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1월호

총경 출신 박상융 前특검보가 말하는 경찰개혁

“경찰, 권한 확대만 관심 갖지 말고 내부 들여다보라”

  • 조규희 객원기자

    playingjo@donga.com

    입력2019-12-30 14: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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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찰지휘부, 현장 경험 없어 뭐가 필요한지 몰라

    • 언론 홍보 잘해야 승진에 유리

    • 강력팀, 고소·고발 담당 경제팀, 교통사고조사계 불이익

    • 인사권자 ‘눈에 보이는’ 내근만 선호

    • 범죄자 검거보다 행사 기획 잘해야

    [지호영 기자]

    [지호영 기자]

    과연 개혁이 검찰에만 필요한 것일까. 검경 수사권 조정을 두고 많은 논란이 있지만 검찰개혁만 이슈가 될 뿐 경찰개혁에 대해 말하는 이는 보기 드물다. 이런 가운데 경찰개혁을 위한 첫 단추는 승진·인사 제도 개선이 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경찰 안팎에서 나오고 있다. 그간 경찰 업무평가가 올바르게 이뤄지지 못한다는 내부 비판이 끊임없이 제기됐지만 관심을 받지 못했다. 업무평가에 대한 비판의 핵심은 외근과 내근, 수사와 비(非)수사, 파출소와 지구대별로 업무 성격이 다른데 동일선상에서 평가가 이뤄진다는 점. 

    경찰 출신 박상융(55) 변호사는 “잠복, 탐문, 사건처리 등 자신의 임무에 충실한 나머지 승진 점수를 딸 시간이 없어 인사고과를 잘 받지 못하는 사람이 너무 많았다. 이 때문에 당연히 승진해야 할 사람이 승진하지 못하는 경우도 봐왔다”고 말했다.

    문제 많은 경찰 인사 제도

    박 변호사는 1988년 사법시험 합격 후 군(軍)검찰관, 변호사를 거쳐 경정 특채로 경찰에 몸담았다. 2013년 경찰의 꽃이라는 총경 계급으로 20년간의 경찰 생활을 마감했다. 경찰서장급인 총경으로 근무한 햇수만 11년. ‘드루킹’ 일당의 포털사이트 댓글 조작 사건 수사와 재판을 맡아온 허익범 특별검사 팀에서 특별검사보로 일했다. 그는 “경찰서장 재직 시절 직원 개개인의 인사고과를 하면서 업무 능력과 성실성 등을 파악하는 데 한계가 있었다”고 고백했다. 

    - 어떤 한계가 있었나. 

    “경찰서장은 매년 10월이 가장 바쁘다. 인사고과 평정, 국회 국정감사 준비, 경찰의 날 행사가 있다. 서장 재직 시 직원들의 인사고과를 하기가 굉장히 어려웠다. 직원 개개인의 업무 능력이나 성실도를 알 수 없었다. 경찰은 맡은 일에 따라 업무 내용도 제각각이다. 교대 근무를 하는 파출소, 지구대 직원의 경우 얼굴도 잘 몰랐으며 개별 상담도 원활하게 진행할 수 없었다. 상황이 이런데도 서장이기 때문에 직원 모두에 대한 인사고과를 해야 했다. 고민이 많았다.” 

    - 인사고과를 통상 어떻게 진행했나. 

    “고백하자면 이렇다. 인사담당 직원이 가져온 서류에 적힌 계장 또는 팀장, 지구대장의 1차 평정, 과장의 2차 평정을 보고 산술적으로 평가할 뿐이었다. 문제는 1차, 2차 평정이 과연 공정하게 이뤄졌는지 검증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 

    - 평가 기준에는 문제가 없었나. 

    “통상 사격 점수, 직장훈련 참여 점수, 동일 보직 계속 근무 점수 등이 우수한 사람이 근무성적평정서 점수가 높다. 다만 사격, 직장훈련 참여, 동일 보직 계속 근무가 왜 높게 평가받아야 하는지 의문이 들었다. 실제 경찰 업무와 개인 성실성 평가와는 거리가 멀기 때문이다.”



    일간지, TV·라디오 홍보 1회당 5점

    경찰 공무원 승진임용 규정 시행규칙 중 경찰업무 발전에 대한 기여도 평가기준.

    경찰 공무원 승진임용 규정 시행규칙 중 경찰업무 발전에 대한 기여도 평가기준.

    2019년 10월 29일 일부 개정된 경찰공무원 승진임용 규정 시행규칙의 제1평정요소 평정기준에 경찰업무 발전에 대한 기여도 평가 기준이 제시돼 있다. 중요범죄 등 검거실적 평가요소에서 국가안전을 해치는 주모자급 검거는 건당 10점, 살인·강도·소매치기 등 강력범 검거 시 건당 3점, 절도범 및 그 밖의 경비사범 검거는 건당 1점, 방범사범 단속은 건당 0.2점이다. 국가 안전에 대한 정의가 불분명하며 범죄 양상이 날로 다양해지는 현실을 반영하지 못하는 기준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특히 경찰업무 발전에 대한 기여도 평가 기준에 홍보 및 제안 실적이 포함돼 있다. 언론 보도를 통한 경찰 홍보 실적 항목에서 전국 일간지 게재 및 TV·라디오 홍보는 1회당 5점, 월간지·주간지 및 지방지 게재는 1회당 2점이다. ‘경찰이 잘한 일’ ‘큰 사건 해결’ ‘여론이 주목할 사건’ 등의 취지로 보도되면 승진에 실질적으로 반영되는 것이다. 홍보 실적을 강조하면 수사 단계부터 사건의 크고 작음을 나눌 여지가 생긴다. 사건을 대하는 태도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직장훈련이라는 평가 항목에는 직장교육, 체력단련, 사격훈련이 포함된다. 박 변호사는 “총으로 범인을 검거하는 경우가 경찰을 통틀어 1년 평균 10건도 안 되는 상황에서 사격 점수를 승진에 반영해야 하나”라고 되물었다. 사격훈련 점수는 1등급 3.0점, 2등급 2.8점, 3등급 2.6점, 4등급 2.3점, 5등급 2.0점, 불참자 및 0점자는 0점 처리된다. 

    경찰의 승진 제도에는 이렇듯 인사고과를 반영하는 심사 승진 외에도 시험을 봐서 승진하는 시험 승진, 큰 사건을 해결하거나 공을 세워 특별 포상으로 승진하는 특진 등이 있다. 

    - 심사 승진하는 데 현장 근무자가 내근자보다 불리한가. 

    “현장 근무자들이 잦은 잠복과 탐문, 수많은 사건 처리를 위한 문서 작성 등으로 제대로 점수 관리를 못하는 경우를 봐왔다. 인사고과를 잘 받지 못해 당연히 승진할 인력이 승진하지 못하는 경우도 잦다. 강력팀 외근 담당, 고소·고발 사건을 처리하는 경제팀, 교통사고조사계 직원들이 특히 승진 5배수 안에 들어가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했다. 이들에게 이따금 특진 등의 혜택이 주어진다고 하지만 그 많은 수사관 중에서 특진의 영광을 차지하는 직원이 얼마나 될까. 특히 개별 사건에서 성과를 거둔 경우에도 경감, 경위 등이 높은 계급으로 특진하고 정작 실제 공적이 있는 경장, 경사가 소외되는 일도 있었다.”
     
    - 승진을 잘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특진이 아닌 심사 승진의 경우 통상 3년을 관리해야 한다는 말이 있다. 자기관리를 잘해 5배수 안에 들었다 해도 인사권자의 눈에 띄는 게 중요하다. 편한 말로 사건 현장보다 인사권자에게 자주 결재를 받으러 가고 인사권자가 만족할만한 행사 등의 기획을 잘해야 한다. 실상이 이렇다 보니 심사 승진 기회는 외근 직원보다는 경무, 기획 등 내근부서 직원에게 많이 부여된다. 현장 근무자의 경우 승진은커녕 징계를 받은 사례도 많았다. 악성 민원인데도 지휘부가 직원을 보호하기는커녕 민원 무마형 감찰을 통해 부당한 징계를 하는 경우도 봐왔다.” 

    - 본청과 지방청, 일선 경찰서는 승진에서 어떻게 다른가. 

    “총경, 경무관의 경우 본청과 지방청에서 근무하면 승진에 절대적으로 유리하다고 본다. 실제로 총경, 경무관 승진의 경우 지방청, 본청에 할당된 TO가 경찰서보다 훨씬 많다. 그래서 하루라도 빨리 본청, 지방청에 전입하기 위해 갖은 노력을 다한다. 

    본청과 지방청은 업무 성격 또한 지시하거나 보고를 받는 것이어서 징계 받을 위험성도 거의 없다. 보고서와 지시 공문만 내리면 되니 업무량도 적다. 인사권자를 자주 마주할 수 있으니 승진 가능성도 높다. 국내외 연수, 출장 등의 기회도 많은 편이다.” 

    이 같은 상황에서 수사를 담당하는 일선 경찰들은 시험 승진도 쉽지 않다. 시험을 준비할 현실적 여건이 마련돼 있지 않아서다. 고소·고발 사건을 조사하는 경제팀, 교통사고조사팀, 형사 당직팀 등에서는 공부할 시간을 내기 어렵다. 시험 승진하는 부서는 정해져 있다는 뒷말이 나오는 이유다.

    “현장 경찰 위해 질병 · 공상 · 순직 제도 개선해야”

    [지호영 기자]

    [지호영 기자]

    검찰개혁에 편승해 경찰의 권한 강화에만 치중할 것이 아니라 현직 경찰의 정신과 신체 건강 보호 대책부터 마련해야 한다는 박 변호사 주장도 귀담아들을 만하다. 박 변호사는 암을 비롯해 각종 질병으로 고통받는 경찰들의 삶을 언급했다. 

    - 기억나는 사례가 있나. 

    “현장 감식 업무에 종사하면서 변사체, 세균, 화재 오염물 등에 노출돼 폐암에 걸려 사망한 경우도 있었다. 그 직원은 정밀진단을 받기 전까지 암에 걸린 줄도 모르다가 말기 판정을 받고 투병 중 사망했다. 유치장 근무자의 경우에도 환기가 제대로 되지 않아 각종 호흡기 관련 질환에 노출돼 있으며 척추 관련 질환에 시달리기도 한다. 실적 관련 단속, 상부 기관의 업무 파악 지시, 민원업무 처리 관련 스트레스로 인해 심혈관계 질환에 시달리기도 한다.” 

    - 정기적으로 건강검진을 받지 않나. 

    “경찰관이 정기 건강검진을 받는다고 하지만 암과 관련한 정밀진단을 별도로 받지는 않는다. 암의 경우 본인 부담하에 검사를 받아야 한다. 검진 병원에서 실수, 착오, 진단 미숙으로 암을 조기에 발견하지 못해 사망한 경우도 있었다.” 

    - 추가 지원이 필요하다는 주장인가. 

    “경찰관이 어떤 질병에 걸려 투병 중이고 질병의 원인이 무엇이며 직무 관련성이 있는지에 대한 실태 조사도 없다. 경찰청에 관련 부서가 있는데 실태 조사와 분석은 거의 하지 않는다. 경찰관들이 가입하는 경찰공제회도 마찬가지다. 조사도, 지원도 없다.” 

    - 공상처리 기준에 문제는 없나. 

    “일선 경찰들은 피의자를 연행하는 과정에서 입은 부상으로 각종 근골격관계 질환에 시달리기도 한다. 하지만 업무 관련성이 없다는 이유로 공상처리에서 제외된다. 공상을 신청할 때 서류 등의 준비는 경찰관 개인이나 유족들 몫이다. 근무 관련 일지, 동료 직원들의 자술서 등이 공상·순직 관련 증빙자료로 필요한데 통상 업무 일지에는 상관의 지시 내용만 기재할 뿐 업무 내용에 대한 자세한 기재가 없다. 특히 질병, 부상, 사망 원인이 경찰관 직무와 관련성이 있거나 직무 수행에서 기인했다는 입증이 필요한데 경찰 내부에서 법률, 행정적으로 지원해주지 않는다. 오롯이 경찰관 개인과 그 가족의 몫이다. 

    박 변호사는 “경찰 지휘부는 이러한 현실을 알지 못한다”면서 “자신들의 성과와 직접적 관련성이 없고 파출소, 지구대, 강력팀 등 현장 근무를 해보지 않았기 때문에 무엇이 정말로 필요한지 모르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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