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9월호

인구절벽 시대, 한 난임 전문의의 대정부 호소

[인터뷰] 35년차 난임전문의 조정현 원장 ”정부가 통 큰 지원해야”

  • 배수강 기자

    bsk@donga.com

    입력2021-09-16 1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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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난해 출생아 9명 중 한 명은 난임 시술로 태어나

    • 난임 시술 정부 지원 ‘소득 기준’ 제한 폐지해야

    • 정자·난자 동결·보존, 건강보험 급여 시행 필요

    • 난임 치료 위한 4개 특수 클리닉 오픈

    35년차 난임전문의 조정현 사랑아이여성의원 원장은 “출산 기피 시대인 만큼 정부는 아이를 낳으려는 부부를 더 적극적으로 지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홍중식 기자]

    35년차 난임전문의 조정현 사랑아이여성의원 원장은 “출산 기피 시대인 만큼 정부는 아이를 낳으려는 부부를 더 적극적으로 지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홍중식 기자]

    “작년부터 생산가능인구(15~64세)가 줄어드는 ‘인구절벽’으로 가고 있어요. 한 해 출생아 수가 베이비붐 세대(1955~63년생) 때는 100만 명, 2000년대만 하더라도 50만~60만 명이었는데 요즘은 20만 명대예요. 초고령자는 늘어나는데 세금 낼 사람은 줄어드는 거죠. 정부가 난임 부부 지원을 놓고 계산기를 두드려선 안 돼요. 소득수준과 연령, 시술 횟수 등을 제한하지 말고 모든 난임 부부에게 시술비 본인부담금을 전부 지원해 줘야 해요. (아기를) 안 낳겠다는 부부에게 낳으라고 할 게 아니라 낳고 싶다는 부부를 적극 지원해야 하지 않을까요.”

    한국의 출산율은 2010년 이후 매년 최저치를 경신하고 있다. 2년 전부터는 출생아 수보다 사망자 수가 더 많은 ‘데드크로스’가 시작됐다. 한 해 출생아 수 27만 명마저 무너질 위기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시험관아기나 인공수정 등 정부의 난임 의료비 지원을 받아 태어난 아기가 지난해 2만8699명으로 전체 출생아의 10.6%를 차지했다. 출생아 9명 중 한 명은 ‘의술의 힘’으로 세상에 나왔다는 얘기다.

    지난 3월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시험관·인공수정 정부 지원의 소득 기준을 없애주세요”라는 글이 올라왔다. 현재는 2인 가구의 경우 중위소득 180%(올해 기준 556만 원) 이하만 시험관·인공수정 시술비의 본인부담금을 정부에서 지원받을 수 있다. 난임 시술 특성상 실패를 거듭할 경우 몇 천만 원의 본인부담 비용이 들기 때문에 그 이상 소득의 맞벌이 부부에게도 지원해 달라는 청원이었다. 35년차 난임전문의 조정현 사랑아이여성의원 원장이 “출산 기피 시대에 아이를 낳으려는 고마운 부부에게 더 적극적으로 지원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는 이유다.

    이들 난임 부부들에게 한 가지 다행스러운 것은 임신을 목적으로 한 정자·난자의 동결·보존 행위 등을 건강보험 급여 대상으로 규정하는 ‘국민건강보험법 일부개정법률안’(일명 ‘난임·불임 지원법’)이 한무경 국민의힘 의원에 의해 발의됐다는 점이다. 늦은 결혼에 출산까지 미루는 요즘 세태를 감안해 정자·난자를 장기간 동결·보존하는 데 건강보험 급여 적용을 시행하자는 것이다.



    조 원장은 “젊을 때 냉동해 놓은 난자로 IVF(시험관아기 시술)를 하면 임신율이 높다. 40대 여성이 30대에 냉동한 난자로 IVF를 하면 30대 임신율을 기대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다음은 그와의 일문일답.

    난자 동결·보존 시술비 지원하는 페이스북과 애플사

    - 건강보험이 적용되는 난임 시술 횟수와 비용은 어느 정도인가.

    “인공수정(자궁 내 정자주입술) 5회, IVF 12회(신선배아이식, 동결배아이식) 등 모두 17회 지원받을 수 있다. 이 경우에도 본인부담금만 1000만 원이 넘는다.”

    - 17번의 기회(인공수정과 IVF) 안에 임신할 확률은 얼마나 되나. 본인부담금을 무제한으로 지원하면 국가 부담도 클 거 같은데.

    “95% 정도는 임신을 한다. 자궁과 난소에 임신을 방해하는 큰 문제가 있거나, 난소 기능이 폐경에 가깝게 떨어졌거나, 45세 이상 고령인 경우 제한 횟수 안에 임신을 못 할 수 있지만 대부분은 임신한다. 정부가 모든 난임 부부에게 통 큰 지원(무제한)을 해도 된다고 생각한다.”

    - N세대(1977~97년생)의 결혼 기피 경향이 뚜렷하고, 만혼(晩婚)은 물론 출산까지 미루는 추세다. 임신을 하는 데는 나이가 중요한 요소 아닌가.

    “그렇다. 사람 일은 모르니까 젊을 때 난자를 동결·보존해 놓으면 좋은데, 이 경우 100% 본인부담이다. 언제 결혼할지 모르는데 500만 원을 내고 난자를 냉동해 놓는 건 쉽지 않을 거다. 그런데 출산율과 국가경쟁력 제고 차원에서라도 정부가 난임 부부의 정자, 난자뿐 아니라 미혼여성 난자 동결·보존도 급여화(건강보험)한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정부에서 힘들다면 기업에서라도 해주면 좋겠다. 미국 페이스북과 애플사는 7~8년 전부터 난자 동결·보존 시술비를 지원한다. 당장 결혼하지는 않더라도 미래를 생각해 난자 냉동을 결정하는 여성이 많아질 거다.”

    - 최근 난임 부부가 더 늘어난 것 같다.

    “이런저런 걱정이 많은 데다 바쁘고 해서 타이밍이 안 맞는 거 같다. 생식의학자로서 여성이 중성화되는 데에도 걱정이 없진 않다. 여성의 몸에서 남성호르몬이 넘쳐나면 어떤 일이 생길까. 요즘 다낭성난소증후군(이하 다낭성)을 호소하는 여성이 늘고 있다. 무월경 또는 희발월경, 고남성호르몬(안드로겐)증이 대표적인 다낭성 증세다. 배란이 돼야 임신을 기대할 수 있는데, 다낭성이면 배란 체크가 힘들고 배란이 돼도 난자의 ‘퀄리티’가 떨어진다. 배란이 잘 안 되는 것은 호르몬 교란 물질(환경호르몬)의 과용 때문일 수 있다. 일회용품 적게 쓰기, 커피 덜 마시기, 술 조금 먹기, 담배 끊기를 실천해야 한다.”

    착상 잘되려면 ‘3박자’ 맞아야

    조 원장은 그동안의 경험을 바탕으로 최근 난임 치료를 위한 특수 클리닉을 열었다. 내막클리닉, 자궁내막증클리닉, 다낭성난소클리닉, 정자활성화클리닉이 그것이다. 조 원장은 “무작정 난임 시술만 반복적으로 시도하면 좌절감이 커지고 결국 임신을 포기한다”며 “생식기 내 질환 등 임신 방해 요인이 있다면 이를 먼저 치료해서 스스로 자신감을 갖도록 해야 임신이 더 잘된다”고 강조했다. 여성은 불안감과 초조함에 사로잡힐수록 예민해져서 임신이 잘 안 되는 몸이 된다는 것이다.

    - 배란 불균형이 심하고 생리주기가 긴 다낭성 여성은 IVF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임신을 포기하기도 한다. 다낭성난소클리닉의 특별한 치료법이 있다면.

    “나팔관(난관) 기능에 문제가 없으면 인공수정부터 하게 된다. 여러 개의 난자를 키우기 위해 주사나 경구용 약으로 배란을 유도하는데, 다낭성이면 난자가 자라더라도 난소 껍질이 두꺼워 배란을 못 한다. 이럴 때 ‘보조배란시술’을 하면 도움이 된다. 배란 주사를 맞고도 배란이 안 됐을 때, 배란이 되도록 주삿바늘로 난포를 터뜨려주는 거다. 배란만 되면 난관이 재빠르게 난자를 낚아채서 정자를 만나게끔 해준다.”

    - 인공수정을 포기하고 IVF로 넘어가는 기준이 있다면.

    “인공수정은 정자를 자궁 내에 주입하는 시술이다. 정자와 난자가 저들끼리 만나서 수정이 되고, 착상까지 성공해야 한다. 정자가 자가수정력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인공수정을 3~4차 해도 안 되면 미련을 버리고 IVF로 넘어가라고 조언한다. IVF는 정자와 난자를 몸 밖으로 꺼내 자가 수정이 안 되면 강제(미세조작 정자주입술)로 체외수정을 시키는 것으로 한 차원 높은 기술이다.”

    - IVF를 해도 임신에 실패하는 이유는 뭔가.

    “IVF는 수정을 도와줄 뿐, 착상까지 해주는 시술은 아니다. 착상이 잘 되려면 여러 가지 요건이 다 맞아야 한다. 배아가 건강해야 하고, 자궁내막도 좋아야 한다. 생식호르몬(에스트로겐, 프로게스테론 등) 분비가 불균형 상태여도 안 된다. IVF의 도움을 받아도 배아의 퀄리티, 자궁내막, 착상은 당사자 몫이다.”

    조정현 사랑아이여성의원 원장은 “젊을 때 냉동해 놓은 난자로 시험관아기 시술을 하면 임신율이 높다. 40대 여성이 30대에 냉동한 난자로 시술할 경우 30대의 임신율을 기대할 수 있다”고 말했다. [홍중식 기자]

    조정현 사랑아이여성의원 원장은 “젊을 때 냉동해 놓은 난자로 시험관아기 시술을 하면 임신율이 높다. 40대 여성이 30대에 냉동한 난자로 시술할 경우 30대의 임신율을 기대할 수 있다”고 말했다. [홍중식 기자]

    조금만 노력하면 정자 상태 좋아져

    - 자궁내막증클리닉을 만든 이유는.

    “난소에 자궁내막증으로 인한 난소낭종(자궁내막종)이 있으면 임신이 잘 안 된다. 혹 크기가 6cm 이상이면 복강경으로 제거하는데, 너무 깨끗하게 제거하려다 난소 기능의 심각한 저하가 올 수 있다. 자궁내막종과 붙어 있는 난소 일부가 함께 제거되면서 난소 내 원시난포도 손상될 수 있다. 또 제거 수술로 난소에 상처 조직이 생겨 혈류가 감소하면 남아 있는 원시난포 수가 더욱 감소한다. 나팔관수종(난관수종)을 제거할 때도 난소의 난포 수가 감소할 수 있다. 난소는 난소 동맥과 난관 동맥에서 영양분을 받는데 난관 제거로 난관 동맥이 없어지면 혈류량이 줄어 난자가 잘 자라지 않게 된다. 난소는 어떤 상황이든 제거하는 데 신중해야 한다. 그래서 나는 비수술적 방법인 알코올경화술을 한다. 긴 바늘을 난소낭종에 넣어서 혹 안의 내용물을 뽑아내고 생리식염수로 세척하고 다시 알코올로 세척해서 자궁내막증 내벽의 분비세포를 딱딱하게 굳게 만드는 방법이다. 입원 없이 수면 마취로 한다.”

    - 자궁내막 치료에는 답이 없다고 하던데.

    “자궁내막은 호르몬의 영향을 받으면서 한 달에 한 번 떨어져 나가는 조직이다. 배란 때 착상하기 이상적인 두께는 8~10mm다. 5mm 미만이면 너무 얇아서 착상이 힘들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전문가들이 노력해 왔지만 드라마틱한 치료 방법이 나오지 않고 있다. 자궁내막은 아직도 불모지다. 예전에 골수 내막이식술을 연구하고 임상실험을 했다. 환자 엉덩이에서 골수세포를 추출한 뒤 자궁내막 근육 이행부에 주입해 이식하는 방법이었다. 이렇게 성공한 15명 중 5명이 임신이 됐다. 내막이식술을 계속 연구해 보고 싶다.”

    - 내막클리닉에서는 어떤 방법으로 내막 치료를 하나.

    “그동안 임상하고 연구한 성과를 바탕으로 최근 특수착상자궁경을 시작했다. 일반적으로 자궁경은 자궁내시경을 말하는데, 단순히 3~5mm 두께의 내시경을 자궁 내로 넣어서 자궁 내부를 들여다보는 검사가 아니다. 특수착상자궁경에서는 자궁 기형과 자궁 유착에 이르기까지 상당 부분을 해결할 수 있다. 자궁경은 의사마다 경험과 스킬이 다를 수 있다. 특수착상자궁경을 검사 외에 착상을 위한 치료와 여러 시술에 활용해 보려고 한다.

    - 정자활성화클리닉에서는 남성 난임을 어떻게 치료하나.

    “한창 젊은 나이인데 정자 수와 활동성 등이 평균 이하로 떨어지는 사례가 많다. 보조생식술 기술이 발달해서 무정자증만 아니면 IVF로 얼마든지 임신에 성공할 수 있다. 문제는 평소 습관이다. 잘못된 부분을 고쳐야 한다. 트렁크 팬티를 입는 게 좋다. 요즘 남성복은 너무 꽉 낀다. 하루에 수차례 그곳을 환기해 주면 좋다. 정자는 운동을 조금만 해도 운동성이 좋아진다. 술 담배를 줄이거나 끊어도 확 달라진다. 남자들은 생각이 바뀌면 바로 행동으로 옮기는 장점이 있다. 식이(食餌) 등 생활습관을 바꾸고 운동을 꾸준히 한 뒤 정자 상태가 확 좋아져 자연임신이 돼 오는 부부가 꽤 있다.”

    #난임치료 #시험관아기 #체외수정 #조정현 #신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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