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석 지지자들이 느끼는 혼란은 당연
녹색정의당은 ‘헤어진 남자친구’
개혁신당 순항 위해 낮은 자세로 임하겠다
싸움 말고 타협하는 ‘진짜 정치’ 할 터
개혁신당에 합류한 류호정 전 의원. [조영철 기자]
[영상] 류호정, 정치를 말하다
류호정 전 의원은 늘상 주류와 멀리 떨어져 있었다. 원내 제3당이던 정의당(현 녹색정의당) 비례대표로 국회에 입성했다. 제3당 의원이지만 눈에 띄었다. 남성 중심의 21대 국회에서 여성인 동시에 최연소 의원(당선 당시 27세)이었다. 20대 여성 정치인의 등장에 꽤 많은 사람이 관심을 보였다.
류 전 의원은 자신에게 모이는 시선을 적극 활용했다. 2020년 10월 중대재해처벌법 제정 촉구 1인 시위가 대표적이다. 이날 류 전 의원은 태안화력발전소 하청업체 비정규직으로 일하다 숨진 고(故) 김용균 씨 것과 같은 작업복을 입고 시위에 나섰다. 이외에도 2021년 6월에는 타투 새긴 등을 드러내 타투업 합법화를 촉구했고, 같은 해 7월에는 채용 비리를 척결하겠다며 영화 ‘킬 빌’의 주인공 베아트릭스 키도(우마 서먼 분)가 입었던 노란 트레이닝복을 입기도 했다.
류 전 의원은 “양대 정당 소속이 아닌 만큼 내 주장을 알리기가 쉽지 않아 의상 등 다양한 퍼포먼스를 활용했다”면서 웃었다. 비주류 정당에서 활동하던 류 전 의원은 다시 비주류 세력에 합류했다. 원래 몸담았던 녹색정의당을 탈당해 제3지대를 선택했다.
지금은 제3지대 연합정당인 개혁신당에 몸담고 있다. 1월 15일 녹색정의당에 탈당계를 내고 의원직까지 내려놓으며 한 결정이지만 환영만 받는 모습은 아니다. 일부 개혁신당 지지자들은 류 전 의원이 합류하면 탈당하겠다는 의사를 표명하기도 했다. 이준석 개혁신당 공동대표는 2월 15일 SBS 라디오 ‘김태현의 정치쇼’에 출연해 “류 전 의원으로 인해 탈당 인원이 늘고 있냐는 질문에 “그렇게 볼 수 있다”고 답했다.
“언론이 은근히 싸움을 붙이더라”
이준석 개혁신당 공동대표는 SBS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 류호정 전 의원의 합류로 개혁신당 탈당이 늘었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 [뉴스1]
“갑작스러운 통합 선언에 개혁신당 당원, 이 대표의 지지자가 혼란을 느끼는 건 당연하다. 이 대표의 상황을 이해하고 있고, 언론이 은근히 싸움을 붙이는 것에는 응하고 싶지 않다. 개혁신당의 순항을 위해 더 낮은 자세로 임하겠다.”
이 대표와는 이야기를 해봤나.
“잠깐 통화한 적은 있지만, 특별한 내용은 없었다. 나는 그저 상황을 이해하고 있다고만 말했다.”
잡음을 겪으면서까지 제3지대를 선택한 이유가 있나.
“2017년 정의당에 입당했을 때부터 나는 항상 제3지대에 있었다. 양극단 진영 정치 구도를 깨고 경쟁력 있는 교섭단체를 만들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양대 정당에 입당해 문화를 바꿀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어렵다. 양당 구도에서는 지지 세력의 이야기만 들어도 당선이 가능하다. 양당 소속 정치인들은 누가 더 지지 세력의 목소리를 선명하게 대변하느냐를 두고 경쟁하게 된다. 그 과정에서 어느 당도 지지하지 않는 국민의 목소리는 외면받는다. 최근 이 같은 폐해가 더욱 심화했고, 이를 해결하고자 다양한 세력이 제3지대에 집결하고 있다,”
다양한 정치세력이 모인 만큼 개혁신당 안에서 잡음이 이어지리라는 분석도 있다.
“안에서 싸워서는 안 된다는 합의가 있다. 양대 정당의 다툼에 신물 난 사람들이 모여서 또 다투는 건 어불성설이다. 갈등 소지가 될 만한 일이 생기지 않게 서로 절제하고, 각자 과거 발언이 유권자들의 오해를 산 부분이 있는지 성찰한다면 잡음은 차차 잦아들 것이다.”
잡음을 예상한 것일까. 지난해 12월 11일 류 전 의원은 “모든 남성은 가해자라는 명제에 기초한 페미니즘 정치는 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류 전 의원은 의정 활동 기간 내내 ‘남성 비하 정치인’이라는 오해에 시달렸다. 이 선언은 유권자들의 오해를 불식하려는 시도로 보였다.
페미니즘, 성평등주의를 대하는 방식이 조금은 달라진 것 같다.
“오해를 풀려면 나부터 돌아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성별 갈등이 심해지고만 있는데 나를 포함한 정치권은 이 갈등을 조장하기만 했다. 지금이라도 해결하고 타협점을 찾아 나서려 한다.”
쉽지는 않아 보인다.
“정치권부터 태도를 바꾸면 조금씩 해결할 수 있는 문제다. 교섭과 타협을 통해 갈등을 해결하는 것이 정치 아니겠나. 그간 정치권의 성평등 전략이 다툼만 일삼는 정쟁이었다면, 이제야말로 정치적 전략이 필요한 때다.”
선거연합정당 막으려 당적 유지
류 전 의원이 친정인 녹색정의당에 있었다면 상황은 달랐을 것이다. 의견을 교정할 필요도 없었을 것이며 잡음도 피할 수 있었다. 문득 그가 의원직까지 내치며 친정을 떠난 이유가 궁금해졌다.탈당까지 불사하며 개혁신당에 합류한 이유가 있나.
“녹색당, 진보당 등 다른 진보정당과 손잡고 ‘선거연합정당’을 만든다는 당론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이는 결국 민주당 지지층에게 표를 받는 위성정당이 돼버릴 공산이 크다.”
류 전 의원의 예측은 그대로 실현됐다. 더불어민주당은 2월 13일 새진보연합, 진보당 등과 함께 일종의 위성정당인 ‘야권 통합 비례정당 출범’을 위한 첫 회의를 열고 “비례대표·지역구 후보·정책 단일화를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녹색정의당도 위성정당 합류 카드를 만지작거렸다.
탈당 전까지 류 전 의원은 녹색정의당 내 ‘세번째권력’이라는 계파에 소속돼 있었다. 지난해 12월 17일 세번째권력은 금태섭 전 의원과 손잡고 새로운선택을 창당했다. 새로운선택은 2월 9일 개혁신당과 합당을 선언했다. 류 전 의원이 새로운선택에 합류하자 녹색정의당은 류 전 의원의 탈당을 요구했다. 그러나 류 전 의원은 탈당을 거부하고 의원직을 한동안 지켰다.
금태섭 전 의원이 지난해 12월 17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새로운선택-세번째권력 공동창당대회에서 대표직 수락 연설을 하고 있다.[뉴스1]
“헤어진 남자친구”
류 전 의원은 녹색정의당을 “헤어진 남자친구”라고 표현했다. 그 표현대로 녹색정의당은 류 전 의원에게 특별했다. 게임회사에서 해고당한 류 전 의원은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화섬노조에서 활동하며 노동운동가가 됐다. 류 전 의원은 “당시 네이버 등 대형 IT 기업 노조가 화섬노조에 가입하며 IT, 게임업계 출신이 화섬노조로 모였다”고 회상했다. 녹색정의당은 노조운동가이던 그를 비례대표로 발탁했다. 그래서일까. 그와 녹색정의당의 결별은 노동운동과의 결별로도 읽힌다.마침 류 전 의원의 행보도 양대 노총과 거리를 두는 모양새다. 지난해 12월 15일 새로운선택은 주휴수당 폐지, 직무급제 도입을 내건 노동정책을 발표했다. 주휴수당은 근로자가 유급 주휴일에 받는 돈이고, 직무급제는 업무 난이도에 따라 다른 급여를 지급하는 임금체계다. 주휴수당 폐지와 직무급제 도입은 양대 노총이 반대하는 정책이다.
개혁신당과 합당 이전 새로운선택의 정책만 보면 노동계와 거리를 두는 모양새다.
“노동운동의 언어와 노동 정치의 언어가 달라서 생기는 문제다. 운동은 누군가를 대변해야 한다. 그만큼 메시지가 선명해야 한다. 반면 정치는 여러 이해당사자가 타협해 결과물을 내야 한다. 당연히 노동계의 상대방인 자영업자, 소상공인 처지도 생각해야 한다.”
노조 출신 정치인이 경영인 처지를 헤아린다니 전향적으로 들린다.
“전향이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과거 진보정당을 업데이트하는 과정에 가깝다.”
어떤 부분을 업데이트하고 있나.
“20여 년 전에는 근로자를 대변하면 그 자체로 사회적 약자를 대변하는 일이 됐다. 하지만 지금은 근로 환경이 복잡해졌다. 어떤 상황에서는 근로자보다 소상공인이 약자가 되는 경우도 있다. 배달 플랫폼 등 완전히 새로운 방식의 근로 환경도 등장했다. 이 같은 상황에서 20여 년 전의 가치를 성경처럼 받들고 지키는 것은 더는 약자를 위한 정치가 아니다.”
녹색정의당 안에서 노선을 바꾸는 방식도 가능했을 것 같다.
“당내에서 바꿔보자는 심산으로 세번째권력에 합류했다. 안타깝게도 주류가 되지는 못했다. 어쩔 수 없이 당내 마음을 함께하던 사람들과 새로운선택에 합류했다”
녹색정의당 시절 지지자들도 개혁신당에 합류하고 있나.
“열심히 설득하고 있다. 개혁신당의 길이 조금이라도 더 바람직한 방향이라고 생각하면 합류해 달라고 부탁하고 있다.”
비례대표가 아닌 경기 성남시 분당갑 지역구에 출마하겠다고 선언했다. 연고가 있나.
“첫 직장인 게임회사 취업 후 10년 가까이 살고 있는 지역이다. 비례대표 당선 1년차부터 사무실을 냈다.”
대권주자인 안철수 의원이 버티고 있는 선거구다. 보수색이 강하다는 평가가 있다.
“판교 테크노밸리 등 IT기업이 많아 드나드는 인구가 많다. 그만큼 역동적으로 민심이 변하는 지역이다. 젊은 층이 많으니 오히려 유리한 측면도 있다.”
류 전 의원은 웃으며 이렇게 덧붙였다. “분당갑은 대장동과 백현동을 끼고 있다. 지난 대선부터 양극단의 정치 갈등의 주무대가 된 지역이다. 그만큼 기존 정치세력에 대한 염증도 클 것이다.”
신동아 3월호 표지.
박세준 기자
sejoonkr@donga.com
1989년 서울 출생. 2016년부터 동아일보 출판국에 입사. 4년 간 주간동아팀에서 세대 갈등, 젠더 갈등, 노동, 환경, IT, 스타트업, 블록체인 등 다양한 분야를 취재했습니다. 2020년 7월부터는 신동아팀 기자로 일하고 있습니다. 90년대 생은 아니지만, 그들에 가장 가까운 80년대 생으로 청년 문제에 깊은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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