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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기력한, 너무나 무기력한 반기문의 유엔

한국인 유엔 사무총장의 성공과 좌절

  • 김영미│분쟁지역 전문 저널리스트

무기력한, 너무나 무기력한 반기문의 유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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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엔과 미국은 이라크 전쟁을 계기로 상당한 갈등을 빚었다. 코피 아난 당시 총장이 대량 살상 무기 제거를 명분으로 삼아 이라크 전쟁을 일으키려는 미국에 수차 제동을 걸었기 때문이다. 물론 유엔 분담금의 22%를 내고 있는 미국을 아난 총장이 좌지우지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다. 미국은 자신들이 마음먹은 대로 전쟁을 일으켰지만 유엔과 승강이를 벌이는 과정에서 시간과 인력을 낭비했다. 미국에 우호적인 반 총장을 당선시키면 일하기가 수월하다고 판단했을 소지가 적지 않다. 유엔은 중립적으로 분쟁을 중재해야 하는데 친미 성향의 총장이라는 꼬리표가 반 총장에게 붙어 있는 것이다. 실제로도 반 총장은 미국 정부와 돈독한 관계를 맺고 있다. 수전 라이스 유엔 주재 미국대사는 “반 총장은 매우 부지런하고, 사려 깊으며 세계에서 가장 어려운 직책 중 하나인 유엔 사무총장직의 위험도 기꺼이 감수하고 있다”면서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미얀마에서의 성공

위키리크스가 반 총장과 관련해 충격적 내용을 폭로한 적이 있다. 미국이 반 총장과 중국 러시아 등 안보리 상임이사국 대표를 상대로 비밀 정보 수집을 해왔다는 것이다. 2009년 힐러리 클린턴 장관의 이름으로 미국 외교관들에게 전달된 비밀 지침은 반 총장의 유엔 경영 및 의사 결정 스타일과 사무국에 대한 영향력은 물론 반 총장 측근의 신상에 대한 상세한 정보 수집을 요구했다. 이 내용이 공개되자 한 유엔 관료는 “친미적인 사무총장이 미국에 뒤통수를 맞은 격”이라고 평가했다. 반 총장은 이에 대해 공식 성명을 내지 않았지만 ‘라디오프리유럽’과의 인터뷰에서 “다른 이의 감시를 받고 있다는 것을 알면 누구라도 기분 좋을 사람은 없을 것”이라고 불쾌감을 표하면서 “모든 회원국은 유엔의 순수성과 특권에 대한 존중과 보호를 명시한 유엔 헌장을 따라야 한다”고 말했다. 미국을 간접적으로 비난한 것이다. 자신을 도청하고 감시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미국을 향해 평소 반 총장 스타일대로 ‘조용하게’ 항의한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반 총장 스타일이 약점만 있는 것은 아니다. 반기문식 해법으로 접근한 곳 중 성공한 사례로 미얀마가 있다. 탄 쉐 장군이 이끄는 군정은 2007년 민주화 시위를 유혈 진압해 큰 비난을 받았다. 미얀마 군정은 유엔을 향해 내정에 간섭하지 말라고 경고까지 했다. 민주화 시위가 벌어진 사흘 뒤 반 총장은 미얀마 사태 해결을 위해 특사를 파견했다. 이브라힘 감바리 유엔 특사는 인권 유린 실태 대한 우려를 전달하고 모든 정치범을 석방하라고 요구했다. 또한 아웅산 수치 여사를 비롯한 야당 인사들과 대화에 나설 것을 주문했다. 미국과 영국은 미얀마에 대한 안보리 제재를 원했지만 중국을 비롯한 일부 국가가 내정간섭이라는 이유로 반대했다. 그로부터 2년 후 반 총장이 직접 미얀마를 방문해 사태 해결에 나섰다. 그는 탄 쉐 장군과 두 시간가량 회담을 했다. 정치범을 석방하고 이듬해 치를 총선을 공정하게 관리하라고 요구했다. 미얀마 정부는 태풍 니기리스가 미얀마 전역을 휩쓸어 국민이 기아에 허덕이는 데도 유엔의 원조마저 거부했다. 반 총장은 긴 설득을 통해 미얀마에 원조물품이 들어가도록 했다. 도움을 받는 사람보다 도움을 주는 사람이 더 몸 달아 하는 이상한 일이 벌어진 것이다. 이러한 유엔의 노력은 마침내 결실을 보았다. 미얀마 정부는 지난해 수치 여사를 오랜 가택연금 상태에서 풀어주었다. 올해 4월 1일엔 수치 여사와 그가 이끄는 민족민주동맹(NLD)이 보궐선거에서 압승을 거뒀다. 선거가 끝난 후 미얀마를 방문한 반 총장은 비로소 수치 여사와 만났다. 이를 두고 ‘기다리다 어부지리로 성과를 얻은 운 좋은 총장’이라는 삐딱한 시선도 있으나 반 총장이 자신의 스타일로 상당한 성과를 거뒀다고 평가해야 한다.

그러나 인내심, 조용한 외교로 상징되는 반기문식 해법이 분쟁지역에는 걸맞지 않다는 평가가 더 많다. 영국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가 2009년 보도한 ‘항목별로 점수를 매긴 반기문식 해법’에 이런 시각이 잘 담겨 있다. 반 총장은 전 세계적 기후변화와 식량 문제에 대한 대응에서는 10점 만점에 8점을 받았다. 그러나 중국, 러시아 앞에서 지나치게 소극적인 모습을 보인다는 이유로 ‘강자 앞에서의 진실성’ 항목에서 3점을 얻는 데 그쳤다. ‘조직 관리 능력’ 항목에서는 간부들과의 소통이 부족하고 그들의 전문성을 충분히 활용하지 못한다는 이유로 2점을 받았다. 4개 항목의 평균점수는 4.75점에 불과했다. 아랍 언론도 반 총장의 리더십에 대해 불만족스러워한다. ‘알 자지라’는 ‘조용한 외교인가, 침묵하는 외교인가’라는 제목의 2009년 7월 1일자 인터넷판 기사에서 “비판자들은 반 총장이 21세기 유엔 사무총장이 해야 할 역할을 근본적으로 오해하고 있다고 주장한다”고 썼다. 알 자지라는 또 뉴욕시립대 토머스 바이스 교수의 말을 빌려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건 침묵하는 외교”라고 혹평했다.



침묵하는 외교

실제로 유엔이 난관에 봉착한 시리아 사태의 경우 그동안 반 총장이 해오던 스타일인 인내심을 발휘하는 조용한 외교가 통하지 않고 있다. 유엔이 적극적으로 개입하지 않은 사이 시리아에서는 1만 명 넘는 사람이 죽어나갔다.

유엔의 해결책을 기다리던 시리아 시위대는 총을 직접 들고 바샤르 알 아사드 대통령과 싸우고 있다. 유엔은 그간 두 차례에 걸쳐 시리아 사태 해결을 위한 유엔 결의안을 안보리 표결에 부쳤다. 하지만 두 번 모두 중국과 러시아의 반대로 무산됐다. 이후 ‘도대체 유엔은 무엇을 하고 있는지’라는 탄식이 나왔다. 70개 국가가 ‘시리아의 친구들’이라는 모임을 구성해 사태를 해결하려 했으나 이 역시 성과는 나오지 않고 있다. 유엔으로서는 부담이 날로 커지고 있는 것이다.

시리아 사태와 관련해 유엔이 꺼낸 회심의 카드가 전 사무총장 코피 아난이었다. 아난 전 총장은 유엔 및 아랍연맹의 공동 특사 자격으로 시리아를 방문해 4월 12일을 시한으로 삼은 휴전을 제의했다. 정부군과 반군은 4월 2일 코피 아난 유엔 특사의 평화안을 수용해 4월 10일까지 이 지역에서 철군을 완료하고 4월 12일 오전 6시를 기점으로 전면 휴전하기로 합의했다. 유엔이 해결책을 마련한 듯 보였으나 아난 전 총장의 노력도 수포로 돌아갔다. 시리아는 유엔의 제안을 들어주는 척하면서 시위대를 계속 공격했다. 반 총장은 “시리아에서 유혈 사태가 계속되고 있으며 정부군이 중화기를 사용하고 있어 경악스럽다”고 비난했다. 시리아 정부는 “반 총장은 편파적인 사람이며 그의 발언은 터무니없는 것”이라고 맞받아쳤다. 반 총장이 시리아에서 사용할 카드가 남아 있기는 한 건지 우려하는 시각이 팽배한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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