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술, 휴대전화 끊고, 빚쟁이 피해 산속 홀로 생활
• “소설을 쓰는 수밖에 뾰족한 방법이 없더라고요”
• 아버지가 준 상처로 아직도 아버지라는 말이 두려워
• 서재에 갇혀 소설 쓰는 글쟁이 경멸
• 12년 공백기에 대학원 공부와 개성공단 매력에 빠져
• 앞으로 ‘소설가 심상대’ 정체성 규명하겠다

소설가 심상대(52)가 중편소설 ‘단추’로 4월 제6회 김유정문학상을 탔다. 2001년 단편소설 ‘미(美)’로 제46회 현대문학상을 받은 지 11년 만이다. ‘단추’는 꿈속에서 잃어버린 단추를 찾아 헤매는 남자와 그 단추를 현실에서 주운 남자의 삶이 엇갈리면서, 이 시대를 사는 젊은이들이 지닌 불안한 꿈과 현실을 담아낸 작품이다.

심상대 하면, 많은 이가 소설집 ‘묵호를 아는가’를 떠올린다. 그가 신춘문예에 응모했다 낙선한 작품 11편이 고스란히 실려 있는 이 소설집은 그의 출세작이다. 이 소설집에 대해 묻자 “그 당시 신춘문예 예심, 본심 심사위원들의 무식함 때문에 탄생했다”고 잘라 말했다. 헛웃음이 났지만 자신감 있는 그의 태도에 내색할 수 없었다.

휴대전화 없이 강원도 첩첩산중에 홀로 살고 있는 그를 5월 8일 서울 강남구의 한 식당에서 만났다. 강원도 산중에서 먹이를 찾아 두리번거렸을까. 산짐승처럼 그의 눈이 강렬하게 빛났다.

“제 소설의 핵심은 저도 몰라요”

읽고 있던 책갈피에 손가락을 끼운 채 전화하면서 민우는 줄기차게 자신의 꿈을 변호했다. 단추는 한강에 던져버렸고 단추 떨어진 코트 입은 꿈을 다시 꾸게 됐고, 그래서 행복하다는 내용이었다. 자신은 가난하기 때문에 가난이 두렵지 않고, 가난이 두렵지 않으므로 탐욕에 빠지지 않아도 되며, 자신이 탐욕하지 않으므로 타인의 탐욕에 조롱당하거나 지배받을 이유가 없을뿐더러 자신은 저항할 이유고 상대도 없다고 그는 말했다. 누군가는 자신의 가난을 탐욕에 대한 저항이라 여기겠지만 사실은 저항이 아니라 자립 조건이라고. -‘단추’ 중에서



“어젯 밤을 꼬박 새우고 4시간을 달려 서울로 왔어요. 일주일에 한 번 강의를 하고 가족을 만나기 위해 정신 사나운 서울에 옵니다. 어쩔 수 없이 서울을 오가곤 하지만, 강원도 첩첩산중에 있을 때가 가장 행복해요.”

어버이날이어서 딸을 데려왔다며 웃는 그의 얼굴에는 행복감이 묻어났다.

▼ ‘단추’에서 말하고자 한 핵심은 뭔가요?

“자신의 작품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말하는 사람은 예술가가 아닙니다. 제가 쓴 소설이니 그 내용이라면 잘 알지만, 핵심이 뭔지는 사실 저도 알지 못해요(웃음). 오히려 평론가나 학자가 대답해야 할 문제죠. 내용을 얘기하기도 쑥스럽고요.”

▼ 그럼 소설가가 된 이유는 뭡니까.

“어린 시절, 제가 꿈을 소설가로 정하게 된 것은 세 사람의 영향 때문입니다. 유년 시절 한글과 한자를 가르쳐준 아버지와 강릉시 남양초교 3학년 담임선생님으로 제게 도서관 관리를 맡기신 홍경호 선생님, 그리고 영화 ‘봄봄’의 원작자 김유정 선생님이지요.”

김유정문학상은 스물아홉 꽃다운 나이에 요절한 작가 김유정(1908~1937)을 기리기 위해 만든 상이다. 강릉 태생인 심상대가 춘천 태생인 김유정을 기리는 문학상을 타기 전부터 둘의 인연은 지속돼 왔다.

“동해시 동호초교 4학년 때 아버지와 함께 지금은 불타버린 묵호극장에서 ‘봄봄’이라는 영화를 봤어요. 김수용 감독 작품으로 신영균·남정임·허장강이 출연한 영화였는데, 영화관을 나온 뒤 아버지가 이 영화는 본래 소설이라 말해주신 거예요. 그 뒤 강릉시에 있던 삼문사라는 서점에서 김유정의 소설집을 사보게 됐어요.”

데릴사위를 유심히 관찰하던 소년

작가는 초등학교 4, 5학년 무렵부터 고향인 강릉시 옥계면 남양리 이웃에 사는 데릴사위를 유심히 관찰했다고 한다.

“나도 ‘봄봄’처럼 데릴사위가 나오는 소설을 쓰려고 생각한 거죠. 문제는 그 데릴사위는 말만 데릴사위였지, 이미 나이 먹어 분가한 사람이었어요. 지금도 돌투성이 신작로에서 덜컹거리며 우차(牛車)를 몰고 가던 그분의 모습이 떠올라요. 그런 노력들이 소설가로 만든 게 아닌가 생각해요.”

▼ 김유정의 삶과 문학은 어떻게 보나요?

“김유정 선생님은 운명적으로 소설가의 삶을 산, ‘어쩔 수 없는 소설가’였다는 생각이 듭니다. 경제적 여유가 있거나, 강단이 있거나, 폐결핵과 치질에 걸리지 않았거나, 박록주와 박봉자라는 여인에게 실연당하지 않았거나, 이도저도 아니라 소설에 대한 재능까지 부족했더라면, 그는 고향마을을 배경으로 한 이러한 작품을 쓸 생각을 하지 못했을 거라고 생각해요. 그런 점에서 김유정 문학의 많은 부분은 박록주라는 여인에게 빚을 지고 있다고 봐야겠죠. 약값이며 생활비를 벌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쓰긴 써야 하는 상황에서 그가 취할 수 있는 가장 손쉬운 소재가 고향사람들 이야기였지요. 그의 슬픔과 고독과 낙망에서 비롯한 유머와 패러독스가 어쩔 수 없이 그의 소설을 관통하는 정신이 됐다고 봐요.”

그는 질과 양의 면에서 본다면 김유정을 위대한 소설가라 할 순 없지만, ‘그럴 듯한 거짓말’이라는 측면에서 본다면 김유정 소설은 소설이 가 닿아야 할 지고지순한 경지에 도달했다고 부연했다.

▼ 작가 심상대는 어떻습니까. 작가 김유정과 비교해보면요.

“목숨을 건 연애도, 피를 토하는 실연도, 가슴이 썩어 문드러지는 이혼도 한번 하지 못하는 현재 소설가들이 진정 부러워해야 할 인생 조건입니다. 저는 이미 그 나이가 지났으니, 진정한 소설가가 되기엔 틀려먹었습니다. 등단하자마자 피를 토하고 죽었더라면 딱 좋았을 텐데 예술가로서는 너무 오래 살고 있습니다. 소설가가 되기 전부터 그러했고, 되고 난 다음에도 하염없이 곧 죽어야지, 어서 죽어야지 했으나 나이가 들수록 자살하기 어려워집니다. 어쩌죠?(웃음) 변호사나 의사 같은 분들은 한 번의 시험으로 평생을 보장받습니다만 소설가는 소설가로서 공인받은 이후에도 한 편 한 편 쓸 때마다 하염없이 새로 시작해야 합니다. 습관과 숙련으로 소설 쓰기가 어느 정도 몸에 익은 소설가라고 해도 새로운 소설을 시작할 때에는 등단 못한 문학도의 자세로 세계와 대적하죠.”

소설가 된 이후에도 절망은 이어져

작가 심상대가 가장 아끼는 작품은 ‘묘사총’이었다. ‘묵호를 아는가’를 예상했지만 아니었다. “생애 가장 절망적인 상태에서 목숨을 걸고 쓴 소설이기 때문”이란다.

작가가 20년 전 펴낸 소설집 ‘묵호를 아는가’에 실린 소설 대부분은 군대를 제대하고 대학입시를 준비하다 포기한 뒤, 물질과 모호한 정체성을 극복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쓴 소설이다. 작가는 그때 청량리 정신병원 옆, 뱀처럼 생긴 길쭉한 방에서 빈혈 때문에 구토를 일삼으며 소설을 썼다고 한다. 너무 말라 밥을 먹을 수도 없었다. 그 때문에 스테로이드를 섞어 만든 정체를 알 수 없는 환약을 먹으며 눈에 핏발을 세우고 밤낮 소설을 썼지만 신춘문예에서 모두 떨어졌다. 작가는 그때 심정을 “신춘문예 공고가 나자 신문사마다 한 편씩 중편 단편 7편을 응모하면서, 그중 서너 편은 당선되리라 여겼지만 다 떨어졌다”고 회고한다.

“이미 신춘문예 심사위원의 자질을 알고 있었기에 화내지 않고, 다음해엔 모든 장르를 석권하려고 했죠. 소설가가 되면 대단한 삶이 기다리고 있는 줄 알았어요. 웬걸요. 소설가가 된 뒤에도 절망은 계속됐고, 그래도 소설을 쓰는 수밖에는 뾰족한 방법이 없더라고요.”

▼ 대중소설이나 무협지는 어떻게 보나요?

“저는 무협지나 대중소설은 우선 그 문장이 생리에 맞지 않아 한 장도 읽지 못합니다. 지금도 저는 이전에 읽었던 세계명작소설과 고전을 다시 읽지, 검증되지 않은 이런저런 소설은 읽지 않지요. 제 인생이 그럴 만큼 넉넉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제 소설을 세계명작소설과 비교해 졸작이라 평가한다면 당연히 수긍하지만, 하찮은 소설과 비교해 이러니저러니 평가받기는 싫습니다. 호평이든 악평이든 평가는 제몫이 아니라 독자의 몫이니 저로선 관심 없습니다. 평론가와 학자를 포함한 대부분의 독자가 어떤 평을 하든 화내지도 않습니다.”

작가는 2000년 연작소설 ‘떨림’을 펴낸 뒤 2012년 1월 중편소설 ‘단추’를 발표하기까지 단편소설 2편을 썼다. 2001년 5월 발표한 ‘달팽이 클럽’은 현대문학상 수상자 특집이라 썼고, 2007년 7월 발표한 ‘같은 꿈’은 대학원 수업 과제물이었다. 어쨌든 그는 12년 만에 소설을 발표한 셈이다. 그가 2001년 현대문학상을 받은 작품 ‘미(美)’는 2000년 이전에 탈고한 작품이다.

▼ 그동안 왜 소설을 쓰지 않았습니까?

“50대, 60대에도 소설을 제대로 쓰려면 인문학적 소양을 좀 더 배양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또 소설보다 더 가치 있는 일이 있다면 현혹돼도 좋다는 판단이 섰죠. 대학원에 편입해 미술사를 공부했어요. 한동안은 개성공단의 매력에 빠졌고요. 철저히 패배했고, 빚쟁이에게 도망 다니며 산중에 숨어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신세가 됐어요. 그런데 저는 과거를 자랑스럽게 생각해요.”

그는 ‘빚쟁이에게 도망 다니며 산중에 숨어’있는 이유에 대해 구체적으로 밝히길 꺼렸다. 정계에 나서려고 빚을 졌다는 정도로 이해해 달라고 했다.

▼ 개성공단의 매력이라고 했는데요.

“지난 4월에, 1년 만에 다시 개성공단을 찾았어요. 저는 그곳이 좋아요. 아침저녁으로 북측 근로자들이 출퇴근 버스 53대에 나눠 타고 공장을 드나드는 광경은 감동적인 장면입니다. 5만3000여 명의 북측 근로자가 124개 남한 업체에서 일하는 모습에 가슴 벅찼죠.”

잠시 행복한 미소를 짓던 그의 표정이 바뀌었다.

“지금부터 10년간은 소설을 써 ‘소설가 심상대’의 정체성을 규명하려고요. 미뤄둔 몇 편의 장편소설 가운데 한두 편을 출간하고, 중단편 소설도 발표하겠다는 게 올해 저의 목표예요. 이제까지 저는 경박하고 나태한 제 유전자의 성질에 이끌려 다닌 측면이 있습니다. 제 성격상 인내와 체념이 필요한 장편소설 쓰기가 버거웠고, 소설만큼이나 술과 친구를 좋아해 궁둥이 붙이고 앉아 장편 쓸 시간도 없었습니다. 하지만 이제 술도 끊고 휴대전화도 끊고 산중에 혼자 살다보니 아침잠도 없어졌어요. 나이가 들어서 그런가(웃음)? 시간이 많아 장편소설 쓰기에 적절한 체질이 된 거죠. 슬렁슬렁 시작해야죠.”

그의 말처럼, 작가 심상대는 그동안 장편소설을 한 편도 쓰지 않았다. 소설의 참맛은 짧은 소설에 있다고 믿었다. 지금도 한 칼에 인생을 내리쳐 피가 철철 흐르는 그 단면의 진면목을 내려다보는 쾌락은 단편소설에 있다고 믿는다. ‘그런 경지에 도달하지 못하고 징징대는 자신의 박재(薄才)가 안타까울 뿐’이라고 말한다.

문학상 비판하며 수상하는 건 위선

▼ 소설이 시적이라는 평이 많습니다.

“제 소설이나 산문의 문장을 보고 시적(詩的)이라는 평이 있다는 건 알아요. 그런데 이런 평가는 칭찬이 아니라 멸시입니다. 산문은 산문답다는 소리를 들어야지 시와 비슷해서는 안 됩니다. 저는 시에 대해서는 알지도 못하고 쓸 재주도 없어요.”

심상대 관련 기사를 보면, 작가는 2001년 현대문학상을 받을 때 문학상 제도에 대한 유머 넘치는 비판으로 문단 안팎에서 화제를 모은 것으로 기록돼 있다. 하지만 그의 말은 달랐다.

“많은 분이 오해하신 듯한데, 저는 2001년 현대문학상 수상소감에서 문학상 제도에 대해 어떠한 비판도 하지 않았다고 말했어요. 비판을 하면서도 상을 받는다면 위선이죠. 저는 소설가가 되기 전 등단 이후 10년 동안 해야 할 세 가지 결심을 했습니다. 첫째, 그동안에는 문학상을 받지 않는다. 둘째, 그동안에는 내 소설집 뒤에 평론가의 해설을 붙이지 않는다. 셋째, 그동안에는 신문 연재소설을 쓰지 않는다. 2001년은 등단 10년이 지났으므로 이런 유치한 자존심을 버린 시점이었죠. 그래서 상을 받았고요.”

문학상 제도에 대해서도 “굴원(屈原)의 고고함도 좋아하지만 어부의 범속함도 능히 수용하며, 더욱이 이제 저는 비판할 사람이 아니라 비판받거나 비판받을 여지를 개선해야 할 어른”이라고 말한다.

“장차 동네 이장님이 주시는 상이라도 주면 주는 대로 받겠어요. 상이 무슨 죄가 있겠습니까. 문학상 많다는 사실이 잘못은 아니죠. 언제는 문학상에 권위와 공정성이 있어 주고받았습니까.”

그는 “기껏 문학상 2개 받은 제게 왜 문학상 제도의 문제점에 대해 질문하느냐”고 볼멘소리를 했다.

▼ 최근 한국 문학이 해외시장에서 호평을 받고 있는데요.

“한국 문학의 세계화에 대한 질문은 제가 답변할 부분이 아닙니다. 팔 만한 문학작품이 있으면 출판업자들이 국제적으로 포장해 국제시장에 내놓겠죠. 소설가인 제가 ‘세계시장에 어떻게 소설을 팔까’하고 고민해야 할 이유는 없어요. 그동안 해외시장 진출이 적었던 이유는 출판업자 탓이 아니라 우리나라 소설이 별 볼일 없었기 때문이죠.”

▼ 인터뷰 모두에 아버지 얘기를 잠시 했는데요, 어릴 적 얘기를 해주시죠. 심상대 소설의 주요 배경이기도 한데요.

“농촌과 어촌이 있는 제 고향은 소설가로서 좋은 성장배경인 듯해요. 성실한 농부였던 할아버지와 할머니, ‘한량’이었던 아버지, 어머니와 형제들, 고모와 삼촌, 그리고 대개 일가친척으로 이루어진 고향마을의 풍습은 저를 어떠한 경우에든 긍정적이고 박애정신을 지닌 축제주의자로 만든 거 같아요.”

작가의 아버지는 어릴 때 맏이인 그에게 한글과 한자를 가르쳤다고 한다. 작가는 다른 모든 일엔 실패했더라도 그 한 가지, ‘글자공부’만큼은 성공했다고 말한다. 되짚었다. 작가는 아버지가 돌아가신지 여러 해가 지나 자신이 아버지가 되고서야 세상에서 가장 눈물겨운 관계는 아버지와 아들이라는 결론을 맺는다.

“그분이 진정 사랑한 이 세상 단 하나의 존재와 의미는 아들인 저였어요. 제가 아무리 아비 노릇을 잘하려고 해도 아버지가 제게 글을 가르쳐주시고, 매 학기 교과서 표지를 흰 종이로 싸고 붓으로 과목명과 제 이름을 적던 그 정성은 따라갈 수 없어요. 그러나 아버지가 제게 준 상처도 너무 컸기 때문에, 저는 아직 아버지라는 말을 사랑하지 못합니다. 어린 시절부터 제가 좋아하는 낱말 몇 개 중에는 아버지라는 말이 포함돼 있지 않아요.”

‘선데이 서울’과 ‘거지왕 김춘삼’

그는 어릴 적에는 그리스 로마 신화와 세계명작소설, 고전과 과학서적을 주로 읽었다고 했다. 중학생 시절 탐독한 ‘선데이 서울’이나 ‘주간경향’과 같은 황색잡지와 군대 가기 전 친구가 읽던 책을 우연히 집어 단숨에 다 읽은 ‘거지왕 김춘삼’이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알베르 카뮈, 생텍쥐페리, 리처드 바크 등의 소설을 읽으면 그 작가를 존경하게 돼요. 그러니 존경하는 작가도 많죠. 우리나라 소설가로는 명천(鳴川) 이문구 선생님을 존경합니다. ‘관촌수필’이나 ‘우리 동네’ 연작소설처럼 우리나라 산문 전통에 따른 소설 양식은 아주 소중한 가치입니다. 이런 소설 양식은 현대 우리나라 소설이 전범으로 삼고 있는 유럽식 소설 양식하고는 많이 다릅니다.”

작가는 소설가가 책으로 둘러싸인 서재에 스스로를 감금하고, 그 책을 통해 소설을 쓰는 것을 경멸했다. 소설가가 거짓 이야기를 지어내고, 역설과 욕설을 통해 세상에 발을 들여놓는 까닭은 현실 그 속내를 파헤치기 위한 것으로 본다. 소설에 서 거짓말의 반대말은 진실이 아니라 본질이라 생각하는 것이다.

작가 심상대에게는 휴대전화가 없다. 지금까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이용하지 않는다. 인터넷은 가끔 사용한다. e메일은 우체국을 대신하기 때문이란다. 작가는 왜 온라인 세상과 담을 쌓고 있는 것일까. 왜 강원도 첩첩산골에서 홀로 산짐승처럼 살고 있을까.

“휴대전화는 통화료를 오래 연체하니 저절로 해지됐습니다. 휴대전화와 술을 끊으니 인생이 열 배, 백 배 넉넉해져 행복해지더군요. 처음엔 빚쟁이로부터 벗어날 길은 산속밖에 없어 숨어들었습니다만, 이젠 제가 살 곳이 그곳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빚쟁이가 ‘뮤즈’였던 셈이죠. 뮤즈는 은빛 나발을 들고 하얀 날개를 나부끼며 카트린 드뇌브(프랑스 출신의 영화배우) 같은 얼굴로 나타날 줄 알았지요. 그런데 현실의 뮤즈는 소설가에게 돈타령이나 하고 협박을 일삼는 ‘썩은 감자’였어요. 하여튼 그들로 인해 무릉도원에 안착했습니다.”

시인이나 작가가 글만 써서 먹고살기가 어렵다는 말로 들렸다. 현재의 집 주소를 묻자 “강원도 양양, 고성, 속초 등지를 떠돌고 있다”고 두루뭉수리하게 답하는 작가 심상대. 그와의 만남도 e메일을 통해 이뤄졌다.

▼ 앞으로 계획을 말씀해주시죠.

“앞으로 반드시 인지를 붙이는 출판사에서 책을 낼 겁니다. 지난 7년 동안 출판사로부터 받은 인세가 단돈 100만 원이었으니까요. 여기에 제 책을 낸 출판사가 부도나면서 모든 재산인 책 7권이 절판된 상태라 저도 그 책을 사볼 수 없게 되었습니다. 작가가 책을 펴내도 그 책이 몇 권이나 팔렸는지 알 수 없는 출판 시스템, 이건 큰 문제입니다. 이는 내가 납품해 매장에 진열한 사과가 팔렸는지, 썩어서 내다버렸는지 알 수 없는 거나 마찬가지지요. 야만도 이런 야만이 없습니다. 이는 상도덕은커녕 기본 이하의 행태죠.”

그는 “A 출판사가 만든 판매부수 프로그램을 다른 출판사들이 도입하면 인지를 붙이지 않더라도 매일 판매부수를 확인할 수 있다”며 “앞으로 그런 출판사에서 책을 내겠다”고 말했다.

“우리 문인들은 왜 침묵하는 거죠? 그러면서 정의가 어떠니, 사회구조와 문화와 역사가 어떻고 하며 잘난 체한단 말입니까? 자기 재산과 자존심도 못 지키는 주제에. 참, 계획을 말씀하셨죠? 저는 소설을 쓰고, 돈을 벌고, 화를 내지 않을 계획입니다. 이 계획을 실천하면 신선이 될 듯해요.”

작가 심상대는 1960년 1월 25일 강원도 강릉에서 태어나, 1990년 ‘세계의 문학’에 단편소설 ‘묘사총’ ‘묵호를 아는가’ ‘수채화 감상’ 등 3편을 발표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소설집으로 ‘명옥헌’ ‘사랑과 인생에 관한 여덟 편의 소설’ ‘심미주의자’ 등이 있고, 산문집으로는 ‘갈등하는 신’ ‘탁족도 앞에서’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