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나라 최초의 사액서원인 소수서원과 천년고찰 부석사가 자리 잡고 있는 경북 영주시. 소백산의 청정한 자연경관과 유교와 불교의 대표적 문화유적이 어우러진 영주에 우리나라를 대표할 문화생태 탐방로로 소백산 자락길이 조성되고 있다.
소수서원
7월6일. 녹색관광 취재를 위해 생애 처음 영주를 찾았다. 서울에서 경기와 충청도를 지나 죽령고개를 넘어 경상도 땅에 들어서야 영주가 나온다는 것을 알고 있던 터라 꽤 오래 걸리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막상 서울 서대문 충정로 동아일보 사옥에서 출발해 북영주IC(풍기IC)까지 가는데 2시간30분밖에 걸리지 않았다. ‘경상도까지 가야 한다’는 생각에 심리적 거리가 멀게 느껴져서 그렇지, 실제로 가보면 영주는 수도권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이다.
명물 많은 고장, 영주
“영주 사과는 전국에서 맛이 좋기로 유명합니다.”
“풍기 인삼은 또 어떻고요.”
“선비촌도 전국에서 가장 잘 보존돼 있습니다. 없는 것을 새로 만든 것이 아니라, 영주 이곳저곳에 흩어져 있는 선비 가옥을 그대로 본떠 한곳에 모아 조성했습니다. 선비들이 많이 살았던 영주는 선비정신이 깃든 곳이지요.”
“우리나라 최초 사액서원인 소수서원도 있고요.”
“부석사도 빠뜨릴 수 없는 우리나라 대표적 문화유산이죠.”
소백산 자락길 취재를 위해 내려간 취재진에게 영주시청 김제선 문화관광과장과 김영섭 주무관의 영주 자랑은 끝이 없었다.
백문불여일견(百聞不如一見). 일단 소백산 연화봉에 올라 소백산 자락을 둘러보기로 했다. 소백산은 충북 단양과 경북 영주에 걸쳐 있다. 단양 방면은 산이 가파른 반면, 영주 쪽은 완만하게 산자락이 펼쳐져 있어 전체 소백산 가운데 상당부분이 영주시 관할이다. 연화봉 인근에 다다르자 철쭉축제로 유명한 산 능선은 녹음으로 짙푸르렀다.
연화봉에서 바라본 비로봉은 뿌연 안개가 낀 탓에 뚜렷이 보이지는 않았지만, 장대하게 펼쳐진 소백산은 절로 넉넉함을 느끼게 해줬다. 7월 들어 30℃를 오르내리는 폭염이 계속된 날씨였지만 연화봉 정상에서는 에어컨 바람보다 더 쾌적하고 시원한 골바람이 불었다. 10여 분을 머물다보니 시원하다 못해 오히려 춥기까지 했다. 여름 산행에 긴팔 옷을 반드시 준비해야 하는 이유를 알 만했다.
죽령으로 내려와 소백산 자락길 1구간 가운데 첫 코스인 초암사로 향했다. 초암사를 지나 비로사로 향하는 숲길은 햇빛을 보기 힘들 만큼 나무가 울창하고 자락길 옆 죽계구곡 물소리가 청량감을 더해줬다. 계곡 물소리에 이름 모를 새소리가 어우러져 마치 오케스트라 연주를 듣는 듯했다.
문화해설사 권화자씨는 “소수서원에서 초암사를 거쳐 비로사에 이르는 1코스는 산책하듯 걸을 수 있다”며 “비로사로 향하는 길에는 달밭골을 지나게 되는데, 지금도 주민 몇몇이 밭을 일구며 살고 있다”고 했다.
스토리가 있는 문화생태 탐방로
국보와 보물이 각 5점씩 있는 부석사는 우리나라 문화재의 보고다.
소수서원에서 출발해 순흥향교와 죽계구곡, 초암사에서 달밭골을 거쳐 비로사를 지나 삼가동에 이르는 1코스는 말 그대로 ‘문화생태탐방길’이다. 소백산 자락길 순례가 시작되는 소수서원은 조선 중종 때 풍기군수 주세붕이 세운 백운동서원이 시초다. 퇴계 이황이 풍기군수로 부임해 온 뒤 조정에 상소를 올려 명종으로부터 소수서원이라는 사액(임금이 서원 등에 이름을 지어 그것을 새긴 편액을 내림)을 받은 우리나라 최초의 서원이다.
소수서원을 방문한 관광객은 누구나 문화해설사로부터 서원의 유래에서부터 서원 곳곳에 자리 잡은 건물의 쓰임새, 각종 문화유적 등에 대한 설명을 들으며 관람할 수 있다. 문화유적이 많은 영주시는 국내에서 가장 많은 문화해설사를 두고 있는 자치단체 가운데 하나다. 외국어 능력을 갖춘 4명의 해설사를 포함해 모두 34명이 근무하고 있다. 이들은 소수서원과 선비촌, 부석사, 소백산 자락길 등 영주 일원의 문화생태관광지에서 관광객들에게 유적과 관광지에 얽힌 이야기를 들려줘 관광의 재미를 배가해준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하지 않던가. 해설사의 설명을 들으며 관람하다보면, 기왓장 하나, 나무 한 그루도 예사로 보이지 않는다.
소수서원에서 삼가동에 이르는 소백산 자락길 1구간 가운데 1코스의 길이는 12.6㎞로 3시간40분 정도 소요된다. 2코스는 삼가리에서 삼가호를 지나 금선정과 정감록촌, 희여골과 장수골을 거쳐 풍기온천에서 희방사역으로 향한다. 16.7㎞ 길이로 4시간20분 정도 걸리는데 ‘삶의 지혜와 고뇌가 있는 십승지 과수원길’로 이름 지어졌다. 희방사에서 대강면까지 11.4㎞ 길이의 3코스는 죽령옛길을 통해 죽령을 오른 뒤 충북 단양의 용부원리를 지나 대강면으로 이어져 있다.
자가용을 이용해 좌우로 굽은 도로를 따라 죽령을 오르다보면 ‘험한 준령이겠구나’하는 느낌을 받는다. 그러나 소백산 자락길에 포함된 죽령옛길은 생각보다 험하지 않다. 여행전문가 양영훈씨는 정책정보지 ‘공감’에 기고한 글에서 죽령옛길을 이렇게 묘사하고 있다.
“죽령옛길은 먼발치서 바라볼 때와 실제로 걸어볼 때의 느낌이 사뭇 다르다. 풍기에서 아스라이 보이는 죽령은 엄두조차 내기 어려운 험산 준령 같다. 하지만 실제로 걸어보면 백두대간을 넘어가는 고갯길이라는 사실조차 잊을 만큼 편안하고 경사가 완만하다. 숲은 낙엽송 우거진 인공림과 참나무 빼곡한 천연림이 혼재한다. 하늘을 찌를 듯이 쭉쭉 뻗은 낙엽송이 보기에도 시원스럽다.”
영주를 찾은 관광객이 빼놓을 수 없는 곳이 바로 선비촌과 부석사다. 선비촌은 영주 일원에 흩어져 있는 선비 가옥을 그대로 재현해 한데 모아놓은 곳으로 관람은 물론, 숙박까지 할 수 있다.
극락으로 가는 길
선비 가옥에서 하룻밤이라! 생각만 해도 멋지지 않은가. 자연과 어우러진 전통가옥에서 하룻밤을 묵을 수 있는 특권을 제공하는 곳이 바로 영주 선비촌이다.
자가용으로 소수서원과 선비촌을 지나 10여 분을 이동하면 부석사에 이른다. 무량수전, 배흘림양식 등으로 널리 알려진 부석사는 눈에 띄는 것이 국보 아니면 보물일 정도로 국가적 문화재의 보고다.
부석사에 있는 국보로는 제17호 무량수전 앞 석등을 비롯해 무량수전(18호)과 조사당(19호), 소조여래좌상(45호), 조사당벽화(46호) 등 5점이 있고 보물도 석조여래좌상(220호), 부석사삼층석탑(249호), 부석사당간지주(255호), 화엄경판(735호), 오불회괘불탱(1562호) 등 5점이 있다. 각종 문화재를 관람하는 것 못지않게 의미 있는 것은 무량수전에 오르는 것. 그 자체가 ‘극락’으로 가는 길이다.
문화해설사 권화자씨는 “천왕문에서 무량수전까지의 석축이 아홉 단인데, 구품만다라를 의미한다. 그 아홉 단의 석축을 잇는 석계단의 숫자가 108개로 백팔번뇌를 의미한다”고 했다. 즉 무량수전에 도달하는 것 자체가 백팔번뇌를 극복하고 극락에 도달했음을 의미한다는 것이다.
무량수전 앞 안양루에서 내려다본 풍경은 ‘극락이 따로 없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수려하다. 방랑시인 김삿갓도 무량수전 앞 안양루에 선 뒤 즉석에서 다음과 같은 시 한수를 지었다고 한다.
浮石寺(부석사)
平生未暇踏名區 (평생미가답명구)
白首今登安養樓 (백수금등안양루)
江山似畵東南列 (강산사화동남열)
天地如萍日夜浮 (천지여평일야부)
風塵萬事忽忽馬 (풍진만사홀홀마)
宇宙一身泛泛鳧 (우주일신범범부)
百年幾得看勝景 (백년기득간승경)
歲月無情老丈夫 (세월무정노장부)
평생에 여가 없어 이름난 곳 못 왔더니
백수가 된 오늘에야 안양루에 올랐구나
그림 같은 강산은 동남으로 벌여 있고
천지는 부평 같아 밤낮으로 떠 있구나
지나간 모든 일이 말 타고 달려온 듯
우주 간에 내 한 몸이 오리마냥 헤엄치네
백 년 동안 몇 번이나 이런 경치 구경할까
세월은 무정하다 나는 벌써 늙어 있네
- 영주 부석사(浮石寺) 안양루(安養樓)의 김삿갓 시(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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