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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자와 미술관

美 독립 성지(聖地)의 문화 자존심

필라델피아 미술관

  • 최정표 | 건국대 경제학과 교수 jpchoi@konkuk.ac.kr

美 독립 성지(聖地)의 문화 자존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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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5년에 그려진 이 그림은 당시로서는 드문 대작(240×200cm)이었다. 그래서 1876년 열린 국제박람회 때 크기가 문제 돼 전시를 거절당하고는 군 병원(Army Post Hospital)에 걸렸다. 이후 필라델피아에 있는 토머스 제퍼슨대(Thomas Jefferson University)에 200달러에 매각돼 제퍼슨 의대(Jefferson Medical College)에 걸렸다. 1980년대에는 제퍼슨 동창회 건물(Jefferson Alumni Hall)로 옮겨졌다. 그러다가 2006년 11월 제퍼슨대가 워싱턴 국립미술관(National Gallery of Art)과 아칸소의 한 미술관에 이 작품을 무려 6800만 달러(약 800억 원)에 매각하는 일을 추진했다. 이 가격은 에이킨스 작품 중 최고 가격일 뿐만 아니라, 제2차 세계대전 이전 미국 작품 중에서도 최고가였다.

이 사실을 알게 된 필라델피아 시민들은 깜짝 놀랐다. 필라델피아의 자존심을 걸고 이 작품을 놓치지 말자는 운동이 벌어졌다. 시민들은 이 그림이 필라델피아의 역사적 유산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모금운동이 개시됐고 단번에 3000만 달러가 모였다. 하지만 대금 납부일인 2006년 12월 26일이 되도록 그림값을 다 채울 수가 없었다. 다행히 와초비아 은행(Wachovia Bank)이 모금이 완료될 때까지 그 차액을 대출해주겠다고 나섰다. 이런 우여곡절 끝에 ‘그로스 클리닉’은 필라델피아에 남을 수 있었다.

하지만 이후 모금운동에서도 6800만 달러를 채우지 못해 결국 펜실베이니아 예술아카데미와 필라델피아 미술관이 기존에 소유하고 있던 에이킨스의 다른 작품들을 팔아 모자란 자금을 공동으로 마련했다. 이후 두 기관은 이 그림을 공동 소유하기로 했다. 그래서 이 그림은 종종 필라델피아 미술관이 아닌 필라델피아 예술아카데미에 걸린다.

‘그로스 클리닉’은 당시 유명한 의사이던 그로스 박사(Dr. Samuel D. Gross·1805~1884)가 제퍼슨 의대에서 학생들을 앞에 두고 수술하는 광경을 그린 작품이다. 그림의 초점은 그로스 박사에게 맞춰져 있다. 이 그림이 그로스 박사의 초상화로도 불리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림 속 그로스 박사는 70세의 노교수다. 그러나 매우 정정해 보인다. 그림에는 에이킨스 자신의 모습도 있다. 오른쪽 끝에 앉아서 뭔가를 그리고 있는 사람이 바로 그인데, 카메오 출연을 한 셈이다. 그로스 박사의 오른쪽 어깨 뒤에는 수술 상황을 기록하는 병원 측 인사, 프랭클린 웨스트 박사(Dr. Franklin West)가 그려져 있다. 마치 사진을 찍은 듯한 사실화인 것이다.



이 작품은 의료사(醫療史)에서도 중요한 자료로 간주된다. 19세기 후반에 이미 수술이 의료의 한 분야였음을 증명하는 동시에 수술실 광경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기 때문이다. 그림 속 수술실은 일종의 대강당으로 매우 난삽해 보인다. 언뜻 불결해 보이는 환경에서 수련의인 듯한 이들이 수술 광경을 지켜보고 있다. 그로스 박사 옆에서 울고 있는 여자는 환자 가족임에 틀림없다. 오늘날의 수술실과 비교하면 엉성하기 짝이 없다.

그로스 박사는 당시 유명 의사로 미국의사협회 회장까지 지냈다. 이 그림 덕에 더욱 이름을 날려 영원한 유명 인사가 됐다. 그는 펜실베이니아 주 시골 마을 출신으로 역시 제퍼슨 의대를 졸업했다. 남북전쟁 때 종군의사로 참가했고, 많은 저술을 남겼다.

뒤샹과 그레이스 켈리

美 독립 성지(聖地)의 문화 자존심

뒤샹의 ‘샘’

나는 이 미술관의 현대미술 전시실에서 아주 의외의 ‘물건’과 마주쳤다. 182번 방의 한 전시대 위에 버젓이 얹혀 있는 것은 남자 변기였다. 1917년 뉴욕에서 큰 말썽을 일으킨 마르셀 뒤샹(Marcel Duchamp·1887~1968)의 바로 그 문제작이었다.

다다이스트(Dadaist)이면서 초현실주의 작가인 뒤샹은 1917년 독립작가협회(Society of Independents Artists)가 뉴욕에서 개최한 전시에 남자 변기를 뜯어와 ‘샘(Fountain)’이라는 제목을 달아 작품이라고 내놓았다. 전시회 관계자들은 아연실색했다. 소변기를, 그것도 자신이 만들지도 않은 것을 작품이라고 가져왔으니 말이다. 출품작을 무조건 전시해주는 행사였지만, 주최 측은 이 작품만은 전시하기를 거부했다. 뒤샹 자신도 위원으로 참여하고 있던 전시위원회는 ‘소변기가 무슨 예술 작품이냐’고 했다. 결국 뒤샹의 ‘샘’은 전시가 거절됐고, 뒤샹은 위원직을 사임했다. 이런 소란을 일으킨 소변기를 필라델피아 미술관에서 만난 것이다. 1917년 그 소변기는 분실됐고, 이후 뒤샹이 여러 개를 만들었는데 그중 하나다.

뒤샹의 소변기 사건은 예술 작품의 정의에 관해 뜨거운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이미 만들어진 기성품(ready-made)을 예술 작품으로 볼 수 있느냐는 것이다. 뒤샹은 소변기를 만들지 않았다. 그가 한 일이라곤 소변기를 벽에서 뜯어내 소변기에 ‘R. Mutt, 1917’이라고 서명한 것뿐이다. 뒤샹은 소변기 이전에도 삽과 같은 기성품을 예술 작품이라고 내놓은 적이 있다.

그러나 뒤샹의 소변기는 2004년에 와서 500인의 유명 작가와 역사가에 의해 ‘20세기의 가장 영향력 있는 예술 작품’으로 선정됐다. 오늘날의 현대 작품(contemporary art works)에는 이보다 더 기이한 것도 많다. 똥을 담아놓은 깡통을 예술 작품이라고 내놓은 작가도 있다. 하여 뒤샹의 ‘샘’을 현대미술의 시작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샘’은 8개의 복제본이 있는데 그중 하나가 1999년 170만 달러(약 20억 원)에 거래됐다고 한다.

美 독립 성지(聖地)의 문화 자존심
최정표

1953년 경남 하동 출생

미국 뉴욕주립대 박사(경제학)

공정거래위원회 비상임위원, 건국대 상경대학장

저서 :‘재벌들의 특별한 외도’ ‘한국재벌사연구’‘공정거래정책 허와 실’‘한국의 그림가격지수’등

現 건국대 경제학과 교수, 경실련 공동대표


필라델피아 미술관의 소장품 중 또 하나 특기할 것은 미국의 유명 여배우 그레이스 켈리의 웨딩드레스다. 1950년대 미국 영화계에서 최고의 인기를 누리던 켈리는 1956년 모나코 왕자 레이니어 3세와 결혼해 세상을 놀라게 했다. 결혼식 후 그녀의 웨딩드레스가 이 미술관에 기증됐다고 한다. 그녀가 필라델피아 출신이라는 사실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신동아 2015년 3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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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정표 | 건국대 경제학과 교수 jpchoi@konku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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