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올해 세계 탄소시장 규모는 1500억달러에 달해 반도체시장 규모를 뛰어넘을 전망이다. 탄소시장을 활용한 새로운 수익창출 방안을 마련하는 일이 시급하다. 이 분야의 강국인 유럽과 미국은 물론 중국, 인도, 싱가포르 등 아시아 국가들도 우리보다 앞서 탄소배출권 거래소를 출범시켰다.
- ‘신동아’가 각 전문기관의 연구결과물을 검토해 선정한 이달의 보고서는 삼성경제연구소가 7월 초순 발표한 ‘탄소배출권 거래소 설립의 의의와 과제’로, 한국도 관련 법령을 신속히 정비해 배출권 거래제 도입을 가속화해야 한다고 역설하고 있다.
지난 4월14일부터 시행된 저탄소녹색성장기본법은 국가의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총량제한 배출권 거래제 도입에 대해 명시했다. 총량제한 배출권 거래제는 사업장별로 할당된 온실가스 배출량보다 더 많이 배출하는 기업은 배출권 거래소에서 배출권을 추가 구매하고, 더 적게 배출하는 기업은 남는 배출권을 거래소를 통해 다른 기업에 판매할 수 있는 제도다.
이러한 배출권 거래제는 온실가스 감축을 위해 비용면에서 가장 효율적인 방법으로 분석됐다. 삼성경제연구소에서 동태적 연산균형모형(Dynamic Computable General Equilibrium)으로 배출권 거래제의 경제적 효과를 분석한 결과, 직접 규제하는 경우에 비해 약 60%의 감축 비용 절감 효과가 나타났다(이지훈(2009), ‘탄소배출권 거래제의 경제적 효과’ (경제 포커스 제266호),삼성경제연구소).
이같이 국가 온실가스 감축 목표와 달성 수단은 제시됐으나 구체적인 제도가 아직 마련되지 않아 기업들이 준비하기 어려울 뿐 아니라 배출권 시장 자체가 형성돼 있지 않은 실정이다. 저탄소녹색성장기본법 제46조 제4항에는 배출권 거래제 실시를 위한 ‘배출 허용량의 할당방법, 등록, 관리방법 및 거래소 설치 운영 등은 따로 법률로 정한다’고 되어 있다. 따라서 배출권의 법적 성격에 대한 정의 등 배출권 거래를 위한 관련 법령을 신속하게 제정해 배출권 거래제 도입을 가속화해야 할 시점이다.
배출권 거래에는 당사자 간 직접 거래, 브로커에 의한 거래, 그리고 거래소를 통한 거래가 있는데, 직접 거래는 계약 불이행에 대한 위험과 거래 관련 비용 증가 등의 문제 때문에 선호도가 낮다. 일찍이 배출권 거래제를 실시해온 유럽과 미국의 경우 거래소를 통한 거래가 일반화돼 있는데, 한국도 안전하고 투명한 거래를 위해서는 배출권 거래소 설립이 시급하다. 전세계적으로 10개 이상의 배출권 거래소가 운영되고 있으며, 거래소에 의한 배출권 거래는 거래의 안전성과 익명성이 보장되는 등 장점이 부각되고 있다.
부처·지자체 등 거래소 유치 경쟁
현재 정부 각 부처와 지방자치단체는 배출권 거래소를 유치하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금융위원회는 한국거래소와 함께 탄소배출권의 유가증권적 성격과 파생상품적 특성을 근거로 배출권 거래소를 2011년까지 설립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지식경제부와 한국전력거래소는 배출권 측정 능력과 전문성을 내세워 탄소배출권 거래소 설립 근거의 우위를 주장하고 있다. 지방자치단체 또한 거래소 유치 경쟁에 뛰어들어 배출권 거래소 운영에 따른 고용 및 생산 유발과 같은 경제적 효과를 기대하고 있다. 부산광역시는 파생상품 주 거래소인 한국거래소의 지리적 이점을 적극 홍보하고 있으며, 서울특별시는 국내 최대 금융 중심지로서의 장점과 금융기관과의 시너지 효과를 강조하고 있다. 또 전라남도는 2012년 나주로 이전하는 한국전력거래소와 업무 협약을 체결하고 배출권 거래소 설립의 효율성을 내세우고 있다. 이에 따라 정부가 배출권 거래소 주관 부처와 위치 등을 조속하면서도 신중하게 결정해야 한다는 요구가 늘고 있는 상황이다.
배출권 거래소가 아직 설립조차 안 된 한국과는 달리 유럽과 미국은 세계 탄소시장을 선점하기 위한 노력을 계속해왔다. 유럽지역에는 런던의 유럽기후거래소(ECX), 노르웨이의 노드풀(Nord Pool), 독일의 유럽에너지거래소(EEX), 프랑스의 블루넥스트(Bluenext) 등의 거래소가 설립되어 배출권 거래가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EU-ETS의 배출권 거래량은 2005년 3.6억t에서 2009년 63억t으로 성장해 전세계 배출권 거래량(CDM이나 JI 같은 프로젝트 방식의 배출권을 제외한 할당 방식의 배출권만 계산)의 약 86%를 차지한다.
미국은 교토의정서 미이행국이지만 시카고 기후거래소(CCX)와 RGGI(Regional Greenhouse Gas Initiative)를 통해 탄소배출권을 거래하고 있다. CCX에는 포드, 듀폰, 인텔, IBM, 소니 등 다국적 기업뿐만 아니라 일리노이·뉴멕시코 주정부와 여러 시정부, 대규모 전력회사 등이 가입돼 있다. RGGI는 2008년부터 미 동북부 10개주의 강제적 참여로 거래가 시작됐는데, 2009년 6월‘청정에너지 및 안보법’(일명 왁스만-마키법)이 하원을 통과한 이후 RGGI의 배출권 거래량이 급속도로 증가해 CCX의 거래 규모를 넘어섰다.
일본은 현재 시장 메커니즘을 활용한 기후변화정책으로 전환하면서 의무 거래소나 탄소세 도입 등을 검토하고 있다. 2008년 10월 시작된 자발적 시범 통합배출권거래제(Voluntary Experimental Integrated ETS)는 게이단렌(經團連) 자주행동계획(Keidanren Voluntary Action Plan)과 일본 자주 참가형 배출권 거래제(Japan-Voluntary Emission Trading Scheme)를 통합하는 것이 주요 목적이다. 자발적 시범 통합배출권거래제는 일본 산업계 온실가스 배출량의 약 70%를 포함하지만 자세한 거래관련 자료에 대한 공개는 제한하고 있다.
비용도 줄이고, 리스크도 줄이고
탄소배출권 거래소 설립의 가장 큰 의의는 탄소배출량을 비용효율적인 방식으로 감축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한다는 데 있다. 총량제한 배출권 거래제는 직접 규제보다 더 비용효율적인 방법이며, 다른 감축 수단인 탄소세는 세금 부과라는 정책적 부담이 존재하기 때문에 배출권 거래제보다는 덜 선호되는 경향이 있다.
배출권 거래제에 참여하는 기업은 온실가스 감축으로 인해 발생하는 리스크를 줄일 수 있고 기업 이미지 개선 측면에서도 긍정적인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미국 CCX에 참여한 기업의 75%는 실제로 온실가스 배출량을 감축했는데, 이는 탄소감축 의무화에 대비한 위험관리와 자산 가치 창출이 주요 목적이다.
배출권 거래소 설립에 따른 투명하고 합리적인 거래도 거래 관련 리스크와 비용을 감소시키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게 한다. 제도화된 거래소 설립으로 명확한 관리와 감독체계가 도입됨으로써 투명한 거래가 가능해져 거래 관련 리스크가 줄어든다. 또한 규격화된 배출권 상품의 거래가 가능해져 불필요한 거래비용을 감소시킬 수 있다. 배출권 가격은 시장에서 이용 가능한 정보를 합리적으로 반영하며 기업의 탄소 배출 감축에 관한 의사결정 과정에서 중요한 정보를 제공한다. 예를 들어 탄소배출 감축을 위한 설비투자 시기 결정, 배출권 구입을 통한 배출량 감축, 또는 배출권 판매 시기 여부 등의 전략 판단시에 거래소의 배출권 선물 가격 동향 분석을 활용할 수 있다.
현물·선물 함께 거래할 수 있게
배출권 시장을 이용해 배출권 가격의 변동성 위험을 회피하고 현물 포지션에 대한 위험 관리도 할 수 있다. 배출권과 관련된 다양한 파생상품을 개발해 배출권 가격의 변동성을 관리하고 동시에 새로운 투자 기회를 모색하는 것이 용이해진다. 기업이 배출권 현물을 보유한 경우 가격 하락 위험을 막기 위해 배출권 선물 매도나 풋옵션 매수 포지션을 구축할 수도 있다.
배출권 거래제를 성공적으로 도입하고 정착시키려면 크게 두 가지의 선결 과제가 있다. 첫째, 배출권의 법적 성격을 규정하고 배출총량 결정, 배출권 할당 방식에 대한 충분한 검토와 논의가 필요하다. 배출권 자체를 금융상품으로 규정하는 것은 한계가 있으나, 이를 파생상품의 기초자산으로 인정하는 것은 가능하다(정순섭(2008), ‘탄소배출권 거래소 설립방안에 관한 의견서’, 서울대학교). 배출권의 법적 성격에 따라 과세나 회계처리 방식, 금융상품화 가능 범위에도 영향을 미치게 된다. 배출총량과 배출권 할당 방식에 대한 규정도 외국의 사례를 검토하고 전문가의 의견을 종합해서 마련해야 할 것이다. 이와 함께 탄소배출 감축을 측정, 보고, 검증하는 기관을 설립하고 국제적 수준에 적합한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둘째, 탄소배출권 시장에서 풍부한 유동성을 공급하기 위해 다양한 시장참여자를 확보해야 하며, 파생상품과의 동시거래로 시장 규모도 확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배출권 현물거래엔 관련기업이나 전문가만 참여할 것으로 예상되지만, 배출권을 기초로 한 파생상품 거래엔 다양한 주체가 참여할 수 있다. 탄소펀드, 전문 중개회사 등을 통한 민간 금융자본의 투입으로 탄소시장의 안정성이 높아지고 유동성도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유럽 배출권 거래소 중에선 선물 위주로 상품이 구성된 ECX의 점유율이 75.6%로 압도적으로 높으며, 다른 거래소들도 배출권 선물 거래 서비스를 제공하는 추세다. 한국의 배출권 거래소는 현물과 선물이 동시에 거래될 수 있게 설계돼야 거래를 통한 온실가스 감축과 비용절감이라는 거래소 본연의 기능이 원활하게 발휘될 것으로 예상된다.
EU-ETS 제1기(2005~ 07)에는 탄소시장의 기반이 마련되고 충분한 유동성이 확보됐으나 배출권의 과다한 할당이라는 문제점이 발생했다. 무상분배 방식으로 실제 배출량보다 더 많은 양을 할당받은 기업들은 막대한 무상이익을 얻었는데, 이는 배출총량을 산정한 자료의 정확성이 낮았기 때문이었다. 과다한 할당의 또 다른 문제는 배출권 가격이 하락해 배출권 시장이 존재 의미를 상실할 소지가 있다는 것이다.
무상할당의 부작용을 개선하기 위해 제2기(2008~12)에는 제한적인 경매에 의한 복잡한 할당방식이 도입됐고, 제3기부터는 경매가 기본방식으로 설정됐다. 무상할당보다는 유상경매 방식이 탄소 배출 감축에 더 유리하지만, 국외로 공장을 이전하는 탄소 누출이 발생할 우려가 존재한다. 배출권 거래는 최대한 단순하고 투명한 방식으로 전개하는 것이 바람직하고, 산업의 특성과 경쟁력을 충분히 고려해서 총량과 할당 방식을 선택해야 한다.
오는 12월 멕시코에서 열릴 기후변화협약 당사자 총회 결과에 대한 대비도 필요하지만, 이미 설정된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를 충실히 이행하는 것이 우선이라고 할 수 있다. 온실가스 배출량 세계 9위인 한국이 의무감축국으로 지정되면 기업과 공공기관들은 배출권 거래제를 적극적으로 활용할 필요가 있으며, 현재 진행 중인 배출권 시범거래제에 참가해 충분한 경험을 쌓는 것도 좋은 전략이다. 또한 배출권 거래 관련 전문가를 집중적으로 육성해야 한다.
동북아 탄소시장과 연계하자
국내 및 세계 탄소시장의 급성장이 예상되므로 기업들은 이를 활용한 수익창출 모델 개발에 집중해야 한다. 2009년 현재 세계 탄소시장 규모는 1437억달러, 올해에는 1500억달러 이상으로 성장할 전망이다. 올해 세계 반도체 산업 매출 전망은 약 2900억달러. 탄소시장이 반도체시장의 절반 이상에 해당하는 규모로 성장하게 됨을 의미한다.
동북아 탄소시장에서 주도권을 확보하려면 한국의 배출권 거래소가 해외 거래소와 전략적 제휴 등으로 연계하는 것이 유리할 듯하다. 중국은 2008년 9월 유엔의 공인을 받은 탄소거래소를 베이징에 설립했고, 2008년 10월 시카고 기후거래소와 함께 톈진 기후거래소를 개설했다. 동북아 지역에서 중국 배출권 거래소의 성장은 국제기구와 해외 거래소의 연계 전략에 기반을 두고 있다.
CDM 사업 세계 1위이며 동시에 온실가스 배출 세계 1위인 중국의 배출권 수요와 공급을 유인하기 위해서는 거래소 연계가 필수이며, CDM 사업 세계 4위인 한국도 배출권 판매를 위한 국제 거래소에 참여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또한 인도, 싱가포르의 배출권 거래소도 해외 거래소와의 전략 제휴를 통해 국제 탄소시장과 연계되어 성장하고 있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