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민자 1호 인천공항고속도로…예측 대비 통행량은 절반 불과
- 민자 사업자 처벌? “2008년 이후부터…”
- 평균 건설단가 높이고 하도급업체 후려치기로 ‘가욋돈’
- 2000년 이후 체결 민자역사 6곳 중 1곳만 문 열어
- “경영상 비밀” 정보 공개 꺼리는 국토해양부
이 논란의 핵심은 메트로9호선이 민간 투자 자본으로 만들어진 데 있다. 2002년 서울시는 지하철 9호선을 민간 투자를 받아 건설하기로 계획했다. 당시 서울시는 “민간 투자를 활성화하고 정부 및 시 예산을 절감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하지만 지하철 9호선은 2009년 개통 이후 예상 이용 인원을 채우지 못하며 적자의 늪에 빠졌다. 이에 서울시는 2009년부터 3년간 협약 당시 체결한 최소수입운영보장제(MRG)에 따라 메트로9호선에 710억 원 이상을 배상했다. 그럼에도 메트로9호선 측은 “누적 적자로 완전 자본잠식 상태에 이르렀다”며 요금 인상을 주장하고 있다.
지난해 6월 감사원 조사에 따르면 2001년부터 2009년까지 29개 적자 민자 사업에 보전금으로 투입된 세금은 총 2조2000억 원. 감사원은 또 지금 추세라면 2040년까지 18조8000억 원이 추가로 들 것으로 전망했다.
‘민간 투자 활성화’와 ‘예산 절감’이라는 미명으로 시행된 민간 투자는 ‘빛 좋은 개살구’에 불과한가? 현재 운영 중인 민자고속도로 9곳과 한국철도공사가 추진한 민자역사 19곳의 실시협약서 등을 분석한 결과 모든 민자 사업에서 예측량 부풀리기와 마구잡이 사업자 선정으로 막대한 혈세가 낭비된 것이 드러났다.
부산울산고속도로 통행량, 예측량의 절반 못미처
2004년 인천공항고속도로 요금 인하를 요구하는 시위가 벌어졌다.
통행량이 예측량보다 적어도 운영사는 손실을 보지 않는다. 이들 민자고속도로 9곳은 모두 정부와 최소수입운영보장제 협약을 맺었기 때문이다. 예측 수요에 비해 실제 통행량이 적어 운영사가 적자를 보면, 정부가 전년도 통행량을 기준으로 추정 수입의 80~90%를 보전해주는 것. 정부가 지난해 9개 민자고속도로에 지급한 운영손실보전금은 2800여억 원에 달했다.
대표적인 사례가 ‘민자 사업 1호’ 인천공항고속도로다. 국토해양부는 2000년 12월 신공항하이웨이㈜와 ‘민간투자시설사업 실시협약’을 체결했는데 이 협약에 따르면 국토해양부는 2000년 12월부터 2030년 12월까지, 총 30년 운영기간 중 20년 동안 실제 교통량이 협약상 예측 교통량보다 미달돼 민자 사업자의 운영수입이 감소하는 경우, 추정 운영수입의 80%를 정부가 보전하기로 약속했다. 이 때문에 국토해양부는 2001년부터 10년간 신공항하이웨이 측에 9076억 원을 보전해줬다.
예상보다 이용객이 적은 만큼 실제 이 도로를 관리 운영하는 도로보수비, 인건비 등 비용도 절감됐지만 통행량 감소로 인한 운영상 이득은 민간 운영사 몫이었다. 인천공항고속도로의 경우 2001년부터 9년간 실제 운영비용은 1조1971억 원으로 2000년 실시협약 당시 추정했던 비용(1조3881억 원)보다 1910억 원 적게 발생했다.
민자고속도로의 실제 통행량이 예상보다 적은 것은 협약 체결 당시 예측량이 부풀려졌기 때문이다. 사업에 참여하는 민간 사업자는 협정 전에 수요 예측치를 정부에 제출해야 한다. 서울시립대 교통공학과 한 교수는 “민간 사업자로서는 최소수입운영보장제가 명시돼 있으므로 수요를 많이 추정하면 그만큼 보상을 많이 받는다”고 말했다. 그는 또 “정부는 협약 체결 당시 ‘민간에서 투자할 정도로 경제성이 있다’고 주장할 근거가 있어야 하기 때문에 민간 사업자가 부풀린 예측을 면밀히 분석하지 않았다. 또한 실제 보전금 지급은 협약 체결로부터 최소 5년 이후니 안일하게 대처했던 것”이라고 꼬집었다.
민간 시공자 선정 과정에서도 허점이 드러났다. 국가 재정으로 건설하는 고속도로는 입찰을 통해 시공자를 선정한다. 최저가 낙찰제로 진행되는 가격경쟁입찰의 경우 당초 사업자가 제시한 공사비의 55~60%에서 결정되고 턴키·대안입찰의 경우도 85~95% 선에서 공사비가 형성된다. 하지만 9곳 민자고속도로의 경우 정부가 민자 사업제안자가 작성 제시한 사업비를 검증 없이 바로 수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때문에 민자고속도로의 공사비는 재정 고속도로에 비해 공사비가 높게 책정됐다. 국회 예산정책처에 따르면 인천공항고속도로 등 민자고속도로 4곳의 1㎞당 평균 건설단가는 220.1억 원으로 대전진주고속도로 등 재정 고속도로 5곳의 평균(157.1억원)보다 40% 이상 높았다.
서울춘천고속도로 실제 민자는 14%에 불과
또한 일반 국책 사업의 경우 한 사업자가 단독 입찰할 경우 자동 유찰되지만 민자 사업은 경쟁이 없는 상태에서 수의계약이 가능하다. 즉 민자 사업에 뛰어드는 민간 시공자는 정부와 협상만 잘하면 높은 공사비를 받아낼 수 있었던 것. 정부가 공사비가 부풀려지도록 방조했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는 이유다.
민자 사업권을 따낸 업체는 직접 시공을 하지 않는다. 대신 모든 공사를 하도급업체에 맡긴다. 대구부산고속도로의 경우 시공사인 현대산업개발 등은 시공을 중소 건설업체에 맡겼는데 이 과정에서 ‘하도급업체 후려치기’를 통해 별도 수익을 얻은 것으로 드러났다. 대구부산고속도로 공사비 명세서에 따르면 협약 당시 토사운반 작업의 원가는 ㎥당 3300원으로 잡혔지만, 실제 하도급업체에는 ㎥당 2900원만 지급했다. 이런 식으로 시공사는 직접공사비에서만 4200억 원을 챙겼다.
민자고속도로는 100% 민간 자본으로만 지어진 것이 아니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의 분석에 따르면 서울춘천고속도로의 경우 민자 사업으로 진행됐지만 정부가 전체 비용의 85.6%를 직·간접적으로 투자했다. 국토해양부가 체결한 실시협약서에 따르면 서울춘천고속도로 건설 당시 정부는 총 건설비 2조2537억 원 중 42.5%인 9585억 원을 무상 지원했고 9714억 원을 정부 금융 지원했다. 전체 비용의 85.6%인 1조9299억 원을 정부가 직·간접적으로 투자한 것. 반면 민간 사업자가 투입한 자금은 전체 사업비용의 14.4%인 3238억 원에 불과했다.
보통 정부는 민자고속도로 건설 사업에서 총사업비 중 30% 남짓을 재정 지원한다. 이는 공사비 부담을 줄여 통행료가 비싸지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하지만 현재 9곳 민자고속도로의 통행료는 재정 고속도로 요금 대비 2~3배 높은 수준이다. 정부가 돈은 쓸 대로 쓰고 실속은 차리지 못했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는 대목이다.
민간 사업자의 예측이 잘못돼 막대한 손실이 발생했지만 책임지는 사람이 없다. 국토해양부는 “‘건설기술관리법’ 제41조의 3에 의거 잘못된 수요예측 기관에 대해서 처벌하겠다”고 밝혔으나, 이 조항 부칙에는 ‘2008년 1월 1일 이후 조사한 용역에 대해서부터 적용한다’고 돼 있다. 즉 기존에 용역을 시행했던 민자고속도로 9곳의 시행사는 어떠한 민형사상 책임도 지지 않는 것이다.
투명한 정보 공개가 우선돼야
민자고속도로만큼 빈틈을 안고 있는 사업이 바로 민자역사다. 한국철도공사는 민간 자본을 유치해 노후하고 좁은 역사를 바꾸는 동시에, 역사를 쇼핑과 문화의 복합 기능을 갖춘 공간으로 바꾸겠다며 1980년대 후반부터 민자역사 사업을 추진했다. 민자역사 사업을 통해 민간 사업자는 기본적인 유동인구를 바탕으로 수익을 올리고, 한국철도공사는 저비용으로 역사를 리모델링하는 동시에 임대수익까지 올릴 것으로 기대됐다.
하지만 한국철도공사가 꿈꾸던 ‘장밋빛 미래’는 현실화되지 않았다. 한국철도공사가 전국에 투자한 민자역사 19곳 중 6곳 역사는 운영을 시작하기도 전에 엎어질 위기에 몰렸고 영업 중인 13곳 중 4곳은 적자를 면치 못하고 있다. 한국철도공사는 1986년부터 민자역사 18개 회사(롯데역사는 2개 민자역사 운영)에 619억1200만 원을 출자했지만 현재 운영 중인 13개 역사 중 6개 회사에서 배당금을 전혀 못 받고 있다. 그나마 받은 누적배당금 309억 원 중 약 179억 원은 영등포역과 대구역에서 민자역사를 운영 중인 롯데역사에서 발생한 것이다. 특히 2000년 이후 협약을 맺은 민자역사 6곳 중 현재 운영 중인 곳은 청량리역사 단 한 곳뿐이고 나머지 5곳은 사업 시작조차 못했다.
5월 5일 천안시는 결국 천안민자역사 건축허가를 취소했다. 천안민자역사는 2007년 11월 건축허가가 나 2009년 11월 30일 착공신고를 했지만 경기침체와 자금난으로 실제 착공은 이뤄지지 않았다. 시행사인 천안역사㈜와 사업주관사인 ㈜신한은 건축허가 취소를 유보해달라고 주장하지만 천안시는 “규모가 크고 신뢰할 만한 회사가 민자역사 사업을 다시 추진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한편 2008년부터 3년간 천안역사의 사업 지연 및 보상 과정에서 발생한 손실액은 21억여 원에 달할 것으로 추정된다.
노량진민자역사 역시 사업추진협약이 취소되면서 도시의 흉물로 방치되고 있다. 지난해 10월 법원으로부터 파산선고를 받아 사실상 청산된 노량진역사는 착공에 앞서 불법분양을 추진한데다가 사업자가 분양 계약금과 중도금을 횡령한 혐의까지 드러났다. 한국철도공사가 노량진역사 사업추진 협약 취소를 통보하자 노량진민자역사 투자자들은 한국철도공사에 60억 원대의 집단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그나마 2006년 문을 연 신촌민자역사의 수익은 시원치 않다. 신촌민자역사의 지난해 매출은 67억 원으로, 지하철 2호선에 근접하고 이대, 신촌, 홍대 등에 인접해 유동인구가 많은 데 비해 기대에 크게 못 미치는 수준이다. 역사 내에 지어진 신촌 밀리오레 점포 상당수는 여전히 비어 있는 상태다. 비교적 좋은 실적을 낸 영등포역, 대구역, 용산역 등은 민자역사 자체의 선전이라기보다는 롯데, 아이파크, 한화 등 대기업 특정 브랜드가 영향력을 발휘한 것으로 분석된다.
이 같은 민자 사업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다양한 방법이 제시되고 있지만, 그중 가장 기본적인 것은 투명한 정보 공개다. 그런데 민자사업의 경우 실시협약서 및 공사비 명세서 등 정보가 잘 공개되지 않고 있다.
지난해 11월 대법원은 국토해양부에 “인천국제공항고속도로 실시협약서 및 공사비 명세서 등 정보를 공개하라”고 판결했다. 그간 국토해양부는 시민단체 등의 인천공항고속도로 관련 정보 공개 요청에 대해 ‘경영상의 비밀’을 근거로 거부해왔다. 대법원은 판결문을 통해 “국민의 알 권리를 충족시키고, 나아가 사회간접시설 확충·운영에 관한 정책에 대한 국민의 참여와 그 운영의 투명성을 확보해야 한다”고 밝혔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관계자는 “상당수 민자 사업이 협약내용에 비밀유지 조항을 넣고 정보가 유출됐을 때 손해배상 책임까지 묻는 등 사업추진과정을 숨기고 있다”며 “사기업도 분기별로 인터넷에 정보를 공개하는 시대에 세금이 투입되는 민자 사업의 정보를 시민에게 공개하지 않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비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