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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종대 전문기자의 중국 미래권력 심층해부 ②

‘대륙의 황태자’ 시진핑 국가부주석

화합 지향 성품으로 군심·민심 한손에 쥔 집단지도체제형 리더

  • 하종대│동아일보 국제부 차장, 전 베이징 특파원 orionha@donga.com│

‘대륙의 황태자’ 시진핑 국가부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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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륙의 황태자’ 시진핑 국가부주석

중국 공산당 원로이자 부총리를 지낸 아버지 시중쉰과 함께한 시진핑(오른쪽). 1980년대 초에 찍은 사진이다.

물론 중국이 서방과 달리 ‘정치의 예측가능성’이 높지 않은 만큼 앞으로 후계구도가 달라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특히 시 부주석이 정치적 실수를 범할 경우 후계자는 다른 사람으로 바뀔 수도 있다. 하지만 실제로 이런 일이 발생할 가능성은 극히 희박하다. 특히 인화(人和)에 능한 데다 나서기를 좋아하지 않고 신중한 시 부주석의 평소 성격으로 보아 정치적 우(愚)를 범할 가능성도 거의 없다.

중국의 저명한 한 학자는 시 부주석이 2012년에 중국의 최고지도자가 될 수밖에 없는 이유로 4가지를 들었다. 첫째 퇀파이(團派·중국공산주의청년단 출신)를 제외하고는 상하이방(上海幇)이나 태자당(太子黨) 등 모든 계파가 그를 지지한다. 심지어 장쩌민(江澤民) 등 원로그룹과 당 중앙위원회 위원 및 후보위원 대부분도 그를 선호한다. 둘째 당 중앙군사위원회 위원 겸 비서장이었던 겅뱌오(耿飇)의 비서로 3년간 일한 경력 때문에 군내 지인이 많다. 군부에 지지자가 많다는 뜻이다. 게다가 차세대 지도자 가운데 이런 군 경력을 가진 사람은 시 부주석뿐이다. 셋째 남의 얘기를 경청한다. 이는 갈수록 집단지도체제 성향이 강해지고 있는 중국 지도부에서 매우 중요한 덕목이다. 넷째 성격이 담대해 좌고우면하지 않는다. 이 학자는 따라서 시 부주석이 ‘황제’가 되기 전에 중간에 낙마할 가능성은 사실상 제로에 가깝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최근 들어 시 부주석의 언론 노출은 갈수록 늘고 있다. 그가 지난달 호주와 뉴질랜드 등을 방문할 때 신화(新華)통신의 톱기사 32개 가운데 9개가 시 부주석의 활동을 전하는 기사였다. 반면 후 주석은 두번, 원 총리는 단 한 번에 불과했다. 이는 지난해까지만 해도 찾아볼 수 없었던 것으로 후 주석이 국가부주석이던 시절엔 꿈도 꿀 수 없는 현상이었다.

소박, 겸허, 온화, 대범

‘平實(평실), 低調(저조), 謙和(겸화), 大氣(대기).’ 2007년 10월22일 중국 공산당 제17기 중앙위원회 제1차 전체회의에서 시 당시 상하이(上海) 당 서기가 중앙정치국 상무위원으로 선출되자 홍콩에서 발행되는 ‘다궁(大公)보’는 10월23일자 기사에서 그를 이렇게 소개했다.



平實이란 소박하고 수수하다는 뜻이다. 低調는 재능과 능력이 뽐내거나 자랑할 만하지만 이를 하지 않는다는 얘기다. 중국에서는 사람으로서 행동할 때는 ‘低調(로키)’하되 일을 할 때는 ‘高調(하이 키)’하는 것을 모범으로 삼는다. 일은 적극적으로 하되 자랑은 소극적으로 하라는 뜻이다. 謙和는 겸허하고 온화하다는 말이다. 大氣는 대범하고 당당하다는 의미다.

대단한 칭찬이 아닐 수 없다. 그는 또 사상이 자유롭고 시야가 넓으며 언론매체와 잘 교류하고 정보시대와 시대정신에 잘 적응하며 도광양회(韜光養晦)할 줄 아는 사람으로 평가된다. 그의 정치적 미래가 밝다고 말하는 것도 그의 이런 품성 때문이다.

그는 푸젠(福建)성장 시절(1999~2002년) 이례적으로 언론과 인터뷰를 했다. 그는 ‘중화쯔뉘(中華子女)’의 편집장 양샤오화이(楊篠懷)와의 인터뷰에서 “나는 개인적인 선전을 원하지 않아 지금까지 개인에 대한 인터뷰를 100번도 넘게 거절했다”며 “우리(고위 관료)가 어떤 일을 하는가 하는 것도 마땅히 해야 할 직무이지, 무슨 선전할 대상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2007년 5월 제17차 당 대회를 앞두고 그가 젊었을 적 일했던 허베이(河北)성의 ‘스자좡(石家莊)일보’에서 한 면을 할애해 ‘정딩(正定)에서의 시진핑’을 크게 소개하자 그는 현지 지방 정부 관리에게 전화를 걸어 “왜 이런 기사가 나가도록 가만히 있었느냐”며 크게 화를 낼 정도였다.

그는 또 재능이나 업적보다 인화를 더 중시한다. 그는 항상 아래 직원들에게 “인화단결이 목표는 아니지만 인화단결을 잘 하면 일은 항상 비교적 잘할 수 있다”며 “하지만 인화단결을 잘하지 못하면 일은 언제나 잘하기 어렵다”고 강조했다. 이러한 그의 성품은 평소 너그러웠던 부친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부친 시중쉰은 ‘자기가 하기 싫은 일을 남에게 강요하지 마라(己所不欲 勿施于人)’는 공자 말씀을 자녀들에게 귀가 따갑도록 반복해 교육했다.

이는 같은 태자당 소속으로 현재 충칭(重慶)시 서기인 보시라이(薄熙來·61)와 크게 비교된다. 보 서기는 지나치게 자기중심적이고 걸핏하면 부하들에게 화를 내고 상사와는 공명(功名)을 다투기로 유명했다. 다롄(大連)시장 시절 그는 차오바이춘(曹伯純) 서기와 물과 불처럼 화합하지 못했고, 랴오닝성장 시절엔 원스전(聞世震) 성 서기와 관계가 좋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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