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경인운하를 둘러싼 사회적 갈등은 첨예하게 지속되고 있다. 국토해양부는 ‘경인운하사업계획’ 보고서 등을 통해 “서울 도심 한강에서 중국까지 여객선과 화물선이 오가게 된다”고 했다. 물류비 절감, 문화·관광·레저 활성화, 저탄소 녹색성장 등 효과가 무궁무진하다는 게 정부 측 설명이다.
반면 야당과 일부 환경단체는 “운하의 폭이 좁고 수심이 얕아 적정규모의 배가 다니지 못하므로 경제성이 없다. 막대한 나랏돈을 낭비하고 환경만 파괴할 것”이라며 반대하고 있다. ‘경인운하백지화 수도권공동대책위원회’‘경인운하 백지화를 위한 사회인사 1000인’같은 단체가 2009년 2, 3월 경인운하 반대 행사를 열었다. 6·2지방선거에서 민주당 후보들이 경인운하가 지나는 광역·기초단체의 단체장으로 당선되면서 갈등의 골은 더 깊어질 전망이다. 유영록 김포시장은 6월19일 “경인운하 전면 재검토가 당의 입장이고 평소 나도 반대했다”고 밝혔다. 송영길 인천시장은 여러 인터뷰에서 “뱃길을 만들어도 이용할 물동량이 없어 예산 낭비가 우려된다”고 했다.
교수·전문가 집단도 경인운하 찬반 양론으로 구분되는 경향이다. KDI 측은 “타당성이 있다”는 결론을 내놓았지만 박창근 관동대 토목공학과 교수 등 일부 전문가는 사업성에 의문을 제기한다.
“교사 지도서에 수록…교과서에도”
이런 가운데 올 들어 인천지역 초등학교 교사용 지도서인 ‘인천의 생활(4-1)’에 경인운하의 치적을 홍보하는 내용이 수록됐다. ‘4-1’은 ‘초등학교 4학년 1학기용’이라는 의미다. 이 지도서는 제3부 부록 163~166쪽 ‘경인아라뱃길’ 부분에서 “상습적 침수피해를 해소” “물류비도 절감하는 이중의 효과” “서울 도심 교통난 완화에 크게 기여” “생산유발효과 약 3조원, 고용창출효과 2만5000명” “고려시대부터 시도된 경인 아라뱃길 사업” 등 경인운하를 선전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반면 경인운하에 대한 우려나 비판 내용은 없다.
(위) 인천지역 초등학교 교사용 지도서인 ‘인천의 생활(4-1)’에 수록되어 있는 경인운하 내용. (아래) 수자원공사가 발행하는 경인운하 소식지 ‘아라뱃길 물길따라’의 내용. 경인운하가 초등학교 교과서에 등장한다고 선전하고 있다.
경인운하 공사 현장.
인천시교육청 소속 한 장학사의 설명에 따르면 인천지역 초등학교 교사들은 2010학년도 1학기인 요즘 4학년생을 대상으로 이 지도서 안에 있는 경인운하 내용을 가르치고 있을 것이라고 한다. 다만, 교사용 지도서의 경우 교사의 판단에 따라 일부 내용은 간략하게 가르치거나 생략할 수는 있다.
수자원공사는 인천지역 초등학교 교사용 지도서에 경인운하 홍보내용이 수록된 사실을 자사가 발행하는 경인운하 소식지인 ‘아라뱃길 물길따라’를 통해 다음과 같이 자랑하고 있었다.
“지도서에는 아라뱃길 사업의 개요, 주요시설, 기대효과 등 사업에 관한 상세한 내용이 포함되어 있어 아라뱃길 사업에 대해 초등학교 교사와 학생들의 이해도를 높이고 공감을 얻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꿈나무들이 아라뱃길 통해…”
이어 ‘아라뱃길 물길따라’는 경인운하가 내년엔 인천지역 초등학교 ‘교과서’에도 수록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 소식지의 관련 내용이다.
“더욱이 2011년도에는 인천지역 초등학생 공식교과서인 ‘사회과 탐구(4-1)’에도 아라뱃길 사업이 수록될 예정으로, 인천지역 꿈나무들이 아라뱃길을 통해 더 큰 꿈을 키워갈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이에 따르면 경인운하가 완공되기 전에 발행되는 내년 1학기 교과서 역시 경인운하의 치적 홍보내용 일색으로 채워질 것으로 보인다. 경인운하사업이 정부의 말대로 성공을 거둘지 야당과 시민단체의 주장대로 실패로 귀결될지는 운하를 완공한 뒤 배를 띄워봐야 알 수 있는 일이다. 교육계에 따르면 사업의 성패가 검증되지도 않은, 공사 중인 대규모 토목사업이 일방적인 홍보성 내용으로 교과서나 교사용 지도서에 실리는 건 드문 일이라고 한다. 인천시교육청 장학사와의 대화 요지다.
▼ 초등학생에게 자기 고장과 관련된 내용도 가르치나 봐요?
“전국적으로 초등학교 4학년생에겐 ‘지역화 교재’라고 각 시도교육청에서 개발해 가르쳐요.”
▼ 인천지역 초등학교 교사용 지도서에 경인운하와 같은 내용을 쉽게 넣을 수 있나요?
“인천시교육청 산하기관에서 타당성 여부를 검토해 결정합니다.”
▼ 누군가가 이런 내용으로 넣어달라고 요청해서 그렇게 된 걸까요?
“그야 모르죠.”
▼ 공사 중인 토목사업이 교사용 지도서에 실린 사례가 이전에도 있었나요?
“모르겠어요.”
▼ 경인운하 건설을 둘러싸고 대립이 있는데요. 한쪽 편만을, 정부 쪽을 홍보하는 내용으로 실리는 것 같아서 교과서나 지도서로 적당한지….
“글쎄요. 지도서는 교과서와는 좀 달라서 교사가 참고자료로 읽고 학생들을 가르치므로….”
▼ 내년엔 ‘사회과 탐구(4-1)’에 실린다는 데요?
“어디에서 그러던가요?”
▼ 수자원공사가 자사 소식지에서 그렇게 밝히고 있어요. 수자원공사는 공공기관이라서 근거도 없이 그렇게 밝히지는 않을 것 같은데요. 교과서에 수록된다면 이례적이라고 할 수 있나요?
“그렇죠.”
▼ 어떤 점에서요?
“교과서 개발하는 쪽에서 어떤 입장인지는 모르지만 내년 교과서 내용은 올해 결정되는데 ‘사회과 탐구’는 올해 3월1일자로 초판이 발행됐거든요. 그거 하나 넣기 위해 다시 개발한다는 건….”
‘경인운하 교육’ 씁쓸하다
수자원공사는 교사용 지도서에 수록된 것만으로도 초등학생들의 이해도를 높이고 공감을 얻는 효과가 있다고 했다. 여권은 전교조 교사들이 학생들을 대상으로 이념편향교육을 한다고 비판해왔다. ‘경인운하 교육’이 이와 어떻게 다른지 자문해봐야 할 것이다.
‘빈(Vienna) 동아시아 연구소’의 한병훈 부소장은 일전에 ‘신동아’ 인터뷰에서 “운하는 막대한 재정이 투입되고 환경훼손 위험이 있기 때문에 오스트리아 정책당국은 실패 위험을 줄이기 위해서라도 반대론자의 견해를 열심히 듣고 수렴한다”고 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사회적 대립이 첨예한 경인운하가 초등학교 교육에까지 상륙해 반대편 의견은 무시하는 자화자찬 일색으로 교육내용이 채워지려 하고 이것이 다시 운하 건설 당국의 홍보거리로 활용되는 건, 소통부재 차원을 넘어 전체주의 국가의 세뇌교육이나 선전선동 양상처럼 비칠 수 있다.
경인운하사업은 현 상황에선 토목공사이면서 정치투쟁인 것도 사실이다. 정부의 장밋빛 청사진은 아직은 검증이 필요한 의견 단계다. 경인운하를 교과서에 정 싣고자 한다면 운하가 정상 운영돼 사회적 논란이 가라앉는 것을 지켜본 뒤에라도 늦지 않다. 왜 이리 매사에 조급한지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 우리 사회에서 초등학교 공교육이 갖는 무게는 크다. 초등학생에게 정치적 쟁점사안에 대해 한쪽 의견만을 주입시켜선 안 된다. 초등학생에겐 ‘진실’만을 가르쳐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