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8월호

워싱턴, 아프간 9년 전쟁 수렁에 빠지나

‘제2의 베트남’분수령 될 칸다하르 대공세 앞두고 사면초가

  • 이장훈│국제문제 애널리스트 truth21c@empal.com│

    입력2010-07-30 17: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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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스탠리 매크리스털 사령관의 ‘설화(舌禍) 사건’으로 촉발한 워싱턴 내부의 아프가니스탄 전쟁 논란이 점입가경으로 번지고 있다. 9·11테러 직후 알카에다를 소탕하겠다며 호기롭게 시작한 전쟁이 어느새 미국 역사상 가장 긴 전쟁으로 자리매김하면서 정가와 언론의 핫이슈로 떠오른 것.
    • 여기에 끊이지 않는 아프간 정부의 부패 추문과 파키스탄의 모호한 태도는 승부를 가를 칸다하르 대공세를 앞둔 미국의 발목을 붙든다. 매달 70억달러의 전비를 쏟아 붓고도 미국이 승리하지 못하는 이유는 과연 무엇인가.
    아프가니스탄 제2의 도시인 칸다하르는 기원전 4세기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해발 1000m의 고원에 세운 도시다. 칸다하르는 아프간 파슈툰족 말로 ‘알렉산드로스의 도시’라는 뜻이다. 고대부터 외세의 침략을 받아왔던 파슈툰족이 1748년 두라니라는 독자적인 왕국을 처음으로 세운 곳도 바로 칸다하르였다. 당시 파슈툰족은 부족장 아흐마드 샤를 국왕으로 선출하고 칸다하르를 수도로 정했다. 아흐마드는 25년간 재위하면서 영토 확장에 나서 파키스탄, 인도, 이란에 이르는 대제국을 건설했다.

    칸다하르는 80만여 명이 거주하는 아프간 남부의 중심지로 1994년 탈레반이 결성된 곳이기도 하다. 당시 학생 2만5000여 명이 물라 무하마드 오마르를 중심으로 무장 이슬람 정치단체인 탈레반을 만들었다. 이 때문에 칸다하르는 탈레반의 고향이자 정신적인 거점이라고 볼 수 있다. ‘물라’는 이슬람 학자나 성직자, 또는 지도자에 대한 경칭으로, 칸다하르 출신인 오마르는 소련 점령 기간에 무자헤딘(이슬람 전사) 지휘관으로 명성을 날렸다. 탈레반은 그를 ‘아미르 알 무미닌(무슬림의 사령관)’이라고 부른다. 오마르는 1996년 칸다하르의 모스크에 보관돼 있던 이슬람 창시자 무하마드의 망토를 꺼내 입었다고 한다. 이 망토를 입는 자는 가장 위대한 사령관이 된다는 전설이 있다.

    오마르는 현재 아프간과 접경인 파키스탄 발루치스탄주 퀘타에 은신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퀘타는 칸다하르에서 험준하기로 소문난 차만 고개를 넘어야 갈 수 있는 곳이다. 오마르는 이곳에서 탈레반 최고의사결정 기구인 ‘퀘타 슈라’를 만들고 칸다하르를 비롯한 아프간에서의 무장투쟁을 지휘하고 있다. 칸다하르는 또 탈레반의 자금줄인 아편과 헤로인의 집산지다. 탈레반은 양귀비 재배농가와 헤로인 밀매업자들로부터 정기적으로 상납을 받은 자금으로 무기를 사고 조직원 모집에도 적극 나서고 있다. 아프간은 전세계 아편의 90%를 생산하고 있다. 칸다하르가 미국이 그동안 벌여온 아프간전쟁의 최대 승부처가 될 것으로 전망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미국은 2001년 9·11테러 직후인 10월7일 ‘테러와의 전쟁’이라는 이름으로 아프간전쟁을 시작했다. 개전한 지 만 9년이 가까워오는 이 전쟁은 이미 미국 역사상 최장기 전쟁이다. 종전의 최장기 전쟁 기록은 1964년부터 1973년까지 103개월간 계속된 베트남전이었다.

    이처럼 오랜 기간 아프간전쟁을 해왔음에도 아직까지 승기를 잡지 못하자, 국제사회 일각에선 자칫하면 미국이 옛 소련처럼 아프간에서 패배한 채 철군하는 것 아니냐는 말도 나오고 있다. 소련은 1979년 12월24일 당시 친소(親蘇) 공산 정부를 지원하기 위해 아프간을 침공했다. 소련군은 최대 11만5000명에 달하는 병력을 아프간에 주둔시켰지만 이슬람 반군인 무자헤딘과의 치열한 공방전으로 피해가 늘어나면서 1만5000여 명이 전사했다. 소련군은 1989년 2월15일, 침공 9년 50일 만에 아프간에서 철수해야 했다.



    역사적으로 볼 때 소련군이 첫 패배자는 아니다. 대영제국은 1838년 제정 러시아의 남하정책을 막기 위해 2만명을 아프간으로 파견해 수도 카불을 점령하고 도스트 무하마드 국왕을 몰아낸 후 괴뢰정권을 수립했다. 하지만 식민 지배에 맞선 아프간 군대의 끈질긴 저항에 영국군은 1842년 카불에서 인도로 철수했다. 영국은 철군 도중 험준한 산악에 매복한 아프간 군대의 공격으로 병사 1만3000여 명이 몰살당하고 4000여 명이 얼어 죽었다.

    아프간은 이전에도 페르시아, 마케도니아, 몽골제국, 무굴제국 등 강대국들에 맞서왔지만 단 한 번도 순순히 지배당하지 않았다. 아프간이 ‘제국의 무덤’이라는 말을 들어온 것도 이 때문이다. 미국도 역대 제국의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해 총력을 기울이고 있지만, 전황은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쏟아져 나오는 ‘제2의 베트남전쟁’에 대한 우려도 이 때문이다. 미국은 현재 아프간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 칸다하르 대공세를 준비하고 있지만, 탈레반도 미군에 맞서 대대적인 전투를 준비하고 있다. 탈레반이 미군의 대공세를 막아낼 경우 전쟁에 지친 미군의 철수를 유도할 수 있다. ‘칸다하르 대전(大戰)’은 미군이나 탈레반 모두에게 명운이 걸린 승부인 셈이다.

    ‘하극상’은 의도한 실수?

    워싱턴, 아프간 9년 전쟁  수렁에 빠지나

    3월초 아프가니스탄을 방문한 로버트 게이츠 미 국방장관(가운데 등 보이는 사람)이 남부 칸다하르의 작전기지에서 미 육군 1대대 17보병 연대 병사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뜻하지 않은 사건이 아프간의 미군을 뒤흔든 것은 바로 이 칸다하르 대전이 목전에 다가온 시점이었다. 스탠리 매크리스털 아프간 주둔 미군 사령관이 격주간지 ‘롤링스톤’과 한 인터뷰에서 버락 오바마 대통령과 조 바이든 부통령을 비롯해 백악관 외교안보팀을 직설적으로 비판한 일이다. ‘롤링스톤’은 미국의 대표적인 음악잡지이지만 1970년대 베트남전쟁 때부터 종군기사와 정치, 시사 분야도 다루고 있다. ‘롤링스톤’은 ‘통제 불능의 장군’이란 제목의 기사를 통해 매크리스털 사령관과 참모들의 발언 내용을 다음과 같이 적나라하게 소개했다.

    ‘지난해 가을 오바마 대통령을 만나고 돌아온 매크리스털은 아프간 주둔군 증원계획을 두고 “팔리지도 않을 물건”이라고 말했다. 매크리스털의 한 참모는 “오바마 대통령이 첫 대면에서 매크리스털 사령관이 누군지도 잘 몰랐다”면서 “대통령과 사령관은 10분 정도 만나서 사진만 찍었을 뿐”이라고 전했다. 이 참모는 “아프간전쟁을 이끌어갈 사람이 왔는데 오바마는 별로 신경을 쓰지 않는 듯 보여 내 보스(매크리스털)는 적잖이 실망했다”고도 했다. 또한 매크리스털은 지난해 가을 바이든 부통령이 주장한 아프간 전략을 “근시안적인 것”이라고 비난했고, 바이든 부통령에 대해서 질문을 받자 “그가 누구냐?”고 반문하기도 했다.’

    기사가 공개되면서 파문이 커지자 오바마 대통령은 6월23일 매크리스털을 백악관으로 소환해 면담을 한 후 전격 경질했다. 사실상 해임한 것이다. 후임으로는 그의 상관인 데이비드 퍼트레이어스(57) 중부군 사령관이 임명됐다. 1951년 해리 트루먼 대통령과 더글러스 맥아더 유엔군 사령관이 6·25전쟁의 방향을 놓고 부딪쳐 맥아더가 해임된 이래 초유의 사건이었다. 오바마 대통령이 잡지 내용을 보고받고 경질하기까지 걸린 시간은 80시간이 되지 않는다. 오바마 대통령은 백악관 로즈가든에서 발표한 성명에서 “매크리스털 사령관이 민주주의의 핵심인 군에 대한 문민 통제를 훼손했다”고 못 박으면서 “경질 없이는 아프간전쟁 수행 노력과 목표달성이 힘들다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매크리스털이 이 같은 ‘하극상’을 저지른 이유는 무엇일까. 매크리스털은 대(對)테러전을 주요임무로 하는 합동특수전사령부(JSOC) 사령관을 역임한 미국 최고의 특수전 전문가다. 그가 지휘한 부대는 2003년 한 오두막에 은신해 있던 사담 후세인 전 이라크 대통령을 생포했고, 2005년 이라크의 알카에다를 이끌던 아부 무사브 알 자르카위를 사살하는 전공을 올린 바 있다. 오바마 대통령은 지난해 5월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임명한 데이비드 매키어넌 아프간 사령관을 전격 경질하고 후임으로 매크리스털을 임명했다. 특히 오바마 대통령은 바이든 부통령 등의 반대를 무릅쓰고 매크리스털의 강력한 요청을 수용해 병력 3만명을 아프간에 증파해주었다. 매크리스털은 부임 이후 민간인 피해 최소화, 특수부대를 투입한 알카에다와 탈레반 지도부 제거, 아프간 군경 훈련 강화 등의 전략을 추진해왔다.

    자신을 전적으로 신임했던 오바마 대통령에게 그가 반기를 든 것은 아프간전쟁에서 승리할 자신이 없었기 때문으로 추정된다. 6월27일 영국의 일간지 ‘인디펜던스’는 단독입수한 군사기밀 문서를 인용해 매크리스털이 경질되기 직전 아프간 전략에 대해 신랄한 비판을 한 사실이 있다고 보도했다. 기밀문서에 따르면 매크리스털은 지난 6월 NATO 동맹국과 국제안보지원군(ISAF) 참가국 국방장관들에게 아프간 전황을 브리핑하면서 앞으로 6개월간 전황의 진전을 기대하지 말라고 말했다는 것이다.

    매크리스털은 당시 아프간 정부의 부패와 치안 상황이 우려된다면서 정부군 훈련을 담당할 병력이 부족하고, 신뢰할 수 없는 아프간과 파키스탄 정부 등이 아프간전쟁의 승리를 가로막는 위험요소라고 실토했다. 이렇듯 매월 아프간에 70억달러의 전쟁비용을 쏟아 붓는데도 전황이 개선되지 않다보니 매크리스털은 자칫하면 패장이라는 불명예를 짊어질 가능성이 높다는 점을 우려했다는 게 지배적인 관측이다. 매크리스털의 작전참모인 빌 메이빌 소장도 문제의 ‘롤링스톤’ 인터뷰에서 “아프간전쟁은 제2의 베트남전이 될 것”이라며 “이 전쟁은 패배의 책임에 대한 논쟁 속에 막을 내릴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대통령 형제들의 부패 추문

    문제는 매크리스털의 아프간전쟁에 대한 평가가 상당부분 정확해 보인다는 점이다. 미국이 고전하는 가장 큰 이유는 아프간 국민의 민심을 얻지 못하는 데 있다. 이러한 민심이반의 근본적인 원인은 하미드 카르자이 대통령이 이끄는 아프간 정부의 부패 문제. 6월29일 미국의 경제일간지 ‘월스트리트저널’은 지난 3년간 아프간 정부의 부패한 관리들이 미국에서 받은 지원금 등을 포함해 3년간 31억8000만달러를 해외로 빼돌렸다고 보도했다. 아프간의 부패상을 조사해온 비영리단체 IWA(Inte-grity Watch Afghanistan)의 7월8일자 보고서를 보면, 아프간 정부의 강력한 부패척결 약속에도 불구하고 실제 부패상황은 날로 악화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IWA는 아프간 성인 6498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전체가구 중 4분의 1 이상이 자녀의 취학과 의료 서비스, 비자 등 신분증 발급과 같은 공적인 업무를 위해 뇌물을 건넨 적이 있다고 답했다고 밝혔다. 응답자 대부분은 아프간 정부의 만연한 부패가 탈레반을 키우는 암세포와 같다고 지적했다. 응답자들이 밝힌 평균 뇌물액수는 회당 180달러로, 아프간 샐러리맨이 짧게는 한 달, 길게는 수개월을 일해야 받을 수 있는 금액이다.

    아프간은 말단 공무원부터 장관, 심지어 대통령의 친인척까지 거대한 부패의 먹이사슬로 얽혀 있는 말 그대로 ‘부패공화국’이다. 국제투명성기구(TI)에 따르면 지난해 아프간의 부패지수 순위는 179위로 소말리아에 이어 세계 최하위에서 두 번째. 그나마 2008년에는 최하위였다가 한 단계 상승한 것이다.

    예를 들어 파키스탄 접경지역인 카이버패스에서 카불까지 이어진 고속도로에는 경찰 검문소가 20개 있다. 이 검문소마다 100~1000아프가니(2~20달러)를 내지 않으면 짐을 실은 트럭들은 통과할 수 없다. 검문경찰들이 고속도로에서 ‘통행세’를 챙기고 있는 것이다. 뇌물을 받은 단속경찰은 다시 이를 경찰서장을 비롯한 상사들에게 상납한다. 부패한 경찰들은 탈레반과도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탈레반이 고속도로를 지나는 트럭들을 위협하면 경찰이 이들을 적당히 격퇴하고 트럭 운전기사나 화주들로부터 호위비용을 받은 뒤 다시 탈레반과 나눠 갖는 식이다.

    각국이 아프간에 지원하는 재건기금도 유용되고 있다. 아프간 정부군이나 경찰들은 존재하지 않는 사람의 이름을 올려 월급을 타내어 가로채는가 하면 필요한 수량보다 훨씬 많은 전투 장비를 신청한 다음 이를 탈레반에게 팔기도 한다.

    카르자이 대통령은 부패를 척결하겠다고 수차 다짐해왔지만 자신의 친인척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하고 있다. 카르자이의 형 마무드 카르자이는 아프간 상공회의소 부회장, 최대은행인 카불은행의 이사, 도요타 자동차의 독점수입·판매상 같은 직함을 갖고 있으며 석탄 탄광을 네 곳이나 소유하고 있다.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작은 식당을 하던 마무드가 엄청난 재산을 축적하게 된 것은 당연히 동생 덕분이다. 마무드는 또한 칸다하르의 대지 4047만㎡를 사실상 공짜로 넘겨받아 개발을 맡았고 각종 공사 이권 개입과 인사청탁을 통해 전후 재건기금 상당부분을 유용해 부자가 됐다. 카르자이 대통령의 동생 아메드 왈리 카르자이는 칸다하르주 의회 의장이다. ‘마약왕’ ‘작은 대통령’ ‘남부의 왕’이라고도 불리는 그는 마약을 밀매한 혐의로 여러 번 기소된 바 있다.

    이렇듯 만연한 부패와 빈곤에 찌든 아프간 국민의 민심은 도리어 탈레반에 쏠리고 있다. 데이비드 리처드 전 아프간 주둔 NATO군 사령관은 아프간 국민의 70%가 심정적으로 탈레반 노선에 동조하고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게다가 탈레반은 민심을 얻기 위해 부패한 관리와 경찰 등을 노리는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지난 4월 부패로 악명 높은 아지줄라 야르말 칸다하르 부시장을 암살한 것이 대표적이다. 아프간 정부의 부패에 환멸을 느끼는 국민의 반감을 이용하는 것이다.

    파키스탄의 배신?

    또 한 가지 주목할 점은 최근 아프간 정부와 파키스탄 정부가 ‘미군 철수 이후의 아프간’에 대해 전략적 협력을 모색하고 있다는 것이다. 6월27일 아랍권 위성방송인 ‘알자지라’는 정통한 소식통을 인용해 알카에다와 연계된 탈레반 분파인 하카니네트워크의 수장 시라주딘 하카니가 카불에서 카르자이 대통령과 대면했다고 보도했다. 이 자리에는 아프간 정부와 탈레반의 중재 역을 맡고 있는 아시파크 페르베즈 카야니 파키스탄 육군참모총장과 아메드 수자 파샤 파키스탄 정보부(ISI) 국장도 동석했다는 소식이다.

    하카니네트워크는 과거 대(對)소련 항쟁의 영웅인 무자헤딘 지도자 잘라루딘 하카니가 조직한 탈레반 분파로, 지금은 그의 아들 시라주딘이 주도하고 있다. 파키스탄 북부 와지리스탄에 본부를 둔 병력 규모 4000~1만2000명 정도의 이 무장세력은 알카에다와의 연계가 매우 강력하다. 미 국무부가 지난해 3월 시라주딘 체포에 500만달러의 현상금을 내걸었을 정도.

    그러나 파키스탄 정부는 미국의 아프간전쟁에 협조하면서도 자국 영토에 거점을 둔 이 무장세력을 토벌하라는 요청을 외면해왔다. 이 같은 파키스탄 정부의 행보는 미국의 아프간전쟁이 실패할 것이라는 정세판단에서 출발한 것으로 보인다. 자국과 연계된 세력을 일종의 교두보로 아프간 정부에 심으려는 포석으로 분석할 수 있다. 모임에 동석했다는 카야니 장군과 파샤 정보국장은 올 들어 여러 번 카불과 이슬라마바드를 오가면서 미국이 아프간전쟁에서 승리할 수 없다는 판단을 카르자이 대통령과 공유해온 것으로 보인다.

    카르자이 대통령은 지난 6월초 암룰라 살레 정보국장과 하니프 아트마르 내무부 장관을 전격 경질한 바 있다. 이들은 모두 하카니네트워크와의 협력을 반대해온 친미 성향의 인물들. 카르자이 대통령이 탈레반과 끈을 대고 있는 파키스탄의 중재로 미국을 배제한 평화협상을 은밀히 진행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뒤통수를 맞은 형국인 오바마 정부는 양국 정부의 이러한 움직임에 강한 불쾌감을 표시했다. 리언 파네타 미국 중앙정보국(CIA) 국장은 6월27일 ABC방송과의 회견에서 파키스탄 군부가 하카니네트워크와 아프간 정부 사이의 타협을 주선하고 있다는 소식에 대해 우려를 나타냈다. 파네타 국장은 “하카니네트워크가 무기를 버리고, 알카에다와 단절하고, 아프간 사회의 일부가 되겠다는 명백한 증거가 없다”고 밝혔다.

    파키스탄은 과거에도 탈레반이 아프간에서 정권을 차지할 수 있도록 후원해왔다. 특히 파키스탄 정보부는 탈레반과 지금까지도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탈레반 최고의사결정기구인 퀘타 슈라에도 참여하는 등 조직적으로 개입하고 있다는 말까지 있다. 기본적으로 미군 철수 이후 아프간에 대해 자국의 영향력을 행사하기 위해서는 탈레반과의 관계가 매우 중요하다는 것이 파키스탄 측의 시각이기 때문이다. 물론 이는 적대적 관계인 인도를 견제하기 위한 전략의 연장선상에 있다.

    파키스탄은 칸다하르를 중심으로 하는 아프간 남부를 사실상 자국의 통제하에 두는 것이 전략적으로 유리하고 판단해왔다. 그동안 밀접한 관계를 맺어온 탈레반이 자국과의 접경지역을 통치하도록 만든다는 것이다. 이 지역에 대대로 살아온 파슈툰족은 현재 아프간에서 가장 인구가 많은 종족으로 전체 인구의 42%인 1400만명이나 되는데, 파키스탄의 파슈툰족은 그 두 배인 2800만명(전체 인구의 15%)에 달한다. 오마르 등 탈레반 지도부와 알카에다의 잔존세력은 국경을 넘어 파키스탄의 파슈툰 지역으로 피신했다. 현재 탈레반의 아프간 공격은 파키스탄의 파슈툰 지역을 발판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칸다하르 대공세가 임박한 상황에서 미국은 파키스탄 정부의 협력이 절실하게 필요하지만, 파키스탄은 이미 미군 철수 이후의 아프간을 생각하고 있다. 파키스탄은 2001년 이래 미국으로부터 116억달러에 달하는 안보관련 지원과 60억달러의 경제지원을 받아왔고, 앞으로 5년간 75억달러의 지원 약속도 받아놓은 상태다. 이처럼 실속을 챙긴 파키스탄으로서는 자국에 불리할 수도 있는 미국의 칸다하르 대공세에 적극 협력할 필요가 별로 없는 셈이다.

    2012년 미국 대선과 吳越同舟

    이렇듯 아프간전쟁을 둘러싼 갖가지 상황은 미국에 매우 불리하게 전개되고 있다. 한마디로 승리의 가능성이 높아 보이지 않는 것이다. 특히 오바마 정부의 가장 큰 딜레마는 ‘승리’와 ‘조기 철군’이라는 과제가 결코 양립할 수 없다는 데 있다. 당초 오바마 대통령은 아프간 병력 증파 결정을 내리면서 내년 7월부터 병력철수를 시작하되 철군 속도와 규모는 현지 전황에 따라 결정될 것이라고 언급했다. 철군을 시작하는 전제조건은 바로 전황의 호전이라는 것. 9·11 테러의 악몽을 겪은 미국의 어떤 대통령도 탈레반이 아프간을 다시 통치하는 것을 원치 않는다. 또한 파키스탄 북서부에 근거지를 둔 알카에다를 완전히 소탕하지 않은 채 철군을 단행할 수도 없다. 이 때문에 오바마 대통령으로서는 아프간전쟁에서 어느 정도 성과를 거두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지만, 문제는 성과를 거두기 위해선 시간이 필요하다는 사실이다.

    철군을 연기해야 한다는 주장이 끊임없이 흘러나오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헨리 키신저 전 국무장관이 내년 7월부터 시작될 예정인 철군을 두고 “실패의 메커니즘을 만드는 것”이라고 경고한 것도 같은 맥락이라고 볼 수 있다. 공화당 대선후보였던 존 매케인 상원의원 역시 “아프간전쟁의 목적이 달성된 이후의 철군 일정은 전적으로 지지하지만, 성공하기 전의 철군 일정은 지지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퍼트레이어스 신임 사령관도 아프간 전황이 좋아지지 않으면 철군 일정을 연기할 것을 대통령에게 제안할 수 있다고 시사한 바 있다. 6월29일 상원 군사위원회 인준 청문회에서 그는 “올해 말 아프간 전황에 대한 평가작업이 이뤄질 예정이며 이 결과를 토대로 어떤 변경이나 정교한 조정작업, 혹은 중대한 변화를 결정할 것”이라고 밝혔다. 오바마 대통령도 조기 철군 회의론이 불거지자 한발 뒤로 물러서는 입장을 나타냈다. 한 이탈리아 일간지와의 인터뷰에서 “미국은 아프간 주둔군 증원전략을 올해 말 재검토할 것”이라고 밝힌 일이 대표적이다.

    이렇게 놓고 보면 결국 조기철군 여부의 상당부분은 퍼트레이어스 사령관의 손에 달렸다. 퍼트레이어스는 카불 국제안보지원군(ISAF) 본부에서 열린 취임식에서 “아프간을 알카에다의 피난처로 내주지 않겠다”며 승전 의지를 밝혔다. 퍼트레이어스는 오바마 대통령이 제시한 아프간 주둔군 철군개시 시점까지 남은 1년간 아프간 전선을 재정비하고, 아프간 정부의 자체 치안능력을 빠른 시간 안에 배양해 철군을 위한 발판을 마련해야 한다. 당장은 눈앞에 다가온 칸다하르 대공세에서 승리해야 하는 것은 물론이다.

    퍼트레이어스는 부시 행정부 때인 2007년 1월부터 2008년 9월까지 이라크주둔 미군 사령관을 지내는 동안 이른바 ‘반군 진압(counter-insurgency· COIN)’이라는 군사전략을 입안해 이라크 상황을 안정시켰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이후 이라크와 아프간을 관할하는 중부군 사령관으로 승진한 그는 경질된 매크리스털과 함께 아프간전쟁에서도 COIN 전략을 추진해왔다. COIN 전략의 핵심은 인구밀집 지역에서 탈레반을 몰아내 주민들과 연결고리를 끊고, 주민들에게 치안확보와 경제지원 등 아프간 정부의 통치에 따른 혜택을 주는 것이다. 특히 퍼트레이어스는 이 전략의 성공을 위해 대규모 병력증강(surge)이 필요하다고 주장해왔다.

    이라크전의 영웅으로 인기가 높은 퍼트레이어스는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이후 단 한명도 없었던 ‘군인 출신 대통령’을 꿈꾸는 장군으로, 2012년 차기 대선의 공화당 후보 중 한 명으로 자천타천 거론되고 있다. 아프간전쟁의 승패 여부는 퍼트레이어스의 향후 대권행보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된다. 2012년 대선에서 각각 민주당과 공화당을 대표해 격돌할 가능성이 높은 오바마와 퍼트레이어스가 아프간이라는 한 배에 승선한 셈이다. 아프간전쟁이 향후 어떻게 전개될지는 예측하기 어렵지만, 앞으로의 1년이 아프간전쟁의 승패와 2012년 미국 대선의 향방을 가를 주요 분수령이 될 것이라는 점만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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