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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가 혼인이 낳은 미국 초현대 미술 寶庫

뉴욕 휘트니 미술관

재벌가 혼인이 낳은 미국 초현대 미술 寶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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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국은 주(州)마다 도시마다 세계 어디에 내놔도 손색없는 미술관이 적어도 하나씩 있다.
  • 세계 미술의 중심이 유럽에서 미국으로 빠르게 이동한 데는 이런 미술관의 역할이 컸다. 여기, 미술관에 심취한 경제학자가 있다. 그는 미국 전역의 미술관을 순례하며 미국 부자들이 어떻게 예술을 통해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 빛나는 유산을 남겼는지에 주목했다. 뉴욕 휘트니 미술관을 시작으로 그를 따라 미국 동부에서 서부로 미술관 순례를 떠나본다. <편집자>
재벌가 혼인이 낳은 미국 초현대 미술 寶庫

1931년 그리니치 빌리지에서 처음 문을 연 휘트니 미술관의 외관 스케치.

뉴욕 맨해튼의 부촌, 어퍼이스트사이드(Upper East Side)엔 주변 건물과는 사뭇 다른 외양의 현대식 건물이 하나 있다.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남쪽 끝자락에서 다섯 블록 아래로 내려가면 매디슨 애비뉴의 75번 스트리트에서 만나는 휘트니 미술관이다. 정식 이름은 휘트니 미국 작품 미술관(Whitney Museum of American Art). 이름에서 보여주듯 미국화(American art) 전문 미술관이다.

이곳은 20세기 이후 미국 작가 2900여 명의 작품 2만여 점을 소장한 미국 미술의 보고(寶庫)다. 생존 작가를 중심으로 작품을 수집해왔는데, 조지아 오키프, 잭슨 폴록 등 20세기 전반 미국 작가들의 작품이 특히 많다. 지금은 작고했지만 생존해 있을 때, 그리고 아직 유명 작가가 되지 않았을 때 휘트니 미술관은 이들에게 관심을 가졌고 꾸준하게 작품을 구입했다. 이것이 다른 미국 미술관과 휘트니 미술관을 구별 짓는 중요한 차이점이다. 말하자면 휘트니 미술관은 미국 신예 작가들을 위한, 신예 작가들에 의한, 신예 작가들의 미술관이다.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오판’

이 미술관을 세운 사람은 거트루드 밴더빌트 휘트니(Gertrude Vanderbilt Whitney·1875~1942)라는 여성이다. 그녀의 이름에는 미국의 명문가 ‘밴더빌트’와 ‘휘트니’가 함께 들어가 있다. 휘트니가 맨 뒤에 놓인 걸로 봐서 밴더빌트 집안에서 태어나 휘트니 가문으로 시집갔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거트루드는 서른 살 전후인 1900년대 초 유럽을 여행하면서 예술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특히 조각에 관심이 많아 조각가가 되기로 마음먹었다. 뉴욕과 파리에서 조각을 공부했고 맨해튼 그리니치빌리지에 스튜디오를 열고 작품활동에 몰입했다. 거트루드의 작품은 유럽과 미국에서 호평을 받았다. 한때는 로댕과 함께 일하기도 했다. 그녀의 작품은 지금도 세계 여러 곳에 전시돼 있다. 뉴욕에도 있는데, 매디슨 스퀘어에 있는 ‘빅토리 아치(Victory Arch)’가 그녀의 작품이다.



직접 작품활동을 해본 거트루드는 신진 작가들의 고충을 알게 됐고, 그래서 이들을 후원하는 일에 나섰다. 1914년 마흔 살의 거트루드는 맨해튼에 젊은 작가들을 위한 전시공간인 ‘휘트니 스튜디오 클럽’을 마련하는데, 이것이 오늘날 휘트니 미술관의 싹이 된다. 거트루드는 여기에 자신이 수집한 작품들을 전시하면서 신진작가 후원가로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1929년 거트루드는 25년간 수집한 현대미술품 700여 점을 기증하고자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문을 두드렸다. 그런데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은 거절했다. 거트루드가 소장한 작품들은 당시로서는 대단한 작품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오늘날 이 작품들은 돈으로는 평가할 수 없는 어마어마한 대작이 돼 있는데, 제아무리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이라도 앞을 내다보는 데는 한계가 있었던 모양이다.

이 일로 충격을 받은 거트루드는 직접 미술관을 세우기로 작심한다. 휘트니 미술관의 역사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이다.

거트루드는 얼마나 부자였기에 미술작품을 척척 수집하고 아예 미술관을 직접 세울 수 있었을까.

거트루드의 친정인 밴더빌트가(家)는 19세기 초 미국 최고의 부자 가문 중 하나였고, 시댁인 휘트니가는 19세기 후반에 정계와 재계를 주름잡는 명문가였다. 밴더빌트가는 일찍이 1600년대 중반 뉴욕으로 이민 온 네덜란드계의 후손이다. 가문을 일으킨 사람은 코넬리우스 밴더빌트(Cornelius Vanderbilt·1794~1877)로, 그는 뉴욕 항 입구에 있는 스테이튼아일랜드에서 태어났다. 자유의 여신상이 서 있는 바로 그 섬이다.

재벌가 혼인이 낳은 미국 초현대 미술 寶庫

뉴욕 휘트니 미술관은 맨해튼 매디슨 애비뉴 75번 스트리트에 자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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