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이 불편한 까닭은 또 있었다. 나의 부모님은 경남 마산 출신이다. 1960년, 1961년에 태어나 80학번으로 대학에 입학하셨다. 386세대의 일원이다. 부모님을 존경한다. (당연히) 나의 부모로서도 존경하지만 두 분이 가진 직업과 경제적 능력 또한 존경한다. 두 분의 ‘지위’와 ‘능력’ 덕분에 우리 자매는 상경(上京)해 대학을 다닐 수 있었고 친할머니, 외할머니를 부양할 수 있었다.
오해는 사고 싶지 않은데, 나는 금수저가 아니다. 우리 집은 (내가 알기로는) 자산 이전계급도 아니다. 그렇다고 자산 빈곤계급도 아니다. 부모님은 대학 졸업과 동시에 취업했고 직장생활 중 맞이한 IMF(국제통화기금) 위기를 현명히 넘겼다. 덕분에 내가 (상대적으로 편하게) 서울에서 책 읽고 공부할 수 있었다는 점을 말하고 싶었다.
동시에 나는 (저자의 표현을 빌리자면 386세대의 약속 위반으로 고통받는) 90년대생이자 청년이며 여성이다. 부모님, 부모님의 친구, 그 친구의 친구 분들이 견고히 구축한 한국 사회의 위계 구조에서 피해자다. 취업은 여전히 막막하고 20대에 결혼하겠다는 ‘버킷리스트’는 삭제됐다. 아등바등 노력해 같은 세대 경쟁자를 제치고 취업에 성공한다 해도 남성보다 더 적은 임금을 받을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휩싸인다.
그러면서도 나는 위계질서에 순응하며 살길을 모색하고 있다. 그 속에서 불안감을 느끼는 동시에 문제가 해결되길 바라고 있다. 모순으로 보일지 모르지만, 희망 직업이 있고, 가정을 꾸리고 싶으며, 부모 세대만큼의 경제 능력은 있었으면 하는 이 시대 청년(이자 여성)이 겪는 현실의 한 모습이다.
나는 오늘도 좁은 취업문을 통과하지 못하고, 설에도 고향에 가지 못한 채 아르바이트를 한다. ‘90년생이 온다’에서 말한 것처럼 정규직이 돼 ‘상사 눈치 보지 않고 당당히 나의 휴가를 쓸 수 있’을 날이 오길 바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