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 한국가정법률상담소가 베이비붐 세대 부부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10명 중 2명은 “10년 후엔 부부관계가 유지되지 않을 것”이라고 응답한 것으로 나타났다. 연령이 높고 혼인기간이 증가할수록 결혼만족도와 결혼안정성이 낮아지는 경향도 나타났다. 은퇴를 앞둔 베이비붐 세대들이 행복한 노년 생활을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일본 베이비붐 세대의 황혼이혼은 심각한 사회문제가 됐다. 은퇴한 노부부의 삶을 다룬 일본 연극 ‘잠 못 드는 밤은 없다’의 한 장면.
베이비붐 세대의 은퇴에 직면해 주의 깊게 살펴볼 지점은 하나 더 있다. 이들의 가족문제, 그중에서도 특히 부부문제다. 베이비붐 세대는 조기 은퇴와 기대 수명의 연장으로 인해 은퇴 후 20~30년을 부부 두 사람이 함께 살게 된 최초의 세대다. 가족복지 측면에서 각별한 관심이 필요한 셈이다. 이들이 우리 사회 인구 구성에서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는 만큼, 베이비붐 세대의 행복은 곧 사회 전체의 행복도를 높이는 데 큰 영향을 미친다.
직장에서 벗어나 자녀들을 떠나보내고 부부만 함께 지내야 할 이들의 미래 생활은 행복할까? 아니면 배우자와 함께 있는 것 자체가 힘들고 괴로운 일이 될까? 한국가정법률상담소는 지난 4월 이런 질문의 답을 구하기 위해 베이비붐 세대 부부를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1953~63년생 배우자를 둔 기혼 남녀 1013명(남자 357명, 여자 656명)을 대상으로 삼았다.
“이혼해봤자 좋을 것 없어서 산다”
이번 조사에서 베이비붐 세대 자신들도 부부관계의 미래에 대해 우려하고 있음이 드러났다. 응답자 10명 중 1.8명은 10년 후에도 현재의 배우자와 부부관계를 지속할 수 있을지에 대해 회의적인 태도를 보였다. 특히 여성의 경우 10명 중 2.2명(남성은 1.2명) 꼴로 “부부관계를 지속하지 않을 수 있다”고 답했다.(그림1)
베이비붐 세대 부부들의 결혼생활 만족도는 나이가 많아질수록 급격히 떨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그림2) 이들이 전(前) 세대에 비해 이혼에 대해 상대적으로 개방적인 태도를 갖고 있는 만큼, 머지않아 우리 사회에서 황혼이혼이 심각한 문제로 부상할 가능성이 높음을 보여주는 결과다. ‘황혼이혼’이라는 단어의 발원지는 일본으로, 1947~50년에 태어난 일본의 베이비붐 세대, 일명 ‘단카이(團塊) 세대’ 부부들이 노년기에 이혼을 ‘감행’하면서 만들어졌다.
우리나라 베이비붐 세대가 황혼이혼 사태에 직면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또 다른 증거는 이들이 배우자와 공유하는 시간이 많지 않다는 점이다. 절반 이상의 부부가 여가생활을 공유하지 않고, 이 중 상당수(11.3%)는 함께 여가를 보내는 것 자체를 기피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베이비붐 세대는 부부 사이 갈등이 잦으며 이를 관리하는 데도 취약한 것으로 나타났다. 부부 간의 갈등이 ‘자주’ 또는 ‘매우 자주’ 발생한다는 응답이 16.2%에 달했고, 이들 가운데 40%는 갈등 상황이 “배우자의 뜻대로 끝난다” “내 뜻대로 끝난다” “갈등 상황을 무시하고 각자 행동한다” “큰 싸움으로 확대된다” 등 갈등이 제대로 마무리되지 않은 채 봉합된다고 응답했다.
베이비붐 세대의 절반가량(남성의 47.5%, 여성의 44.6%)은 부부관계를 유지하는 이유에 대해 “이혼한다고 특별히 좋을 것이 없으므로” “살아온 세월이 아까워서”와 같이 답해 부부생활을 형식적으로 영위하는 태도를 보였다. (표 참고)
‘낀 세대’의 살아남기
왜 이들의 부부생활은 행복하지 않은 것일까. 왜 수십 년의 세월을 함께 살아온 배우자와 “언젠가는 이혼할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이에 대한 답을 구하려면 베이비붐 세대 부부의 갈등 요인을 이해해야 한다.
베이비붐 세대의 가정생활을 특징짓는 단어는 ‘낀 세대’다. 베이비붐 세대들은 부모에 대해 전통적인 부양 의무를 지고 자녀 양육에 대해서도 무한 책임을 지지만, 정작 자신의 노후는 자녀에게 기대지 않겠다고 생각한다. 경기도 모 대학 교수로 재직 중인 1959년생 C교수는 “어머니가 치매로 고향에 홀로 누워 계신다. 누나들이 번갈아가면서 돌보는데 장남인 나는 매달 조금씩 생활비를 부쳐드리는 게 전부다. 대학생, 고등학생 애들 학비를 대느라 아내까지 일터에 나가고 있다. 어머니를 모시고 오면 사람을 사야 할 형편이라 도리가 없다. 그렇다고 요양원에 보내는 것도 죄스럽고, 어찌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털어놓았다.
베이비붐 세대가 자신들의 노후준비에 상대적으로 소홀한 건 이처럼 부모와 자녀에 대한 과중한 책임감 때문이다. 은퇴 후 경제적 어려움이 시작되면, 이에 대한 스트레스가 부부생활의 갈등 요인으로 불거질 소지가 크다.
베이비붐 세대의 또 다른 갈등 요인은 남편과 아내 사이의 가치관과 신념의 차이가 크다는 점이다. 이 세대 남성들은 남성 우위의 가정·사회적 환경에서 자랐고, 여전히 가부장적인 태도를 유지하고 있다. 반면 여성들은 이전 세대보다 교육 기회와 사회 참여 기회가 늘면서 남녀평등적인 시각을 갖게 됐다. 이러한 가치관의 차이는 남편이 은퇴 후 가정에 머무르게 될 때 심각한 갈등 요인이 될 수 있다.
은퇴 후 수십 년의 세월을 단둘이 보내야 하는 베이비붐 세대에게 행복한 부부생활은 행복한 삶을 위한 첫걸음이다. 이 때문에 이제부터라도 베이비붐 세대 부부는 은퇴 후를 위한 재테크 못지않게 부부 금실을 위한 투자에도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부부 금실에 대한 관심
첫째로 필요한 것이 남녀 간의 차이를 극복하려는 노력이다. 베이비붐 세대 여성은 젊은 시절 시댁 중심, 남편 중심의 가부장적인 가족제도를 몸소 경험했고, 사회 변화에도 불구하고 자신은 보수적인 가족 문화 때문에 참으며 살 수밖에 없었던 데 대한 불만을 갖고 있다. 따라서 남편은 배우자와의 대화를 통해 사고와 태도의 격차를 줄이고 공감대를 형성해가려고 노력해야 한다.
다음으로 부부가 여가를 함께 보내는 훈련을 해야 한다. 이번 조사 결과, 여가 및 종교생활을 함께 하는 베이비붐 세대 부부들은 부부관계가 안정적이고 결혼생활에 관한 만족도도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취미를 공유할 수 없다면, 함께 종교생활을 하는 것도 좋다. 부부가 함께 할 수 있는 활동의 유형을 부부가 합의해 선택하고, 이를 즐기고 발전시키기 위해 시간과 비용을 들이는 것에 대해 주저하지 않는 것이 필요하다. 지역사회의 종교기관 등에서 운영하는 부부중심프로그램을 활용하는 것도 권장할 만하다.
부부갈등에 대처하는 기술을 향상시키려는 노력도 해야 한다. 부부갈등은 사실 간단히 해결될 수 없는 반복적인 문제, 예컨대 근본적인 성격 차이나 서로 다른 기본 욕구로 인해 발생한다. 해결 자체가 어렵다는 뜻이다. 따라서 부부 갈등이 상존할 수밖에 없음을 인정하고, 이에 효과적으로 대처해야 관계가 악화되는 것을 막을 수 있다. 이를 위해서는 개별 부부단위 또는 집단적으로 이뤄지는 부부교육 및 상담, 부부훈련 등에 참여하는 게 좋다. 여러 기관에서 부부가 함께 가정경제를 관리하는 법, 대화 및 의사소통방식, 자녀의 발달단계에 따른 육아 방법 등을 알려주는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부부관계를 강화하고 장래에 생길 수 있는 이혼문제에 대처하려면 이런 프로그램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게 좋다.
넷째로 경제적인 안정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 이번 조사를 보면 사회경제적으로 취약한 계층의 경우 결혼안정성과 결혼만족도가 낮은 경향을 보였다. 이들은 향후 부부관계에 대해 부정적인 태도를 가지고 있고, 부부갈등의 주된 이유로 경제적인 문제를 꼽았다. 경제적으로 무리 없는 환경이 조성돼 있어야 노년기에 찾아올 수 있는 이혼 등 부부관계의 파행을 최소화할 수 있음을 유념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앞서 제시한 가정 내 해결방안에 더해 정부와 사회 차원의 지원 노력이 필요할 것으로 본다. 우리 사회와 가정 내에 존재하는 남녀차별적인 관행과 요소들을 제거하고 민주적이고 양성이 평등한 가정생활이 정착되도록 이끌어야 한다. 적어도 제도나 관습, 편견으로 인한 부부갈등이 존재하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다. 노후에 가정경제의 불안으로 인해 갈등이 심화되지 않도록 다양한 금융 지원프로그램을 개발하는 것도 중요하다.
또한 은퇴 후에도 경제활동에 참여하고자 하는 이들의 욕구에 부응할 수 있도록 베이비붐 세대의 전문성을 활용하는 다양한 일자리를 마련해야 한다. 이들의 경험과 노하우를 존중하는 것은 베이비붐 세대에게 자부심을 부여해 정서적으로 긍정적인 파장효과를 가져와 은퇴 후 사회적인 역할 상실로 인해 야기될 수 있는 부부갈등을 예방하는 데 기여할 것이다.
지방자치단체들은 지역에 거주하는 베이비붐 세대가 한층 원만하게 가정생활을 영위하면서 지역사회에 기여할 수 있도록 부부 여가선용 프로그램을 개발할 필요가 있다. 베이비붐 세대들이 부부문제를 스스로 해결하기 위해 이익단체를 결성하고 온라인 혹은 오프라인에서 활동할 수 있도록 여건을 조성하는 것도 좋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베이비붐 세대의 행복한 부부관계 유지를 위해 다양한 지원 정책을 펼치는 것은 우리 경제 발전에 기여한 베이비부머들에 대한 사회적 책무일 뿐 아니라, 사회 전체의 행복 지수를 높이기 위해 꼭 필요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