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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르메스가 독보적 명품 된 까닭

[럭셔리 스토리] “이건 가방이 아니라 버킨이에요”

  • 이지현 서울디지털대 패션학과 교수

에르메스가 독보적 명품 된 까닭

  • 185년 역사를 간직한 에르메스는 일명 ‘에·루·샤’라고 하는 루이비통, 샤넬과 함께 세계 3대 명품 패션 브랜드 중 하나다.에르메스는 단순히 비싸기만 한 명품이 아닌, 창업자의 정신을 6대손에 이르기까지 오랜 시간 계승해 온, 세계에 몇 안 되는 헤리티지 브랜드다.
제니퍼 로페즈 피크닉 켈리백(왼쪽). 제인 버킨 버킨백. [Gettyimage]

제니퍼 로페즈 피크닉 켈리백(왼쪽). 제인 버킨 버킨백. [Gettyimage]

켈리백. 버킨백. 보자기 스카프(왼쪽부터). [에르메스 홈페이지, 에르메스]

켈리백. 버킨백. 보자기 스카프(왼쪽부터). [에르메스 홈페이지, 에르메스]

프랑스를 대표하는 브랜드 에르메스는 1837년 티에리 에르메스(Thierry Hermès)가 세운 마구 상점에서 시작됐다. 당시 주된 교통수단은 마차였는데 에르메스가 직접 손으로 만든 안장·채찍을 비롯한 마구는 정교했고, 장갑·부츠 같은 승마 용품은 품질이 우수했다. 1867년 파리에서 열린 만국 박람회에서 티에리 에르메스는 직접 만든 마구 용품으로 1등상을 받았다. 이는 에르메스 마구 용품의 우수한 품질과 견고함을 공식적으로 인정받은 첫 대회였고, 나폴레옹 3세와 왕족이 에르메스 주요 고객이 되는 계기가 됐다.

티에리 에르메스가 사망하고 아들 샤를 에밀 에르메스(Charles-Émile Hermès)가 가업을 이어받았다. 그 역시 우수한 수작업으로 품질을 인정받아 파리 세계박람회에서 1등상을 받았다. 샤를 에밀 에르메스의 사업 확장으로 1900년 이후 프랑스는 물론 독일·네덜란드·벨기에·스페인 등 유럽 주요 왕족이 고객이 됐다.

티에리 에르메스의 손자인 에밀 모리스 에르메스(Émile-Maurice Hermès)는 1918년 자동차 출현으로 교통수단 변화를 예측하고 여행업이 성장할 것이라고 확신했다. 이후 마구 용품 제작으로 시작한 에르메스는 여행용품과 패션 액세서리인 벨트·장갑·가방·의류 사업으로 대대적 변화를 맞는다. 1922년 에밀 모리스 에르메스가 가방에 지퍼를 처음 도입한 것은 혁신이었다. 그는 새로운 장인들을 영입해 1925년 처음으로 남성용 의류와 골프 재킷을 만들었다. 1927년에는 주얼리를 선보였고, 1928년에는 시계와 샌들을 출시했다.

그에게는 4명의 딸이 있었고 사위 중 로베르 뒤마(Robert Dumas)가 에밀 모리스 에르메스의 뒤를 이어 4대 에르메스 가업을 이어받았다. 로베르 뒤마는 브랜드 특유의 오렌지색 박스와 마차 그림 로고를 탄생시켰고, 켈리(Kelly)백을 유행시켰다.

이후 1978년 로베르 뒤마의 아들 장 루이 뒤마(Jean-Louis Dumas)가 에르메스를 맡으면서 5대 경영이 시작됐다. 그는 켈리백의 인기에 버금가는 버킨(Birkin)백을 탄생시켰다. 2010년경 루이비통을 비롯한 수많은 명품 브랜드를 소유한 LVMH 그룹이 에르메스의 지분을 늘려가는 것이 알려져 논란이 됐다. 대대로 가족경영 체제를 유지하던 에르메스가 당시엔 처음으로 가족이 아닌 전문 경영인 파트릭 토마(Patrick Thomas)가 회장직에 올라 있던 상황이었다.



이후 에르메스는 토마 회장의 후임으로 창업자의 6대손인 악셀 뒤마(Axel Dumas)를 추대했고, 현재 에르메스는 가문의 유산을 보호하기 위해 결속력을 다져 명품 기업화 시대에서 몇 안 되는 가족경영 체제를 유지하는 명품 브랜드다.

브랜드 가치를 위한 매장 총량제

에르메스는 백화점 유치 1순위 브랜드로 꼽히며 입점 기준이 까다롭기로 유명하다. 에르메스는 백화점 입점을 결정하는 데 매우 보수적이다. 무리한 확장은 브랜드 가치를 하락시키기 때문이다. 1997년 2월 에르메스는 신라호텔 아케이드와 갤러리아백화점 압구정 명품관에 국내 첫 매장을 오픈했다.

2000년에는 도산공원 근처의 대지를 매입해 2006년 세계에서 4번째 단독 플래그 숍인 메종 에르메스 도산을 개점했다. 국외의 경우 명품 브랜드들의 플래그 숍이 지역을 상징하는 건축물로 꼽히기도 하는데, 국내에서는 VIP 고객에게 다양한 혜택과 서비스를 제공하는 백화점 선호도가 높아 플래그 숍 인기가 높지는 않다. 그러나 정식 메종 에르메스는 2022년 아시아에서 서울, 도쿄, 상하이 3곳뿐이다.

에르메스 센텀시티점. [에르메스 홈페이지]

에르메스 센텀시티점. [에르메스 홈페이지]

에르메스 매장은 2022년 서울에 총 8개가 있으며 광역시 중에서는 부산 신세계백화점 센텀시티점과 신세계 대구점에 매장을 운영하고 있다. 2001년 7월에 부산 해운대구 파라다이스 호텔 명품관 파라디아에 첫 부티크를 개점한 후 파라디아 명품관이 폐점하면서 2007년에 현대백화점 부산점으로 매장을 이전했다.

2009년 신세계백화점 센텀시티점은 전 세계 최대 규모 백화점으로 개점과 동시에 에르메스 매장도 오픈한 첫 사례다. 이후 2013년 현대백화점 부산점에서 철수했다. 그러곤 2020년 신세계 대구점에 입점이 확정되면서, 같은 해 11월 2011년에 개점한 현대백화점 대구점 매장에서 철수했다. 2017년 당시 에르메스 부회장이던 플로리앙 크랭은 국내 10개 매장에서 추가 출점할 계획이 없다고 밝혔으나 2022년 에르메스는 현대백화점 판교점에 국내 최대 규모로 11번째 매장을 오픈할 예정이다.

장인 정신이 만들어낸 희소한 가치

1990~2010년대는 명품 브랜드 기업화가 러시를 이뤘다. 루이비통 모에에네시(LVMH) 그룹을 비롯해 구찌의 모기업 케어링 그룹, 주얼리·시계에 특화된 리치몬트 그룹 등 다수 브랜드를 소유한 명품 기업들이 등장했다. 이들은 제품 수요를 맞추고 생산 단가를 낮추고자 중국 등에서 대량생산해 장인의 수작업으로 이름을 높인 브랜드 제품을 공장화했다. 그 결과 매출은 올렸지만, 품질은 떨어졌고 모조품은 늘었다.

에르메스는 장인 정신을 고수하고 품질을 최우선으로 가죽 제품은 지금도 프랑스에서만 생산한다. 에르메스는 장인 정신을 최고의 가치로 내세우며 모든 제품을 프랑스에 있는 50여 개 공방에서 수작업으로 제작한다. 글로벌 직원 1만7600명 중 장인만 5000명이 넘지만 5년 넘게 수련을 거친 장인만 가방을 만들 수 있는데 한 명이 일주일에 가방을 두 개 이상 만들기도 어렵다고 한다.

프랑스 장인이 최고급 가죽으로 한땀 한땀 일일이 수작업으로 만들기에 생산이 한정돼 있다. 실제로 버킨백과 켈리백의 경우 공급량을 매년 12만 개로 제한한 것으로 전해진다. 또한 에르메스는 고객 1인당 같은 디자인 가방을 1년에 2개까지만 살 수 있도록 제한 정책을 시행하고 있다.

2022년 18년 만에 재결합해 화제를 모은 가수 겸 배우 제니퍼 로페즈와 벤 애플렉의 파리 신혼여행 중 착용한 제니퍼 로페즈의 에르메스 켈리백 희귀 모델이 대중에게 주목받았다. 제니퍼 로페즈의 에르메스 피크닉 켈리백은 소가죽과 라탄 소재에 35㎝ 사이즈로, 2011년 당시 에르메스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장 폴 고티에가 디자인하고 세심한 장인 정신을 바탕으로 10시간 동안 수제로 제작됐다. 매우 희귀한 것으로 알려진 피크닉 켈리백은 당시 한정판으로 판매됐으며 2018년 생산이 중단된 가방이라 쉽게 구할 수 없다.

현재 구할 수 있는 경로는 경매를 통한 개인 간 거래뿐이다. 에르메스 피크닉 켈리백의 판매 가격은 1만4000달러(약 1823만 원)였는데, 2021년 소더비 홍콩 경매에서 녹색 가죽 피크닉 켈리백이 10만 달러(약 1억3025만 원) 이상에 낙찰된 바 있다.

왕비의 가방 ‘켈리백’

에르메스의 대표 제품 ‘켈리백’ 정식 명칭은 ‘프티 삭 오트 아 크루아(Petit Sac Haut à Courroie) 백’이다. 1892년 에르메스는 말 안장을 넣고 다니는 가방을 만들었고 이것은 켈리백 원형이 됐다. 1923년 에르메스의 3대인 에밀 모리스 에르메스가 아내 줄리를 위해 매우 단순한 디자인의 가방을 만들면서 여성을 위한 큰 가방이 본격적으로 제작됐다.

에르메스 ‘켈리백’ 유행의 시작은 영화 소품에서 출발한다. 1954년 영화 ‘나는 결백하다’의 전반적인 톤과 에르메스의 비주얼이 잘 맞는다고 판단한 히치콕 감독은 의상 디자이너 에디스 헤드에게 에르메스 제품을 영화에 쓰길 제안했다. 에디스 헤드는 영화의 주인공이며 영국의 영화배우 그레이스 켈리에게 어울리는 에르메스 제품을 영화에 소품으로 사용했다.

이를 계기로 그레이스 켈리는 실생활에서도 에르메스 제품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1956년 모나코 왕자와 결혼해 왕비가 된 그레이스 켈리가 빨간색 악어가죽 소재 에르메스 가방으로 임신 초기 모습을 가린 사진이 잡지 ‘Life’에 공개되면서 일명 ‘켈리백’으로 주목받았고 대중에게 알려졌다. 이후 에르메스는 직접 모나코 왕실에 찾아가 ‘켈리백’이라고 불릴 수 있도록 허락받았고, 1977년부터 공식적으로 ‘켈리백’으로 이름을 바꿨다.

1930년대에 디자인된 켈리백은 사이드 스트랩, 회전 잠금장치, 플레이트, 네 개의 스터드로 구성된 기능적인 가방이다. 켈리백을 완성하려면 가죽 조각 36장과 여러 개의 금속 부품이 필요하며 장인 한 명이 15~20시간 정도 작업해야 한다. 켈리백 제작에 능숙하다는 것은 사실상 모든 에르메스 가방 디자인을 마스터했음을 의미한다.

켈리백은 에르메스의 또 다른 베스트셀러인 버킨백의 원형이다. 2021년 에르메스의 상징과도 같은 켈리백은 주얼리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피에르 아르디와를 통해 목걸이, 팔찌, 반지 등과 같은 주얼리로 재탄생하기도 했다.

이건 가방이 아니라 ‘버킨’

악셀 뒤마(왼쪽). 섹스 앤 더 시티의 한 장면. [Gettyimage. HBO]

악셀 뒤마(왼쪽). 섹스 앤 더 시티의 한 장면. [Gettyimage. HBO]

공급을 통제해 희소성을 높이는 전략은 에르메스 대표 제품 켈리백과 버킨백은 돈이 있어도 사지 못하는 제품으로 더욱 명성을 얻었다. 주연 배우들의 패션 스타일도 큰 관심거리이던 미국 드라마 ‘섹스 앤 더 시티, 1997’에서 한 장면이 화제가 된 적이 있다. 버킨백을 사려는 주인공 사만다에게 에르메스 직원이 “이건 가방이 아니라 버킨이에요”라며 5년은 기다려야 한다고 말하는 장면이다. 결국 사만다가 유명 배우인 루시루의 이름으로 대기를 걸어서 버킨백을 구입한 사건으로도 버킨백에 대한 여성의 로망과 희소성을 잘 보여준다.

버킨백 탄생 또한 독특하다. 에르메스 창업자 티에리 에르메스의 5대손이자 경영자 장 루이 뒤마 에르메스는 1984년 파리에서 런던으로 가는 비행기 안에서 우연히 프랑스에서 활동하는 가수 겸 배우인 영국 출신 제인 버킨(Jane Birkin) 옆자리에 앉았다. 당시 패션 아이콘이던 버킨은 바구니 같은 커다란 밀짚 가방을 들고 다녔는데, 버킨은 에르메스에게 “내 마음에 드는 큰 가죽 가방을 찾기가 힘들어 이런 가방에 넣고 다닌다”고 얘기했다.

그는 바로 비행기 멀미 봉지에 그녀가 원하는 켈리백과 디자인은 비슷하지만 사이즈가 큰 가방을 스케치한다. 이후 여행과 외출이 잦은 사람을 위한 실용적인 커다란 검정 가죽 가방에 버킨의 이니셜을 새겨 버킨에게 보냈다. 그 선물엔 “가방에 세상과 꿈을 담고 다니는 그대를 위하여”라는 메모가 있었다. 이렇게 탄생한 것이 버킨백이다.

비싼 가격만큼 예약하고도 수년 후에야 손에 넣을 수 있는 버킨백은 10년 이상 경력을 쌓은 장인만 제작에 참여할 자격이 주어지며 장인이 만드는 데도 평균 48시간이 걸린다고 한다.

실크 스카프 ‘카레’

스카프가 처음 만들어진 1930년대 당시 에르메스는 유명한 삽화가들에게 실크에 그림을 그리게 의뢰하면서 ‘고급스러운 핸드메이드 스카프’라는 인식을 심어주었다. 이후 지금까지 에르메스는 2000가지가 넘는 디자인을 만들어왔다.

스카프 한 장마다 제목을 붙일 만큼 다양한 세계관을 표현한다. 지도가 프린트된 군인들의 손수건에서 착안해 프린트를 넣은 실크 스카프를 만들어보기로 한 3대 회장 에밀 모리스 에르메스는 브랜드 설립 100주년이던 1937년 실크 기술공이 모여 있는 리옹에 공장을 건립하고 스카프를 선보이기 시작했다.

주 데 옴니버스 에 담 블랑시. [에르메스 홈페이지]

주 데 옴니버스 에 담 블랑시. [에르메스 홈페이지]

1937년 그는 마들린~바스티유 간 파리 버스 노선 개통을 기념해 파리 버스와 노선의 형태에서 영감을 받아 90x90㎝ 정사각형의 ‘주 데 옴니버스 에 담 블랑시’라고 불리는 실크 스카프를 최초로 만들었다.

정사각형을 프랑스어로 카레(carre)라고 하며 정사각형을 기반으로 제작한 에르메스 스카프는 ‘에르메스 카레’라고 불린다. 에르메스 스카프는 가느다란 트윌리, 90x90㎝ 정사각형의 기본 스타일, 45x45㎝ 가브로시, 140x140㎝ 숄로 만들어졌고, 2007년 카레 출시 70주년을 맞아 70x70㎝ 스카프도 출시했다.

에르메스 스카프 역시 가죽 제품과 마찬가지로 수작업을 통해 제작된다. 디자인 개발에만 1~2년이 걸리고, 에르메스 특유의 실크를 짜내는 것부터 스카프 가장자리를 손바느질로 마무리하는 18개월 동안 장인들은 수많은 스크린 판을 하나씩 제작해 실크 위에 찍어낸다. 최초의 목각판 인쇄 방식에서 1947년부터 실크스크린 기법으로 변경했다.

에르메스 스카프는 색상이 다양하기로 유명한데, 하나의 색을 프린트하려면 하나의 스크린 판이 필요하다. 에르메스 스카프는 1년에 두 번의 새로운 디자인 컬렉션을 선보이고 있으며, 일반 스카프보다 두꺼운 것이 특징이다. 최초의 카레 스카프가 대성공을 거둔 후 스카프에 삽입되는 일러스트에도 많은 변화가 있었다. 마구상에서부터 파리 사교계 모임, 여행·마차·경마·보트·항해·달 탐험 등 시대를 반영하는 디자인을 사용한다.

1956년 여름, 모나코 왕비 그레이스 켈리가 선박왕 오나시스의 요트에 올랐다. 그는 하얀 드레스에 에르메스 스카프를 오른팔에 감싸 목에 걸어 맸다. 부러진 팔을 지지하기 위해서였는데, 이 모습은 가장 세련되고 아름다운 ‘스카프 룩’으로 남았다. 엘리자베스 2세, 재클린 케네디, 오드리 헵번, 메릴린 먼로 등도 에르메스 스카프를 애용했다.

에르메스는 2019년 S/S 컬렉션으로 한국 보자기에서 영감을 받은 ‘보자기의 예술(L’Art Du Bojagi)’이라는 이름의 신상품을 출시했다. 에르메스의 총괄 아트 디렉터인 피에르 알렉시 뒤마는 한국 보자기에서 영감 받아 이 스카프 제작을 제안했다. 에르메스 파리 본사 제작팀은 그의 뜻을 살려 한국 자수 박물관에 직접 방문해 보자기를 본 뒤 해당 스카프을 탄생시켰다. 이 스카프는 조각보를 연상하게 하는 패턴으로 크기 또한 큼지막한 보자기와 비슷한 가로·세로 140㎝의 정사각형이다. 보자기 스카프는 에르메스 프랑스 공식 홈페이지에서 945유로, 한화로 120만 원 정도에 판매됐다.

에르메스 상징 ‘오렌지 박스’

오렌지 컬러 박스. [에르메스 홈페이지]

오렌지 컬러 박스. [에르메스 홈페이지]

견고한 품질을 겸비한 원형, 직사각형, 정사각형의 오렌지 박스는 프랑스와 이탈리아의 각기 다른 제조 회사 7곳에서 제작된다. 1942년 당시 크림 컬러의 포장용 박스가 부족해 공급 업체는 남아 있던 오렌지 컬러의 박스를 제작했고,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팬톤 컬러 팔레트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따뜻한 오렌지 컬러가 에르메스의 상징이 됐다.

제작에 사용한 박스 소재는 100% 재활용 재료로 오렌지 박스 안에 넣는 티슈페이퍼 또한 지속 가능한 방식으로 관리한 숲에서 얻은 원료로 만들어진다. 제조업체에서 공급업체로 이어지는 엄격한 기준을 토대로 오렌지 박스는 국제산림관리협회의 FSC 인증을 획득했다.

에르메스의 진정성은 친환경 원료나 비오염성 수성 잉크로 프린트한 로고처럼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요소에서 비롯한다. 에르메스는 전통을 철저히 고수하면서도 2021년 현대적 소재인 균사체(Mycelium) 가죽을 도입했다. 소가 아니라 버섯 균사체를 가죽처럼 가공한 것으로 균사체 가죽의 품질과 내구성이 기존 가죽과 동일하게 높은 기준을 충족한다.

에르메스는 1922년 핸드백에 지퍼를 도입한 것과 같은 혁신과 장인 정신으로 다져진 견고한 전통으로 유산을 이어왔다. 당대 최고에 만족하지 않고 미래를 내다보며 혁신을 시도한 결과, 독보적 명품 브랜드로서 세기를 넘어 지금까지 명성을 유지하고 있다.



신동아 2022년 10월호

이지현 서울디지털대 패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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