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
검은색 연미복을 입은 열일곱 소년은 유난히 검은 눈동자를 빛내며 고운 목소리로 애국가를 불렀다. 웅장하면서도 마음을 울리는, 청아하면서도 깊이 있는 음성. 누군가는 ‘새 정권을 응원하는 천사의 목소리’라 했고 ‘상처받은 영혼을 위로했다’는 찬사도 있었다.
그리고 정권이 두 번 바뀌었다. 소년은 스물여덟 청년이 됐다. 취임식의 주인공은 부침(浮沈) 끝에 역사 너머로 사라졌지만, 임형주는 그간 단 한 번의 슬럼프도 없이 꾸준히 앨범을 내고 국내외 유명 무대에서 공연하며 촉망받는 젊은 예술가로 성장했다.
지난 12월 3일 서울 서초구 염곡동 아트원문화재단에서 임형주를 만났다. 다음 날 일본 도쿄 쇼케이스를 앞두고 맹연습 중이던 그는 피곤한 기색에도 잔뜩 상기된 모습이었다. 예의 까만 눈동자와 머리칼이 반짝거렸다.
그의 면모는 다채롭다. 대한적십자사, 사랑의 열매 등 여러 사회단체의 홍보대사로 적극적으로 활동하며 동아일보 등 유력 일간지에 매주 기명 칼럼을 쓴다. 3년 전에는 장희빈에 대한 역사책을 내기도 했다. ‘임형주의 태평양 인맥’이란 말이 있을 만큼 인적 네트워크가 넓다. 세계무대 데뷔 10주년을 기념해 지난 10월 6일과 11월 3일 서울 국립극장 대극장과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공연 때는 이명박 전 대통령 부인 김윤옥 여사, 엄기영 전 MBC 사장, 가수 광희 씨 등 명사들이 눈에 띄었다. 문화재단을 운영하면서 교육사업에까지 손을 뻗쳤다.
어머니의 방목형 교육
아트원문화재단은 그가 2008년 설립한 문화재단으로 대안 유치원 ‘소르고 유아학교’를 운영한다. 소르고 유아학교는 개원 당시 ‘임형주의 100억 유치원’으로 불리며 관심을 모았다. 지하 1층, 지상 4층의 건물은 발레 레슨실, 피아노 레슨실 30여 개, 갤러리, 200석 규모의 공연장 등을 갖췄다. 임 씨의 어머니 김민호 씨가 이사장을 맡으며 “형주를 키우며 겪은 시행착오는 빼고 좋았던 점만 투영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겉으로 드러나는 ‘귀족학교’ 이미지와는 달리 원비는 일반 국공립 유치원 수준이고 전공생 아닌 일반 학생만 받는다. 유치원 운영을 통해 얻은 수익으로 저소득층 예술 영재에게 무료 레슨을 해준다.
▼ 왜 취학 전 아이들을 대상으로 한 유아학교죠?
“교육은 백년지대계라잖아요. 요즘 ‘글로벌 리더가 돼야 한다’는 말을 많이 하는데 글로벌 리더가 뭔가요? 국제중, 특목고 나와 유학 갔다 온 뒤 대기업에 취직하는 게 진정한 글로벌 리더는 아니잖아요. 요즘은 아이들 성장속도가 워낙 빠르니까 유치원 때부터 글로벌 리더가 되기 위한 준비를 해야 하는 것 같아요. 영어, 음악은 기본으로 가르치고 무엇보다 자기주도학습을 할 수 있는 토양을 길러주려고 합니다.”
▼ ‘성악가 임형주’가 운영하는 유치원의 음악 수업이 궁금하네요.
“역시 가장 큰 특징은 임형주가 직접 강의한다는 거죠. 제가 직접 수업자료를 준비해서 강의해요. 클래식 작곡가에 대한 이야기도 해주고, 공연 에티켓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도 있고요. 직접 노래를 부를 때도 있어요. 근데 아이들을 가르칠 때 주의할 점은 한 시간에 딱 한 가지 이야기만 해야 하는 거예요. 아무리 많은 내용을 말해도 다는 못 알아듣거든요.”
▼ 처음에는 ‘귀족학교’라는 비판도 있었죠.
“여긴 비영리재단이에요. 여기서 나오는 수익으로는 가정 형편은 어렵지만 예술적 재능이 있는 음악 전공 청소년들에게 ‘멘토 앤 멘티’ 프로그램으로 개인 레슨을 해줘요. 매년 10여 명에게 혜택을 주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가르친 학생이 100명쯤 되죠.”
▼ 임형주 씨에게 어머니는 어떤 존재였나요.
“사실 전 방목됐어요. 어머니는 공부하라는 말을 한 번도 안 했어요. 제가 예원학교 다닐 때 수학, 과학을 못해서 30점 맞은 적도 있어요. 근데 한 번도 혼나지 않았어요. 대신 국사, 국어, 영어 등은 공부 안 해도 성적이 잘 나왔거든요. 어머니는 콩쿠르나 개인 레슨 때도 늘 저를 혼자 보내셨어요. 그게 좋았던 것 같아요. 어차피 예술가는 무대 위나 아래에서 혼자예요. 늘 외로운 존재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