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1년 통합 농협 출범 당시의 모토는 ‘농업인의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지위 향상과 국민경제의 균형발전을 위한 자주적 협동조직이 된다’는 것. 반세기 동안 온갖 파란의 역사를 경험한 농협은 이제 농업인에게 새로운 미래를 보여줘야 할 상황을 맞았다.
지난해 3월 농협이 신용사업과 경제사업의 분리를 통해 조직의 효율화를 도모한 것도 현재의 구조로는 효율적인 사업 수행이 어렵다는 데 대내외적 공감대가 형성됐기 때문이었다. 특히 신용사업(금융) 위주의 사업 운영은 농협 설립의 본래 취지에 어긋난다는 질책을 받았다. 그래서 정부와 농협은 농협법 개정을 통해 경제사업(유통·가공) 활성화를 위한 법적 기틀을 마련하고 새 출발을 다짐했다.
농협은 농축산물의 유통구조를 혁신하고 품질의 안전성과 균일성을 확보하는 핵심적 키워드를 연합사업과 공동브랜드 사업에서 찾는다. 연합사업은 공선출하회, 도매사업단 또는 공동브랜드 등의 운영을 통해 농업인의 소득을 늘리고 전문성을 확보할 수 있는 유통방식이다. 즉 농업인 개인 또는 해당 지역의 농·축협이 생산과 판매를 모두 담당하던 기존 관행을 탈피해 농업인은 주어진 매뉴얼에 따라 생산에만 전념하고 농협중앙회와 해당 지역의 농·축협이 연합해 만든 연합사업단이 마케팅 및 판매를 전담하는 체계를 가리킨다.
최원병 농협중앙회 회장은 “농협은 지난해 경제사업 활성화를 통해 농업인의 삶의 질 향상과 국가와 지역사회 발전에 더 많은 기여를 하기 위해 사업구조 개편을 단행했다”며 “앞으로 경제사업에 대한 투자를 확대해 경쟁력을 제고하고 명실상부한 판매농협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과연 농협은 농업인의 믿음 속에 ‘함께 성장하는 글로벌 협동조합’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을까. 여기에 연합사업과 공동브랜드 사업을 통해 농협과 함께 성장하는 ‘부자 농업인’의 사례를 소개한다.
“농사는 함께 해야 돈 버는 사업”
서석오이공선출하회 / 이학윤 회장
♥ 강원도 홍천군 서석면에서 20년째 오이 농사를 짓고 있는 이학윤(50) 서석오이공선출하회장(서석농협 유통이사)은 연합사업과 공선출하에서 전국적 성공사례이자 모범사례로 꼽힌다. 강원연합사업단(2001년 출범) 서석농협 산하에는 오이, 호박, 고추, 토마토 등 4개 품목 공선출하회가 속해 있다. 총 회원은 125개 농가. 이 회장은 2009년 오이공선출하회를 조직해 회장직을 맡고 있으며 현재 37개 농가가 참여하고 있다. 설립된 해는 2006년이지만 틀이 제대로 잡힌 것은 서석농협에 공동선별 작업장(APC·산지유통센터)이 들어선 2009년이었다.
서석농협 오이공선출하회의 오이는 대형 유통 마트에서 강원연합사업단의 오이 브랜드인 ‘맑은 청 오이’ 상표를 달고 소포장 단위로 팔린다. 출하회 회원 농가가 선별장에 오이를 출하하면 연합사업단이 등급을 매겨 포장을 하고 대형마트와 단가 협상을 거쳐 매대에 올린다. 경매와 도매 같은 중간 유통단계가 없으니 제품이 신선하고 품질이 좋다. 당연히 농민의 손에 들어오는 실소득은 많아지고 농가 부채는 줄어든다.
실제 서석 오이의 품질은 전국적으로 유명해 대형마트에서 명품 대접을 받는다. 출하시기가 되면 ‘홍천 오이 입고’ 플래카드가 각 마트에 걸릴 정도. 농림수산식품부의 우수농산물 인증제도인 GAP도 받았다. 이 회장은 서석농협 오이가 이처럼 최상품 대우를 받는 이유를 공선출하에서 찾는다.
“일반 농가가 좋은 것과 나쁜 것을 구별하게 되면 아무래도 사심이 들어가 품질이 떨어지죠. 숙련된 선별사가 선별을 맡으면 객관적이고 제대로 선별하므로 품질이 균일하게 나오죠. 소비자는 항상 같은 품질의 오이를 먹을 수 있으니 신뢰를 가집니다. 농협이 중간 유통단계 없이 마트와 협상을 하니 가격 등락폭이 적죠. 경매와 도매를 거치는 일반 농가와 수취 단가를 비교하면 우리가 30% 정도 더 나옵니다. 소비자도 중간유통 마진이 없어지니 그만큼 이익이고요.”
오이공선출하회도 초기 3년간은 어려움이 많았다. 출하는 같이 했지만 소득 정산은 개별로 했기 때문이다. 2009년부터 공동생산, 공동출하, 공동정산이 확실하게 이뤄지면서 매출이 급격하게 늘어나기 시작했다. 2009년 10억 원이던 매출액이 2010년 18억 원, 2011년 23억 원으로 급증했다. 지난해 오이공선출하회 농가 가운데 매출액 1억 원 이상 농가는 4가구. 서석농협 전체로는 1억 원 이상 매출을 올린 농가가 15가구였는데 이 중 10가구가 공선출하회 회원이었다.
서석농협 오이공선출하회에는 공동생산, 공동출하, 공동정산의 3공(共) 원칙 외에 3무(無) 원칙이란 게 있다. 어느 곳에 출하하고 언제 출하하는지, 얼마를 받는지 농협에 따지지도 묻지도 않는다는 것이다. 그만큼 농민들이 농협을 신뢰한다는 증거다.
“우리는 농협 유통직원을 100% 신뢰합니다. 저희는 생산에만 전념하고 상품화와 판매는 농협이 전담하죠. APC 건물에 오이가 입고되는 순간 농민의 오이가 아니고 서석농협의 오이 ‘맑은 청’ 오이가 되는 거죠.”
공선출하가 자리 잡고 회원 농가의 소득이 30~40%가량 늘자 공선출하회에 참여하려는 일반 농가가 줄을 잇고 있다. 문제는 공동선별 작업장 APC 건물이 포화상태라 회원을 더 받고 싶어도 받을 수 없다는 점. 이에 농림부와 농협, 지방자치단체가 24억 원가량을 부담해 400평(약 1320㎡) 부지의 APC 건물을 내년까지 신축하기로 했다.
“APC 건물이 신축되면 서석농협 산하 전체 농가의 70~80%가 공선출하회에 흡수됩니다. 그러면 규모의 경제 원칙이 작용해 비용은 줄어들고 농협의 단가 협상력은 높아져 농가는 더 많은 소득을, 소비자는 하이 레벨의 품질과 가격 인하의 혜택을 누리겠죠.”
오이의 발육상태를 확인하는 이학윤 회장
이 회장은 미국, 유럽연합, 칠레 등과의 자유무역협정(FTA)이 발효되고 소비자의 취향이 갈수록 까다로워진 현실 속에서 농민이 살아남는 방법은 “기술개발에 의한 품질 향상뿐”이라고 말한다. 그러기 위해선 “농민들이 연합사업을 통해 반드시 뭉쳐야만 한다”고 밝혔다.
“개별로 농사를 지으면 좋은 기술이 있어도 안 나누게 됩니다. 서로 출혈 경쟁만 하게 되죠. 처음에는 누구나 더 비싼 값에 팔 수 있을 것 같죠. 한 번은 될지 몰라도 오래 못 버팁니다. 좋은 기술이 있으면 서로 나눠야 발전하죠. 까다로워진 소비자를 만족시키기 위해선 가격을 낮추고 품질을 높여야 합니다. 혼자 해서는 경쟁에서 절대 이길 수 없습니다.”
이와 관련해 김수공 농협중앙회 경제대표이사는 “연합사업은 농협 사업구조개편의 핵심으로 산지유통 주체를 규모화·전문화해 소비지에 안정적인 농산물 공급체계를 구축하면서 농업인의 소득을 올릴 수 있는 사업이다. 연합사업의 성공은 농협 본연의 경제사업 활성화에 직결되는 매우 중요한 과제”라고 말했다.
연합사업의 힘, 딸기의 변신은 무죄
‘첫눈에 반한 딸기’ 작목회 / 강호생 회장
‘첫눈에 반한 딸기 작목회’ 강호생 회장
1998년 ‘수출딸기작목회’로 시작한 작목회는 1999년 전국 최초로 공동선별, 공동출하, 공동정산을 시작했다. 공동선별장 APC는 2000년 회원들의 주머닛돈으로 만들어졌다. 이곳에서 20년 이상 딸기 농사를 지어온 강호생(58) 작목회 회장은 “작목회의 슬로건은 ‘농산물을 공산품처럼’이다. 당시만 해도 공동선별을 하는 곳은 단 한 곳도 없었다. 속박이가 많아 품질이 들쭉날쭉한 상품이 나올 때 우린 공동선별을 통해 딸기 품질의 균일화를 이뤄냈다. 당연히 다른 지역 딸기와 차별될 수밖에 없었다”고 말한다.
시작부터 수출딸기작목회는 이름값을 톡톡히 했다. 공동출하 방식을 통해 높아진 품질은 ‘딸기왕국’인 일본에서도 인정받았다. 공동출하를 시작한 1999년 12월, 10만 달러 수출탑을 받은 것을 시작으로 2000년 12월에는 농산물 수출 50만 달러 수출탑을 수상했다. 당시 작목회 회원 전원이 친환경 농산물, 저농약 품질인증을 획득한 게 주효했다.
그러나 일본 수출은 종자에 대한 로열티 분쟁이 벌어지면서 주춤하기 시작했다. 강 회장은 “당시 박동문 회장이 (로열티 분쟁 때문에) 일본에서 재판까지 받았다. 그 일을 계기로 종자를 국산 종자인 매향과 설향으로 바꿨다. 수출 판로도 대만과 동남아로 다변화했다. 그때 고민 끝에 나온 상품이 그 유명한 ‘아이스 딸기’”라고 밝혔다.
사실 작목회의 현재가 있기까지는 박동문 초대 회장의 노력과 헌신이 컸다. 그는 1998년 작목회를 만든 뒤 10여 년간 회를 이끌었다. 박 초대 회장은 “신선 딸기를 공동선별하면 특·상·중품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는 하품이 25~30%가량 나온다. 이걸 주스를 해먹을 수 있도록 냉동상품으로 내놨는데 대박이 터졌다”고 말했다.
냉동 딸기는 2003년 4월 500t 일본 수출계약이 이뤄졌고, 그해 ‘아이스 딸기’로 이름을 바꿔 17t을 다른 지역으로 수출하고 국내에도 70t을 파는 기염을 토했다. 3960㎡(1200평) 규모의 ‘콜드체인 시스템’을 갖춘 공장도 이때 만들었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 중국의 저가 카피 제품과의 경쟁에서 밀려 수출이 다시 멈칫했다. 국내에서도 경쟁 상품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강 회장은 “품질과 소득 규모로는 첫 공동출하를 시작한 우리를 따라올 순 없었지만 우리로서도 뭔가 특별한 게 필요했다. 그래서 신선 딸기 세척시스템과 아이스 딸기 중간에 구멍을 내는 타공 시스템에 대해 특허를 냈다”고 말했다.
이렇게 해서 나온 상품이 딸기의 중앙에 구멍을 뚫어 연유(크림)를 넣고 초콜릿을 입힌 ‘초코딸기’였다. 이 제품은 조만간 학교 급식으로도 납품될 계획이다. 아이스 딸기도 전국 최초였지만 딸기에 크림을 넣고 초콜릿을 묻혀 상품화한 것은 지금까지 유일무이하다. 강 회장은 당시의 상황을 이렇게 설명했다.
“경쟁에서 뒤처지지 않기 위해 작목회 농가가 모두 우수농산물 관리제도인 GAP 인증을 받고 공동선과장도 APC 인증을 받았지요.(2006년 12월) 그랬더니 전국에서 견학을 하러 왔어요. 그래서 2007년에는 딸기 체험장도 만들었습니다.”
신선 딸기 세척 작업을 하는 ‘첫눈에 반한 딸기 작목회’ 회원들
딸기작목회의 도전은 현재진행형이다. 최근에는 일본에서 벤치마킹한 고설(高設)재배의 시범포 운영을 끝마치고 내년부터 15개 농가(하우스 50동)가 전략 수출 작목반을 새롭게 구성키로 했다. 고설재배 하우스 시설은 농협과 농림부가 행정적, 금전적 지원을 하기로 했다. 강호동 율곡농협 조합장(한국딸기생산자 대표조직 회장)은 “고설재배는 영양제, 물, 온도조절이 모두 자동화돼 있어 비용은 50% 절감되는 반면 생산량은 30% 증가한다. FTA에 대응해 지속적인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한 차원이다. 한국 딸기사업의 미래는 고설재배에 달렸다”고 말했다.
“농사는 규모와의 전쟁”
송포농협 한마음작목반 총무 / 양중모 씨
♥ 요즘 농촌에서 젊은 사람 보기 드물다고 하지만 정작 도시 근교인 경기도 일산과 파주지역에는 5만㎡(약 1만5000평)에 가까운 하우스 채소 농사를 짓는 젊은 농군이 있다. 불혹(不惑)의 나이도 넘기지 않은 양중모(39) 씨가 그 주인공이다. 양 씨는 70동이 넘는 하우스에서 계절에 맞는 싱싱한 엽채류와 나물류를 생산해 전량 농협중앙회 도매사업단을 통해 하나로마트에 공급한다.
“20대 초반 군 제대 후 아버지를 따라 부추 농사를 지었는데 가격이 폭락해 작업비도 안 나왔습니다. 알고 보니 수집상과 도매시장 중매인이 폭리를 취하고 있더군요. 불합리한 유통구조를 제 힘으로 바꿔보고 싶었습니다.”
양 씨는 IMF 외환위기가 한창이던 1998년 아버지 농장 5940㎡(1800평)를 물려받아 농사를 시작했지만 14년째인 올해 그 면적은 9배 가까이 늘어났다. 지난해 침수돼 잠시 농사를 포기한 1만2000㎡(약 3700평)를 포함하면 딱 10배가 불어난 셈이다. 양 씨는 정확하게 말해 농군이 아니라 농업 유통인이다. 농업유통사 자격도 있다. 파종과 농약, 비료 주는 일은 직접 하지만 나머지는 12명의 농장 직원이 모두 알아서 한다. 직원들의 한 달 월급은 웬만한 중소기업 직원 월급을 상회한다. 모든 시설이 자동화돼 이 인력으로도 충분히 5만㎡를 감당할 수 있다는 게 양 씨의 설명이다.
양 씨의 농장에서 생산된 농산물은 송포농협 한마음작목반(반장 박세현) 소속 농가 10가구의 것과 합쳐져 도매사업단에 공급되는데 수취 가격은 시세에 따라 달라지지만 최하 가격과 최고 가격이 정해져 있어 등락폭이 그렇게 크지 않다. 따라서 농가는 농산물 가격 폭락 때 피해를 그만큼 줄일 수 있다.
“저희 농장 농산물은 90% 이상이 특상중하 등급 중에 특과 상등급을 받습니다. 나머지 등급의 것은 아예 도매사업단에 넘기지도 않습니다. 품질 균일화와 신뢰가 생명이니까요. 경매인이나 중도매인이 유통단계에 끼면 가격 등락폭이 너무 심해 농사 못 짓습니다. 경매가격이 폭락할 때도 그렇게 큰 손해를 보지 않죠. 폭등할 때는 약간의 손해를 보지만 1년 평균치를 내면 도매사업단 직거래가 30~40% 이상 가격이 좋습니다. 하지만 많은 소득을 얻기 위해선 무엇보다 농사 규모가 커야 합니다. 이제 농사는 규모와의 전쟁입니다.”
양 씨는 얼마나 버느냐는 질문에 “직장인보다는 낫다”는 말로 답을 대신했다.
“만약 큰 부자가 되길 원하지 않는다면 농사를 지으라고 젊은 층에게 권하고 싶습니다. 단 농사에 대한 철학이 있고 장인정신이 있는 농군이 된다는 전제하에서 말입니다.”
“한우 공동브랜드가 소 부자 만들었어요”
영암축협 선산농장 / 임정균 대표
선산농장 임정균 대표와 아들 종석 씨
임 대표가 축산에 뛰어든 것은 스물다섯 살 때인 1983년, 농어민 후계자 지정 지원자금 600만 원으로 구매한 한우 송아지 네 마리가 마중물이었다. 집 앞마당 헛간에서 키우던 한우의 수는 30년 만에 100배 이상 늘어났고, 총 자산 규모는 500배나 커졌다. 최근에는 조선대학교 사학과를 졸업한 아들 임종석(26) 씨도 “대를 이어 한우를 키우겠다”며 축산업에 뛰어들었다. 팍팍한 우리 농업 현실에선 참 보기 드문 일이지만 임 대표의 소득 규모를 보면 충분히 이해가 가는 선택이다.
“평균 500~600두를 키웠는데 전국적인 구제역 발생으로 소비가 둔화되면서 사육 두수를 그나마 줄인 거예요. 저희는 다른 사람을 안 씁니다. 저와 아내, 아들 3명이 소를 키우는데도 일손이 부족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습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 그 넓은 축사에서 450두의 소를 키우는데 3명의 가족으로 충분하다니. 그 비법은 자동화에 있었다. 임 대표의 농장 축사 전체에는 사료공급 자동화시스템이 구축돼 있어 사료 차가 와서 사료를 부으면 정해진 시간에 11개 라인으로 사료가 알아서 공급된다. 물도 마찬가지. 소들은 그 시간에 맞춰 사료 라인 앞에 알아서 선다. 사료를 적게 자주 주는 게 소화를 돕고 육질이 좋아지기 때문에 하루에 4번씩 준다.
임 대표의 농장에는 ‘밖에서 굴러들어온 소’가 없다. 암소가 송아지를 낳으면 그 송아지가 커서 또 새끼를 낳고 하는 식이다. 소위 ‘일괄사육방식’을 택했기 때문에 소의 성병에 해당하는 브루셀라병이 임 대표의 농장에선 발생하지 않는다. 암소는 번식용으로 활용하고 수소는 6개월에 거세해 30개월이 되면 무조건 출하한다. 이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한우에 대한 이력이 관리된다. 어떤 암소에 어떤 수소의 정액이 쓰였는지까지 훤하게 나온다. 한우의 안전성이 확보되는 것이다.
임 대표가 소속된 영암축협 지역은 구제역 청정지역(전남)이다. 그는 구제역 이 돌지 않는 지금도 축사에 들어올 때 사람, 가축, 차량 가리지 않고 소독을 한다. 무항생제 인증도 받았고 한우의 안전성을 확보하기 위해 전문 컨설팅을 통해 HACCP(해썹) 인증도 받았다. 임 대표는 “FTA 등으로 이제 쇠고기 시장도 글로벌 경쟁을 피할 수 없게 된 상황에서 축산이 성공하려면 소비자로부터 신뢰를 받기 위한 안전성 확보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를 위해서라도 공부하는 과학적 영농이 절실하다”고 말한다.
임정균 대표가 사료 자동화 시스템을 점검하고 있다.
“잘 배합된 곡물사료를 하루에도 여러 번 먹여야 마블링이 좋아요. 방목을 하는 호주에서도 한국 수출 소에게는 수출 5개월 전부터는 곡물사료를 먹입니다. ‘녹색한우’ 곡물사료가 최고입니다.”
그래서일까. 최근에도 920㎏ 한우를 960만 원에 팔았다. 임 대표는 “IMF 외환위기 때 사료 가격 인상, 소 값 폭락 사태 등으로 어려움을 겪었지만 나의 축산 인생에 실패는 없었다”고 했다. 그는 축산의 성공 조건으로 안전성을 담보하는 과학적 영농과 규모화 외에 농협공동 한우브랜드 참여는 필수라고 조언한다. 그는 영암축협, 화순축협, 나주축협, 강진완도축협, 해남축협, 목포신안무안축협, 광주축협, 장성축협 등 전남 서부권 8개 축협이 공동 출자해 만든 광역 농협공동한우브랜드 ‘녹색한우’의 핵심멤버다.
“한우도 농산물처럼 공동출하와 공동계산을 하면 물류비용을 아끼고 회원 간 품질이 균일화되는 이점이 있어요. 중간 유통단계가 없어지니 가격 등락폭도 줄어 소득 안정화에도 기여합니다. 브랜드에 들어오면 속일 수가 없어요. 품질 관리가 철저하니까요. 브랜드 전용 사료를 먹이고 단계별로 사양관리를 해주니 안전하고 위생적이기도 하죠. 서로 노하우를 전수해줄 수 있어 고급육이 나오고 1등급 출현율이 높아집니다. 규모가 커지니 축산민들의 권익도 보호되죠. 1석10조쯤 됩니다. 나 혼자 잘 키우고 잘 팔 수 있는 시대는 지나도 한참 지났어요.”
지난 3월 임기를 채우고 영암한우협회 회장직에서 물러난 임 대표는 올해 ‘NH 축산대상’수상자로 선정됐다. 그는 “세계적 경쟁력을 가진 녹색한우 브랜드를 수출하는 게 꿈”이라며 “농협과 서로 도와 이 꿈을 이룰 수 있는 날이 조만간 찾아올 것”이라고 기대했다.
남성우 농협중앙회 축산경제대표이사는 “한우의 수출은 2014년 구제역 청정국 지위 확보 후 충분히 가능할 것으로 본다”며 “시장 개방이 가속화하는 상황에서 녹색한우와 같은 공동브랜드를 통해 고품질, 친환경 축산물을 위생적으로 저렴한 가격에 공급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