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3월호

일선 검사들 “일 좀 하자… 개혁 빙자한 정쟁 그만”

秋·尹 향한 쓴소리

  • 김우정 기자

    friend@donga.com

    입력2020-02-19 1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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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원칙 없는 ‘개혁’에 부정적 檢心

    • 檢 힘 빼앗아 경찰에? 警 누가 견제하나

    • 현직 검사, ‘이프로스’(검찰 내부 통신망)에 秋 실명 비판

    • 인사 독점 ‘윤석열 사단’ 지난 행보도 불만

    • “더럽고 치사해도 정권 바뀔 때까지 버티자”

    2월 11일 경기 과천시 정부 과천청사에서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취임 후 첫 기자간담회를 열고 ‘청와대 울산시장 선거개입 의혹 사건’ 공소장 비공개 의지를 밝히고 있다. [최혁중 동아일보 기자]

    2월 11일 경기 과천시 정부 과천청사에서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취임 후 첫 기자간담회를 열고 ‘청와대 울산시장 선거개입 의혹 사건’ 공소장 비공개 의지를 밝히고 있다. [최혁중 동아일보 기자]

    2월 11일. 추미애(62) 법무부 장관이 경기 과천시 정부 과천청사에서 취임 후 첫 기자간담회를 열었다. 추 장관은 “가장 중요한 변화는 공수처 설치 법안과 검·경 수사권 조정 법안이 국회를 통과해 권력기관 개혁의 역사적인 첫발을 내디딘 것”이라고 자평했다. 

    그러나 ‘추미애식 검찰개혁’에 대한 일선 검사들의 여론은 대체로 부정적이다. 익명을 원한 현직 A 검사는 “이제껏 검찰도 잘못이 많았다. 검찰 힘 빼기 자체에는 동의한다”면서도 “검찰 권한을 빼앗아 경찰에 준 셈인데 지금도 수사 지휘에 순순히 응하지 않는 경찰을 누가 견제할지가 문제”라고 말했다.

    “경찰은 중립적인가?”

    앞서 1월 13일 국회에서는 형사소송법·경찰청법 개정안이 통과됐다. 이로써 검찰은 경찰에 대한 수사지휘권을 잃게 됐다. 개정 형사소송법에 경찰이 검찰의 보완 수사 요구를 ‘정당한 이유가 없는 한’ 수용해야 한다는 규정이 있긴 하다. 그러나 ‘정당한 이유’를 두고 검경의 해석이 다를 여지가 커 향후 논란이 예상된다. 

    일선 검사들은 경찰 수사가 부실할 경우 직접 보완 수사에 나서야 할지도 모른다며 업무 과중 가능성도 우려한다. 검사 1명에 수사관 한두 명 정도 인력이 경찰 수사 결과를 일일이 바로잡기는 어렵다는 것. 검사 출신 법조인 B씨는 “경찰도 아직까지 정치적 중립성을 두고 의혹을 많이 사지 않나. 경찰이 지금 같은 국면에서 청와대 의혹과 관련해 범죄 단서를 찾으면 제대로 수사할지 의문”이라며 “그저 정치 이슈를 따라다니는, 이도저도 아닌 개혁이 되지 않을까 싶다”고 짚었다. 

    추 장관의 인사에 대한 불만도 상당하다. 1월 8일 법무부는 윤석열(60) 검찰총장의 핵심 측근 상당수를 지방으로 보내는 ‘좌천성’ 인사를 단행했다. 박찬호 전 대검 공공수사부장(현 제주지검장), 한동훈 대검찰청 반부패강력부장(현 부산고검 차장) 등이 주 대상이다. 이들은 청와대의 울산시장 선거개입 의혹·유재수 감찰 무마,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일가 의혹 관련 수사 지휘부였다. 앞서의 A 검사는 이렇게 말했다. 



    “검찰 지휘부에 대한 문책성 인사였다. 기존 관례를 무시한 이번 인사로 권력을 향한 수사 동력도 떨어졌다. 법무부와 검찰 간 ‘힘겨루기’라 보기도 힘들다. 추미애 장관의 다소 무리한 언행이 언론을 통해 연일 나온다. 정치적 의도가 의심된다. 주변 동료 검사들 사이에서 이른바 ‘검찰개혁’이 원칙 없이 이뤄지는 것 아니냐는 부정적 의견이 다수다.” 

    일부 검사들은 내부 통신망 ‘이프로스’를 통해 추 장관을 비판하고 나섰다. 1월 13일 정희도 당시 대검 감찰2과장은 이프로스에 올린 글에서 이번 인사가 “법률이 정한 절차를 지키지 않았다고 생각한다”며 “수사 담당자를 찍어내고 검찰총장을 허수아비로 만드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열흘 후인 23일 발표된 차장·부장검사 등 중간간부 인사에서 청주지방검찰청 형사1부장으로 전보됐다.

    “총장 지시 불응, 수사지휘권 침해”

    2월 6일 윤석열 검찰총장이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 내에서 이동하고 있다. [양회성 동아일보 기자]

    2월 6일 윤석열 검찰총장이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 내에서 이동하고 있다. [양회성 동아일보 기자]

    현직 지청장도 추 장관 비판에 가세했다. 김우석 전주지방검찰청 정읍지청장은 2월 12일 ‘이프로스’에 올린 글을 통해 검찰청법을 근거로 검찰총장이 사건 지휘·감독권을 갖고 있다고 했다. 추 장관이 전날 기자회견에서 “수사의 구체적 지휘권은 검사장 고유 권한”이라고 말한 점을 염두에 둔 지적이다. 

    잠시 시곗바늘을 1월 22일로 되돌려보자. 이날 윤 총장은 조 전 장관 아들에게 허위 인턴증명서를 발급한 혐의로 최강욱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에 대한 기소를 지시했다. 하지만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은 윤 총장의 세 차례 지시에도 별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사실상 기소를 거부한 셈이다. 이에 2월 10일 문찬석 광주지검장은 대검 회의석상에서 이 지검장에게 “총장 지시를 따르지 않는 것은 수사지휘권을 침해한 것”이라며 날을 세웠다. 추 장관의 발언은 이와 같은 수뇌부 내홍 국면에서 사실상 이 지검장의 손을 들어준 효과를 냈다. 

    하지만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는 검사는 소수에 그친다. 일선 검사들은 사석에서도 입장 표명을 꺼리는 실정이다. 법조계에서는 흉흉한 소문마저 돈다. 언론과 접촉해 검찰개혁에 대한 불만을 토로하는 현직 검사를 색출한다는 것이다. 

    B씨는 “과거 김준규 총장이 검경수사권 조정과 관련해 사직하는 등 논란이 있었다. 그때는 총장에서 평검사에 이르기까지 자기 생각을 비교적 자유롭게 말하는 분위기였다”고 했다. B씨가 언급한 전례는 이렇다. 2011년 7월 국회에서 경찰의 수사개시권을 명시한 형사소송법 개정안이 통과됐다. 홍만표 당시 대검 기획조정부장 등 검찰 간부들은 거세게 반발해 사의를 표명했다. 김준규 당시 총장은 이명박 대통령의 만류에도 사직했다. 총장이 검찰의 중지를 모아 ‘총대’를 멨다는 평가가 나왔다. 

    최근 검찰 공기는 사뭇 달라 보인다. B씨는 “윤 총장은 검찰을 둘러싼 논란에 대해 ‘국회에 맡기겠다’는 식이라고 한다. 검사들 사이에서는 힘이 빠진다는 말이 많이 나온다”고 전했다. 

    윤 총장에 대한 불만도 검찰에서 중지가 모이지 않는 원인 중 하나다. 문재인 정부 출범 후 ‘윤석열 사단’을 비롯해 특수부 출신들이 승승장구했다. 반면 공안부와 형사부 출신들은 상대적으로 소외됐다. B씨는 “검찰 안에서는 윤 총장의 의향대로 이뤄진 기존 인사가 공정성을 잃었다는 시각이 많았다. 추 장관 인사를 계기로 정상화된 측면도 있다”고 했다. 현직 C 검사도 “그동안 윤 총장의 인사가 너무 과격해 비토 여론도 만만치 않았다. 이번 국면에서 사표를 내거나 문제 제기하는 검사가 적은 이유”라고 설명했다. 

    검찰 일각에서는 청와대를 겨냥한 ‘윤석열 검찰’의 수사에도 의구심을 나타내고 있다. 수뇌부가 검찰개혁에 직면하자 청와대와 대립해 ‘희생양 프레임’을 만든다는 것. C 검사는 “집권 4년차까지 해먹다가 이제 와 청와대와 이토록 세게 붙으니 수사 의도가 정치적으로 느껴진다”고 날 선 반응을 보였다.

    “정권 바뀌면 상황 급변할 것”

    일부가 택한 방법은 ‘복지부동(伏地不動)’이다. 한 전직 검찰 고위관계자는 “현 정부에 불만 있어도 옷 벗는 것이 능사가 아니잖나. 그간 정권이 바뀌면 상황도 급변한다는 최소한의 ‘학습효과’가 있다”며 이번에 좌천된 간부들도 중앙 무대에서 잠시 잊힌 김에 머리 좀 식히겠다는 심정일 것”이라고 검찰 안팎의 분위기를 전했다. C 검사에 따르면 “더럽고 치사해도 버티면서 때를 기다리자”는 반응마저 있단다. 

    상당수 검사는 검찰에 쏟아지는 관심에 피로감을 토로했다. 앞선 A 검사의 하소연이다. 

    “조용히 일하고 싶은데 여기저기 회자되는 것 자체가 피곤하다. 대부분 일선 검사들은 그저 식사 자리에서 사적으로 잠깐씩 얘기하는 정도다. 업무가 너무 많아 사실 신경 쓸 겨를이 없다.” 

    취재에 응한 검사들은 “검찰 본연의 업무에 집중할 수 있도록 개혁을 빙자한 정쟁은 그만했으면 좋겠다”고 입을 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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