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8월호

해외 원조 경쟁 종교 NGO 논란

공적개발원조 예산 활용한 선교 사업으로 구설수

  • 송화선|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spring@donga.com |

    입력2010-07-30 09:4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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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외 원조 경쟁 종교 NGO 논란

    한국국제협력단원이 에티오피아에서 해외 봉사 활동을 펼치고 있다.

    “교회개척지역인 OOO 지역의 중들이 저희가 교회 세우는 것에 반대하는 요지의 동의서를 마을 주민들에게 받기 시작했습니다. … 1.교회 세우는 것을 방해하지 않도록, 2. 마을 주민들 가운데 돕는 무리가 생기도록, 3.사탄의 세력이 물러가도록 강력한 중보기도 부탁드립니다.”

    캄보디아 지역에서 활동 중인 한 기독교계 개발 NGO의 지부장이 2003년 말 인터넷 선교 사이트에 올린 글이다. 공식적인 사업계획서는 “만성적인 식량난을 겪고 있는 국가를 도와 식량난을 해결하고 부가가치를 높여 삶의 질을 변화시키고자 한다”는 내용으로, 종교적인 색채가 전혀 드러나 있지 않다. 다만 앞의 글을 썼던 선교사가 2009년부터 지부장으로 활동중일뿐이다.

    “한국 교회의 동티모르 장·단기 선교팀을 요청합니다. …기회가 주어지는 대로 많은 팀들이 동티모르를 방문하여 보고, 듣고 체험하므로 가슴에 동티모르에서의 하나님의 선교를 간직할 수 있기를 갈망합니다.”

    동티모르 지역에서 역시 한국국제협력단(KOICA)의 자금 지원을 받아 구호활동을 진행하는 한 NGO 지부장의 글이다. 이 지부장 역시 선교사다. 이 지부장은 2006년 10월 선교통신을 통해 현지 활동의 어려움과 보람을 소개하는 글을 올리며 선교를 위한 동티모르 방문을 권한 뒤 2년여가 지난 2009년, 이 지역 ODA 사업을 총괄하는 지부장으로 위촉됐다.

    ODA 예산 급증



    지난해 11월 우리나라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제원조위원회(DAC)에 가입하면서 공적개발원조(ODA·Official Development Assistance)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ODA는 정부나 지방자치단체 등 공공기관이 개발도상국 등에 직·간접적으로 현금, 현물, 인력, 기술 등을 지원하는 걸 가리킨다. 개발도상국의 발전과 복지 증진을 목적으로 이루어 지며, NGO가 국가를 대행해 직접 사업을 진행하기도 한다. DAC는 이러한 원조 활동을 총괄하기 위해 설립된 국제기구다. ODA가 연간 총액 1억달러 이상이거나 국민순소득(GNI) 대비 0.2% 이상인 나라만 가입할 수 있다. 이 기구에서 전세계 원조의 90% 이상을 제공하기 때문에, DAC 가입은 곧 국제사회에서 존경받는 선진국 대열에 들어서는 것으로 인정받기도 한다.

    그러나 실상을 들여다보면 우리나라의 ODA 규모는 DAC 가입 기준에 못 미친다. 2009년 기준 ODA 총액이 8억1500만달러로, GNI 대비 ODA 비율(0.1%) 면에서 23개 DAC 회원국 중 최하위다. 정부는 이를 2012년 0.15%, 2015년에는 0.25% 수준으로 끌어올리겠다는 방침이다.

    이에 따라 ODA 확대가 당장 발등의 불로 떨어졌다. 올해부터 ODA를 위한 각종 사업 계획이 마련되고 있고, 관련 법안 정비 작업도 분주하게 진행중이다. 이 과정에서 해외 지원 규모를 맞추기 위해 충분한 준비와 체계적인 관리 없이 예산이 집행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특히 개발 NGO에 대한 재정지원 부분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해외 원조 경쟁 종교 NGO 논란

    종교에 기반을 둔 NGO들은 선교를 우선하는 활동 때문에 종종 문제를 일으켜왔다.

    개발NGO는 세계 여러 분쟁지역 및 기근 지역에서 긴급 구호와 개발 원조 사업을 수행하는 비정부 단체를 가리키는 말. 월드비전, 굿네이버스 등이 여기 속한다. 이들의 사업 진행비는 대부분 회원들의 후원금에서 나온다. 차명제 성공회대 NGO대학원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2006년 현재 국내 개발 NGO 수입의 58%는 후원금(정기후원금 37%, 특별후원금 21%)이었다. 그 외 주요 수입원은 정부 보조금. 전체의 16% 수준이었다. 우리나라는 KOICA 등 정부기관이 개발 NGO의 해외 사업에 자금을 지원하는 방식으로 NGO의 ODA 참여를 유도하고 있다. 앞서 지적했듯 해당 NGO가 ODA와 선교 활동을 공공연히 결합시킬 경우 국고가 특정 종교를 위해 쓰이는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2002년부터 2005년까지 아프가니스탄에서 구호 활동을 벌이고 귀국한 유정길 평화재단 기획실장은 “정부 재정을 일부라도 지원받은 단체들이 구호 사업과 자신들의 종교적 신념 전파 활동을 혼동하는 것은 심각한 문제”라며 “특히 가난한 나라 사람들을 실질적으로 돕는 것보다 선교하는 데 초점을 맞출 경우 지역 공동체를 파괴하고 현지에서 활동하는 일반 활동가들에게 피해를 주며, 나아가 국가의 위상까지 훼손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유 기획실장은 이슬람국가인 아프가니스탄에 머무는 동안 매년 서너 차례씩 한국 선교단체가 일으킨 사건 소식을 접했다고 밝혔다.

    “성경을 뿌리다 추방되고, 가가호호 방문 전도를 하다 지역주민이 포함된 무장단체에게 총격을 받은 일도 있었어요. 아프간 북부 쿤두즈 지역에서는 마을 사람들과 알카에다 단원들이 한국 선교단체를 급습해 참수하려다가 실패한 사건도 있었습니다. 이런 일이 지역 신문에 보도되면 한국인 활동가에 대한 전반적인 인식이 나빠지죠.”

    그는 “현지에서 묵묵히 지역 개발 활동에 헌신함으로써 자연스럽게 선교 효과를 얻는 기독교인도 많다. 선교 자체가 나쁘다는 게 아니라, 현지인들의 가치관을 이해하지 않고 무리하게 개종(改宗)을 강요하거나 구호 활동을 하면서 노골적으로 종교색을 드러내는 게 문제라는 뜻”이라고 덧붙였다.

    구호 NGO 지원액 급증

    이에 대해 앞서 ‘교회 건설’에 관한 글을 쓴 선교사가 소속된 NGO 관계자는 “지부장이 되기 전 같은 종교인들에게 도움을 구하고자 쓴 글이지, 현지에서 주민들과 종교 문제로 갈등을 빚는 일은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밝혔다. 이 NGO외에도 기독교계 NGO의 상당수는 선교사를 지역 개발사업 책임자로 임명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해당 지역에서 오랜 세월 생활한 사람이라 현지의 문화, 관습, 언어를 잘 알고, 지역 주민들과 관계를 맺는 데도 강점이 있다”는 이유에서다.

    그러나 ODA를 감시하는 시민운동 단체 ‘ODA WATCH’의 한재광 사무국장은 “ODA 사업에 대한 철학과 전문성이 없는 사람이 지역개발 책임자를 맡을 경우 오히려 지역 주민에게 피해를 줄 수 있다”고 지적한다. 한국의 ODA로 진행된 필리핀 메트로마닐라의 철도 및 교량 보수 작업이 그 예로 꼽힌다.

    “2003년 필리핀 정부가 공사를 추진하며 한국에 ODA를 요청했습니다. 우리 정부가 이를 받아들여 공사가 시작됐는데, 문제가 생겼어요. 철로 주변에 살던 무허가 주택 주민들이 당장 살 곳을 잃게 된 겁니다. 필리핀 정부는 메트로마닐라에서 남쪽으로 50㎞ 떨어진 지역에 이들을 위한 이주마을을 마련했다고 밝혔지만, 실상은 수도·전기 같은 기본적인 사회 기반시설도 갖춰지지 않은 상태였습니다. 도시에서 노역 등으로 생계를 이어가는 주민들의 생활 대책도 전혀 마련되지 않았고요. 결국 그 사람들은 도시빈민보다도 못한 극한의 상황으로 내몰렸습니다. 필리핀의 일부 시민운동가들이 한국 정부에 대책 마련을 요구하며 우리나라를 방문하는 일까지 벌어졌지요. ODA가 철학이나 준비 없이 주먹구구식으로 진행될 때 어떤 결과가 나타나는지 보여주는 사례예요.”

    해외 원조 경쟁 종교 NGO 논란

    한국은 미개발국에 대한 꾸준한 원조로 ODA선진국들의 모임인 OECD DAC에 가입했다. 사진은 아이티 참사 직후 슬픔에 잠긴 피해자들의 모습.

    전문성 없는 NGO들이 국가 지원을 등에 업고 해외 개발 사업에 뛰어들 경우 심각한 문제가 생길 수 있는 이유다.

    KOICA의 NGO 지원 사업 규모는 그동안 꾸준히 늘어 1995년 19개 사업 4억8900만원 지원에 불과하던 것이 2010년에는 76개 사업 60억3000만원 지원에 이른다. 지원 금액은 12배, 지원 사업 수는 4배 늘어난 셈이다. (표1 참고)

    NGO를 통한 해외 원조는 정부차원의 ODA사업을 보완하고, 정부간 협력사업으로 추진하기 어려운 지역의 사업을 수행하는 데 도움이 되며, 개도국 현지인들의 일상 생활(교육, 의료, 소득증대 등)을 신속하고 효과적으로 지원하는데 장점이 있다는 게 KOICA의 공식 입장이다. KOICA 유지은 이사는 “이 때문에 장기적으로는 ODA 총액의 5% 정도를 NGO에 지원할 생각”이라고 밝혔다. 현재 ODA 총액에서 NGO에 지원하는 비율은 1% 수준. 기한을 정하지는 않았지만, 이를 다섯 배 수준으로 늘릴 계획을 갖고 있는 셈이다. 실제로 ODA 선진국의 경우 개발 NGO들이 정부 기관을 능가하는 전문성과 열정을 바탕으로 해외 ODA의 상당 부분을 담당하는 경우도 많다.

    해외 원조 경쟁 종교 NGO 논란
    전문성과 열정

    그렇다면 우리의 NGO는 어떨까. ‘ODA WATCH’의 한 사무국장이 ‘한국해외원조단체협의회(이하 해원협)’ 등록 NGO 65개의 성향을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가장 두드러지는 특징은 절대 다수(65%)가 특정 종교에 기반을 두고 있다는 점이다. 종교 비율은 기독교 51%, 불교 6%, 원불교 5%, 천주교 3% 순이었다. (표2 참고)

    이에 대해 한 사무국장은 “유럽에 비해 인도주의에 대한 인식과 경험이 적은 우리 사회의 특성상 종교인들이 먼저 해외로 눈을 돌렸기 때문인 것 같다”고 설명한다. 그에 따르면 2000년을 전후해 종교에 기반을 둔 개발 NGO가 급속도로 늘었다. 동시에 종교인들이 일반 자원봉사자들이 꺼리는 분쟁지역과 낙후지역에서 활동을 시작했다. 이들은 교리에 기반을 둔 소명의식과 희생정신을 바탕으로 한국 ODA 범위를 크게 확장시켰다.

    하지만 2007년 아프카니스탄 ‘선교봉사단’ 문제처럼 선교를 앞세운 활동으로 물의를 빚은 경우도 적지 않다. 한 사무국장은 “종교 기반 NGO 중에도 오랜 경험과 학습으로 지역 개발 분야의 전문성을 갖춘 곳들이 없지는 않지만, 상당수 단체는 종교인 특유의 열정만으로 구호 활동에 뛰어든다. 그 과정에서 무리한 선교와 잘못된 지역 활동이 이뤄지는 게 문제”라고 지적했다.

    해외 원조 경쟁 종교 NGO 논란
    인도네시아 등에서 구호 활동을 했던 기독교계 구호 NGO ‘개척자들’의 송강호 활동가도 “종교 기반 NGO가 선교 사업 등의 문제로 구설에 오르면 NGO 전반에 대한 인식이 나빠지고, 열심히 활동하는 단체까지 불이익을 받게 된다. 종교적인 열정과 무리한 선교를 확실히 구별하는 자정 노력이 필요한 때”라고 강조했다.

    KOICA의 관리감독 기능 강화를 주문하는 목소리도 있다. 비종교계 개발 NGO의 한 활동가는 “KOICA가 지원 단체를 선정할 때 사업계획서뿐 아니라 현지 활동가의 인적 구성과 그간의 활동 내용 등을 꼼꼼히 점검하고 부족한 부분은 시정하도록 이끄는 게 필요하다”며 “선교 활동만 해온 인물이 지역 개발 사업 책임자로 임명될 경우, 해당 사업을 수행할 만한 전문성이 있다면 대안을 마련하도록 하는 방식으로 구호 사업의 질을 높여야 한다”고 지적했다.

    해외 원조 경쟁 종교 NGO 논란

    KOICA 지원으로 교과서를 받은 라오스 학생들이 활짝 웃고 있다.

    ODA 전문가 양성

    현재 KOICA는 NGO 지원사업의 경우 해당 지역 근무 직원을 통해 사업 진행 상황 등을 점검하고 사업이 끝난 뒤엔 자금 정산 자료를 제출받아 검토하는 방식으로 활동 내용을 검증한다. 개발 협력 전문가가 부족한 현실을 개선하기 위해 앞으로는 KOICA는 세계 각국에서 한국 ODA를 이끌 수 있는 개발협력 전문가 양성에 역량을 집중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를 위해 지난 4월 전문 교육기관 ‘ODA 교육원’도 열었다. 이곳에서는 ODA 사업에 관심이 있는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일반과정과 정부 협력사업 관련 컨설턴트(Development Practioners) 양성을 위한 전문 과정 등의 커리큘럼을 마련했다. 김진오 KOICA 홍보실장은 “한국의 DAC 가입을 계기로 정부는 올해를 국격 (國格)제고의 원년으로 삼으려 한다”면서 “한국국제협력단도 이에 필요한 역할을 하기 위해 다양한 방안을 강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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