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간만 변신…대통령 되고 옛날 돌아가는 보수
국민 의식은 변하는데 ‘나는 보수다’ 해서야…
尹 때문에 졌다? 정치권이 하는 소리고…
자기 능력으로 하려는 사람은 한동훈밖에
코로나로 고생했는데 각자도생하라니 民心이…
의료대란, 尹 후퇴 역량 발휘하는 게 현명
野 숫자 믿고 탄핵 무리수 두면…
신동아 대담 김종인 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
국회에서 수적 열세에 놓인 국민의힘은 윤석열 정부 남은 임기 동안 집권 여당 구실을 할 수 있을까. 윤 대통령에 대한 낮은 국정 수행 지지율, 당대표 선출 과정에 불거진 ‘여사 문자 논란’, 그리고 원희룡-한동훈 두 후보자들이 벌인 선을 넘는 신경전은 누가 당대표가 되더라도 여당이 하나로 똘똘 뭉쳐 난국을 헤쳐나갈 수 있겠느냐는 의구심을 낳는다.
여야가 위기에 처했을 때마다 각각 ‘비상대책위원장’을 맡아 회생을 주도했던 ‘해결사’ 김종인 전 비대위원장에게 22대 총선에 담긴 함의와 윤석열 정부, 집권 여당 국민의힘의 미래, 그리고 여소야거(與小野巨) 상황 속 한국 정치가 나아갈 방향에 대해 들었다.
김종인 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 [지호영 기자]
정권 바뀌고도 서민 삶 나아진 게 없다
22대 총선이 ‘여소야거’로 끝났다.
“지난해 10월 서울 강서구청장 보궐선거 결과를 제대로 인식하고 총선을 대비했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한 결과가 나온 거다. 코로나 팬데믹 3년을 겪으면서 소상공인, 중소기업들이 막대한 경제적 손실을 겪었다. 새 정부가 이들의 경제적 생존이 가능하도록 대책을 강구해 줄 것으로 기대했지만 그런 노력이 없었다. 그런데도 (윤석열 정부) 경제정책 기본 운영 방향은 ‘민간 주도 시장경제’라고 한다. 무책임한 소리다.”
이번 총선이 정권 심판론으로 흐른 주된 이유가 대통령의 일방적 국정 운영 스타일 때문 아니냐는 얘기도 있다.
“그건 정치권에서 하는 소리고, 국민에게는 실질적으로 자기 피부로 느끼는 삶의 문제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한때 ‘이념이 중요하다’고 했다가 민생 얘기를 했는데, 정작 민생을 위해 뭘 했는지 구체적으로 보이지 않는다. 요즘 국민의힘 당대표가 되겠다고 나선 사람들 얘기를 들어봐도 당을 어떻게 움직여 선거에 승리할 것인지 전략이 안 보인다. 강서구청장 보궐선거 때도 그렇고 이번 총선 때도 ‘이재명 대표 사법 리스크가 대단하기 때문에 민주당은 안 찍을 것이다’는 막연한 기대를 갖고 그런 데만 신경 썼다. 정작 유권자에게 실질적으로 필요한 도움을 줄 수 있는 노력은 안 했다. 그러니 표를 얻을 수가 없었던 거다. 왜 선거에서 졌는지 그 원인에 대한 진단을 분명히 해야 한다.”
김 전 위원장은 “이번 총선 결과는 (현 정부) 경제정책이 실패했다는 것을 입증한 것”이라며 “과거 같으면 (선거에서 패하면) 경제팀이 다 물러났을 텐데 이 정부는 책임지는 사람이 없다”고 말했다. 그는 “국민에게 지지받지 못한 권력은 허상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며 “이런 상황이 계속되면 미래에 어떤 일이 일어날지 아무도 예측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국민의힘이 새 당대표 선출을 위한 전당대회를 치르고 있다. 새 대표가 선출되면 나아질 수 있다고 보나.
“선거 패배 원인이 어디에 있는지 인식하고, 정부에 할 얘기를 하면서 정부를 리드할 수 있는 인물이 당대표가 돼야 당이 변할 수 있다. 그렇지 않고서는 의미 없다.”
당대표 후보 중 누가 그럴 수 있다고 보나.
“민심을 따르는 수밖에 없다. 이준석 대표 내보내고 당대표 선출 룰을 바꾸고 당심이 민심이라는 뚱딴지같은 소리를 하면서 억지로 대표로 만들었지만 결과가 어땠나. 민심에 역행하는 당대표 선출해 봐야 국민은 관심을 갖지 않는다. 자기네들끼리 즐기고 마는 거지.”
김 전 위원장은 “자기 능력으로 당대표 하겠다고 나선 사람은 한동훈 밖에 없다”며 “1차 투표에서 한 후보 외에 다른 세 사람은 당선 가능성이 없다”고 전망했다.
“한 후보가 지난 총선 과정에 대통령과 사이가 벌어졌으니 1차 투표 때 과반수를 차지하지 못하게 해서 2차 투표 때 합종연횡해서 이겨보자는 작전을 하려는 것으로 보이는데, 그렇게 해서 당대표 되기도 어렵겠지만, 과연 그렇게 대표가 된들 무엇을 할 수 있을지 회의적이다. 당대표로 출마하는 사람은 자기 나름대로 당을 어떻게 운영하겠다는 방침이 서 있어야 한다. 한 후보는 그게 보이는데, 나머지 세 사람은 그런 게 보이질 않는다. 한동훈만 계속 공격해서 선거에 승리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 정치인으로서 자질이 없는 거다.”
‘청년층 지지세’ 정상화가 관건
한국 정치 전체를 놓고 보면 요즘은 보수 진영이 크게 위축된 모습이다.
“보수 진영이 그동안 일반 국민 의식수준을 따라 변해왔으면 오늘날 이런 상황을 맞지 않았을 것이다. 국민 의식은 변하는데 ‘나는 보수다’라면서 과거 관행을 관철하려고 해서는 성공할 수 없다.”
예를 들면?
“2010년 지방선거 때 무상급식이 선거 이슈로 떠올랐다. 당시 보수라는 사람들이 맹목적으로 반대하다 어떻게 됐나. 2011년 서울시장 보궐선거는 당시 오세훈 시장이 무상급식 찬반 주민투표를 추진했다 무산돼서 치러진 것 아닌가. 그 결과를 지켜본 박근혜 비대위는 종전에 한나라당이 갖고 있던 정강정책을 바꿔 ‘경제민주화’와 ‘복지 강화’를 내세워 새로운 정당의 모습을 선보였다. 그 결과 19대 총선에서 기대치도 않았던 과반 의석을 확보했고, 그해 대선에 박근혜 대통령이 탄생하게 된 것이다.”
보수가 국민 눈높이에 맞게 변신에 성공했기에 집권할 수 있었다?
“그 순간만 변신하고 대통령이 되고 나서는 또 옛날로 돌아가 버렸다. 그래서 자기네들이 얘기하는 보수층 사람들이 등을 돌려 이후 선거에서 계속 지고 있는 것 아닌가.”
2022년 대선에는 국민의힘이 승리했다.
“문재인 정부 실정도 있었고, 무엇보다 국민의힘이 변신했다. 당명도 바꾸고, 이준석 같은 젊은 당대표가 나와 열심히 노력해서 윤석열 대통령이 탄생한 거다. 그런데 대통령 되고 난 다음 아무것도 안 했다. 코로나 팬데믹 3년 동안 고생한 것을 (새 정부가) 어떻게 회복해 줄까 기대했는데, 각자 도생하라고 내버려두니 민심이 이반될 수밖에 없는 거다.”
국민의힘 차기 당대표에게 어떤 조언을 해주겠나.
“(국민의힘은) 청년층 지지세가 없다. 그것을 어떻게 정상화 할 수 있느냐가 관건이다. 국민의힘 당명 정할 때 당내에 ‘청년의힘’을 별도로 설치해서 청년들 정치 교육을 시켜 지방선거에 출마토록 하려고 했다. 한 후보는 그런 방향으로 생각을 하고 있는 것 같더라.”
한 후보를 직접 만나 그 같은 조언을 해줬나.
“난 그 사람 한 번도 본 적 없다.”
새 당대표가 집권 여당대표로서 당을 잘 이끌려면 어떤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보나.
“정부가 당 얘기를 듣지 않으면 여당은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중요한 것은 여당으로서 정부에 얼마만큼 당의 의지를 반영시킬 수 있느냐다. 안정적으로 국정을 이끌어 정권을 계속 유지하려면 정부와 여당이 관계를 새롭게 정립할 필요가 있다.”
추경호 국민의힘 원내대표가 강조하는 구호 중 하나가 ‘똘똘 뭉치자’다.
“똘똘 뭉치기만 해서는 소용없다. 뭉쳐서 뭘 하겠다는 게 있어야 한다. 국민 의견 수렴을 제일 잘할 수 있는 조직이 당이다. 여당에서 건의하는 정책을 대통령과 정부가 수용하는 모습을 보여야 당정 관계가 정상화된다.”
여당이 국회 보이콧? 아주 잘못한 일
22대 국회 원 구성을 하면서 수적 우위에 있는 야당 중심으로 국회의장을 선출하고, 상임위원장을 선출하는 등 독주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협상이 안 된다고, 의석수가 적다고 여당이 국회를 보이콧한 것은 아주 잘못한 일이다. 여당이 가장 잘할 수 있는 게 무엇인지 생각하지 않고 있다.”
수적 열세에 놓인 여당이 잘할 수 있는 게 뭐가 있을까.
“여당이 위원장을 맡은 7개 상임위를 보면 대부분 민생을 다루는 상임위다. 여소야대에서 여당은 정치 입법할 생각을 하면 안 된다. 민생을 위해 여당이 앞장서 노력하면 야당도 무조건 반대하지 못한다.”
이재명 민주당대표를 둘러싼 사법 리스크가 총선에 걸림돌로 작용하지 않았다.
“사법 리스크를 선거 이슈로 삼아서는 절대 이기지 못한다. 이재명 사법리스크에 대해 정치권이 관심을 덜 갖는 게 현명하다. 법원이 알아서 할 문제인데, 정치권이 이러쿵저러쿵 얘기해 봐야 별 의미가 없다.”
야당은 계속해서 ‘특검’을 주장하고 있다.
“특검 특검 하다 야당이 잘못하면 자충수를 두게 된다. 모든 것을 특검으로 해결하겠다는 발상 자체가 비합리적인 것이다. 특검에 크게 관심 갖지 않는 게 좋다.”
김 전 위원장은 “21대 국회 전반기에 당시 여당이던 민주당이 법사위원장을 고집했지만 정치적으로 무슨 이득이 있었느냐”며 “정치권끼리 밤낮 다투는 것에 국민은 관심 없다. 초미의 관심사는 일반 국민의 매일매일 일상생활이다. 합리적으로 생각하는 정치인이라면 (선거 결과가) 왜 이렇게 됐느냐를 판단할 줄 알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정권 안정과 정치 장래를 위해 당부하고 싶은 게 있다”며 “윤석열 대통령의 통치 스타일을 근본적으로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지금 대표적으로 문제되는 게 의료대란이다. 이것을 빨리 해결하지 않으면 다른 나라가 부러워하는 우리나라 의료 체계는 한꺼번에 무너질 수 있다. 대통령이 한때 특정인 얘기를 듣고 결심했다 하더라도 이렇게 문제가 확산된 상황에서는 뒤로 후퇴할 수 있는 역량을 발휘하는 게 국가를 위해, 정권을 위해서도 현명한 일이다. 국민으로부터 잘했다는 호응을 받으면 정부가 앞으로 더 안정적으로 나아갈 수 있다.”
여소야거 상황에서 야당의 입법 독주,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가 되풀이될 공산이 크다.
“야당이 수적 우위를 앞세워 밀어붙인다고 여당이 토론도 안 해보고 보이콧하고 나오면 안 된다. (국회) 토론 과정이 국민에게 공개되면 누구 무리하는지, 누가 정상인지 알게 된다. ‘수적 우위를 앞세워 무리하게 밀어붙인다’고 생각하는 국민이 많으면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해도 문제 될 게 없다.”
김 전 위원장은 “야당이 숫자만 갖고 검사 탄핵이다 뭐다 무리수를 두는데, 여당은 국회에서 그것에 대해 치열하게 논쟁해야 한다”며 “국민이 ‘야당이 숫자만 갖고 형편없이 군다’고 인식하면 야당도 그 짓을 계속할 수 없다”고 말했다.
신동아 8월호 표지
구자홍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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