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편과 보도전문채널의 선정을 올해 말까지 마치겠다는 로드맵을 공식발표한 것이 5월18일이었으니 어안이 벙벙한 일이다. 국회에서의 질의와 답변이 비정상적인 경우가 허다하지만 이런 문답은 미디어 빅뱅으로 불리는 디지털미디어시대의 의미와 국민의 미디어복지권을 망각한 것이다. 종편 선정을 포함한 디지털 미디어의 적극적인 활용을 더 이상 미루는 것은 정부의 책임 유기라고 본다.
종편의 허가 등을 담고 있는 미디어법이 법제화되기까지 여야 정치권, 전문가, 시민단체 간 극한 대립으로 우리 사회가 치른 비용은 엄청났다. 2008년 12월 국회에 제출된 미디어 관련법이 2009년 7월22일 우여곡절을 거치며 7개월여 만에 국회를 통과함으로써 신문과 방송 교차 소유, 대기업의 방송사 지분 보유가 가능해졌다. 1980년 군부세력에 의한 강제 언론통폐합이 29년 만에 풀린 것이다.
계속 미뤄지는 종편 사업자 선정
방송과 통신의 융합에 의한 새로운 디지털 미디어 지형은 그야말로 상전벽해(桑田碧海)와 경천동지(驚天動地)의 변화 그 자체다. 미디어 기술의 발전과 새로운 시장의 출현에 대한 대처는 1998년 12월 설치된 대통령 직속 자문기구인 방송개혁위원회에서 시작됐다. 행정기구와 이해당사자 간 대립과 갈등도 해묵은 과제로 지속되어왔다. 이에 대한 포괄적인 대처 노력은 2006년 7월에 구성된 방송통신융합추진위원회(방추위)의 구성으로 나타난다. 방추위는 방송위원회와 정보통신부를 통합해 방송통신위원회를 설립하는 것과 같은 행정기구의 개편, 지상파의 역기능에 대한 견제, 대기업의 방송 참여, IPTV 도입 등을 심도 있게 논의해 건의했다.
미디어 발전을 선도하는 세계의 주요 국가들은 미디어 영역의 융합으로 국제 경쟁력을 강화할 수 있는 정책과 법제도 정비에 노력을 기울여왔다. 예를 들어 영국은 1996년 방송법을 제정해 탈규제 조치를 연장했다. 세계 최초로 디지털 지상파 방송을 개시하면서 다양한 플랫폼의 디지털화를 진척시켰다. 보다 효율적인 융합을 위해 2003년 커뮤니케이션법을 제정했다. 이후로도 개방적 시장, 소비자와 시민의 권익 강화, 고품질 콘텐츠에 대한 보편적 접근을 우선순위에 두는 컨버전스 싱크탱크를 만들고 2010년 4월 ‘디지털경제법안’으로 법제화했다.
미국, 독일, 프랑스, 일본 등 미디어 간 융합을 적극적으로 진행하고 있는 나라들도 예외 없이 소비자에게 더 나은 서비스를 제공하고 국제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체계적인 대응을 부지런히 해나가고 있다.
우리나라도 미디어의 융합 및 미디어산업의 국제경쟁력에서 뒤처지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 법과 정책이 미디어업종 인재들의 창의성을 뒷받침한다면 불가능한 일도 아니라고 본다. 방송통신위원회 측은 미디어법이 통과된 후인 2009년 7월26일 기자회견에서 종편과 보도채널의 사업자 선정 기준을 포함하는 구체적인 정책방안을 마련해 그해 12월 중에 종편 사업자와 보도채널 사업자를 선정할 것이라고 발표한 바 있다. 그러나 이후로 선정 시점이 2010년 초, 2010년 상반기, 지방선거 이전 등으로 계속 미뤄졌다.
아날로그시대로 회귀하자?
일각에서 언급되는 종편 선정 백지화는 다시 아날로그시대로 돌아가자는 것이다. 또한 세계의 도도한 디지털 경기에서 자살골을 넣자는 것과 다름없다. 최시중 위원장은 2009년 7월7일 관훈클럽 토론회에서 “후손들의 먹을거리를 만들어줄 미디어법이 정치 볼모가 되어 표류하고 있다”고 안타까워하면서, “(국회가 미디어법을 통과시켜주면) 방통위가 책임을 지고 미디어산업의 경쟁력을 키우고 글로벌 미디어 기업을 육성하겠다”고 말한 바 있다.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신규 매체와 기존 매체 간 경쟁을 통해 고품격 콘텐츠를 제공해 시청자에게 혜택이 돌아가게 하겠다”는 초발심을 실행해야 한다. 방통위는 고품격 콘텐츠가 생산되고 유통되는 미디어 융합 환경을 만들 수 있게 투명하고 공정한 심사로 종편 사업자를 선정해야 한다. 그래야 시청자의 복지와 글로벌 경쟁력도 따라올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