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8월호

태안 軍고속단정 전복사고의 진실

장성도 눈 가리고 출입하는 극비시설 … 첩보부대 관리 문란 드러나

  • 황일도|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shamora@donga.com |

    입력2010-07-30 15:3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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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태안 軍고속단정 전복사고의 진실
    사건의 개요 자체는 단순하다. 최근까지 해당 부대에서 근무했던 해군 이모 대령이 자신이 졸업한 서울 B고등학교 동문모임을 공무용으로 마련된 이 부대의 숙박시설에서 열 수 있도록 주선했고, 사고 당일 부대에서 운용하는 고속단정에 동문모임에 속한 장교들과 그 가족 등 15명이 탑승해 ‘유람’을 즐기다 전복사고가 발생했다는 것이다.

    이 대령은 해군본부 정보처장으로 정보병과에서는 해군 내 최고직위 인물. 15명의 탑승자 가운데 5명이 중상을 입었고, 사고 발생 직후 두개골 골절상을 입은 공군 이모 대위와 공군 소령의 부인인 김모씨는 서울로 후송됐지만 이 대위는 7월7일 새벽 끝내 목숨을 잃었다.

    군 장비를 레저용으로 쓰다 사고가 발생한 것만으로도 심각한 일이지만, 더욱 큰 문제는 이 부대가 국군정보사령부 산하 대북침투부대 소속으로 유사시 북한 지역에 침투해 군사지휘부 및 주요시설물 타격 같은 특수임무를 수행하도록 설정된 최고 수준의 극비시설이라는 점이다. 전복된 고속단정은 이러한 작전을 실행하는 과정에서 북한 지역까지 부대원들을 실어 나르는 수송선으로, 최고시속 80㎞ 수준의 엄청난 성능을 자랑하는 특수장비다. 이번 사고로 인해 이렇듯 민감한 부대의 위치와 장비 특성이 낱낱이 공개된 것이다.

    대북첩보부대 혹은 북파공작부대는 북파임무 수행이 사실상 사라진 2000년대 들어 폐지가 검토되기도 했지만, ‘최후의 상황에 대비해 특수임무 중에서도 특수한 임무를 맡을 부대가 필요하다’는 명분으로 살아남았다. 그러나 이번 사고로 관련 정보가 노출됨으로써 유사시 대북침투가 어떤 방식으로 진행되는지 확인됐는가 하면 침투경로 또한 북한군 정보당국이 상당부분 유추할 수 있게 됐다. 한 안보부처 당국자는 “‘정보사 산하 특수부대’가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북한에서 가장 잘 알고 있지 않겠나. 당장 현재 설정돼 있는 침투작전의 개념과 구성, 진행방식을 완전히 수정해야 하고, 최악의 경우 부대 자체를 이전하는 방안까지 검토해야 할 판이다. 허술한 보안의식이 사실상 ‘이적(利敵)행위’를 낳은 셈”이라고 말했다.

    “사안 심각성 공론화해야”



    1971년 이른바 ‘실미도 사건’으로 유명한 북파공작부대는 당초 육·해·공군이 각각 별도로 운용하는 기형적인 구조였지만, 1990년 국방부 직할부대인 정보사령부로 통합됐고 2003년 무렵 그 실체가 사실상 공식화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해당 부대원들의 소속은 육상과 해상으로 나뉘는 임무에 따라 육군과 해군으로 구분된다. 간단히 말해 북한 지역에 들어가 실제 임무를 수행할 요원들은 육군 소속, 이들을 작전지역까지 실어 나르는 인원은 해군 소속이다.

    정보사는 이렇듯 침투수송 임무만을 전담하는 수단을 각 군 편제와는 별도로 확보해 운용한다. 해당 장비의 구매 예산 역시 국방부가 아닌 정보당국에서 책정, 집행한다. 사건이 발생한 태안의 부대가 바로 이러한 수송수단을 관리·운용하는 부대. 문제의 고속단정 역시 이러한 목적으로 해군 편제와는 별도로 구성된 특수장비다. 태안을 포함해 각 지역에 ·#52059;개가 운용되는 이들 수송부대는 해군 준장이 정보사에 파견돼 여단장으로서 총괄지휘를 맡고, 역시 파견된 해군 대령이 각 수송부대의 장을 맡는 지휘체계를 갖고 있다.

    태안 軍고속단정 전복사고의 진실

    7월3일 태안 앞바다에서 사고로 전복한 국군정보사령부 소속 고속단정과 유사한 기종의 고속단정.

    임무의 성격상 이들 부대에 대한 보안수준은 상상을 초월한다. ‘특수정보부사관’ 형식으로 모집되는 이들 부대원은 한국군 군복을 착용하지 않고 개인화기나 소모품 역시 외국제만을 사용한다. 부대원들 사이의 호칭도 군 계급을 사용하지 않을 정도. 정보사령부 산하 주요 시설은 정부 고위 관계자가 방문하는 경우에도 눈을 가리고 이동할 정도로 보안이 철저하다. 지휘관이 시찰할 때는 부관이나 운전병조차 동행이 금지되고, 대신 해당시설 소속 보안차량이 제3의 장소로 마중을 나가야 할 정도로 절차가 까다롭다. 한 전직 군 정보당국 고위관계자의 말이다.

    “엄중한 보안을 생명으로 하는 부대에 민간인들이 휴가차 드나들며 숙박시설을 이용했다는 것은 절대로 용납할 수 없는 일이다. 가장 등급이 높은 시설에서 이토록 기강이 해이해졌다면 일반 부대의 수준은 어떨지 상상하기도 어렵다. 군 당국은 정보시설이라는 이유로 사건의 특수성을 흐리려 하지 말고 오히려 공론화해야 바닥까지 떨어진 보안의식을 재점검할 수 있을 것이라고 본다.”

    부실한 감사와 조직체계

    조직과 임무의 특수성이 워낙 강조되다보니 공식적인 관리체계로부터 상당부분 벗어나 있다는 사실도 군 관계자들이 전하는 이번 사건의 구조적인 원인 가운데 하나다. 대북첩보부대와 정보사령부의 상급조직은 국방부 정보본부지만, 부대 운영에 관한 사안은 사실상 해당조직에 일임돼 있다는 것. 해당 부대가 수집한 정보를 취합, 분석해 활용하는 것이 정보본부의 주 임무일 뿐 부대 관리는 사령부가 담당하는 형태다. 주요 보직 인사 역시 공식적으로는 대령급 이상 장교의 경우 국방부 정보본부에서 처리하도록 돼 있지만, 정보사령부에서 작성한 인사안이 대부분 그대로 통과되는 것이 오랜 기간 관례로 자리매김했다.

    이번 사고가 시사하듯 해군 파견자가 다수를 차지하는 수송지원부대에서는 그 정도가 더욱 심하다. 앞서 말한 것처럼 이를 총괄하는 여단장에도 해군 준장이 임명되는 반면 그 직속상관인 정보사령관은 통상 육군 소장이 맡아왔다. 군별로 기수문화가 엄격한 한국군의 특성상 육군 출신 사령관의 통제가 해군 출신 여단장이나 각 수송부대장에 대해서는 한계가 있다는 것.

    더욱이 해군에서는 정보병과 출신의 장군 진급자가 드물기 때문에 이 여단장에는 정보병과 출신이 아닌 비전문가가 임명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항해 등 다른 전문분야에 종사하던 장군이나 대령이 전역에 임박해 파견되는 경우가 많다보니 부대 관리나 임무에 대한 애착도 상대적으로 다를 수밖에 없는 구조라는 것이다. “한마디로 가장 특수한 임무에 종사할 가장 전문적인 직위를 비전문가가 담당하는 셈”이라고 군 당국 관계자들은 입을 모은다. ‘대북첩보부대’라는 말이 갖는 압도적인 무게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부실한 형태다.

    상시적으로 이뤄져야 할 감찰이나 검열도 일반부대에 비해 훨씬 수준이 낮다. 우선 정보사령부가 국방부장관 직할부대인 까닭에 산하 특수부대 역시 합동참모본부 전비태세검열단의 불시검열 등 감독을 받지 않는다. 세부항목 비공개가 원칙인 정보예산으로 운영되다보니 감사원 감사로부터도 자유롭다. 심지어는 말단까지 편제돼 있는 기무부대 역시 정보사령부 본부에만 있을 뿐 예하 특수부대에는 적극적으로 개입하지 않는 게 관행처럼 돼 있다.

    예산을 지급하는 정보당국이 정기 감사를 실시하긴 하지만 정보사업, 그것도 자신들이 지급한 예산관련 부분에만 한정해서 감사하다보니 일반 행정이나 복무태세 점검과는 전혀 관계가 없다. 국방부 직할부대이므로 국방부 감사관실의 격년제 감사를 받고 있으나, 그 역시 조심스럽기는 마찬가지라고 관계자들은 말한다. 부대시설 상당부분이 감사요원들에게도 접근이나 출입이 금지돼 있는 기밀사항이기 때문에 철저한 감사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것. 그나마 이전에는 기무사와 정보사, 대북감청부대 등 이른바 국방부 직할 3대 정보부대에 대해서는 감사가 이뤄지지 않다가 2000년대 중반에야 처음 시작됐다는 후문이다. 이 무렵 국방부 감사관이 해당 부대장들에게 ‘국방부 자체감사가 있어야 정보당국의 예산감사에 한계를 그어 정보부대를 보호할 수 있다’는 논리로 일일이 양해를 구했을 정도라는 것이다.

    ‘실미도 사건’의 연장선

    태안 軍고속단정 전복사고의 진실

    1971년 8월23일 이른바 ‘실미도 부대’가 민간 시외버스를 탈취해 서울 중심가로 향하던 중 자폭한 노량진 현장.

    사건 발생 초기 군 당국은 사건을 은폐하려 한다는 비판에 직면했다. 당초 해상레저보트의 전복사고로 발표됐다가 언론의 취재가 시작된 후 군 고속단정임을 확인한 것이 대표적이다. 사고 발생 직후 현장에 가장 먼저 도착해 구조작업을 진행한 소속부대 선박이 민간인들은 현장에 두고 부대원들만 실어 현장을 떠났다는 사실이 추후 확인되기도 했다. 이후 해경이 병원으로 후송한 민간인들 가운데는 여자 어린이 2명도 포함돼 있었다.

    한 군 정보분야 관계자는 “흔적을 남기지 않는다는 첩보부대의 행동패턴이 고스란히 작동했기 때문이겠지만, 국민의 시선으로는 납득하기 어려운 일이 벌어졌다고 본다”고 말했다. 해당부대에서는 사고 선박의 소속이 노출되는 것을 막기 위한 조치였다고 해명하고 있지만, 인명 구조를 경시한 채 은폐를 시도했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는 행동이었다는 것. “특수 분야에 종사하는 군 조직의 감각이 인명에 관한 사회의 인식 흐름을 전혀 따라잡지 못하고 있다는 증거”라고 이 관계자는 평했다.

    파장이 커지자 국방부는 헌병 최고기관인 조사본부를 동원해 조사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7월5일 국방부는 고속단정을 동문 모임에 사용할 수 있도록 주선한 해군본부 정보처장 이모 대령과 고속단정 소속 부대장인 김모 대령을 보직 해임했다. 고속단정을 조종한 이 부대 소속 권모 원사에게는 업무상 과실치사상 혐의가 적용될 것으로 알려졌다. 권 원사의 부인도 고속단정에 탑승했다 중상을 입고 치료 중이다.

    그러나 더욱 핵심적인 문제는, 앞서 설명한 대로 대북첩보부대를 포함한 특수임무 부대에 대한 부실하기 짝이 없는 관리체계다. 이를 재정비하지 못한다면 언제든 같은 유형의 사고가 재발할 수 있기 때문. 대북침투임무가 거의 사라지면서 이들 부대가 ‘훈련만 반복하는 부대’가 됐음을 부인하기 어려운데다 근래 들어 군 내부에서조차 그 존폐를 심각하게 검토했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근본적인 해결책이 필수적이라는 결론이 나온다. 전직 군 해당분야 고위관계자의 말이다.

    “이번 사건은 ‘임무수행 없이 훈련만 반복하는 부대의 군기 문란’이라는 점에서 실미도 사건과 고스란히 맥이 닿는다. 그 처리과정이 부실하다면 당연히 부대를 없애자는 목소리가 힘을 얻을 수밖에 없다. 군 당국이 ‘최후의 상황에 대비해 남겨둔 카드’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있다면, 국민이 이를 납득하길 원한다면, 어느 때보다도 철저한 진상조사와 지휘책임자 처벌이 절실하다. 국방부가 뼈저리게 각성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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