔다. 당초 핵심기술 유출 우려를 이유로 수출을 거절하던 미국 측은 이명박 정부 들어 판매를 허용키로 했지만, 이번에는 한국 측이 경제위기에 따른 국방예산 감소와 전력증강 우선순위 조정 등을 이유로 2015년으로 도입을 연기한 바 있다. 대신 국방과학연구소(ADD)를 중심으로 중고도 무인정찰기를 자체적으로 개발하는 사업이 진행 중이지만 글로벌호크와 중고도 정찰기는 동급으로 보기 어려울 만큼 감시범위와 성능 차이가 크다.
이러한 정책변경의 외형적인 원인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로 인해 향후 수년간 운용할 수 있는 국방예산의 규모가 상당부분 줄어든 탓이다. 지난해 정부는 2006년 수립된 ‘국방개혁2020’을 ‘국방개혁기본계획’으로 수정해 621조원의 소요예산을 599조원으로 삭감한 바 있고, 국방부가 요구한 전년대비 7.8% 규모의 예산 증액안을 3.6% 증액으로 마무리짓기도 했다. 그 과정에서 이상희 당시 국방장관이 “차관이 장관에게 보고도 없이 예산삭감을 청와대에 독자적으로 보고했다”는 내용의 항의서한을 관계부처와 청와대에 보내 엄청난 파장을 불러일으켰음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러나 보다 근본적으로는 한국군 전력구조 건설의 방향에 관해 청와대가 갖고 있는 인식이 크게 작용한 것으로 보는 게 옳다고 당국자들은 입을 모은다. 전작권 전환 이후에도 미군의 지원, 특히 정보자산 협조가 유지되는데 한국군이 독자적으로 막대한 예산을 들여 고성능 감시·정찰자산을 도입할 이유가 없다는 정부 핵심관계자들의 판단이 그것이다. 오히려 한정된 국방예산을 북한의 비대칭 위협이나 비정규 군사행동을 억제하는 데 중점적으로 투자하는 게 훨씬 합리적이라는 것. 천안함 사건 직후 쏟아진 “그간 군이 과도한 대양해군·전략공군 건설론에 경도되어 실질적인 위협을 감당하는 작업에 소홀했다”는 비판은 이러한 배경에서 나온 것이었다.
여기에 그간 무기도입과 관련해 군이 전문성을 주장하며 정확한 안보환경 분석에 근거하지 않은 ‘쇼핑 리스트’를 무분별하게 관철해오는 바람에 합리적인 예산책정이 이뤄지지 못했다는 인식도 권력핵심 내부에서 광범위하게 확인된다. 이명박 대통령 본인부터 청와대 외교안보자문단 모임에서 “그러한 문제점이 있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고 수차례 선을 그은 바 있다”고 참석자들은 전하고 있다.
다시 부는 바람
한미 양국 정상이 전시작전통제권 전환 시기를 2015년 12월1일로 늦추기로 합의한 것과 관련해 김성환 청와대 외교안보수석비서관이 6월26일 오후 캐나다 토론토 한국 프레스센터에서 브리핑을 하고 있다.
그러나 7월 중순 현재 기획재정부와 청와대의 분위기는 올해도 4% 이상의 증액은 쉽지 않다는 쪽에 가깝다. 전체 정부예산의 증가율은 3%대로 지난해 2%대에 비해 다소 늘어날 것으로 예상되지만, 고용 유발과 경제 활성화 효과가 높은 사회간접자본 투자 등에 상당부분이 투입될 예정이어서 탄력적으로 운용할 부분이 많지 않다는 것. 천안함 사건 직후 군 주변에서는 ‘안보태세 재정비’ 분위기에 힘입어 국방예산의 대폭적인 증액을 기대하는 분위기가 강했지만, 청와대 당국자들은 당시부터 이미 “국가재정전략 차원에서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라고 선을 그어왔다.
이 때문에 국방부와 국회 국방위원회 주변에서는 국방예산을 둘러싸고 지난해 벌어졌던 청와대와 국방부 사이의 갈등이 올해도 고스란히 재현될 수 있다는 관측이 흘러나오고 있다. 이미 여러 차례 공개적으로 사의를 표명한 바 있는 김태영 국방장관이 7월말로 예정된 개각으로 자리를 떠나면서 ‘총대를 메지 않겠느냐’는 시각이다. 지난해 이상희 장관으로부터 ‘하극상에 해당한다’는 말까지 들었던 장수만 국방부 차관이 올해도 예산관련 업무를 주도하고 있는 것도 눈여겨볼 대목. 정부 관계자들은 “예산은 차관의 고유업무이므로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설명하고 있지만, 10월초 기재부가 예산안을 확정하는 시점까지 이를 둘러싼 정부 내부의 난기류는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6.9%와 4%라는 차이는 일반인의 관점에서 보자면 언뜻 크게 느껴지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앞서 살펴보았듯 인건비 등 경상운영비가 상당부분을 차지하는 국방예산 특성을 감안하면 완전히 얘기가 달라진다. 예산증가율이 4%대 이하에 머물면 경직성이 강한 경상운영비보다는 방위력개선비의 증가율이 더 많이 줄어들 수밖에 없는 구조. 더욱이 군 당국이 경상운영비의 효율화에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는 현실을 감안하면 국방부가 제출한 감시·정찰자산과 해·공군전력 확충계획의 상당부분이 잘려나갈 공산이 크다. 여기에 3%대 중반으로 예상되는 내년도 물가상승률과 요동치는 환율을 고려할 경우 4%대 이하의 증액은 사실상 동결에 가깝다는 게 군 관계자들의 대체적인 인식이다.
전환 연기의 손익계산서
이렇게 놓고 보면 결국 전작권 전환 연기 문제에 대한 군 일각의 불편한 시선은 국방예산을 둘러싼 불만에서 비롯됐음을 확인할 수 있다. 쉽게 말해 “국방비를 많이 쓰지 않겠다는 정부의 방침이 전작권 전환 연기의 진짜 속내 아니냐”는 것이다. 합참의 한 중간간부는 “안보상황의 엄중함 때문에 연기 결정이 내려졌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국방을 경제의 하위개념으로 생각하는 청와대의 인식이 바닥에 깔린 것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경제적인 관점에서 전작권 문제를 봤을 때 연기 혹은 아예 환수하지 않는 것이 유리한 이유는 또 있다. 미국 측이 그간 무상으로 제공해온 C4I체계나 감시·정찰자산의 지원에 대해 비용을 청구하려는 뜻을 내비치고 있기 때문. 그간에는 미군이 중심이 되는 한미연합사가 주축이었으므로 해당 비용 역시 미군 측이 부담했지만, 전작권이 전환되고 한반도 유사시 대응을 한국군이 주도적으로 담당하게 되면 그 비용 역시 한국이 부담해야 한다는 논리다.
올해 들어 미 국방부와 주한미군은 대화력전 수행본부에 대여하는 ADOCS 체계의 사용료 문제를 협의하자고 요구하거나 합동훈련에 사용돼온 연합사의 전구지휘시설 탱고벙커(CP TANGO)를 한국 측이 구매해달라고 요청하는 등 다양한 경로를 통해 ‘계산서’를 내밀고 있다. 3월21일 ‘코리아타임스’는 이 같은 소식을 전하며 “핵 방호시설이 설치돼 있는 탱고벙커의 가치는 최소 2000억~3000억원 내외로 추산된다”고 보도한 바 있다. 천안함 사건 이후 한국 측이 강력하게 주장한 워치콘(대북감시태세) 격상에 당초 주한미군 측이 난색을 표한 것 역시 군사위성과 고고도정찰기를 추가로 운영하는 데 들어가는 1000만달러 이상의 비용을 누가 부담할 것인지의 문제 때문이었다고 전해진다.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청와대가 전작권 전환 연기문제를 검토하며 가장 염려한 부분이 ‘우리가 먼저 연기를 요청할 경우 미국이 그로 인해 발생하는 추가비용을 요구하고 나설 것’이라는 관측이었음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러나 군에서 필요성을 주장해온 감시·정찰 자산의 구매비용이나 미국 측이 점차 수위를 높여가고 있는 정보자산 운용 관련비용 청구서를 감안할 때, 오히려 연기하는 편이 경제적으로 이득이라는 판단이 나왔다고 당국자들은 설명하고 있다. 특히 2009년 체결된 방위비분담금 협정이 2013년까지 물가상승률 수준의 인상만 가능하도록 못박아둔 덕분에 추가비용 부담이 상당부분 줄어들었다는 것이다. 일종의 심모원려(深謀遠慮)였다는 자평이다.
‘경제적 관점’에서 보더라도
그러나 이러한 평가에 대해 일부 군 고위관계자들은 우려의 목소리를 내놓는다. 청와대가 현 정부의 임기가 끝나는 2012년까지만 신경 쓰고 있다는 비판이다. 당장 2014년 이후 지급하게 될 방위비분담금 협상에서 미국 측이 ‘밀린 계산서’를 들고 나올 가능성이 다분하고, 글로벌호크 등 연기된 감시·정찰자산 도입을 그때 가서 서둘러 추진해야 하는 복잡한 상황이 올 수 있다는 것. 군 당국 전력 분야에 종사하는 한 간부의 말이다.
“청와대 당국자들이 자신의 임기에 많은 예산을 쓰지 않는 것에 집중하느라 전작권 전환에 필요한 부담을 다음 정부로 떠넘긴 셈이라고 본다. 여기에 연기를 주장해온 보수층의 여론을 달랠 수도 있으니 두루두루 남는 장사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전작권이 2012년 전환된다면 올해 예산안에서 대폭 증액이 이뤄지지 않을 경우 예비역단체 등 보수층의 반발이 불가피하겠지만, 전환을 3년 반 미뤘으니 이러한 비판을 피해갈 핑계거리가 생긴 것 아닌가.”
물론 이 같은 시각에 대해서는 근본적인 반론이 가능하다. 과연 군에서 주장하는 대로 고가의 무기체계를 도입해야만 전작권 전환이 가능한 것인지에 대한 물음이다. 전세계 군사비의 50% 이상을 사용하는 미국의 정보감시 태세를 한국이 반드시 따라잡아야 할 필요는 없다는 반박은 군 당국 내부나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심심찮게 제기된다. 신호정보를 수집하는 백두와 영상정보를 수집하는 금강정찰기 등 기존의 감시·정찰자산을 업그레이드하는 방식을 택하면 상대적으로 높은 비용 대비 효과를 얻을 수 있다는 견해가 대표적이다.
대화력전과 관련해서도 그간 군이 MLRS 등 타격수단 구입에 중점적으로 쏟아 부었던 예산을 C4I체계에 투입했다면 역시 훨씬 효율적으로 독자적인 대응능력을 향상시킬 수 있었을 것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오히려 군이 전작권 전환을 이유 삼아 제안한 타격수단 강화 중심의 대규모 쇼핑리스트를 노무현 정부가 무분별하게 수용한 것이 문제라는 비판이다.
같은 관점에서 보자면 이명박 정부의 군사력 건설 방향 역시 비판의 칼날을 피해가기 어렵다. 군사비 투자를 줄여나가는 과정에서 차기 잠수함 등 주로 해·공군 전력 분야가 순연되고 자주포 등 육군 전력 강화에 무게중심이 실린 국방개혁기본계획의 얼개는 현 정부의 ‘경제주의적 관점’에서 봐도 앞뒤가 안 맞는 부분이 있기 때문. 청와대 당국자들은 ‘지상작전은 한국군이 주도적으로 담당하고 미군은 압도적인 해·공군 전력으로 이를 보완한다’는 미국의 한반도 군사전략 틀을 고려한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지만, 오히려 국방예산 문제와 관련해 군의 주류인 육군 출신 인사들의 불만을 누그러뜨리기 위한 타협안 아니냐는 분석이 더 설득력 있어 보인다.
미 의회의 주한미군 철수론
가장 결정적인 문제는 이러한 흐름을 언제까지 지속할 수 있는지에 대한 물음이다. 동맹국의 안보를 지키는 데 있어 자신들의 군사적·재정적 기여를 줄여나가겠다는 미국 측의 의지는 날이 갈수록 확고해지고 있기 때문. 이 같은 목소리는 특히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에서의 전쟁으로 막대한 예산 부담을 지고 있는 미 국방부 측에서 강하다. 로버트 게이츠 미 국방장관은 ‘포린어페어스’ 5/6월호 기고문을 통해 “엄청난 비용부담으로 많은 논란을 야기했던 한국과 베트남에서의 경험은 미국군이 (동맹국 분쟁에) 직접 군사적으로 개입하는 기존의 방식 이외의 대안을 요구하고 있다”고 못박았다. 이 기고문의 제목은 ‘다른 국가들의 자기방어를 돕는 일(Helping others defend themselves)’이었다.‘대신 지켜줄 수는 없고, 지키는 것을 돕겠다’는 뜻이다.
부시 행정부 이래 이어져온 이러한 전략적 변화의 뿌리는 미 의회의 강도 높은 예산 압박이다. 7월7일 민주당 소속인 바니 프랭크 미 하원 금융위원장은 미국 MSNBC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북한보다 더 잘사는 한국은 자신들의 지상군으로 스스로를 지켜야 한다”며 주한미군 철수를 공식 주장하기도 했다. 하원 금융위원장으로 의회 안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프랭크 의원은 엄청난 국방비를 쓰고 있는 미국이 해외주둔 미군을 철수해 국방비 지출 규모를 줄여야 한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이번에 전작권 전환 연기가 결정되는 과정에서도 미 국방부는 사실상 반기를 들어가며 저항했다. 청와대와 백악관 사이에 물밑협상이 한창 진행되는 동안에도 펜타곤 관계자들이 수차에 걸쳐 연기에 대해 부정적인 견해를 공개 천명한 것이 대표적이다. 양국 정상의 컨센서스를 바탕으로 연기 방침이 확정된 후에도, 실무부처에 해당하는 국방부의 ‘꼿꼿한’ 분위기는 이어졌다고 협상과정에 관여한 당국자들은 전한다. 연기 기간을 얼마로 할 것인지 논의하는 테이블에서 한국 측은 ‘특정한 시점을 못 박지 말고 준비상황이 완료되면 연기하자’고 제의한 반면, 미 국방부 측은 ‘시점을 명확히 해야 할뿐더러 재연기는 없다는 사실을 공개 약속해야 한다’고 맞섰다는 것. 주지하다시피 결국 한미 정상의 전작권 연기 발표는 이러한 미 국방부 측 견해를 대폭 수용하는 형태로 이뤄졌다.
‘재연기 가능성’의 함정
연기 결정이 수면으로 부상한 뒤 예비역 관계자들이나 일부 군 당국 고위관계자들을 중심으로 “한번 연기했으니 2015년에도 연기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하는 목소리가 흘러나오고 있는 것은 가장 우려할 만한 대목이다. 당초 전작권을 전환하기로 결정하게 된 배경에 미국 측의 의지가 강력히 작동했음을 감안하면 이를 언제까지나 미룰 수 있다고 보기는 어렵기 때문. 그럼에도 안보정책 결정자들 사이에 재연기가 가능하다는 인식이 확산될 경우 수년 뒤 심각한 문제가 발생할 수도 있다는 우려에는 충분한 근거가 있다. 청와대 안보관련 자문회의에 참석하고 있는 한 전문가의 말이다.
“9월말까지 진행될 국방예산 책정과정을 지켜봐야겠지만, 현재 추세대로라면 군은 정권이 교체된 2013년 이후에 ‘예산을 대폭 증액하지 않으면 전작권 전환이 어렵다’고 주장하고 나설 것이다. 이명박 정부가 노무현 정부의 ‘국방개혁2020’을 비판했듯 다음 정부도 현 정부의 ‘국방개혁기본계획’을 비판하고 나설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그 과정에서 전작권 전환 준비가 충분한가에 대한 정치적 논쟁이 쏟아질 테고 재연기를 주장하는 목소리가 재발할 것이다. 그렇게 이 문제가 다시 정치화할 경우 전환 준비도 지지부진해질 수밖에 없다. 그런 상황에서 미국이 예정대로 전환을 강행하고 주한미군의 기여도 대폭 줄인다면 그 혼란은 우리가 고스란히 감당해야 하는 것이다. 군사문제를 정치의 틀로 접근할 때 벌어질 수 있는 최악의 시나리오가 눈앞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