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6월호

소년, 반쯤 열린 문 안쪽의 세계

  • 함정임│소설가·동아대 문예창작과 교수 etrelajiham@empal.com

    입력2012-05-22 15: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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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년, 반쯤 열린 문 안쪽의 세계

    ‘너의 목소리가 들려’<br>김영하 지음, 문학동네, 282쪽, 1만2000원

    나는 잊지 않고 있다. 아름다운 소년 이야기 ‘보이(The Boy)’라는 화집을 처음 손에 넣었을 때의 기분을. 206개의 도판과 177개의 컬러 화보를 거느린 이 책을 뭐라고 불러야 할까. 이 책이 ‘보이-아름다운 소년’(새물결, 2004)이라는 제목으로 한국어로 번역 출간될 당시, 한국에서는 전무후무 ‘꽃남’들의 시대가 열리고 있었다. 그때까지 한국 사회에서는 소년의 존재, 더 이상 아이는 아니지만 아직 어른도 아닌 남자에 대해 주목하지 못했었다.



    소년이란 더 이상 아이는 아니지만, 그럼에도 아직 어른은 아닌 남자를 가리킨다. 소년기(boyhood)는 길 수도 있다. … 15년 혹은 심지어 20년이 될 수도 있다. 물론 이와 반대로 짧을 수도 있다. … 순식간에 지나가든 아니면 길고 점진적인 유도과정이든 소년기가 지나면 어른이 되어야 한다. - 저메인 그레이, ‘소년이란 무엇인가’(‘보이’ 수록) 중에서



    나는 김영하가 소년을 모델로 신작을 발표할 것이라는 소식을 듣고, 서가 깊숙이 꽂혀 있던 G. 그레이의 ‘보이’를 다시 꺼내볼 생각을 했다. 그 생각은 2년 전, 은희경이 소년들을 주인공으로 삼은 장편 ‘소년을 위로해줘’를 출간했을 때도 했으나, 생각에 그치고 말았다. 왜냐하면, 이 소년들, 정확히는 21세기 한국 소설가가 소설의 주인공으로 호명할 수밖에 없는 소년들은 G. 그레이가 수집하고 기록한 ‘가장 아름다운 한때로서의 소년의 역사’에는 누락되었거나 제외된 존재들일 것이라 예감했기 때문이었다.



    한국에서 소년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한 인간의 일생 중에 거치는 보편적인 이행기라기보다는 가혹하게 겪어내야 하는 ‘특수한 시기이자 환경’이 되어버렸다. 불우한 환경에 처한 소년이 아닐지라도, 한국의 소년들은 대부분 비인간적인 교육환경에서 부모나 사회에 의해 ‘사육당하고’‘박제되고’ 있다고 느낀다. 소년은 꿈을 가져볼 새도 없이 꿈으로부터 멀어져 어른(부모)의 꿈을 대신 꾸는 시늉을 하고, 대신 꿈꾸는 연기를 고분고분 해 보이느라 속으로는 극도로 피로하다. 풀리지 않고 쌓이는 피로는 분노를, 분노는 폭력을 잉태하고, 폭발시킨다.

    그런 환경을 알고도 묵인하며 사교육과 제도교육에 소년을 맡길 수밖에 없는 부모 특히 어미는 ‘낳았다’는 자체만으로도 부끄러움을 넘어 원죄의식을 갖고 살아가는 것이 지금 한국의 현실이다. 원만한 가정에서조차 피해의식과 죄의식이 특수한 시기, 특수한 환경을 형성하고 있는데, 가정을 이루지도 못하고, 또 가정을 이뤘다 해도 파탄 난 지경에 처한 이들은 어떠하랴. 김영하의 ‘너의 목소리가 들려’의 첫대목은 헤어날 길 없이 악순환되고 있는 지금-이곳, 궁지에 몰린 소년·소녀의 초상을 카메라로 따라가듯 차갑게 보여준다.

    아직 귓가에 솜털이 보송한 소녀가 쇼핑용 카트를 밀면서 힘겹게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 어찌 보면 카트가 그녀를 질질 끌고 가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카트 안의 백팩은 고집스레 입을 다물고 있고 소녀의 귀에는 이어폰이 꽂혀 있다. 앳된 얼굴만 아니었다면 터미널에서 살아가는 그렇고 그런 노숙자처럼 보였을 것이다. 눈가와 입술에는 세상을 오래, 험하게 산 자들 특유의 독한 기운이 없었다. - 김영하, ‘너의 목소리가 들려’ 중에서

    고아 3부작 완결편

    고아 소년 동규와 제이를 소설의 주인공으로 불러낸 김영하 신작 ‘너의 목소리가 들려’가 출간될 즈음, 나는 이정이라는 또 다른 고아 소년의 디아스포라 여정을 그린 그의 장편 ‘검은 꽃’을 안고 북태평양을 건너고 있었다. 소설의 행로를 따라 유카탄 반도까지 돌아보고 귀국하자 그의 고아 시리즈 3번째 장편이자 완결편이라는 ‘너의 목소리가 들려’가 기다리고 있었다. 소설로 들어가기 전 탐색하는 과정에서 몇 개의 관습이 머릿속에서 출몰했다. 이때 관습이란 공적 영역의 상상력으로, 캐나다 출신의 서사학자 N. 프라이가 지적한바, ‘시인이나 소설가의 독창성은 관습이라는 역사 위에 존재하고, 인간의 상상력은 전체로서 인간을 상상하는 공적인 것.’ 이때의 관습을 기반으로 하는 공적 영역의 상상력은 ‘신화를 만들어내는 능력(myth making power)으로 개인의 꿈을 공동체의 꿈으로 연결’하는 의미심장한 것으로, ‘문화를 형성하기도 하고 해체하기도 하는 근원적인 힘’이라는 것.(N. 프라이, ‘비평의 해부’ 참고)

    “요즘 들어 자꾸 제이 목소리가 들려요.”

    “뭐라고 하는데?”

    “새로운 말은 없어요. 예전에 걔가 했던 말이 마치 녹음기라도 틀어놓은 것처럼 다시 들려요.”

    “나도 가끔 내가 쓴 소설의 인물들이 하는 말을 듣곤 해. 멍하니 앉아 있다가 누가 나한테 말을 거는 줄 알고 돌아볼 때도 있어. 근데 아무도 없지. 생각해보면 내가 며칠 전에 쓴 대사야.” …

    “저는 아주 생생해요. 자다가 깜짝 놀라 일어날 정도라니까요. 가끔은 길을 걷다가도 들어요.”

    “가장 자주 듣는 말은 뭐니?”

    “일어날 일은 일어나고야 만다, 예요.”

    - 위의 책 중에서

    고아 삼부작(Trilogy)이라는 명명으로 ‘검은 꽃’ ‘퀴즈 쇼’ 이후 5년 만에 발표한 김영하의 ‘너의 목소리가 들려’를 읽기 전 내 뇌리에 맴돌았던 관습은 이 소설의 제목이 노래 가사의 거의 전부를 구성하며 볼레로처럼 반복되는 ‘델리 스파이스’의 노래 ‘챠우챠우-아무리 애를 쓰고 막아보려 하는 데도 너의 목소리가 들려’와 1950년대 사회계층 간의 갈등을 그린 존 오스본의 연극과 영화 ‘성난 눈으로 돌아보라(Look Back in Anger)’. 이들은 소설을 펼치기 전 독자인 나에게 직간접적으로 작용한 무드(분위기)였다. 정작 다 읽은 뒤의 감회는, 한국 사회의 특수 지대를 형성하는 고아 소년들을 향한 김영하식 위로의 서사이자 소설과 사회(인간 세계)에 대한 작가의 현재 의식을 투사한 탐구의 서사다. 곧, 김영하의 ‘너의 목소리가 들려’는 ‘한국에서 고아(소년)로 산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에 대한 신랄한 통찰이자, ‘21세기 소설이란, 소설의 역할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화두로 읽혔다.

    김영하 소설의 요체

    제이가 주도했던 그 해의 대폭주는 전설이 되었다. 아직도 삼일절과 광복절 전야만 되면 제이가 아직 살아 있다는 소문과 대폭주에 맞춰 다시 나타나리라는 예언들이 돌아다닌다. - 위의 책 중에서

    N. 프라이가 말한 공적 영역의 상상력, 곧 신화의 관습은, 어찌 보면, E. M. 포스터가 명명한 ‘예언’의 항목과 상통한다. 말하는 것보다 암시의 세계, 한번 들으면 온종일 귓가에 또 입가에 맴도는 후렴구의 세계. 눈으로 볼 수 없지만, 귀로, 마음으로 울리는 공명의 분위기. 베토벤의 운명 교향곡의 전주음이나 김승옥의 ‘무진기행’의 안개 같은 것. 고속버스터미널의 공용화장실에서 열일곱 살 소녀의 자궁을 빠져나와 돼지엄마라는 생판 남인 여자의 손에 들려 자란 아이 제이의 내면, 제이가 맡겨진 돼지엄마가 기거하는 집의 1층에 살며 어미와 삼촌 간의 부적절한 관계를 목격한 후 함구증을 앓으며 세상에 내는 제 몫의 목소리를 거세시킨 아이 동규의 눈, 그리고 제이가 소년이 돼 거느린 오토바이 폭주족 아이들의 굉음 시위.

    그런데 ‘너의 목소리가 들려’는 이들 고아 소년의 이야기만으로 구성되지 않는다. 형식적으로 보면, 이 소설은 6개 부분으로 배치되어 있다. 처음과 끝은 프롤로그와 에필로그에 해당되고, 이들 고아 소년의 이야기, 즉 ‘반쯤 열린 문’ 안쪽의 세계는 복수 시점(multiful point of view)으로 동규, 제이, 목란, 승태에 의해 짜여졌다. 보통 프롤로그와 에필로그가 동일한 정조(mood)와 시점으로 운용된다면, 이 소설의 경우, 첫 번째 마법사의 밧줄 이야기 부분은 이 소설 전체에 대한 암시 또는 예언의 역할을 하고, 마지막 부분은 4개의 장이 하나의 액자 속 이야기인 듯 작가가 액자 밖에서 소년들의 후일담을 전하는 형식으로 제시된다. 그리고 소설의 마지막이자 이 부분의 마지막 단락은 작가의 말을 대신하고 있기도 하다.

    북서풍이 창문을 뒤흔드는 깊은 겨울밤, 오래 붙들고 있던 이 원고에 ‘끝’이라는 한 글자를 쓰기 위해 책상 앞에 앉았다. 돌아보면 많은 이들의 도움을 받았다. … 단 한 사람에게만 고마움을 표할 수 있다면 그 대상은 바로 동규가 아닐까 싶다. 그 친구 덕분에 내 발밑에 존재하는 무한의 벌판을 발견할 수 있었다. 부디 먼 나라에서 평안하기를 빈다. - 위의 책 중에서

    결론적으로, ‘너의 목소리가 들려’는 ‘젊고, 파괴적이며, 도발적’인 내용과 ‘추리, 액자, 재구성’의 형식으로 요약되는 김영하 소설세계의 요체가 깃들어 있다. 감상 포인트는, 여전한 부분과 진전된 부분의 형식 및 주제의 균형이 조화로운가, 나아가 새로운가. 그의 최근 발표작 ‘무슨 일이 일어날지는 아무도’(2010)와 고아 트릴로지의 선행작 ‘검은 꽃’(2004) ‘퀴즈 쇼’(2007)의 호출이 절실해지는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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