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명박 대통령의 안보분야 참모그룹으로 분류되는 인사의 이 같은 말은, 6월 하순 이후 청와대 당국자들이 유난히 강조하고 있는 ‘문민 국방장관론’의 복판을 꿰뚫고 있다. 군도 정부의 일부라는 인식을 뿌리내리기 위해서는 ‘군을 대표하는 국방장관’이 아니라 ‘대통령 참모로서 군을 관리할 국방장관’이 필요하다는 요지다. 합동조사단이 조사결과 발표현장에서 제시한 설계도가 잘못된 것이었다는 사실이 확인되는 등 크고 작은 실수가 이어지고, 군 수뇌부가 국회 상임위 석상에서 감사원 발표를 ‘들이받는’ 사건이 이어지면서 이러한 인식이 급부상했다는 것. 한마디로 ‘군을 어디까지 믿을 수 있느냐’는 것이다.
정부 핵심에서 문민 국방장관을 검토한 게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가깝게는 천안함 사건 직후인 4월 초순 정인철 전 비서관이 이끌던 청와대 기획관리비서관실에 중량급 정치인들을 거명한 보고서 제출됐다가, 사건에 대한 청와대의 입장이 북한 소행 쪽으로 급격히 기울면서 사그라진 바 있다. 이 과정에서 대통령 주변의 예비역 인사들과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실 사이에서는 이른바 ‘안보태세 재정비’의 주도권을 놓고 대립각을 세우기도 했다(‘신동아’ 6월호 ‘청와대 파워게임 전말’ 기사 참조). 문민 국방장관 임명을 둘러싼 최근의 논의는 그 2라운드에 해당하는 셈이다.
정인철의 힘
첫 번째 논쟁의 핵심쟁점이었던 신설 안보특보의 역할에 관해서는 외교안보수석실 등 참모그룹의 견해가 관철됐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기존 안보라인과는 별도로 국방 분야 어젠다를 총괄하는 것 아니냐는 관측까지 나왔던 특보의 역할이 6월말 들어 청와대 위기관리센터 관할 정도에 그치는 것으로 마무리됐다는 것. 눈여겨볼 것은 이러한 ‘교통정리’ 역시 기획관리비서관실을 통해 이뤄졌다는 사실이다.
최근 ‘영포라인’과 ‘선진국민연대’ 출신 인사들의 권력 전횡 여부가 논란이 되면서 뉴스의 초점에 섰던 정인철 전 기획관리 비서관은 2008년 7월 박영준 당시 기획조정비서관의 뒤를 이어 청와대에 입성했다. 선진국민연대 대변인을 지낸 정 전 비서관은 최근 은행장과 민영화된 공기업 최고경영자(CEO) 등을 정례적으로 소집해 압력을 행사했다는 의혹이 제기된 바 있다. 청와대 조직개편 과정에서 신설 기획조정실장에 임명될 가능성이 점쳐졌던 정 전 비서관은 1급이지만 수석비서관(차관급) 회의에 참석했을 정도로 ‘숨은 실세’였다.
흥미로운 것은 그간 기획관리비서관실이 외교안보 분야에도 상당한 수준으로 관여해왔다는 정부당국자들의 설명이다. 안보특보와 외교안보수석실 사이의 업무분장 조정은 청와대 내부의 조직관리를 담당하는 기획관리비서관의 업무범위 내의 일이라고 평가할 수 있지만, 정 전 비서관의 관여는 이를 넘어섰다는 것. 뒤늦게나마 ‘월권’에 대한 비판이 제기되는 형국이다.
지난해 이명박 대통령이 “무기중개상들의 리베이트를 없애면 국방비를 20%는 줄일 수 있다”고 언급한 이래 검찰과 국세청은 전방위적으로 방산업체 비리 수사를 진행한 바 있다. 사정기관 출신 행정관들이 상당수 포진해 있는 기획관리비서관실은 이 과정에 깊숙이 관여해왔다고 관계자들은 말한다. 안보전문지 ‘D·D포커스’는 2009년 12월호 기사에서 정인철 비서관이 김태영 장관 등을 접촉하며 업무범위를 넓혀가고 있다고 보도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