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친김에 김두관 경남도지사 테마주를 소개해놓은 블로그를 클릭했다. “기회는 왔을 때 잡아라”는 문구가 시선을 사로잡는다. 이어 ‘금형 및 자동차부품 제조업체’라고 소개된 대성파인텍을 시작으로 10여 개 업체명과 김 지사의 관계를 간략하게 설명하고 있다.
대성파인텍은 이 회사 김병준·김흥식 이사가 김 지사와 같은 동아대 출신이라 테마주로 묶였다. 모직물 사업체인 아즈텍WB 역시 허재명 대표이사가 동아대 출신이다. 이어 등장한 한국주강은 어떤 일을 하는 곳인지는 나와 있지 않고 이 회사 하경식 대표이사가 하성식 함안군수의 일가인데, 하 군수가 김 지사와 친분이 두텁다며 두 사람이 함께 찍은 사진을 올려놓았다. 한라IMS도 기업에 대한 설명은 한 줄도 없이 공동대표인 김영구·지석준 씨가 각각 동아대와 동아대대학원 출신이라는 점만 강조하고 있다.
이밖에 김 지사의 선거 캠프 고문을 맡은 김태랑 민주통합당 고문을 사외이사로 영입한 회사, 김 지사의 대학 은사로 알려진 동아대 명예교수가 사외이사로 있는 회사까지 테마주로 떡하니 이름을 올렸다. 심지어 회장이 동아대 총동문회 자문위원이라는 이유로 테마주가 된 기업도 있다.
사돈의 팔촌 주
사실 증권가에서 특정 주제로 엮을 수 있는 주식은 모두 테마주다. 바이오주나 태양광주 혹은 월드컵 수혜주처럼 실적 호전으로 이어질 만한 계기가 있을 때 테마주가 형성되는 게 보통이다. 하지만 실적과 무관하게 주식투자자들이 임의로 테마주를 엮기도 한다. 특히 총선이나 대선 같은 대형 정치 이벤트를 앞두고는 특정 정치인과 한 다리 건너 알기만 해도 정치인 테마주가 된다.
투자자들 사이에선 ‘사돈의 팔촌 주’ ‘옷깃만 스쳐도 주’라고 하는데, 2007년 대선 당시 이회창 테마주였던 단암전자통신이 시초 격이다. 단암전자통신은 당시 이회창 후보의 장남 정연 씨의 장인인 이봉서 전 상공부 장관의 조카가 이 회사 대표라는 이유로 이회창 테마주가 됐다. 올해 대선을 앞두고도 비슷한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 반도체 검사장비 제조업체 디아이는 정운찬 전 동반성장위원회 위원장이 이 회사 박원호 대표이사의 아들인 가수 싸이의 결혼식 주례를 선 사실이 알려지면서 정운찬 테마주가 됐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정치인 테마주는 기업의 실적과 무관하게 주가가 널을 뛴다. 민주통합당 문재인 상임고문의 테마주로 꼽히는 바른손의 주가는 지난해 말 1000원이었던 것이 5월 초 현재 5000원대를 넘나들고 있다. 무려 5배나 올랐지만 2월에 1만 원을 넘어선 것과 비교하면 반 토막 난 상태다. 문구 및 캐릭터 제품 개발 업체인 바른손은 문 고문이 설립한 법무법인의 고객사라는 이유로 문재인 테마주로 분류됐다.
바른손 주식의 상투를 잡은 한 투자자에게 왜 그랬느냐면서 “이런 식이라면 문 고문의 고객이었던 기업이 죄다 테마주로 엮여야 하는 것 아니냐”고 묻자 “알아볼 만큼 알아보고 구입한 것이다”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경기도(일산)에 있는 회사가 서울도 아니고 부산에 있는, 그것도 대형 로펌도 아닌 작은 법무법인에 굳이 일을 맡겼다는 건 바른손 최고경영자와 문 고문이 특별한 관계가 아니고서는 설명이 안 된다”며 “그 관계의 진실이 일반 투자자들에게 알려지지 않았는데도 바른손이 테마주로 묶인 것은 앞으로 크게 오를 종목임을 의미한다”라고 자신했다.
그러나 “바른손과 문 고문 사이에 깊은 관계가 없다”는 주장이 적지 않다. 바른손 관계자에게 확인해보니 “십수 년 전에 일로 관계를 맺은 적이 있지만 지금은 전혀 거래가 없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이 관계자는 “4∼5년 전 일이기만 해도 뭐라 할 얘기가 있을 텐데 (문 고문에 대해) 전혀 해줄 말이 없다”며 기업의 의도와 관계없이 테마주로 묶여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고 주가가 춤을 추는 데 대해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이 같은 설명에도 한번 테마주에 손을 댄 사람은 쉽게 빠져나오지 못한다. 언론이나 금융당국에서 정치인과 테마주에는 아무런 논리적 연관성이 없다고 강조할수록 오히려 친분을 감추기 위해 그러는 것이라고 여긴다. 주식투자자들의 이 같은 심리는 범죄의 타깃이 되기도 한다.
사전매집 후 풍문 유포
증권선물위원회는 4월 25일 정치인 테마주 주가를 조작해 수백억 원의 부당이득을 챙긴 세 그룹의 작전세력을 적발해 검찰에 고발했다.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 등 금융당국에 따르면 작전세력들은 증권 포털사이트에 허위 사실을 올리고 상한가 허수 주문이나 수백 회 단주(10주 미만) 매매를 통해 주가를 끌어올린 다음 미리 사놓은 주식을 모두 되파는 수법을 사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