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8월호

오심도 축구의 일부다? 그 거짓말은 참말!

  • 장원재│축구평론가. 경기 영어마을 사무총장│

    입력2010-07-30 11:3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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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심도 축구의 일부다? 그 거짓말은 참말!

    오심 남발 심판들 당신, 레드카드야!

    2010 남아공 월드컵대회 내내 끊이지 않았던 오심 논란을 두고 국제축구연맹(FIFA)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첫째, 이번 대회 들어 오심이 증가한 것이 아니다. 통계적으로 보면 오심은 언제나 잔류수준 이하로 일어나는데, 중계기법의 발달로 ‘안 보이던 것들이 보이게’ 되었다는 점이 핵심이다. 다시 말하면 이전에는 선수, 심판 그리고 축구 팬들이 모르고 넘어갔을 법한 일들이 문제로 부각된다는 것이다.

    둘째, 현대 축구의 전술적 특징에 기인한 문제. 최전방 공격수와 최후방 수비수 사이의 간격과 종심(縱深)이 얇고 빽빽한데다 상대 팀 선수들까지 좁은 공간에 몰려 있고 순간 스피드가 빨라진 것이 2000년대 축구의 모형인데, 이러한 상황에서는 심판이 오심을 저지를 확률이 다소 높아질 수밖에 없다는 견해다.

    셋째, 사후약방문 격이기는 하나, FIFA는 경기 후 비디오 정밀 판독을 통해 오심을 가려내고 피해당사국들에 공개 사과를 하고 있으며, 오심 판정을 내린 심판을 상위 라운드에 배정하지 않는 등 나름대로 재발방지에 만전을 기하고 있다. 덧붙여 말하자면, 오심 가운데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역시 골 판정인데, 골의 인정 여부와 관련해 승부가 뒤집힌 사례가 거의 없다고 본다.

    경기 흐름 뒤바꾸는 오심

    과연 그럴까? 먼저 마지막 변명에 토를 달아보자. 한국의 대(對)아르헨티나전의 세 번째 골은 오프사이드가 분명하지만, 그 골의 성공 여부와 관계없이 승패가 결정되었으므로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축구에는 ‘흐름’이라는 것이 있다. 아르헨티나의 네 번째 골은 보너스다. 1-3으로 승부가 사실상 결정된 뒤 한국 수비진이 집중력을 잃어버린 결과로 나온 골이라는 뜻이다. 종료 10분을 남긴 상태에서 1-2와 1-3이 갖는 의미는 천양지차다.



    승패에는 영향을 주지 않는다고 해도 문제는 남는다. 골 득실차이다. 만약 이 경기가 한국의 1-2 패배로 끝났다면 대 나이지리아전은 완전히 다른 맥락에서 진행되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3득점 4실점의 대한민국은 실전에서 ‘지면 무조건 탈락’이라는 비장한 결론을 마주하고 파부침주(破釜沈舟·밥 지을 솥을 깨뜨리고 돌아갈 때 타고 갈 배를 가라앉힌다는 뜻. 살아 돌아오기를 기약하지 않고 결사적 각오로 싸우겠다는 굳은 결의를 비유해 이르는 말)의 심정으로 결전했는데, ‘한 골 차로 지더라도 16강에 진출’할 수 있는 상황과 ‘비기거나 이겨야 하는 상황’의 차이를 만든 것이 바로 아르헨티나의 ‘오프사이드 골’이다.

    그런데 한국 축구는 비슷한 상황에서 도움 판정을 받은 일이 있다. 2006년 월드컵 최종예선 우즈베키스탄과의 어웨이 경기. 본프레레 감독이 이끌던 한국은 여러모로 산고를 겪고 있었다. 1차 예선을 힘겹게 넘어섰고 부상선수 속출, 빈번한 장거리 비행이 포함된 일정 등으로 선수단의 사기는 평균 이하였다. 월드컵에 못 갈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암세포처럼 번지는 지경이었다.

    타슈켄트에서 벌어진 일전에서도 우리는 무력했다. 한 골을 먼저 허용하고 별다른 찬스를 만들지 못한 채 시종일관 끌려 다녔다. 기적의 한 발이 터진 것은 종료 10초 전이다. 교체멤버 김두현이 가슴으로 트래핑한 뒤 페널티 에어리어 왼쪽 측면에서 왼발 대각선 땅볼슛을 발사했다. 수비진 사이를 헤집으며 나아간 공은 골키퍼 왼편 골대 하단을 맞고 튕겨 나왔는데, 최전방 공격수 박주영이 득달같이 달려들며 수리가 먹이를 낚아채듯 공을 골 안으로 밀어 넣으며 동점골을 뽑아냈다. 수비수 두 명이 몸을 던지는 육탄태클로 박주영의 슛을 막았으나, 공은 두 사람 사이를 절묘하게 빠져나가며 네트를 출렁였다. 하지만 이 골은 명백한 오프사이드다.

    김두현이 슛을 날릴 당시 박주영의 위치는 우즈벡 골키퍼와 최종 수비수 사이였다. 주심과 선심이 오심을 저지른 까닭은 둘이다. 첫째, 워낙 극적인 순간에 터진 골이라 순간적으로 판단할 기회를 놓쳤다는 것. 둘째, 골대를 맞고 튕겨 나오는 공은 후진패스처럼 보인다는 점. 축구 교범은, 공이 골대를 맞고 나오는 경우 심판은 골대가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판정하라고 가르친다. 예컨대 페널티킥이 골대를 맞고 나왔다면 키커는 이 공을 다시 찰 수 없다. 프리킥 상황에서 키커가 두 번 연달아 공을 찰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다. 동일한 맥락에서, 연결 플레이의 경우 공이 골대를 맞고 나온다 하더라도 슛이 이뤄진 시점에서 오프사이드 위치에 있었던 선수가 공을 건드릴 수 없는 것이다. 그런데 골대를 맞은 공은 각도상 후진패스처럼 보이므로, 심판의 착시현상이 생각보다는 빈번하게 일어난다. 또 골키퍼가 미세하게라도 공을 건드렸다면 오프사이드는 성립하지 않는데, 바로 이 점이 심판을 망설이게 하는 또 하나의 변수다.

    오심의 최대 피해자 잉글랜드

    전세계 축구전문가들이 꼽는 이번 대회 오심의 최대 피해자는 잉글랜드다. 잉글랜드와 독일의 16강전. 잉글랜드는 전반에 독일의 미로슬라프 클로제와 루카스 포돌스키에게 연타를 얻어맞은 뒤 수비수 매튜 업슨이 헤딩 만회골을 집어넣으며 1-2로 따라붙었다. 전반 35분, 램파드가 골지역 정면에서 날린 중거리 슛이 크로스바를 때리고 골라인 안쪽에 떨어졌지만, 주심과 부심 모두 이 골을 득점으로 인정하지 않았다. 이 순간이 이 경기의 분기점이다. 0-2로 뒤지다 동점을 만들었다면, 잉글랜드는 흐름을 자기 쪽으로 돌려놓을 수 있었다. 팽팽한 경기일수록 한 골의 위력은 막대하다. 맥이 풀린 잉글랜드가 후반에 두 골을 더 허용하며 무너진 것은 어떤 면에서는 그들의 책임이 아니다.

    이 대목에서, ‘골’의 정의를 살펴보도록 하자. 축구 규칙은 공이 골라인을 완벽하게 넘어선 경우를 골로 인정한다. 공의 3분의 2가 라인을 넘어섰더라도, 극단적으로 말해 손톱만큼만 라인에 걸려 있더라도 골이 아니다. 2006년 월드컵 한국 대 프랑스 전, 프랑스가 1-0으로 앞선 상황에서 날린 앙리의 헤딩슛이 골이냐 아니냐는 논쟁이 불거졌던 사실을 기억하는가. 이운재가 라인 뒤쪽에서 공을 걷어냈고, 공의 상당 부분이 라인을 넘어선 것은 분명하지만, ‘완벽하게’ 넘어섰는지에 대해서는 논란의 소지가 있다. 그 경우처럼, 상황은 순간적으로 지나간다. 그리고 또 다른 상황이 바로 전개된다. 그것이 축구의 특징이다. 시청자들은 사후에 몇 번이고 느린 그림으로 상황을 검색할 수 있지만, 심판의 처지는 다르다. 그렇다고 이미 지나간 사건을 되돌리고 바로잡을 수단도 없다. 그래서 문제다.

    말이 나온 김에 덧붙이자면, 우리가 스위스전에서 허용한 골은 오프사이드가 아니다. 안타깝지만, 정당한 골이다. 비디오 판독 결과 내려진 최종 결론이다. 그 골은 오프사이드 규칙의 거의 모든 경우의 수를 보여주는 교과서 같은 장면으로 꼽힌다. 그래서 일부 유럽 국가의 심판 교육용 자료에 어김없이 등장하는 단골영상으로 명성을 누리고 있다.

    잉글랜드의 ‘인정받지 못한 골’이 논란의 중심에 선 것은 두 가지 측면에서다. 오심의 강도가 다소 과했다는 점과 역사적 악연. 무슨 이야기냐고? 램파드의 슛은 공 서 너 개 정도의 간격을 만들며 너무나 분명하게 골라인 안쪽에 떨어졌다. 선을 살짝 넘었느냐 아니냐를 따질 수준이 아니었다. 오죽하면 당시 부심을 맡았던 우루과이의 마우리시오 에스피노사 심판이 자국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당시 판정을 내리기 적합한 위치에 있었지만, 프랭크 램파드의 슛 동작이 너무 빨라 골라인 쪽을 미처 보지 못했다”며 순순히 오심을 인정했겠는가.

    사상 최대의 오심 논란

    역사적 악연? 대차대조표를 따지자면, 축구사학자들은 대 독일전에 관한 한 잉글랜드를 오심의 수혜자로 꼽는다. 1966년 7월30일 런던의 웸블리 스타디움. 제8회 월드컵의 결승 진출국이 바로 잉글랜드와 서독이었다. 1930년 제1회 대회 이후 200번째의 본선 경기. 서독은 종료 15초를 남기고 터진 베버의 극적인 동점골로 2-2를 만들며 경기를 연장전으로 몰고 갔다.

    연장 전반 10분, 희대의 스캔들이 발생했다. 베켄바우어에게서 공을 가로챈 재키 찰튼이 중앙으로 전진하는 친형 보비 찰튼에게 패스했다. 보비는 스타일즈에게, 스타일즈는 다시 서독의 오른쪽 외곽을 파고드는 알란 볼에게 공을 건넸다. 마크맨 슈넬링어를 제친 알란 볼은 문전으로 크로스를 올렸고, 허스트가 페널티 에어리어 정면 약간 우측에서 공을 받았다. 허스트는 90도 정도 몸을 틀며 터닝슛을 날렸는데, 이 공은 골키퍼의 다이빙을 피해 비행하다 크로스바를 때리고 수직선을 그리며 밑으로 떨어졌다. 뒤따르던 베버가 헤딩으로 걷어내 상황 종료. 하지만 잉글랜드 선수들은 일제히 손을 들며 골이라고 주장했고, 스위스인 주심 딘스트는 일단 득점을 인정하지 않았다. 그리고 소련인 선심 바하라모프 쪽으로 달려와 최종자문을 구했다. 선심의 판정은 ‘골’이라는 것.

    문제는 실전 당시 선심의 위치다. 공의 전개 속도가 무척 빨랐기에 선심은 미처 판정에 적합한 위치로 이동하지 못했다. 공이 크로스바를 맞고 퉁겨나와 낙하하던 순간, 선심의 위치는 10여m 뒤쪽이었다. 연장 종료 직전 허스트의 추가골이 터지면서 경기는 잉글랜드의 4-2 승리로 끝났는데, 이 골의 진위 여부는 오늘날까지 수많은 논쟁거리를 낳고 있다. 필자는 이 장면을 찍은 각기 다른 각도에서 잡은 여덟 편의 필름을 봤고 100% 단언할 수는 없지만 개인적으로는 이 슛은 라인을 완벽하게 넘어서지 못했고 따라서 정당한 골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오심도 축구의 일부다? 그 거짓말은 참말!

    브라질의 루이스 파비아누가 코트디부아르와의 조별리그 경기에서 슈팅하는 과정에 두 번이나 공이 손에 닿았지만 골로 인정됐다.

    그러나 그렇게 따진다면 89분에 터진 서독의 동점골도 오심의 결과다. 젤러와 잭 찰튼이 공중볼을 경합한 결과 주심은 서독의 프리킥을 선언했는데, 필름상으로 보자면 오히려 잉글랜드에 프리킥이 주어졌어야 했다. 이 점은 훗날 서독 코칭스태프도 인정한 사안이다. 그랬더라면 경기는 잉글랜드의 2-1 승리로 막을 내렸을 터이고 연장전의 저 유명한 ‘사상 최대의 논란’도 발생하지 않았을 터이다.

    크로스바 논쟁으로 도둑맞은 골

    한국 축구와 관련한 크로스바 논쟁도 있다. 1978년 아르헨티나월드컵 예선 한국 대 이스라엘 경기. 1977년 2월27일 텔아비브에서 벌어진 경기에서 한국은 한 골을 도둑맞았다. 후반 18분 오른쪽 외곽을 빠르게 파고든 차범근이 크로스를 올리자 차범근의 경신고 2년 선배인 14번의 단신공격수 김진국이 논스톱으로 슛을 날렸다. 크로스바를 맞고 떨어진 공은 골라인을 완벽하게 넘어갔다. 골기퍼 소리노프가 반사적으로 골대 안으로 몸을 누이며 공을 걷어냈는데, 볼은 라인을 살짝 넘어간 것이 아니라 소리노프의 어깨선까지 전진해 있었다.

    김진국의 슛이 크로스바를 때리고 아래로 떨어지는 순간 한국선수들이 반사적으로 일제히 만세를 불렀을 만큼 명백한 골이었다. 하지만 주심의 최종사인은 노골. 한국은 억울했다. 오죽하면 다음날 이스라엘의 유력 일간지 더 예루살렘 포스트가 “그것은 틀림없는 골이었으나 스코틀랜드인 선심이 골로 인정하지 않았다. 사실상 이스라엘에 1-0 패배다”라고 보도했겠는가. 최정민 감독은 “골대가 10㎝만 넓었더라도 오늘의 승부는 달라졌을 것”이라고 했다. 김진국의 ‘골’도 ‘골’이지만, 전반에 이영무의 슛이 왼편 골대 중단을 강타하는 등 한국이 시종일관 우세한 경기를 펼쳤기 때문이다. 국내 신문들도 당시 상황을 찍은 사진을 지면 상단에 배치하고 골라인을 사진 위에 강조해서 그려 넣음으로써 독자의 이해를 ‘시각적으로 확실하게’ 돕기도 했다. 이 억울함은 한국이 홈경기에서 차범근, 박상인, 최종덕의 연속골로 이스라엘을 3-1로 물리치며 최종예선에 진출하며 역사의 뒤안길로 조용하게 사라져갔다.

    오심 줄이려는 FIFA의 실험들

    오심은 축구의 한 부분이지만, 피해자의 가슴에 씻을 수 없는 아픔을 남긴다. 그렇다고 FIFA가 손을 놓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규칙과 운영의 합리성을 끌어올리기 위해 FIFA는 수많은 실험을 이미 진행했다. 아이스하키처럼 골 뒤편의 공간을 활용하는 방안, 농구의 백보드처럼 골대의 두께를 늘리는 방안, 무승부 때 페널티킥 코너킥 프리킥 등을 합산하며 승패를 가르는 판정승제도 등. 1990년대 중반 17세 이하 청소년대회 때는 손으로 던져 넣는 대신 발로 공을 차 넣는 킥인제도를 도입하기도 했고 19세 이하 여자 청소년대회 때는 작전타임제도를 도입 운영한 적도 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런 시도들은 모두 채택되지 않았다. 킥인은 보다 적극적 공격의 결과인 코너킥에 비해 소극적 우세인 킥인의 전략적 가치가 더 크다는 형평성의 논란이 문제였다. 작전타임은 대개의 팀이 단독찬스를 허용한 상황에서 휘슬을 불어버리는 ‘제도상의 악용’문제를 해결할 길이 없었다.

    FIFA가 도입한 가장 성공적인 개혁은 1970년 월드컵부터 채택한 선수교체 제도다. 그전에는 열한 명의 스타팅 멤버가 끝까지 경기를 책임져야 했다. 상대방의 고의적 태클에 부상을 당해 뛸 수 없게 되더라도 보상을 받을 길이 전무했다. 그래서 말한다. 비디오 판정을 도입하면 경기가 몇 분간 중단될 수도 있다. 하지만 적어도 골 판정만큼은 오심의 여지를 줄여야 한다. 역사는 돌고 도는 것, 오늘의 손해가 내일의 복권당첨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지만, 더 이상 억울한 일을 당하는 팀이 나와서는 안 된다.

    남아공월드컵은 시작부터 오심만발이었다. 아일랜드와의 최종 예선전, 프랑스의 공격수 앙리의 ‘손으로 만든 골’로 불거진 오심 논란은 예선전, 16강전, 8강전을 거치며 숱한 논란거리를 만들고 급기야 준결승전에서 네덜란드의 골이 오프사이드라는 지점까지 나아갔다. 대한민국은 오심의 피해자가 되기도 싫고 그렇다고 오심의 수혜자가 되고 싶은 마음도 없다. 정당한 승리를 위해서라면, ‘몇 분의 중단’은 얼마든지 참을 수 있다는 얘기다. 신(神)의 손 논쟁은 이제는 사절이다. 축구는 발로 하는 경기다. 골키퍼를 제외하면, 누구도 손으로 공을 터치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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