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5월호

환상극장

평양 기녀 오유란이 살아남은 법

  • 윤채근 단국대 교수

    입력2023-05-21 1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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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윤채근 단국대 교수가 우리 고전에 기록된 서사를 현대 감성으로 각색한 짧은 이야기를 연재한다. 역사와 소설, 과거와 현대가 어우러져 독자의 상상력을 자극할 것이다.
    [Gettyim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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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 오유란으로 말할 것 같으면 이미 열세 살 꽃다운 나이에 기녀들의 전쟁터로 불리던 평양성에서 나이 어린 동기 중 으뜸으로 이름을 날린 바 있다. 그로부터 어언 사십여 년이 훌쩍 흘러 이젠 퇴기 신분으로 죽을 날만 받아놓은 신세이건만, 이렇게 후배들에게 몇 글자 끼적여 군소리를 남기는 것은 화려했던 지난날에 무슨 억하심정이나 회한을 품어서는 조금도 아니다. 어쭙잖은 용모나 소리로는 높으신 대감들 그림자 근처에도 범접할 수 없는 모진 경쟁 속에서 뛰어난 미모도 갖추지 못했고, 그렇다고 특출한 기예를 타고나지도 못했던 내가 과연 어찌 몸을 일으켜 성공하게 됐는지 그 지혜를 나눠주기 위함일 뿐이다.

    관기가 되어 예원에서 노닐게 될 팔자란 따지고 보면 비구니 팔자와 크게 다를 바도 없다. 자기를 버리고 다른 이들의 즐거움을 위해 봉사하는 것은 사욕을 끊고 이타를 실천하는 보살행과 뭐가 크게 다르겠으며, 가정을 이뤄 혈육 사이의 정을 나누고픈 마음을 뒤로한 채 오직 함께 기적(妓籍)에 몸을 던진 동료들만 바라보며 사는 단출한 삶은 출가하여 승사에 머물며 도반들과 더불어 보내는 고적한 삶과 거의 진배없지 않은가?

    이제부터 할 이야기는 이 유란이가 열아홉 살 때 아무 준비 없이 마주쳤던 기녀로서의 첫 시련에 대한 것이되, 불가에서 말하는 세 가지 독이 되는 마음, 즉 탐진치(貪瞋癡)를 극복했던 체험을 진솔하게 펼쳐낸 것이다. 외모도 범골(凡骨)이요 소리로 사람 마음을 뒤흔들 줄도 모르던 내가 홀로 어찌어찌 지혜를 짜내어 역경을 기회로 바꾼 이 기막힌 이야기를 부디 경청해두었다가 후배들도 아무쪼록 짧고도 짧은 노류장화 같은 인생을 무사히 건너길 바라노라.

    탐(貪), 무언가를 가지려는 마음

    탐욕은 불가 수행을 가로막는 세 가지 독한 성질, 이른바 삼독(三毒) 가운데서도 그 첫 번째다. 내가 열세 살에 별 내세울 재주 없는 동기로 출발해 나이 열아홉 무렵 감사께서 개최하시는 공식 만찬에 불려 나가는 예기(藝妓)로 성장할 수 있었던 유일한 비결은 바로 이 탐심이 적었던 데에 있었다.

    가진 재주가 승한 동기들 대부분은 다른 동기가 지닌 재주를 시기해 험담을 늘어놓다가 끝내 그것으로 만족지 못해 서로 대결을 벌이기 일쑤였다. 허리가 가늘어 춤 선이 고운 동기들은 춤으로 경쟁하다 몸이 상했고, 소리로 잘 나가던 동기들은 목청 높이는 데 혈안이 됐다가 종국엔 목울대가 찢어져 쇳소리를 내고야 말았다. 그렇게 남의 재주를 질투하던 수많은 동기들은 내 주변에서 차츰 사라져갔다.



    나는 눈에 띄는 미모도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아주 밉상은 아니었고, 소리로 성가를 높일 재목은 아니었으나 창 잘하는 다른 기녀를 받쳐주는 재능은 지녔으며, 독무를 추면 볼품없을지라도 군무에 들어 벗들과 발을 맞춰 어깨를 덩실대면 제법 귀엽다는 말을 듣곤 했다. 그런 탓인지 무얼 가졌다는 생각도, 나아가 무얼 가져야겠다는 야심도 아예 가진 적이 없었다.

    이렇게 항상 다른 아이들과 조화를 이루려 노력한 덕분에 연회 자리에 내가 빠지면 동료들은 물론이려니와 단골손님이던 평양 고관대작들도 무척 아쉬워하기 마련이었다. 그렇게 경쟁에서 살아남아 원숙한 예기로 살아가던 차에 바로 그 일이 벌어졌다. 어느 늦은 밤, 나를 감영 처소로 부르신 감사께서 이리 말씀하셨던 것이다.

    “유란아! 네게 부탁할 게 하나 있다. 조금 우스운 일이지만 정녕 웃진 말아라. 근자에 감영 객사에 짐을 푼 한양 이 선비라고 기억하겠지? 만찬 자리에도 여러 번 초대해 합석했으니 아마 생각이 날 거다. 내 어릴 적부터 막역했던 벗이다. 죽마고우지. 재주는 나보다 비상했으나 운이 조금 없어 여태 낙방거사 생활을 하고 있구나. 그 친구 조금 이상하지 않더냐?”

    내가 뭐라 대답할까 우물쭈물하고 있자 감사께서 다시 입을 여셨다.

    “한양 한 마을에서 함께 나고 자랐지만, 그 친구는 나와 달리 여간 근엄한 게 아니다. 삶을 즐길 줄을 모르지. 여색을 멀리할 뿐만 아니라 술에 취할 줄조차 모른다. 여간 재미없는 게 아니다. 그렇다고 이 나이에 그 친구와 꼬맹이 시절 놀이를 함께 할 순 없지 않으냐?”

    내가 눈만 껌벅이고 있자 입맛을 쩍 다신 감사께서 은근한 음성으로 속삭이셨다.

    “이 선비 마음을 봄에 눈 녹듯 한껏 녹여보지 않으련? 유란이 너라면 할 수 있을 텐데.”

    내가 죽어가는 목소리로 가늘게 되물었다.

    “미색이라면 추월이나 지란이도 있사온데, 쇤네처럼 범상한 것이 어찌 그 일을 감당하겠어요? 본디 무엇 하나 특출한 게 없는 몸인 줄 이미 아시면서요.”

    이번엔 감사 어른 목소리가 커지셨다.

    “바로 그것이 너만의 장처요 매력이니라! 기녀의 진한 분내가 느껴지지 않는, 그저 여염집 근실한 아낙 같은 담백함이야말로 이 선비처럼 윤리에 꽁꽁 묶여 사는 숙맥에겐 치명적인 법이지. 게다가 너는 욕심이 적어 이 선비를 독점하려 들지도 않을 것 아니냐? 한양에 두고 온 정실을 투기해 첩이라도 되고자 든다면, 그건 정말 낭패다! 널 믿는다. 어찌 한번 해보겠느냐?”

    언제나 그렇듯이 난 느닷없이 찾아온 운명을 애써 피하려 들지 않았다.

    진(瞋), 무언가에 성내는 마음

    탐욕이 적은 사람에게도 약점은 있다. 그건 욕망을 지나치게 줄이려다 급기야 스스로가 초라하다는 망상에 빠지는 데에서 연유하는 분노다. 자고로 자신이 적게 가졌거나 가진 게 없다고 포기하게 되면 저절로 겸손해지게 마련이지만, 본래 가질 수 있었음에도 그러기를 포기했다 여기고 보면, 은연중 오만한 자부심이 저 속에서부터 부글부글 일렁이게 된다. 그 오만이 원래 제 것일 수도 있었을 것들에 대한 미련을 부추길 때, 끝내 제 삶이 초라하다는 불안이 지펴지겠고, 종당에 성내는 마음이 활활 타오르는 법이다. 기녀들에겐 그게 바로 투기다.

    나 유란은 열아홉이 되도록 누군가를 연모하거나 누군가의 연모를 받아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기녀가 섣불리 양반에게 사사로운 정을 주면 어떤 꼴을 당하는지는 잘 알고 있었다. 적지 않은 선배들이 정실을 둔 선비와 사통하다 곤장을 맞았고, 더러 관기를 그만두고 첩실이 되고자 야반도주한 끝에 사내와 함께 목을 맨 채 발견되기도 했다. 운이 좋아 면천돼 양반가 소실로 들어갔다 해도 남녀 사이의 정이란 쉬이 식는 법, 기녀 출신 소실이 낭군에게 버림받으면 정실의 모진 매질이 기다리고 있거나 부엌데기로 전락해 노복들의 노리개가 되기 일쑤였다. 나 유란은 그런 삶을 결단코 바라지도 않았거니와, 이미 말했듯 탐진치라는 세 가지 독심을 벗어나려 오래도록 노력해왔던 터였다.

    감사 어른의 오랜 벗이라는 이 선비는 감영 객사에 들어앉아 책만 읽다가 더운 여름 한철이 되자 영명사와 부벽루 사이에 지어진 관가 별서로 옮겨 지냈다. 피서하며 공부에나 전념하라는 감사 어른의 배려였지만 실은 나 유란이의 작업을 도우시려는 못된 꾀였다는 걸 나는 잘 안다. 절호의 기회를 포착한 나는 꿩을 본 매처럼 선비 주변을 맴돌며 약점을 찾기 시작했다.

    처음엔 한껏 멋을 부린 귀부인 차림으로 별서 근처 나무 그늘에서 쉬는 척해보았다. 내 쪽을 흘깃 본 선비는 잠시 멍하니 응시했지만 종내 반응은 그저 뜨뜻미지근했다. 하얀 목을 드러내고 짐짓 한숨을 지으며 땀을 닦아보았으나 선비는 이번엔 아예 방문을 쾅 닫아버리고야 말았다. 어처구니없는 첫 패배였다.

    작전을 바꾼 난 허름한 아낙네로 분해 별서 바로 아래 시냇가 빨래터로 갔다. 선비가 문을 열어도 내 모습을 볼 수 없는 후미진 자리였지만, 난 연신 빨랫방망이를 두드려 대며 씩씩하게 옷감들을 세탁해나갔다. 그렇게 며칠 건너 꾸준히 빨래에 매진하던 어느 날, 목 뒤가 서늘한 것이 누군가 내 등을 바라본다는 느낌이 들어 고개를 홱 돌리자 소나무 뒤로 황급히 몸을 숨기는 선비가 눈에 들어왔다. 미끼를 덥석 물었던 것이다.

    선비가 감응하는 지점을 정확히 파악한 나는 바로 다음 날 산더미 같은 빨랫감을 지고 다시 시냇가를 찾았다. 종일 지치지 않고 옷감을 때리고 휘젓고 헹구다 보니 몸에선 번열이 나며 땀이 비 오듯 쏟아졌고, 팔뚝엔 파란 힘줄이 선명히 돋아나기 시작했다. 멀리서 이 모습을 오래 염탐하던 선비가 차츰 내게 다가오더니 침을 삼키며 물었다.

    “댁은 뉘시기에 이리도 매일 고된 빨래를 하고 있소? 내 보기에 하도 딱하여 그러오.”

    이마에 흥건히 고인 땀을 훔쳐내며 내가 대답했다.

    “신세가 기구하여 이리 삽니다. 본디 양가 맏며느리온데 남편이 명이 짧아 세상을 일찍 하직하고, 이 여린 몸 홀로 남아 시댁 식구들을 봉양하는 팔자가 되고 말았지요.”

    선비는 말없이 내 눈을 바라보기만 할뿐 미동도 없이 제 자리에 서 있었다. 그러다 그분의 입술이 미묘하게 뒤틀리며 가는 웃음소리가 새어나오더니 금방 멈췄다. 순간 내 마음이 철렁하며 아, 이분이 내 속임수를 벌써 눈치 챘구나 하는 깨달음이 밀려왔다. 당황스럽기도 하고 부끄럽기도 하여 어쩔 바를 모르고 땅바닥만 쳐다보고 있는데, 아뿔싸! 이분이 내 어깨를 덥석 끌어안고 입을 맞추는 거였다.

    그 뒤에 너럭바위에서 벌어진 일들은 후배들의 상상에 맡기겠다. 어쨌든 물색없는 기녀의 장난을 너그럽게 용서한 그이는 그날 이후 날 너무나 아껴주셨고 마치 꺾이기 쉬운 꽃이라도 되는 양 살뜰히 챙겨주셨다. 우리는 다정한 여느 부부처럼 동고동락하며 시원한 별서에서 초가을까지 지냈다. 비로소 정애에 눈을 뜬 나는 이 사람을 갖고 싶다는 욕심이 일어 견딜 수가 없었고, 아예 공부를 포기시켜 평양에 머물게 할 방법이 없을까 지독한 궁리를 하기에 이르렀다.

    선비의 아내가 한양에서 보내온 겨울옷을 남몰래 태워버리고 영명사 쪽을 바라보며 하염없이 울던 어느 날, 이렇게 살다간 마음 안에 시기와 증오의 마귀가 들어앉아 그리도 한심하게 여기던 선배들 꼴이 나겠다 싶어 나는 감사께서 계신 감영으로 냅다 내달렸다. 헛된 분노의 사슬을 끊기 위해서였다.

    치(癡), 사리를 분간 못하는 우둔함

    삼독 가운데 마지막이 판단력이 흐려져 빠져들게 되는 바보 같은 마음이다. 비록 탐심과 분노를 이겨냈더라도, 세상 보는 눈이 나태함 때문에 흐려지면 버젓하던 인생이 한순간 나락으로 떨어지곤 한다. 그래서 백치의 어리석음은 의외로 평소엔 영리하던 사람이 빠지기 쉬운 함정이다. 욕망과 분노를 이겨내 삶의 위기들을 요리조리 잘 피해가던 사람도 점차 스스로를 대단한 현자로 착각하게 되면 끝내 사리분별에 방심하게 마련이기 때문이다. 열아홉의 유란은 그 고비마저 현명하게 넘길 줄 알았다.

    이 선비님과의 마지막은 비참하기 짝이 없었다. 그이에 대한 한없는 연정을 가까스로 참아낸 나는 감사 어른께 이렇게 말씀드렸다.

    “정애를 주체하지 못한 건 제 잘못이라 하겠으나, 이 사달이 난 건 결국 감사 어른 때문이옵니다. 그러하니 책임지시어요!”

    멀뚱히 천장만 바라보시던 감사께서 입맛을 다시며 입을 여셨다.

    “이 선비도 내가 너랑 짜고 벌인 장난임을 이미 다 알고 있다. 종국엔 둘이 좋은 인연 맺질 않았느냐? 평양에 머물 동안만 금슬 좋게 지내주면 안 되겠느냐?”

    갑자기 철철 쏟아지는 눈물을 양손으로 번갈아 훔치며 내가 표독하게 대꾸했다.

    “투기만은 안 된다 하지 않으셨어요? 저는 그걸 멈출 수 없게 되었습니다. 기왕 이리 된 걸 이제와 무를 수도 없는 노릇이니, 책임을 지시어요!”

    이마를 잔뜩 찌푸리신 감사께서 내 쪽으로 얼굴을 내미시며 물으셨다.

    “어찌 책임지면 되느냐? 어찌 해주면 이 일을 잘 마무리할 수 있겠느냐?”

    온몸을 사시나무처럼 떨며 내가 속삭이듯 대답했다.

    “이 선비님을 제 곁에서 떼어 내 주세요. 제가 감사 어른의 비밀스러운 정인이라 속여주세요! 그렇게라도 해서 그분을 끊어내게 해주세요.”

    한참 동안 말씀이 없으시던 감사께선 연신 담뱃대를 입에 붙였다 뗐다만 반복하시다가 말씀하셨다.

    “뭐 그러자꾸나. 이 선비야 잠시 나와 절교하겠지만, 그 오기로 과거 공부에만 매진할 수도 있겠고. 좋다! 내 책임지마.”

    시원스레 내 제안을 받아들이시던 감사 어른의 호기는 그러나 곧 심하게 꺾이고야 말았다. 이 선비님의 반응이 너무나 격렬하고 절망적이셨던 탓이다. 나도 그분이 허접한 변방 기녀에 불과한 이 유란이를 그리 애틋하게 생각하고 계셨을 줄은 미처 몰랐었다. 그이는 감사 어른을 저주하고 모욕하고 심지어 때리려 드셨다. 감사 어른 옆에 등지고 앉은 나를 향해 그이는 마지막으로 이렇게 소리치셨다.

    “네년이 저 김 감사의 정인이면서 감히 내 마음을 훔쳤더냐? 그 긴 시간 해맑게 웃으며 나와 지낸 일들도 고작 저 못된 녀석의 은근한 기쁨을 위한 술책이었더냐? 그렇게 날 놀려먹고 기만하니 시원하더냐? 이제 진짜 낭군 품속으로 파고들 생각에 가슴이 설레더냐? 어서 그 고개를 이리 돌려보아라! 발칙한 낯짝 똑바로 보고 떠나련다.”

    나는 끝내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 대신 감사 어른의 어깨에 등을 더 깊숙이 파묻고 그이에게 들키지 않도록 숨죽이며 흐느껴 울어야만 했다. 우린 그렇게 인연을 끝냈다.

    선비님께서 떠나시고 난 뒤, 나는 오래도록 앓아누웠다. 태어나 그렇게 많이 아파본 적이 없을 지경이었다. 그럼에도 내 선택에는 자신이 있었기에 종당엔 모두에게 잘된 일일 거라고 한없이 되뇌었다. 마음의 빚을 지신 감사께선 여러모로 어르고 달레며 내 마음을 위로하려 드셨지만 감사 어른 역시 상처받으시긴 마찬가지였으리라. 그렇게 두 해가 지나고 예기로서 절정의 순간을 보내고 있을 때, 나는 뜻밖의 방문을 받고 기절초풍할 지경이 되고 말았다.

    관가 밖 사저에서 가기 무리들과 함께 살던 나는 별당 독실을 따로 쓰고 있었다. 가을바람이 스산하게 불어와 아랫목에 잔뜩 웅크리고 앉아 소일거리로 패설을 읽고 있던 나는 이상한 인기척에 방문을 살짝 열어보았다. 처음엔 내 눈을 의심했지만 어둠 속에 우두커니 서 있는 사람은 분명코 이 선비님이셨다. 무슨 생각을 따로 할 겨를도 없이 버선발로 뛰쳐나가 선비님을 끌어안고 목 놓아 울었다. 어찌어찌 문안을 여쭙고 방안으로 모시고 들어와 마주보고 앉자니 지난 기억들이 허탈하게 물밀려들었다. 그분께서 물으셨다.

    “김 감사와는 어찌하여 따로 살지? 지금쯤 첩실이 되었어야 마땅하지 않으냐?”

    대답 대신 원망의 눈빛으로 쏘아보던 내가 고개를 숙이고 딴청을 피우자 그이가 다가와 앉으며 속삭이셨다.

    “그조차도 꾸며낸 일이었더냐? 그런 것이냐?”

    난 끝내 대답하고 싶지 않았다. 어쩌면 그날의 헤어질 결심도 분명 내 안의 진실 가운데 하나였을 것이요, 어차피 정실이 되어 이 사람을 갖지 못할 바에야 차라리 부셔버리자는 악랄한 마음이 바이 없었다고도 할 수 없었다. 내가 입을 뗐다.

    “그런데 지금 행색이 어찌 이리도 초라하십니까? 끝내 등과엔 실패하신 건가요?”

    선비님의 꼴은 그야말로 말이 아니었다. 시궁창에서 막 기어 나온 생쥐도 그보단 나을 그런 모양을 하고 계셨다. 헌데 그분의 대답이 더 걸작이었다.

    “작금 행색 타령이나 할 형편이 못된다. 배가 고프다, 배가! 뭐 주워 먹을 거라도 있으면 아무 거라도 내다오. 출세는 고사하고 거지 신세로 간신히 연명하며 떠돌고 있느니.”

    서둘러 밖으로 나온 나는 어린 가기들을 독촉해 주안상을 차려내게 하고 아궁이에 불을 때 목욕물을 데웠다. 그이를 씻기고 먹이고 잠자리를 마련해 재우자 갑자기 피로가 몰려들며 현기증이 일었다. 이분을 앞으로 어찌해야 하나 앞날이 캄캄하고도 막막했다. 하지만 그이를 떠나보낼 때의 그 모진 마음으로 나는 다시 한 번 굳은 결심을 했다. 이 사람이 내 옆에 있는 한 이이는 내 사람이고, 그래서 내 책임이며, 또 그래서 내 것이라고.

    선비님을 사가 별당에 숨긴 채 감사 어른을 먼저 찾아뵌 나는 간밤의 일을 이실직고하고 처분을 기다렸다. 골똘히 생각에 잠기셨던 감사께서 나지막이 물으셨다.

    승리한 인생

    “거 자세히 들어보자니, 내 한 가지 의심이 퍼뜩 드는구나. 이건 영리한 너도 이미 했으렷다?”

    천천히 고개를 끄덕인 내가 야무진 음성으로 이리 대답했다.

    “물론이지요! 이 선비가 암행어사가 되어 돌아온 게 아니냐는 그 말씀 아니신가요?”

    반색을 하신 감사께서 안석 밖으로 몸을 반쯤 일으키시며 소리치셨다.

    “바로 그것이다! 그 친구가 그리 망가졌을 리가 없다! 틀림없이 급제하여 사가독서하다 어사로 파견됐을 것이다. 밤을 함께 지냈다니 넌 죄 파악하지 않았겠느냐? 설마 나마저 속이고 둘이서 뒤통수를 칠 생각이더냐? 어사출도로 날 망신주려고?”

    배시시 웃은 난 고개를 똑바로 쳐들고 이렇게 대답했다.

    “저 역시 그렇게도 생각해봤습니다만, 전혀 그렇지 않사옵니다. 이 선비는 그저 가난한 한량일 뿐이었습니다. 정녕 절 믿어주세요! 과거에 연거푸 낙방하자 실망한 아내는 처가로 돌아가 버렸고, 진노하신 부모님들께서도 더 이상 생계를 도와주지 않으셨답니다. 그렇게 폐인 신세가 되어 홀로 유랑하는 중이라 했습니다.”

    영 못미더운 표정이 된 감사께선 자꾸 이것저것 캐물으시더니 마침내 지치신 듯 이렇게 물으셨다.

    “그래, 그럼 그렇다 치자! 내게 뭘 어떻게 해달라는 거냐?”

    마른 침을 삼킨 난 비장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이 선비가 이리 된 데에는 감사 어른 탓도 적지 않습니다. 물론 제 탓이 더 클지도 모르지만요. 그러니 좀 도와주십시오! 이 선비와 평양에서 일 년만 함께 살도록 해주세요! 생계는 제가 꾸릴 테니, 제발 그 정도 기간만 이 몸을 관에서 자유롭게 풀어주시어요.”

    한참 나를 쏘아보시던 감사께선 무슨 생각에 이르셨는지 갑자기 껄껄 웃으시더니 이렇게 대답하셨다.

    “이 선비가 정말 암행어사는 아닌 모양이로구나! 그렇지? 그래서 일 년 동안 그 친구를 봉양해 과거 공부를 시키겠다는, 뭐 그런 뜻이 아니더냐?”

    고개를 끄덕이는 날 흐뭇하게 바라보시던 감사께선 뭐가 그리 즐거우신지 연신 콧노래를 흥얼대시다 이방을 부르시더니 잔칫상을 차리라 명하셨다. 그리하여 그날 밤 다시 조우하게 된 우리 세 사람은 코가 삐뚤어지게 취하도록 마시고 또 마셨다. 이상하게 꼬였던 인연을 제자리로 되돌린 두 사내가 내 눈 앞에서 덩실덩실 춤을 추며 화해하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와락 눈물이 쏟아졌다.

    후배들이 예상하듯이 그다음 이야기는 참으로 기특한 일들의 연속이었다. 내 도움을 받은 이 선비님께선 이듬해 가을에 한양에서 열린 과거에 급제하셨고, 내친김에 임금님 앞에서 치르는 정시 대과에서도 합격자 방목에 당당히 이름을 올리셨다. 결말은 비록 그랬긴 하나 후배들은 아마도 나에 대한 후일담을 더 궁금해 하리라.

    나 오유란은 감사 어른과 이 선비님께서 나란히 대궐 청요직에 오르시자 저절로 이름이 장안에 널리 알려지게 됐다. 마침내 이 미담을 전해 들으신 임금님께선 날 특별히 경기(京妓)로 발탁해 대궐 장악원에 두셨다. 이보다 더 크나큰 영광이 어디 있단 말인가! 비록 정실부인 품으로 돌아가신 이 선비님과 사사로운 남녀의 정을 계속 이어갈 순 없었으나, 탐진치 삼독을 이겨낸 내 삶이야말로 정녕 승리한 삶이 아니면 뭐란 말인가?

    비록 미천한 평양 기녀로 위태롭게 몸을 일으켰지만 마침내 한양 대궐 경기로 퇴직을 앞둔 나 유란은 정승 판서가 부럽지 않다. 말년의 벗이 된 두 대감님들을 모시고 인왕산 자락 고즈넉한 별서에서 누리게 될 풍류를 떠올리면 정말 나는 세상 그 누구도 부럽지 않다.

    *이 작품은 ‘오유란전’을 모티프로 창작됐다.


    윤채근
    ● 1965년 충북 청주 출생
    ● 고려대 국어국문학 박사
    ● 단국대 한문교육학과 교수
    ● 저서 : ‘소설적 주체, 그 탄생과 전변’ ‘한문소설과 욕망의 구조’ ‘신화가 된 천재들’ ‘논어 감각’ ‘매일같이 명심보감’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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