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찰서장 출신…한나라 텃밭서 무소속 당선
- 경찰 욕먹는 것도 ‘정치’ 때문…민생정치 하러 왔다
- 다른 지방공단 황량한데 경산은 대박 조짐
- 수출 300억달러 글로벌 기업도시 만든다
강속구를 던지는 시장
야구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경산시는 삼성 라이온즈가 운영하는 야구 연습장인 볼 파크가 있는 곳으로 기억된다. 프로야구 스토브리그 기간 중 TV 스포츠뉴스 시간에 경산 볼 파크는 자주 소개된다. 최병국 경산시장도 야구광으로, 그는 ‘강속구를 던지는 시장’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이 고장의 야구 명문인 대구상고에서 선수생활을 했으며 ‘강타자’ 장효조와는 함께 운동한 고교 동기로 지금도 자주 만난다고 한다. 최 시장은 집무실에서 야구공을 손에 쥐고 투구 자세를 잡아 보이기도 했다.
▼ 포지션이 투수였나 보죠?
“대구 대건중학교 야구부에서 좌완 투수였는데 공이 굉장히 빨랐죠. 커브 등 변화구도 좋아서 대구 최고의 투수가 될 것이라는 촉망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막상 시즌이 시작되어 마운드에 서보니 컨트롤이 되지 않아 공이 자꾸만 타자 뒤로 갔어요. 결국 강판당하고 중견수 겸 타자로 전환했어요.”
▼ 대구상고에 진학해서도 쭉 야구를 했나요?
“1학년 말에 문제가 생겼어요. 고교야구는 인기가 좋아 경기가 관중이 많이 찾는 일요일에 자주 열렸죠. 전국대회는 서울에서 주로 열리고요. 그런데 우리 가족이 다니던 시온교회는 ‘일요일에 절대 돈을 쓰지 말라’고 했고 독실한 교인이던 아버지는 ‘교회의 가르침을 어겨서는 안 된다’고 했어요. 일요일에 교통비를 안 쓰고 서울까지 갈 방법이 없잖아요. 결국 좋아하는 야구를 관둬야 했죠.”
▼ 교리를 융통성 있게 적용할 수 있지 않았을까요?
“아버지의 말씀이 법이었고 어길 수 없었어요. 나중에 서울대 대학원에 진학해 야구동아리에 가입했는데 아마추어 선수들을 삼진으로 마구 잡아내며 실력을 뽐냈죠.”
▼ 그 교회를 원망했겠네요?
“도움이 된 점도 있었어요. 시온교회는 ‘어떠한 경우에도 욕설을 해선 안 된다’고 매우 엄하게 가르쳤어요. 그때 몸에 밴 습관 탓으로 커서도 상스러운 말을 한 적이 없어요.”
“청와대 실세 청탁 거절하자…”
최 시장은 자서전 ‘맑은 물에 고기가 모인다’에서 ‘새로운 도전을 즐기는 스타일’이라고 자신을 평가한다. 그는 야구를 그만둔 뒤로 독하게 공부해 검정고시로 대학(영남대)에 진학하고 행정고시에 합격한다. 행정공무원 대신 경찰을 선택한 그는 ‘최연소 경찰서장’ 등으로 승승장구하더니 41세에 “정치를 하려면 지금 해야 한다”며 돌연 사표를 던진다. 이후 약 8년을 낙천·낙선하며 무관(無冠)으로 지낸다. 그는 2005년 4월 보궐선거에서 마침내 경산시장이 되어 2006년 6월 지방선거에서 재선에 성공하지만 올해 6·2지방선거를 앞두고 한나라당 공천을 받지 못한다. 그러자 그는 “공천이 공명정대하지 못하다”면서 탈당해 무소속으로 출마한다. 결과는 그의 낙승. 이로써 시장 3선 연임에 성공했다.
최병국 경산시장이 야구공을 던지는 포즈를 취하고 있다.
“경찰은 24시간 불 켜놓고 근무하고 도둑, 강도, 살인범 잡는 데 자기 몸을 내던지잖아요. ‘이렇게 열심히 일하는 데도 칭찬을 듣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일까’라는 의문이 들었어요. 고시에 합격하면 직접 경찰이 되어 답을 찾아봐야겠다고 생각했어요.”
▼ 경찰이 열심히 일하고도 칭찬받지 못하는, 그 해답이 뭐던가요?
“막상 경찰에 들어와 일해보니 경정 시절까진 모르겠더라고요. 그런데 총경이 되고 나선 알게 됐어요.”
▼ 경정과 총경의 차이가 뭐 길래.
“총경이 되면 정치인과 접하게 되는데 그때서야 경찰이 욕먹는 이유가 ‘정치’ 때문이라는 걸 깨닫게 된 거죠. 정치가 선진화하지 못하고 개인의 사리사욕으로 움직이는 게 보이더라고요. 경찰을 정치적으로 이용해요.”
▼ 예를 들면?
“구속시켜야 되는 사안도 정치인이 불구속하라고 하면 불구속으로 되고 구속이 안 될 사안도 정치인이 구속시키라고 하면 끼워 맞춰서 구속시키죠. 경찰이 공정하게 법을 집행하면 정치인의 인기도 덩달아 올라갈 텐데 정치인이 이걸 몰라요. 거꾸로 경찰을 자기마음대로 부리려 하죠. 법 집행에 주관과 가치관이 개입되는 게 항상 문제예요.”
최 시장은 서울 노량진경찰서장으로 근무할 때 일화를 이야기한다. 밤 12시 이후 유흥업소 영업이 제한되던 당시, 단속 결과 신흥 유흥가이던 신대방동 일대 여러 퇴폐 유흥업소 중 유독 2~3개 업소는 밤 1시가 넘어섰음에도 수십명의 손님으로 북적였다고 한다. 그는 업주들에 대해 구속수사를 지시했는데 이후 청와대로부터 “불구속 조치할 수 없느냐”는 청탁이 들어왔다고 한다. 청탁자는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는 J씨. 청탁을 거절하자 아니나 다를까 그 이후로 대하는 태도가 냉담하기 짝이 없었다는 게 최 시장의 설명이다. 그는 “정치인과 연결되기만 하면 경찰을 우습게 본다”고 했다.
“경찰청장 된들 뭐하나”
▼ 경찰이 욕먹는 이유를 찾은 게 경찰을 떠난 계기가 된 건가요?
“‘정치가 낙후해 경찰을 이용하는데 경찰총수를 해본들 뭐하나’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경찰총수가 될 필요도 없고 더 이상 근무할 필요도 없다고 생각했죠. 사리사욕의 정치 대신 내 고향에서 진짜 풀뿌리 민주주의를 하고 싶은 생각에 사표 쓰고 나온 거죠. 저를 아끼는 윗분들이 ‘조금만 더 있으면 경무관으로 승진하는데 정치를 하려면 경무관 타이틀로 하는 게 어떻겠느냐’고 만류했지만 원래 생각해둔 대로 1997년 1월20일 생일에 다시 태어나는 기분으로 나왔어요.”
▼ 2000년 총선에 출마해 낙선했죠?
“경상도는 무조건 한나라당 공천을 받아야 당선되는 곳이잖아요. 그런데 공천을 그냥 주나요? 나는 무작정 사표 내고 나온 데다 정치권에 ‘빽’도 없고 돈도 없으니 될 리가 없죠. 한 8년 정도 그냥 논밭을 헤매고 다녔어요.”
▼ 2005년 시장 보궐선거, 2006년 시장선거 땐 한나라당 공천을 받아 당선했는데 2010년 지방선거에선 공천을 받지 못했네요.
“비리혐의로 실형 선고받은 분을 후보로 올리자 당 지도부에서 바꾸라고 하는 소동이 났어요. 공천과정이 객관성, 공정성을 잃었다고 봐요. 한나라당 후보와 무소속 현직 시장 중 누구를 택할 것인지 시민들에게 직접 묻겠다는 차원에서 탈당하고 출마했습니다.”
최병국 경산시장은 7월 1일 취임식을 생략하고 경산1산업단지의 한 자동차 부품업체를 방문했다.
“무소속으로 선거를 치르는 게 이렇게 어려운 줄 몰랐어요. 자금, 조직, 모든 면에서 열세였죠. 선거기간 한나라당 소속 수십명의 국회의원과 도지사 후보가 대거 경산에 와서 무소속 시장이 당선되면 마치 경산이 망할 것처럼 지원 유세를 펴고 내게 맹공을 퍼부었습니다. 나는 ‘사람 나고 당 났지, 당 나고 사람 난 거 아니다’라고 했어요. ‘사즉생, 생즉사(死則生 生則死·죽으려 하면 살고 살려 하면 죽는다)’의 각오로 뛰었죠. 투표 결과 한나라당 후보에 7.2% 차이(6660표 차이)로 이겼어요.”
▼ 어렵게 당선됐으니 의미도 남다르겠네요?
“특정 정당이 공천하면 무조건 당선되는 풍토는 정치발전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아요. 이런 측면에서 경산 시민은 성숙한 민주시민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시의원선거에서도 진보신당, 무소속 등 비(非)한나라당 후보가 6명이나 당선됐어요. 전례가 없던 일이죠. 내가 한나라당 공천받아 됐으면 이렇게 인터뷰하러 오겠어요?”
▼ 지금은 한나라당을 어떻게 평가하나요?
“한나라당은 보수의 가치를 존중하는 정당입니다. 보수에겐 자기희생, 정의 실현, 이런 게 필요해요. 나의 가치와 일치한다고 판단해 한나라당과 함께해온 겁니다. 정치적 고향이나 마찬가지죠. 그러나 불행하게도 10년 야당 끝에 정권을 잡은 한나라당은 국민의 마음을 헤아리는 데 실패하고 있다고 봅니다. 너무 자만한 거죠. 한나라당이 따끔한 경고를 받은 건데 하루빨리 초심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봐요.”
지방자치의 가치는 주민 대표와 주민들이 스스로 합의를 도출해 도시의 미래를 결정해나가는 데 있다. 그러기 위해선 신뢰와 공유가 중요하다. 경산시는 국민권익위원회의 공공기관 청렴도 조사에서 2006년엔 최하위 수준이었으나 2009년엔 전국 2위로 올라섰다. 최 시장은 “여론 수렴 결과 경산시민이 원하는 도시 발전의 방향은 ‘교육도시’‘기업도시’로 나타나고 있다”면서 “시는 시민의 이러한 요구를 수렴해 현실화되도록 노력하고 있다”고 했다.
그가 시장으로서 처음 업무를 시작할 무렵 경산시의 가장 큰 문제는 초·중·고교생의 역외유출이었다. 경산은 학력이 뛰어나 ‘대구의 강남구’로 불리는 대구광역시 수성구와 인접해 있는데 경산시내 학생들의 수성구 전입이 극성이었다고 한다. “청·장년 인구 감소, 중산층 축소, 지역경제 침체, 위성도시화를 초래하는 위기였다”는 게 시 당국의 설명. 최 시장은 “취임 초부터 이 문제 해결을 시정의 최우선 과제로 삼았다”고 말했다.
▼ 학생들의 역외유출 규모가 어느 정도였나요.
“24만 인구의 도시에서 매년 2000명 이상의 학생이 빠져나가니 심각한 상태였죠. 그런데 사실 경산은 옛날부터 학문을 숭상하던 곳이거든요. 삼국유사를 쓴 일연, 이두 문자를 창제한 설총, 불교를 대중화한 원효가 이 지역 출신이죠. 또한 전국 기초단체 중에 경산처럼 12개 대학이 몰려 있는 데가 거의 없어요. 시내 초·중·고교의 경쟁력이 높아지고 대학이 집적화되어 발전하면 경산이 국내 유수의 교육도시가 될 수 있다고 봤어요.”
교육혁명 그리고 기업유치
▼ 어떠한 노력을 했나요?
“교육경비지원조례를 별도로 만들어 시내 57개 공·사립 초·중·고교의 교육환경 개선에 매년 40억~50억원을 투입해왔어요. 서울 같은 대도시에선 이 정도 예산이 아무것도 아니겠지만 경산은 연간 예산이 4900억원대(2009년)로 인건비 등 고정 지출을 빼면 사업에 쓸 수 있는 실제 가용예산이 많지 않은 편이죠. 연간 40억~50억원을 학교에만 지원하기로 한 건 결단이 필요한 일이었습니다.”
▼ 효과는 어떠했다고 보나요?
“방과 후 수업을 지원하고 교육 기자재를 구입해주고 학교 정보화를 앞당기고 급식의 질을 개선하고 체육관을 건립해주었어요. 경산은 도농복합형 도시인데 통학거리가 먼 학교엔 통학 버스 운영을 도와주었죠. 장학재단을 설립해 가정형편이 어려워 공부를 못하는 학생이 나오지 않도록 했습니다. 올해 장학재단에 100억원이 모입니다. 교육여건이 획기적으로 개선되면서 공교육에 대한 학생과 학부모의 만족도가 높아졌다고 봐요. 또한 특수목적고를 유치해 경산과학고등학교가 개교했고 기존 학교들 사이에서도 경쟁이 일어나면서 학업성적이 뛰어난 학교들이 생겨나고 있어요. 과거 경산시내 고교에서 수능시험점수 1.2% 내 명문대 진학자는 20여 명이었는데 2010학년도엔 52명으로 늘었어요. 이에 따라 초·중·고교생의 연간 유출은 2000여 명에서 500명 수준으로 4분의 1로 줄었습니다. 학교에 대한 지원이 상당히 긍정적인 효과를 내고 있다고 평가하고 있어요.”
최 시장은 학교 교육의 경쟁력을 높이는 데에 대한 투자는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확대할 계획이라고 한다. 교육 혁명은 이 도시의 또 다른 목표인 글로벌 기업도시로의 성장과 직결된다고 보기 때문. 국내외 유수 기업과 그 기업에 종사하는 중산층 임직원은 거주조건으로 ‘자녀 교육문제’를 중시하는 경향이므로 기업 유치를 위해선 학교 교육의 질을 끌어올려야 한다는 설명이다.
기업인들은 “경산은 내륙임에도 입지여건이 나쁘지 않은 편”이라고 말한다. 이들에 따르면 경산의 경쟁력 중 하나는 수도권 등 다른 지역에 비해 땅값이 비교적 저렴하면서도 수출입 항구나 거대 인력·소비시장으로 바로 연결되는 사통팔달의 교통망을 갖추고 있다는 점이다. 세 개의 고속도로, 두 개의 철도, 수많은 국도·지방도가 경산을 지난다. 경산1산업단지의 한 입주업체 관계자는 “진량읍 산업단지에서 생산된 상품은 차로 수분 거리인 경부고속도로 경산IC를 거쳐 부산항까지 한 시간 내에 도달한다”고 했다. 또한 경산은 대구 등 대도시 및 여러 대학이 인접해 노동력을 확보하기에도 용이한 편이라고 한다. 2007년 6월 착공한 대구 지하철 2호선 경산 연장 노선이 개통하면 그 효과는 더 커진다.
경산에는 1700여 개 기업체가 입주해 있는데 최 시장은 “‘기업이 없는 도시는 황무지에 불과하다’는 게 내 지론”이라고 말한다. 그는 “산업단지를 지속적으로 확대해 기업이 몰려들게 하겠다. 이를 통해 경산은 2015년 수출 100억달러, 2030년 수출 300억달러를 달성하는 글로벌 기업도시로 성장할 것”이라고 했다.
“폭발적으로 성장할 것”
▼ 전국 각지의 상당수 지방공단이 분양이나 입주가 안돼 허허벌판으로 방치되고 있는데 그렇게 자신하는 근거는….
“경산은 예외죠. 진량읍 경산IC 일대는 교통망 등 사회 인프라가 매우 뛰어나 앞으로 수출단지로서 폭발적으로 성장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경산1산업단지 157만7413㎡는 이미 포화상태에 이르렀어요. 그 옆으로 3산업단지 151만1248㎡를 최근 준공했는데 절찬리에 분양이 완료되어 기업들이 속속 들어오고 있습니다. 이번 내 임기 내에 1·3단지 인근에 3산업단지의 1.7배에 달하는 4산업단지를 새로 조성할 예정입니다. 입주하는 기업 종사자 가족들을 위한 주거단지도 앞으로 만들어나갈 거고요. 인근에 조성되는 학원연구단지와의 시너지효과도 기대됩니다. 이런 예상하에서 수출 100억달러, 300억달러 로드맵을 그리고 있는 거죠. 수출이라는 게 기하급수적으로 늘거든요. 반면 수십 분 떨어진 다른 도시의 공단은 지금도 분양률이 10% 정도에 불과합니다. 시와 시민이 옳은 결정을 내려 치밀하게 준비해왔는지 여부에 따라 도시 간 격차는 더 벌어질 수 있다고 봐요. 우리 시는 반드시 목표를 실현시켜 시민들에게 좋은 일자리를 더 많이 제공할 겁니다.”
▼ 시 당국은 기업 유치를 위해 어떠한 노력을 하나요?
“공무원이 열의가 있어야 해요. 시 관할 인허가 절차를 대폭 간소화했습니다. 이어 6급 이상 공무원 한 명과 기업체 한 곳을 1대1로 연결시켜 이 공무원이 해당 기업을 전폭적으로 지원하도록 하는 1대1 기업후견인제도를 시행하고 있어요. 투자유치촉진을 위한 조례를 만들어 공무원이든 일반 시민이든 좋은 기업을 유치해 오면 포상금을 지급하고 있습니다. 기업에 대해서도 해외시장 개척을 지원하고 있어요.”
2007년 6월 4일 대구지하철 2호선 경산연장 기공식.
“시가 유치한 기업이 120여 개에 달합니다. 과거에는 경산 소재 기업이 섬유업체 위주였는데 이제는 섬유업종의 비중은 20%로 내려가고 대신 첨단기술업종이 많이 들어오고 있어요. 산업구조가 긍정적인 방향으로 개편되고 있는 거죠.”
경산시의 글로벌 기업도시 계획은 정부와 광역단체로부터 화답을 받고 있다고 한다. 이명박 대통령이 3월5일 “대구R·D특구를 지정하는 행정적 준비작업에 착수하라”고 지시하자 경북도는 3월30일 “경산시의 진량 단지 일대 3036만5000㎡와 영남대~대구대 일원 경제자유구역을 대구R·D특구에 포함시키는 방안을 추진하겠다”고 발표했다. 한국산업단지공단은 5월3일 경산 진량 단지에 대해 ‘글로벌 경쟁력을 갖는 스마트부품산업 플라자’로 구축하겠다는 내용의 대구경북 광역클러스터 비전 선포식을 열었다.
지방공단 상당수가 적체되어 있고 지방의 주택가격 하락이 사회문제가 되는 가운데 경산에선 정반대의 일이 벌어져 뉴스가 되기도 한다. 대구에서 발행되는 ‘매일신문’은 “경산 진량 3산업단지 100% 분양됐다”(3월25일), “경기침체로 전반적으로 주택가격이 떨어지고 있지만 신흥 공업단지로 각광받는 진량과 배후 베드타운인 하양의 주택가격은 오르고 있다”(5월6일)고 보도했다.
수험생을 위한 기도 장소로 유명한 팔공산 갓바위는 경산시의 대표적 관광자원이다. 경산시 관계자는 “전국에서 연간 1200만명이 찾는다”고 했다. 시 자료에 따르면 경산은 북쪽으로 팔공산, 서쪽으로 성암산, 남쪽으로 용각산, 동쪽으로 반룡산 등이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는 대구분지의 동편 끝자락 평원으로 경관이 수려하다. 호텔, 골프장, 온천, 테마공원, 박물관, 사찰, 대학가, 한우 요리 등의 관광자원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경산은 신라에 합병되기 전 ‘압독국’이라는 나라의 근거지로, 이 나라 국왕의 고분들이 남아 있다고 한다. 시는 400억여 원을 들여 역사문화공원을 조성할 계획이다. 최 시장은 “많은 관광객을 끌어들일 만한 매력적인 관광 상품을 개발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했다.
“MB 지지했다고 물고 늘어져”
정치·행정개혁과 관련 그는 세수(稅收)의 지방이전이 핵심 의제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자립도를 높여 지방자치를 제대로 구현할 수 있는 확실한 방법은 국세 중 상당부분을 지방세로 돌려주는 것”이라고 했다. 이어 “정부가 틀어쥐고 있을 건 다 틀어쥐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 왜 지방자치단체의 자립도를 높여주어야 하나요?
“중앙은 예산을 고리로 지방을 통제합니다. 지방의 자율성을 위축시키고 있어요. 지방은 어떻게 해야 자기 고장이 발전할 수 있는지 가장 잘 압니다. 지방이 활기차게 일 하도록 여건을 만들어주어야 해요.”
▼ 단체장의 자질 문제가 계속 불거지는데요.
“호화 청사 논란이 왜 일어나는지, 그건 잘못된 일이라고 봐요. 그러나 일부의 사례일 뿐 전체 자치단체장의 문제로 일반화해선 안 될 겁니다. 우리 시는 수십 년 전에 만든 건물을 그대로 쓰고 있어요. 외형에 치중하는 거 별로 안 좋습니다. 시 청사는 시민의 공복이 일하는 공간일 뿐이죠.”
최 시장은 2007년 대선 한나라당 후보 경선 당시 이명박 후보를 지지했다. 박근혜 후보가 우세했던 대구·경북에서 의외로 비쳤다. 이에 대해 그는 “이명박 후보가 예뻐서 도운 게 아니다. 그 당시에는 ‘실물경제 알고 경제 살릴 사람이 대통령 되는 게 더 낫겠다’고 생각한 것뿐이다. 그러나 이후 (한나라당 일각에서) MB 지지했다고 어지간히도 나를 물고 늘어지더라”라고 했다. 그는 “대통령이나 단체장이나 참 정치를 위해 노력해야 한다”면서 “민의를 읽고 그 뜻대로 하는 게 참 정치”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