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춘추전국시대의 손자병법이 여전히 유효하듯, 알렉산더 대왕의 영토확장 전략 역시 21세기 기업가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최근 아시아 지역 20여 개 기업의 최고 전략 책임자를 인터뷰한 결과, 아시아 기업들의 공통 화두는 여전히 ‘어떻게 하면 성장을 이어갈 수 있을 것인가’인 것으로 드러났다. 그런데 성공적인 성장궤적을 그려온 기업에는 공통점이 하나 있다. 자신들이 영위하는 영역과 거리가 먼 새로운 영역으로 끊임없이 진출했다는 것이다.
새로운 영역 끊임없이 진출
맥킨지가 아시아 지역의 성장을 이끌어온 한국·중국·인도의 매출액 기준 각각 상위 10대 기업군을 대상으로 2000년 이후 지금까지 신사업 진출과 성장에 대해 조사해보았다. 아시아 기업들의 신사업 진출과 성장의 상관관계를 데이터 기반으로 분석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한국의 삼성과 현대자동차·LG, 인도의 릴라이언스(Reliance),·타타(TATA) 등 두 나라의 10대 대기업이 모두 조사대상이며, 중국의 경우 매출 상위 기업군 대부분이 공기업인데, 중국 공기업의 경우 강력한 정부의 의사결정 및 지원을 통해 신사업이 결정되고, 추진되기 때문에 일반 민영기업과 같은 기준으로 성공과 실패를 판정하고 분석하기에 적절치 않으므로 공기업을 제외한 15개 민영기업을 조사대상으로 삼았다. 레노보와 하이얼, 푸싱(Fosun) 등 중국 대표 민영기업이 포함됐다.
이 기간 조사대상 각 기업군은 적어도 평균적으로 3년마다 2개의 대규모 신사업에 진출했다. 이건 대외적으로 알려진 대규모 신사업의 경우에만 포함된 것이며 알려지지 않은 사례까지 더하면 1년에 한 번 이상꼴로 신사업 문을 두드리고 있다고 봐야 한다.
국가도 다르고, 문화도 다르고, 기업 토양도 다르지만 이런 신사업 진출 노력의 결과는 동일했다. 이들 30개 기업군의 2000년 매출을 100으로 보았을 때, 2011년 매출은 270에 달했다. 3배 가까이 성장한 것이다. 놀라운 것은 이 가운데 신규 사업 진출로 얻은 성장 규모가 기존의 사업군에서 창출된 성장 규모의 두 배에 달한다는 것이다. 당연히 신사업 진출을 성공적으로 수행한 기업들의 기업 성장률은 그렇지 않은 기업에 비해 월등히 높았다. 신규 사업 확장이 기업의 신성장동력을 만드는 효자 노릇을 톡톡히 한 셈이다.
여기에서 눈여겨볼 점이 하나 있다. 기업들의 신사업 진출이 이른바 ‘스텝 아웃(Step Out)’의 형태를 취할수록 성장에 대한 임팩트가 크다는 것이다. 신사업 진출분야는 기존 사업과의 연관 관계에 따라, ‘인접 영역으로의 신사업 진출(adjacent)’ ‘가치사슬 확장 차원에서의 신사업 진출(value chain expansion)’ 그리고 기존 사업과의 연관성이 떨어지는 ‘스텝 아웃 ’의 세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다.
분석 결과, 놀랍게도 ‘스텝 아웃’ 전략은 성장에 대한 공헌도 측면에서 ‘인접 영역으로의 신사업 진출’이나 ‘가치사슬확장 차원에서의 신사업 진출’에 비해 무려 4배가 높았다. 기존의 사업과 연결된 안전한 지역(safety zone)에서 벗어나 완전히 새로운 사업 영역으로 뛰어들어 성공할수록 그 과실이 훨씬 크다는 것이다.
이는 흥미로운 결과가 아닐 수 없다. 보통 기업들은 투자 부담 및 기타 리스크 부담으로 인해 아예 성격이 다른 신사업 개척에 소극적인 것이 상식이다. 그렇기 때문에 대부분의 기업이 기존 사업을 확장하는 현실적 길을 선택한다. 하지만 이 선택으로는 혁신적인 발전이 어렵다. 담장을 넘어 새로운 영토로 뛰어드는 것과, 담장을 조금 보수해 영토를 넓혀가는 것의 차이다. 전자가 후자보다 어렵고 위험함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하지만 글로벌시대 총성 없는 치열한 기업 간 전쟁터에서 지속적인 고성장을 추구하는 기업한테 그다지 권하고 싶은 전략은 못 된다.

그렇다면 기업들은 구체적으로 어떤 전략을 세워야 신사업 성공 확률을 높일 수 있을까? 신사업 진출은 기업의 입장에서는 일종의 긴 여행이다. 모든 성공적인 여행이 그렇듯 △어디로 갈 것인가 하는 목적지 (신사업 분야) △목적지까지의 여정 (신사업 추진 방법) △목적지까지 운전을 책임지는 드라이버 (신사업 추진 체계)의 삼박자가 잘 맞아야 한다.
먼저 목적지(신사업 분야). 신사업이 많은 이익을 가져다준다고 해서, 남들이 다 관심을 갖는 유망한 분야로만 무턱대고 눈을 돌리는 것은 실패를 자초하는 길이다. 신재생에너지 사업의 경우 위에서 언급한 대로 무수한 기업이 진출했지만, 아직 시장수요가 확보되지 못한 상황에서 충분한 기술과 자금력을 갖지 못한 기업들은 벌써 퇴출 위기를 맞고 있다. 태양광 업체인 유럽의 큐셀(Q-Cell), 솔론(Solon), 미국의 에버그린(Evergreen), 솔린드라(Solyndra) 등은 이미 파산 상태이며 해상풍력 업체인 유럽의 바드(Bard)는 매각 진행 중이다.
먼저 스텝 아웃 분야라도, 기존 포트폴리오로부터 축적된 2~3개의 역량(특수한 기술 역량, 고객기반, 채널 네트워크, 운영 능력 등) 및 노하우를 활용해 이를 지렛대로 삼을 수 있는 분야로 신사업 영역(Portfolio theme)을 정의해야 한다. 현대차그룹의 경우 완성자동차 사업(OEM)을 중심으로 자동차 제조(Automotive manufacturing)와 자동차 서비스(Automotive service)가 세 개의 큰 신사업 영역이다. 자동차 제조의 경우 현대모비스를 중심으로 각종 자동차 부품 사업과, 현대제철을 중심으로 한 철강 관련 산업이 포함되며 자동차 서비스의 경우 현대카드와 캐피털·증권 등의 파이낸스 사업, 현대글로비스 중심의 로지스틱스 사업이 포함된다.
현대차가 위에 언급한 분야에 진출해 성공할 수 있었던 기저에는 ‘현대차의 강력한 운영 능력’이 있다. 해외의 경쟁 자동차 업체들이 사업의 복잡성을 줄이기 위해 관련 사업을 대부분 아웃소싱할 때, 현대차는 이러한 복잡성을 극복하고 오히려 활용할 수 있는 운영 능력이 있었다. 이를 이용해 현대차는 사업 내용적으로는 상이한 스텝 아웃이나 가치사슬 확장 성격의 신사업으로 진출해 시너지를 창출했고 결국 완성차 사업과 진출 신사업이 같이 성장하는 성공을 거둔 것이다.
현대차그룹의 2011년 매출은 160조 원 정도로 2001년 대비 무려 세배나 뛰어올랐다. 하지만 기존 핵심사업인 완성차 매출이 전체 그룹 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같은 기간 80%에서 50% 정도로 줄었다. 완성차 부문에서 품질 경영을 바탕으로 눈부신 성장을 거두었지만, 이보다 더 많은 성장이 신사업의 성공으로부터 나왔다는 얘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