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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나를 키운 건 8할이 ‘김’

김민경 ‘맛 이야기’ ㊸

  • 김민경 푸드칼럼니스트 mingaemi@gmail.com

어쩌면 나를 키운 건 8할이 ‘김’

아이를 늦게 낳은 친구가 있다. 영영 부부만 단출히 살 것 같더니 마흔을 코앞에 두고 아들을 얻었다. 친구는 자기 자신과 ‘고군분투’를 벌이며 아이를 키웠다. 또래들은 이미 중학생, 고등학생을 키우는 처지여서 육아 품앗이가 어려웠다. 워킹맘이라 자기 입에 밥 넣을 새도 없이 몇 년을 살았다. 그 아이가 쑥쑥 자라 일곱 살이 됐다. 친구는 천방지축 말 같은 아들을 보며 가끔 이렇게 말한다. “쟤 키운 건 8할이 김이야, 김.”

짜고 달고 고소 구수하고 쫀득한 맛

김에 싼 밥을 입에 쏙 넣고 오물오물 씹으면 짜고 달고 고소하고 구수하고 쫀득한 맛이 난다. [Gettyimage]

김에 싼 밥을 입에 쏙 넣고 오물오물 씹으면 짜고 달고 고소하고 구수하고 쫀득한 맛이 난다. [Gettyimage]

김 이야기를 하면 늘 엄마 생각이 난다. 밥보다 잠이 좋았던 ‘국민학생(지금은 초등학생)’ 둘을 깨워 밥을 먹여 학교에 보내야 했던 엄마는 종종 갓 지은 밥을 김에 싸서 접시에 조르르 놓아두고 도시락을 준비했다. 짭짤한 소금이 듬성듬성 묻어 있고, 참기름과 들기름 향이 함께 나는 김이 따끈한 밥에 착 붙어 가운데는 눅진하고 가장자리는 바삭하다. 입에 쏙 넣고 오물오물 씹으면 짜고 달고 고소하고 구수하고 쫀득한 맛이 난다. 밥과 김이 선사하는 맛의 축복을 안 받아 본 한국 사람은 없을 것 같다. 

김은 옛날에 해우(海羽, 바다의 깃털), 해의(海衣, 바다 이끼), 해태(海苔, 바다 이끼) 등으로 불렸다. 그러다가 1640년 전남 광양에서 김 양식법을 개발한 ‘김여익’의 성을 따 ‘김’이라는 이름을 붙였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김은 본래 이름에서 알 수 있듯 바다 바위 등에 이끼처럼 붙어 자란다. 이것을 채취해 얇게 펼쳐 널어 말리면 김이 된다. 우리나라에서 김을 먹은 기록은 삼국시대부터 찾아볼 수 있다. 


곱창처럼 구불구불한 모양이 납작하게 눌려 있는 곱창김. 돌김 가운데서도 맛있기로 으뜸이다. [Gettyimage]

곱창처럼 구불구불한 모양이 납작하게 눌려 있는 곱창김. 돌김 가운데서도 맛있기로 으뜸이다. [Gettyimage]

오랜 역사 동안 우리와 함께 살아온 김 중에 제일 귀한 대접을 받는 건 돌김 중에도 곱창김이다. 곱창처럼 구불구불한 모양이 납작하게 눌려 있어 붙은 이름이다. 돌김 종자는 잇바디, 모무늬 등 두 가지다. 이중 잇바디가 곱창김이 된다. 곱창김은 10월 말부터 한두 달 동안만 짧게 채취하므로 생산량이 적다. 다른 돌김에 비해 촘촘하면서 두툼하고, 빳빳하며 윤이 난다. 김 특유의 향이 진하고 구수하고 달큰한 감칠맛도 남다르다. 곱창김은 그대로 꾹꾹 씹어 먹어도 맛있지만 구우면 훨씬 먹음직스러운 향이 나고, 바삭함도 살아난다. 

김은 종류가 같아도 채취 시기에 따라 맛과 향에 차이가 생긴다. 늦가을에 채취한 김은 부드러운 대신 맛이 순하다. 1월쯤 되면 딱 알맞은 김 맛이 나며, 2월에는 두툼하고 먹을 게 많지만 특유의 향은 덜하다.



돌김으로 만드는 ‘특식’ 김튀김

김을 넣고 뭉쳐 만든 주먹밥. 밥과 김이 선사하는 맛의 축복을 안 받아 본 한국 사람은 없을 것이다. [Gettyimage]

김을 넣고 뭉쳐 만든 주먹밥. 밥과 김이 선사하는 맛의 축복을 안 받아 본 한국 사람은 없을 것이다. [Gettyimage]

‘김은 몰래 못 먹는다’는 말이 있다. 김을 구워보면 금세 안다. 아무리 조심조심 다뤄도 온 부엌에 김가루가 날아가 붙는다. 요즘에는 조미김이 다양하게 나오지만 예전에는 집집마다 김을 구워 맛을 냈다. 우리집도 마찬가지였는데 엄마는 하루 날을 잡아 김 두어 톳(200~300장)을 손질하셨다. 참기름과 들기름을 섞어 바르고, 소금을 뿌리고 석쇠에 올려 굽는다. 잘 구운 김은 냉동실에 뒀는데 네 식구가 끼니 때마다 먹으니 그리 오래 가지는 못했다. 

김 굽는 날의 특식은 바로 김튀김이다. 두툼한 돌김을 큼직하게 4등분한 뒤 두어 장씩 겹쳐 기름에 튀겨 소금, 설탕을 솔솔 뿌려 버무린다. 그대로 집어 먹어도 좋고, 밥반찬도 된다. 고소함이 바삭바삭 부서지는 맛에 너도나도 한 움큼씩 먹어치우기 일쑤였다. 


만둣국, 칼국수 등에 김가루를 더하면 향과 맛이 확실히 달라진다. [Gettyimage]

만둣국, 칼국수 등에 김가루를 더하면 향과 맛이 확실히 달라진다. [Gettyimage]

김가루를 뿌린 김치볶음밥. 김가루는 많은 한식과 찰떡궁합으로 어울린다.  [Gettyimage]

김가루를 뿌린 김치볶음밥. 김가루는 많은 한식과 찰떡궁합으로 어울린다. [Gettyimage]

마른 김은 요모조모 참 쓸 곳이 많다. 구워서 그대로 즐기고 주먹밥도 만들며, 무엇이든 넣고 돌돌 말아 먹으면 그 자체로 맛있다. 생김을 대강 부숴 쪽파나 양파 등을 넣고 새콤달콤하게 무쳐서 먹고, 짭짤하고 고소하게 볶아서도 먹는다. 간장으로 장물을 만들고 마른고추랑 함께 넣어 장아찌를 만들면 또 하나의 밥도둑이 된다. 다양한 채소를 준비해 월남쌈처럼 근사하게 김쌈을 만들어도 좋고, 김국을 끓여 구수하게 즐겨도 좋다. 달걀찜이나 달걀말이에도 넣고, 김치볶음밥이나 깍두기볶음밥에 김을 넣으면 구수한 맛이 더해져 훨씬 맛있다. 만둣국, 칼국수, 수제비, 잔치국수 등에도 김가루를 더하면 확실히 향과 맛이 달라진다. 시커먼 김가루 뿌린 음식을 즐기지 않는 사람도 있을 수 있으나, 맛으로 치면 김을 좀 더해 먹는 게 아무래도 한결 낫다. 

귀한 물김을 구했다면 무와 굴을 넣고 시원하게 국을 끓여 먹고, 액젓에 다진 마늘 섞어 조물조물 무쳐 먹어도 맛있다. 물김에 감자가루나 밀가루를 넣어 섞고 얄팍하게 전을 지져 먹는 것도 별미다.



신동아 2021년 1월호

김민경 푸드칼럼니스트 mingaemi@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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