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5월호

혼군[昏君]>얼굴마담>우리 VIP

‘대통령 박근혜’ 이미지 탐색

  • 황상민 | 연세대 심리학과 교수 swhang@yonsei.ac.kr

    입력2015-04-21 14: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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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동아는 2009년 9~11월호에서 연세대 심리학과 황상민 교수의 연구팀 위즈덤센터(Wisdom Center)가 조사한 ‘박근혜 이미지 탐색’을 연재했다. 이 3부작은 ‘정치인 박근혜’를 바라보는 대중의 심리에 관한 것이었다. 이번 호에선 ‘대통령 박근혜’에 대한 대중의 속마음을 들여다봤다. 위즈덤센터가 2014년 7~9월 진행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박 대통령의 이미지는 유력 대권주자 시절과는 많이 달라졌다.
    혼군[昏君]>얼굴마담>우리 VIP

    1월 12일 신년 기자회견 중인 박근혜 대통령.

    이명박 전 대통령이 최근 ‘대통령의 시간’이라는 회고록을 낸 덕분에 우리 국민은 우리의 대통령이었던 이가 어떤 사람인지 확인할 수 있는 시간을 가졌다. 그가 한 일과 그의 노력에 공감한 사람도 있었겠지만, 일부는 뭔가 ‘당했구나’ 하는 의구심을 갖게 됐을지도 모른다.

    어쨌건 이 전 대통령은 이제 ‘잊힌’ 옛 대통령일 뿐이다. 그의 임기 중 일들에 대해 감사원이 나서건 국회 청문회가 열리건 해명보다는 논란과 혐오감만 더 부각될 것 같다. 전직 대통령의 잘못이 드러난다는 것은, 대중이 과거 자신이 선택한 영웅이 저지른 실수를 인정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국민 성공시대’를 기대하고 그를 지지한 대중은 성공은커녕 ‘쪽박’에 가까울 것 같은 불편한 진실에 직면해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전임 대통령에 대한 국민의 심기가 이렇다면, 현 박근혜 대통령을 인식하는 국민의 마음은 어떠할까. 위즈덤센터는 과거 여러 차례 ‘정치인 박근혜’에 대한 이미지를 탐색했다. 이 연구는 ‘정치인 박근혜는 어떤 사람인지’를 알아보는 것이 아니라, 대중이 그를 통해 어떤 기대를 하는지를 탐색해보는 작업이었다.

    지지도 급락 시점에 연구 시작

    국민은 2005년 한나라당 대표 시절의 박 대통령을 귀한 ‘양갓집 규수’로 보았다. 2007년 한나라당 대통령선거 후보 경선에 나설 때는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희생하는 마음을 가진 ‘출신 좋은 에비타’로 여겼다. 당시 라이벌이던 이명박 전 대통령이 ‘현대 가신(家臣)’에서 ‘CEO 장군’으로 자신을 포장할 때였다. 대중은 ‘CEO 장군’이 자신들의 욕망을 더 잘 채워줄 것 같다고 여겼고, ‘에비타’는 우아하게 자신의 패배를 수용해야 했다.



    2009년 대중은 당시 이명박 대통령을 ‘가면을 쓴 막무가내 CEO’라고 여겼다. 그에 비해 정치인 박근혜는 ‘높고, 훌륭한, 연예인 같은 정치인’으로 생각했다. 이런 그의 이미지는 “차기 대통령은 박근혜일 수밖에 없다”는 대세론의 핵심으로 작용했다.

    위즈덤센터는 ‘대통령 박근혜’에 대해 대중이 가진 이미지를 2014년 7월부터 9월까지 탐색했다. 당시는 세월호 참사로 대통령 지지도가 빠르게 추락하던 때였다. 취임 후 1년 동안 60%가 넘던 지지도는 30%대로 급락했다. ‘높고 훌륭할 뿐 아니라 연예인 같은 인기를 누리던’ 대통령이 대중에게 다르게 보이는 상황이 된 것이다.

    대중의 속마음, 대중이 인식하는 대통령의 이미지가 무엇이기에 이처럼 급속하게 지지율이 하락하는지 알아보고자 했다. 위즈덤센터는 단순한 여론조사로는 알아낼 수 없는 박 대통령에 대한 대중의 마음을 ‘마음의 MRI’ 기법으로 탐색하는 작업에 착수했다(상자기사 참조).

    고루하고, 에둘러 말하고…

    다시 한 번 강조하면 대통령 이미지 탐색이란 대통령 개인의 본질이나 실체를 따지는 것이 아니다. 단지 현재 대중이 대통령을 어떻게 인식하는지, 어떤 마음으로 바라보는지를 연구하는 것이다. 즉 대통령 개인에 대한 이야기라기보다는, 대통령을 통해 대중이 충족하고자 하는 욕망이나 기대를 살펴보는 것이다. 위즈덤센터 연구진은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우리 대통령이 잘 되길 바라는 마음, 지지율을 높일 수 있는 전략적 단서를 찾으려는 시도로 이 작업에 임했다.

    잠깐 2012년 겨울로 돌아가보자. 상당수 국민은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 후보를 지지하면서 ‘최소한 그 아버지의 그 딸이 되어주길’ 바라는 마음이었다. 그간 대통령 비리가 ‘자식 챙겨주느라’ 저질러진 경우가 많았기에 적어도 박 후보라면 그런 문제가 생기지 않을 것으로 기대했다. 평생 국가를 위해 살았고 자식도 없으므로 사심 없이 자신을 던져 국가에 봉사할 것으로 기대한 것이다. 하지만 최근 만난 한 언론인은 이렇게 토로했다.

    “박 대통령이 정말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이 정도’란 무엇일까. 바로 현재 대중이 가진 대통령에 대한 이미지를 뜻한다. 세월호 참사와 정윤회 사건을 거치면서 대중은 박 대통령에 대해 전과 다른 이미지를 갖게 된 것 같다. 사실 정윤회 사건은 술자리에서나 쑥덕거리는 지라시 수준의 루머였다. 그러나 언론을 통해 공개적으로 거론되자 대중은 자신들이 막연히 가진 대통령의 이미지를 확인하는 경험을 하게 됐다.

    ■ 태어날 때부터 집안이나 부모가 경제력이 남다른 로열패밀리라는 것은 큰 자산이다.

    ■ 의사소통을 할 때 원론적인 답변만 한다.

    ■ 언론이나 여론을 본인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바꾸려 한다.

    ■ 본인의 의사를 직접적이기보다는 측근을 통해 에둘러 표현한다.

    ■ 민감한 질문에 대해 피상적으로 이야기하며 말을 빙빙 돌린다.

    ■ 인물 등용에 별다른 기준이 없고 주먹구구식이다.

    ■ 본인의 스타일을 뚜렷하게 보여주는 국정 운영에 대한 철학이나 정책 노선이 없다.

    ■ 유머감각이 없고 답답함을 느낄 정도로 고루하다.

    ■ 시대에 뒤떨어져 21세기와는 맞지 않는 느낌이다.

    ■ 중대 사안에 있어 스스로의 판단이 아닌, 제3자의 지시에 의존하는 것처럼 보인다.

    위 항목들은 대중이 박 대통령에 대해 가진 생각을 탐색하는 단계에서 도출된 문항 중 대표적인 것들이다. 조선 시대 왕을 21세기 현재에 바라보는 듯한 생각들이다. 대통령을 ‘꼭두각시’와 유사한 이미지로 보려는 마음이다. ‘십상시’라고 하든 ‘패밀리’라고 하든 다른 누군가가 대통령 뒤에서 영향력을 발휘하는 것 아니냐는 의심이 짙다. 대통령이 ‘얼굴마담’ 노릇에 그친다고 믿는 것이다.

    공주든 왕자든 여왕이든, 자신이 맡은 임무를 잘해내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왕조시대로 회귀하기를 원한다면 여왕으로 군림하는 대통령도 나쁘지 않다. 하지만 국민이 민주사회의 대통령을 꼭두각시 이미지로 본다면, 수많은 국정 현안에 대해 적절한 의사결정이 이뤄질 것이라고 믿기 힘들다. 신하가 제대로 알려주지 않는 한 국왕은 스스로 현안이 무엇인지, 어떤 의사결정을 해야 하는지 모른다는 인상을 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대중이 박 대통령을 ‘여신’이 아닌 ‘꼭두각시’로 인식한다면 ‘누가 그의 마음을 지배하느냐’는 문제가 불거진다. 누가 의사결정을 하고 누가 그에 대해 책임지는지 모르는 국민은 답답하고 해결책이 있기를 기대한다.

    대중은 ‘주도적 영웅’ 원해

    ‘마음의 MRI’ 기법으로 대중의 심리를 연구한 결과, 국민은 박 대통령을 ‘꼭두각시’와 ‘주도적 영웅’의 두 축으로 본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여기서 ‘꼭두각시’는 현실의 대통령을 의미하고 ‘주도적 영웅’은 현재 국민이 원하는 대통령의 이미지다. 좀 더 세부적으로 보자면 대중은 현실의 대통령을 ▲혼군(昏君·맹한 군주) ▲우리 VIP ▲얼굴마담 ▲관료적 정치인 등 4가지 이미지로 보았다. ‘꼭두각시’라는 표현에서 박 대통령에 대한 ‘지지’ ‘반대’ ‘표현 유보’ 등 각자 처지에 따라 서로 다른 이미지를 품었음이 드러난다.

    박 대통령을 ‘혼군’으로 인식하는 대중에게 그는 ‘국가를 사유화하려는 왕’과 같다. 무엇보다 ‘무능하고 게으른’ 리더다. 책임은 지지 않고 권력욕만 있는 사람이다. 잘난 신하(부하)를 용납하지 못하고 권력 유지를 위해 무작위적인 행동을 할 가능성이 농후하다. 그래서 대중은 혼군이 철없는 아이나 저지를 행동을 하지 않을까 걱정하고 두려워한다. 무엇보다 혼군에게 국민과 국가는 자신의 욕망을 충족시키는 수단이다. ‘국가=권력=나’라고 여기는 것 같다.

    이런 대통령의 이미지라도, 보수 권력을 유지하고 싶은 이들에겐 괜찮은 리더다. 자신의 이익이나 이해관계가 대통령과 잘 맞기만 하다면 정말 필요한 리더일 수도 있다. 하지만 혼군의 이미지로 박 대통령을 보는 사람들은 ‘무능하고 엉뚱한 짓을 할지 몰라 불안한 이에게 나라를 맡겼다’는 마음이다. 대중이 대통령에 대해 이런 이미지를 가졌다는 것은 ‘현재의 대통령이 이런 사람이다’라는 뜻은 결코 아니다. 일부 대중이 대통령을 혼군으로 인식한다는 뜻일 뿐이다.

    현재의 대통령을 혼군이라고 생각할수록 대중이 간절히 바라는 정치지도자의 이미지는 ‘명장(전략가)’이 된다. 자신에 대해 번민하고 고민하며 동시에 사회를 변화시키고자 하는 명장 말이다. 전략가이기에 실제 행동이나 전투 면에서 다소 부족할 수 있지만, 대중은 혼란을 느끼지 않도록 방향을 정해주는 리더에 만족한다. 현재 우리 사회가 직면한 과제와 위기를 알려주고 함께 해결할 수 있는 리더의 이미지다. 현재 상황의 불확실성이 클수록 이런 지도자의 이미지는 더욱 부각된다.

    혼군[昏君]>얼굴마담>우리 VIP


    ‘대통령 코스프레’

    대통령을 혼군으로 인식하는 대중이 주로 대통령을 지지하지 않는 사람들이라면, ‘우리 VIP’로 바라보는 사람들은 그를 지지하거나 혹은 그와 함께 일하는 사람들이 가진 그에 대한 이미지다. 이들에게 박 대통령은 자신이 속한 집단의 왕과 같다. 과거 한 언론사 회장이 검찰에 불려갈 때, 그 회사 기자들이 “회장님 힘내세요” 하며 피켓을 들고 응원하던 마음과 같다. 회장님이 잘돼야 회사가 잘되고 내가 잘 먹고 잘살 수 있다고 믿듯이, 박 대통령을 우리 VIP로 보는 사람들은 그가 이 나라의 존재 이유라고 믿는다. 하지만 이들은 우리 VIP가 ‘사이비 교주’ 같은 인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참고로 사이비 교주 같은 이미지에 해당하는 대표적 인물은 북한의 김정은이다.

    대중이 가진 박 대통령의 또 다른 이미지는 ‘얼굴마담’이다. 자기 스스로의 정책이나 전략을 가진 것이 아니라, 자기 세력이 일할 수 있게 해주는 얼굴마담 구실에 그친다는 것이다. 이들은 대통령이 깊이가 없고 시야가 짧은 정치지도자이며, 귀한 집안 자손이지만 능력이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주목 받는 것을 좋아하고 그 나름 순진한 사람이며, 명분과 원칙을 내세우며 원론적인 답변만 하는 사람이라고도 여긴다. 이런 맥락에서 ‘대통령 코스프레’라는 비아냥거림이 등장한다.

    대중은 심리적으로 실제 누가 정치를 하는지가 불분명하다고 느낀다. 누군가 책임져야 하는 상황이 발생하면 불만은 더 커진다. 대중은 실세가 누군지 끊임없이 묻고 찾는다. 적어도 자신을 보호해줄 사람이 누군지 알아야 생존할 수 있다는 마음에서다.

    대통령을 얼굴마담으로 보는 사람들은 적에 맞서 싸우는 ‘야전 사령관’을 바란다. 우리 대통령이 야전 사령관과는 동떨어졌다는 믿음이다. 야전 사령관의 이미지를 가진 인물은 시대의 문제와 아픔을 지적하며 맞서 싸우려 한다. 특정 세력에 맞서 당당하게 싸울 수 있는 리더이자, 전략을 짜고 바로 실행에 옮길 수 있는 리더다. 진짜 똑똑하고 능력이 있어서 문제 해결에 나선다. 얼굴마담이 자신의 세력을 대표해 말만 하는 이미지라면, 야전 사령관은 기득권에 대항하고 문제 해결을 위해 투쟁하는 이미지다.

    마지막으로 일부 대중에게 박 대통령은 ‘관료적 정치인’의 이미지로 간주된다. 이 이미지의 인물은 국가 문제를 해결하기보다는 당원이나 조직, 시스템 등을 활용해 자신의 지위를 유지하는 데 더 관심이 있다. 노회한 정치인답게 포커페이스나 실리주의에 강한 인물이다. 자신만의 생각이 있기보다는 윗선의 지시에 따라 철저하게 계산된 행동을 한다. 정치판에서 국회의원이나 고위 공직자로 살아남는 법을 잘 배운 사람이다. 주로 오랫동안 국회의원을 하거나 공무원임에도 정치인처럼 활동한 이들에 대해 대중은 주로 이런 이미지를 갖곤 한다.

    관료적 정치인은 책임 소재를 불분명하게 만들곤 한다. 모두가 책임지는 듯하지만,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다. 대중은 자신의 이해가 직접적으로 침범당하지 않는 한, 정치·사회 문제에 반응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따라서 관료적 정치인의 이미지는 정치권이 정치에 무지하거나 무관심한 대중과 보조를 잘 맞춰 현상 유지를 꾀할 때는 꽤 유용할 수 있다.

    이처럼 대통령을 관료적 정치인의 이미지로 보는 대중일수록 ‘개혁 지향적 정치인’의 이미지를 가진 인물을 찾으려 한다. 개혁 지향적 정치인은 대중의 관심을 끌어 차기 대권을 노리는 야당 지도자가 보여주려고 의도하는 이미지와 유사하다. 야당 지도자는 무릇 청춘들과 공감하며 답을 제시해주는 리더, 존재 자체만으로도 대중의 지지를 받을 수 있는 리더가 되려 한다. 또 국내 정세를 제대로 파악해 대중과 나누려 하고, 방향성과 전투력을 모두 갖추고 활동하는 태도를 보이려고 한다. 과거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이 당선됐을 당시 대중에게 어필한 이미지가 바로 이런 개혁 지향적 정치인의 면모였다. 지난 대선 때 안철수 의원에 대해 대중이 기대했던 이미지도 바로 이것이었다.

    말 많다고 이미지 바뀔까

    혹자는 위에서 살펴본 대통령 이미지가 그의 성격이나 소통 스타일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하지만 대중이 갖는 이미지는 본래 성격과는 관계가 없다. 대중이 가지는 대통령의 이미지는 대통령이 ‘실제로 어떤 실체를 가졌는지’와는 별개의 문제다. 사실 대통령 이미지는 대중이 가진, ‘나의 욕망은 무엇이냐’ ‘나의 욕망을 누구에게 투사할 것이냐’의 문제다.

    예를 들어 17대 대선 당시 이명박 한나라당 후보는 대중이 가진 ‘욕망의 화신’이었기에 국민은 그를 대통령으로 택했다(당시 많은 사람이 그를 ‘돈 잘 버는 아버지’로 여겼다). 18대 대선 때도 대중은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를 통해 자신들의 욕망을 투사하고 충족하려 했다. “잘살기만 하면 뭐하지? 우리나라가 선진국이 되고 G20에도 가입했다는데 대체 왜 우리는 행복하지 않은 거지?” 하는 고민이 짙은 상황에서 대중은 박 후보를 ‘힐링’과 ‘행복’의 키워드로 여겼다.

    혼군[昏君]>얼굴마담>우리 VIP

    박근혜 대통령을 지지하거나 그와 함께 일하는 사람들은 그를 주로 ‘우리 VIP’로 인식했다. 사진은 4월 6일 열린 수석비서관회의.



    2012년 대선 캠페인 당시 대중에게 박 후보는 장인이 한 땀 한 땀 공들여 만든 심오한 예술작품이었다. 이런 명품을 앞에 두고 원가가 얼마인지 따진다면 속물이 되고 만다. 박 후보가 그간 무슨 말을 했고 무슨 업적을 남겼는지 따지는 것은 명품을 대하는 바람직한 태도가 아닌 것이다. 당시 국민은 이미 가진 것을 지키고 싶어 하며 특별하게 큰 변화를 바라진 않았다. 동시에 표면적으로는 앞으로 일어날 수 있는 문제들을 해결해줬으면 하는 욕망을 품었다.

    하지만 현재는 대통령이 국민을 걱정하는 것이 아니라, 국민이 대통령을 걱정하는 듯하다. 대통령 이미지 탐색 결과에서 보듯 국민은 그가 측근들에게 뜯어 먹히고 용도 폐기되지 않을까 걱정한다. 이는 국민이 대통령의 어려운 처지를 공감하기 때문이 아니다. 리더가 존재함에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느끼게 된 상실감에 낙담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국민은 희망을 갖지 못한 채 막연한 피해의식만 느낄 뿐이다.

    그렇다면 청와대는 앞으로 어떠한 대통령 이미지 전략을 짤 수 있을까. 세월호 참사나 정윤회 사건 같은 큰일이 터질 때마다 “대통령이 적극적으로 소통에 임해야 한다”는 얘기가 나왔다. 이는 박 대통령의 성격이나 행동 방식이 달라지면 뭔가 변화가 있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기대에서 비롯된 조언이다.

    그러나 지지율은 특정 시점이나 사건에 따라 바뀌지 않는다. 지지율은 해당 정치인에 대해 대중이 가진 이미지의 반영이다. 현 시점에서는 박 대통령이 “경제가 문제입니다. 경제를 회복해야 합니다” 하는 발언을 자주한다 하더라도 대중은 “저 맹한 양반이 왜 저런 소리를 하나. 자기와 별 관계없는 이야기하듯…” 하는 마음만 커질 공산이 크다.

    아직은 흐릿한 잠룡 이미지

    현재로서는 ‘우리 VIP’ 이미지가 유지될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다만 국민에게 고통을 덜 주고 권력의 레임덕 현상이 급하게 오지 않을 방법을 찾아야 한다. 보좌진 처지에서는 ‘우리 회장님’ 이미지를 인정하기 어려워 ‘개혁 지향 정치인’의 이미지 메이킹을 시도할지도 모른다. 현재 벌어진 사정(司正) 정국이 그 일환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런 시도가 대통령이 국민에게 진정 다가가는 것이 아니라 또 하나의 ‘쇼’로 여겨질 가능성이 크다.

    과거 국민은 정치인 박근혜를 통해 ‘높고 훌륭한 연예인 같은 정치인’의 이미지를 소비했다. 대중에게 그는 ‘국민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끊임없이 소통에 노력하며 보통 사람의 아픔을 위로하는’ 정치인이었다. 아니, 대중은 그렇게 믿었다. 하지만 이번 이미지 탐색에서 보듯 이런 기대는 마치 한여름 밤의 꿈처럼 사라진 듯하다. 이제 대중은 정치인 박근혜를 통해 충족하려 한 자신의 욕망을 거둬야 할까. 그것은 차기 대선에서 누가 기선을 잡을 것인가 하는 질문과 연결된다.

    앞으로 대중이 미래의 희망을 거는 지도자는 누가 될까. 이번 박 대통령 이미지 탐색 결과는 이런 질문에 대한 추론적인 답이 될 수 있다. 현재 대중이 원하는 대통령의 이미지는 ‘주도적 영웅’이다. ‘전략적 명장’ ‘야전 사령관’ ‘개혁적 정치인’이 주도적 영웅에 해당한다. 그러나 요즘 잠룡으로 부각되는 김무성 김문수 홍준표, 문재인 박원순 안철수, 그리고 반기문 중 어느 누구도 뚜렷하게 이런 이미지를 보여주지 못하는 것 같다.

    대통령 이미지 탐색 방법은?

    60명의 97개 문항 답변 분석

    ‘혼군’ 인식이 가장 높아


    혼군[昏君]>얼굴마담>우리 VIP
    이미지 조사는 여론조사와 다르다. 대중이 명확하게 의식하는 것을 알아내는 것이 아니라, 그들 마음속에 막연하게 존재하는 ‘무엇’을 끄집어내는 것이다. 먼저 심층 인터뷰를 통해 해당 이슈와 관련한 대중의 마음을 드러내는 다양한 단서를 찾아낸다. 그리고 이 단서들을 활용해 사람들의 마음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확인해나간다. 위즈덤센터는 이를 ‘마음의 MRI’ 기법이라고 칭한다. 대중이 해당 이슈에 대해 가지는, 거의 무의식적인 상태에서의 반사적인 심리 반응을 마치 MRI로 찍듯이 확인하는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 이미지 연구는 다음과 같이 진행됐다. 우선 비교적 정치 이슈에 관심이 많은 집단과 일반 집단을 반반으로 해 10명가량을 사전 인터뷰했다. 동시에 대통령을 다룬 다양한 문헌과 신문 기사들을 참고해 대통령 이미지를 나타내는 97개 문항을 도출, Q표본(샘플 응답 단서)을 구성했다. 그리고 연구 참가자로 20~60대 일반 대중 60명을 인구통계학적 비율로 선정했다.

    연구 참가자들은 총 97개 문항이 적힌 카드(Q표본)마다 자신의 견해와 일치하는 정도에 따라 점수를 줬다. 가장 부정하는 것(1점)에서부터 중립(7점), 가장 긍정하는 것(13점)의 척도로 강제 정규 분포 반응을 하도록 한 것이다. 이렇게 수집한 자료로 Q요인분석을 실시했다(PC QUANL 프로그램 사용).

    대중이 인식하는 박 대통령 이미지는 4개 요인, 즉 ▲혼군(昏君) ▲우리 VIP ▲얼굴마담 ▲관료적 정치인으로 구분됐다. 이들 요인이 설명하는 총 누적 변량비율은 58.04%였다. 이번 연구가 전체 대중이 가진 마음의 60% 가까이를 읽어냈다는 뜻이다.

    60명의 참여자 중 40명이 박 대통령을 ‘혼군’으로 인식해 가장 비율이 높았고(60%), ‘얼굴마담’으로 인식한 사람이 9명(15%)으로 그 뒤를 이었다. ‘우리 VIP’는 7명(12%), ‘관료적 정치인’은 4명(6%)이었다. 박 대통령을 지지하지 않은 사람들은 그를 주로 혼군의 이미지로 여겼고, 지지하는 사람들은 ‘우리 VIP’ ‘얼굴마담’ ‘관료’로 보았다.

    대통령 이미지 탐색은 ‘무엇을 어떻게 보느냐’와 관련된 인식론적 이슈를 다루는 것이다. 대중의 마음속에 은연중에 존재하는 생각을 끄집어낸 그 연구 결과가 구체적인 사회현상이나 여론조사 결과로 드러나기까지는 보통 이미지 탐색 조사가 끝난 후 최소 6개월에서 1년의 시간이 걸린다. 이런 이유로 2014년 7~9월 진행한 연구를 2015년 5월 발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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