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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갑상어 가죽에 옻칠하는 세계 유일 칠피(漆皮) 전문가

칠피공예가 박성규

  • 글·한경심 │한국문화평론가 사진·박해윤 기자

철갑상어 가죽에 옻칠하는 세계 유일 칠피(漆皮) 전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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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1년 정도 일을 해보니 그 일이 적성에 맞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글씨를 오려 붙이는 단순한 작업을 반복하는 것이 그의 탐구심과 창의력에는 맞지 않았을 것이다. 그는 곧 농방거리로 유명한 삼양동으로 자리를 옮기고 그 뒤로도 여러 농방을 거치면서 나전은 물론이고 옻칠까지 하게 됐다.

“서울에서는 월급도 받고 휴일도 있으니 돌아다니며 이것저것 구경할 여유가 있었지요. 저는 지금도 전문 분야인 공예품뿐 아니라 모든 것에 관심을 갖고 탐구하길 좋아해요.”

타고난 호기심과 관찰력이 그의 가장 큰 자산이라 할 수 있는데, 호기심은 그가 가죽 옻칠 배합 비율을 알아내는 일에 도전하게 만들었고, 관찰력은 유물을 몇 번 보고 똑같이 재현하는 눈썰미를 갖추게 했다. 그의 자산은 또 있다. 바로 끈기다. 한 기술을 완전히 알아낼 때까지 가난과 무명의 설움조차 밀어낼 수 있는 고집과 집중력, 끝없이 시험하고 시도하게 하는 힘.

그는 휴일이면 박물관이나 인사동 등을 돌아다니며 많은 것을 구경했다. 그리고 드디어 그의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특별한 물건을 만난다.

“큰 007가방 같은 모양인데, 고급스러운 것은 아니고 아마 옛날 평민들이 썼던 것 같아요. 오래돼 가죽이 딱딱하게 굳어 오므라들고 모서리는 뒤틀린 것이었습니다. 칠도 제대로 안 된 것이었지요.”



비록 뛰어난 작품이라 할 수는 없었지만 그는 ‘이런 가죽 작품을 오늘날에도 만드는 사람이 있을까’ 하여 알아보게 됐다. 하지만 그런 일을 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러니 스스로 해볼 수밖에.

“가죽에 옻칠을 하면 속에서부터 먹어들어 서서히 빛깔이 나와야 하는데, 잘 먹질 않더군요. 나무에 하듯 해보면 가죽이 갈라지고요. 나중에는 구두공장에 가서 여러 가지 시도를 해보았어요. 구두에 옻칠을 하면 방수가 되니 좋을 것 같아 해봤더니, 접히는 부분이 꺾어지고 갈라지더군요.”

나중에 안 일이지만 시중에서 거래되는 가죽은 부패를 막기 위해 어마어마한 양의 화학약품으로 처리하고 방수효과를 높이기 위해 코팅제까지 발라놓아 옻이 흡수도 안 될 뿐 아니라 코팅제가 산성이어서 알칼리성인 옻을 칠하면 색깔이 칙칙하게 변하고 만다. 이런 시행착오를 거치긴 했지만 구두공장에서 얻은 수확은 있었다. 붓통 같은 상품을 디자인해서 만들어보았고, 무엇보다 가죽을 어디서 구하는지 알게 되어 가죽의 기름기를 빼는 데 화학 처리를 하지 않은 가죽을 주문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철갑상어 가죽의 ‘성질’을 바꾸다

“가죽의 기름을 빼지 않으면 장구나 북 가죽처럼 딱딱해집니다. 악기에 쓰는 가죽은 큰 지방만 긁어내고 기름기는 그대로 두어야 공기가 차단돼 좋지만 공예품을 만들기 위해서는 기름기를 제거해야 하는데, 저는 가죽공장에 특별히 천연잿물로 빼달라고 주문하지요.”

큰 통에 가죽을 몇 천 장씩 넣고 기름기를 제거하는 공장으로서는 기껏해야 몇 백 장을, 그것도 천연잿물로 해달라는 그의 요구가 반가울 리 없다. 하지만 오랫동안 거래해온 인연으로 공장에서는 그의 주문대로 좋은 가죽을 대준다고 한다. 기름기를 제거하는 또 다른 전통 방식으로는 닭똥과 석회질, 잿물 등을 섞은 혼합물에 며칠씩 담가 지방질을 제거하고 쌀겨를 묻혀 부드럽게 말리는 법도 있다. 2007년 국새함을 제작할 때 철갑상어 가죽 기름은 이 번거로운 방법으로 뺐다고 한다.

온 나라에서 ‘내로라’ 하는 각 분야의 장인 스물아홉 명이 참여한 국새 제작 때 그가 맡은 일은 국새를 담는 함(뒤웅이 모양)에 철갑상어 가죽을 입히는 것이었다. 40년 넘게 가죽과 씨름하며 이제 웬만한 가죽은 다 수월하게 다루게 된 그도 아직 철갑상어 가죽만큼은 완전히 정복하지는 못했다고 고백한다.

“철갑상어 가죽에는 작은 돌기가 오돌토돌 나 있는데, 단단하기가 철판 같습니다. 열에도 강하고 칼로 때려도 끄떡없고 화살도 뚫지 못해요. 그런데 가죽 자체는 기름기가 있어 수축력이 매우 강해 백골(칠을 하지 않은 뼈대 상태의 목기)에 붙이면 백골인 나무가 뒤틀리거나 가죽이 터지는 경우가 종종 생깁니다. 그래서 붙이기가 매우 어렵지요.”

짐승 가죽은 칠하기가 어렵고 어피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철갑상어 가죽은 붙이기가 어렵다. 가죽을 백골에 붙일 때는 옻과 찹쌀 풀을 섞어 발라 붙이는데, 이 역시 매우 강력한 접착제다. 얌전한 소가죽은 한번 붙으면 떨어지는 법이 없지만, 철갑상어 가죽은 나무를 물고 오므라들어 나무가 뒤집힐 정도라고 한다. 단단한 접착제와 수축력 강한 가죽 사이에서 결국 나무가 결딴나고 마는 것이다. 국새함을 만들 때 큰 고생을 한 그는 이후로도 연구를 계속해 지금은 훨씬 수월하게 붙일 수 있는 ‘비결’을 터득했다고 귀띔한다. 비결이 무엇이냐고 묻자 “아예 가죽의 성질을 바꾸었다”고 대답한다. 자세한 비법은 공개를 꺼리지만 지방을 잘 빼내고 두들겨서 부드럽게 만드는 것이 아닐까 짐작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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