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첫 전투는 6·25 전쟁
유엔은 그간 크고 작은 분쟁에 개입했다. 1948년 이스라엘 건국을 둘러싸고 일어난 제1차 중동전쟁 때 파견된 국제연합 휴전감시단이 유엔 평화유지군(UN peace-keeping force)의 시초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이하 안보리)가 휴전위원회를 설치해 중재에 나섰다. 유엔군이 처음으로 실제 전투에 나선 것은 한국의 6·25 전쟁이다. 유엔군 4만670명이 한반도에서 전사했다. 부상자는 10만4282명에 달했다. 제2차 세계대전이 유엔을 탄생시켰다면 이스라엘-아랍 전쟁, 6·25 전쟁은 유엔의 위상을 강화했다.
평화유지군은 분쟁 당사국이 원할 때 안보리 의결을 거쳐 파견된다. 사무총장이 사령관을 임명하며 경비는 유엔이 부담한다. 평화유지군의 역할은 평화 유지 업무에 국한해 있다. 무력행사도 자기 방어의 경우로 제한된다. 평화유지군은 개인화기, 장갑차 등으로 경무장한 군대다. 파란색 베레모가 공식 복장이다. 분쟁지역 주민은 파란 방탄조끼와 헬멧을 평화의 상징으로 인식한다.
최근 중동 및 아프리카에서 분쟁이 빈발하면서 평화유지군이 교전에 가담하는 예가 늘고 있다. 특히 이스라엘-레바논 국경에서 정전을 감시하는 유엔군의 경우에는 사상자가 빈번하게 나오기로 악명 높다. 이스라엘-레바논 국경엔 현재 1만2000명의 평화유지군이 주둔해 있는데, 이들은 이스라엘에도 레바논의 헤즈볼라에도 환영받지 못한다. 헤즈볼라는 미국과 강대국의 이해를 대변하는 군대라고 여긴다. 이스라엘은 평화유지군이 헤즈볼라를 돕고 있다고 생각한다.
지난해 5월 27일 레바논 남부 항구도시 시돈에서 유엔 차량이 폭파되면서 이탈리아 출신 평화유지군 1명이 숨지고 4명이 부상한 사건이 발생했다. 이 사건은 전 세계에서 임무를 수행하다 숨진 평화유지군을 추모하는 ‘유엔평화유지군의 날’에 발생해 충격이 더 컸다. 2007년 7월에도 레바논에서 차량 폭탄 테러로 스페인 출신 평화유지군 6명이 숨진 적이 있다. 유엔군이 순찰을 돌 때 아이들이 돌과 달걀을 던지기도 한다. 특히 헤즈볼라가 점령한 마을에서는 유엔군에 대한 반감이 극도로 크다.
앞서 언급했듯 이스라엘도 유엔에 호의적이지 않다. 2007년 이스라엘군이 레바논 남부 키암에 주둔한 평화유지군 막사를 폭격해 유엔 감시단원 4명이 사망하고, 10여 명이 부상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폭격으로 숨진 감시단원은 오스트리아, 캐나다, 중국, 핀란드 출신이다. 이스라엘은 사상자 구조작업을 진행하는 도중에도 폭격을 멈추지 않아 구조대원마저 부상을 당했다. 당시 유엔 사무총장 코피 아난은 “이번 공격은 명백하게 의도적인 것으로 보인다”면서 이스라엘을 비난했다. 그러자 에후드 올메르트 이스라엘 총리는 아난 총장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이스라엘군의 오폭이었으며 결코 의도적으로 공격한 게 아니다”라고 변명했다. 이날 포격을 두고 이스라엘이 유엔을 향해 경고 메시지를 던졌다는 평가가 많다. 평화유지군이 헤즈볼라 편에 설 경우 이스라엘은 유엔군도 공격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줬다는 것이다.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은 유엔의 골칫거리다. 올해 2월 2일 이스라엘에서 팔레스타인 가자지구로 들어가는 에레즈 검문소에서 반기문 총장은 중동에서 가장 모욕적이라는 ‘신발 투척’을 당하는 봉변을 당했다. 50여 명의 시위대는 반 총장이 탄 차량 창문을 두드리며 이동을 막았으며 일부는 신고 있던 슬리퍼를 던지며 유엔을 비난했다. 시위대의 대부분은 이스라엘이 억류한 팔레스타인 수감자의 가족과 친척. 이들은 반 총장이 이스라엘 교도소에 수감된 팔레스타인 재소자 문제 해결에 소극적이라고 비난했다.
이렇듯 팔레스타인은 유엔이 고전을 면치 못하는 지역이다. 2009년 1월 이스라엘이 유엔이 가자지구에서 운영하는 학교 세 곳을 무차별 공격해 팔레스타인 사람 40여 명을 죽였다. 다른 곳도 아니고 초등학교를, 더구나 유엔이 운영하는 학교를 폭격한 것이다. 팔레스타인 라마라에서 활동하는 팔레스타인 운동가 아흐메드는 “반 총장 취임 후 이스라엘의 공격이 더욱 과감해졌다. 그것은 반 총장이 지나치게 소극적으로 팔레스타인 문제를 다루는 탓이라고 우리는 생각한다”면서 “이스라엘이 유엔 건물도 폭격하는데 우리 같은 사람들은 오죽하겠느냐”고 말했다.
반기문의 소극적 태도
반 총장의 소극적 태도는 서구 언론이 반기문 때리기에 나서는 빌미가 되곤 한다. 미국의 격월간 외교 전문지 ‘포린폴리시(Foreign Policy)’는 2009년 6월호에 ‘어디에도 없는 남자 : 반기문은 왜 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한국인인가?’라는 제목의 기사를 실었다. 제이콥 헤일브룬 에디터는 이 글에서 “기후변화와 테러, 글로벌 금융위기 등 국제적 이슈에 리더십을 발휘하는 것이 절실한데도 반 총장은 소극적 태도로 일관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또 “역대 유엔 사무총장 가운데 가장 무능한 인물”이라고 반 총장을 비판하면서 “핵 확산 위협이나 국제 난민 문제에 대담한 연설로 여론을 조성하지 못했고, 결국 유엔을 무의미한 존재로 만들었다”고 꼬집었다. 심지어 반 총장을 명예박사 학위를 받고자 세계를 누비는 ‘관광객’이라고 비꼬기까지 했다. 반 총장이 지금껏 지켜온 스타일은 ‘외교관으로서 책임은 피해가면서 할 일은 하고 있다고 생색을 내는 한국식 외교습관’에서 나온 것인지도 모른다. 그래선지 반 총장은 서구 기자들에게 ‘미끄러운 뱀장어’라는 달갑잖은 별명을 얻기도 했다. 분쟁이 벌어지는 현장과 관련해 과감한 해법을 제시하던 과거 사무총장과는 확연히 다르다는 것이다.
반 총장이 유엔을 이끌게 된 것은 미국의 전폭적 지원 덕분이다. 2006년 그가 사무총장직 경선에 출마했을 때, 알렉산더 버시바우 전 주한 미국대사가 “그의 당선이 미국에 유리하다”고 본국에 보고했다는 내용이 ‘위키리크스’가 공개한 비밀 외교전문에 나온다. 버시바우 전 대사는 반 총장을 “미국 정부와 미국의 가치를 완벽하게 이해하고 있으며, 더욱 중요한 것은 그가 천성적으로 미국의 모든 것에 동조적이다”라고 보고했다. 버시바우 전 대사는 한국군의 이라크 파병과 주한미군 기지 문제 등에 있어 반 총장이 미국에 언제나 도움이 됐다면서 그가 유엔 사무총장에 당선되면 미국 정부와 우호적인 관계를 맺을 것이라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