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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과수 강덕지 과장의 범죄심리학 노트④

어린 날의 콤플렉스, 증오의 칼날로 돌아오다

  • 강덕지 국립과학수사연구소 범죄심리과장

어린 날의 콤플렉스, 증오의 칼날로 돌아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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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는 K의 어머니를 찾아가 절대 헤어질 수 없다고 했지만, 이미 변한 K와 그 어머니의 마음을 돌이키기란 쉽지 않았다. 처음엔 정성이 부족한가 싶어 Y는 매주 지방에 있는 K의 집으로 가서 궂은 일을 마다 않고 했다. Y는 평생 써본 적이 없는 거금을 들여 K와 호사스러운 여행을 떠나기도 했다. 그러나 무릎을 꿇고 빌어도 봤지만 요지부동이었다. 마침내 Y는 “너를 보내주겠다. 그러나 마지막 부탁이 있다. 지금부터 두 달만 함께 지내자”고 제안했다. K는 그 정도는 해줄 수 있다는 생각에 승낙했다.

구름이 가듯 시간이 흘러 약속한 두 달의 마지막 날이었다. 얼마나 자신의 처지가 비통했겠는가. 저녁에 소주를 사서 반 병을 한꺼번에 마셨다. 처음으로 입에 댄 술이었다. 그리고는 잠든 K에게 다가가 목을 눌렀다. 그녀를 놓치기 싫었다. 목을 눌렀으나 손에 힘을 줄 수 없었다. 죽이고 싶지 않았으니까. 한참을 망설이다 밖으로 나갔으나 다시 방으로 들어왔다. 이대로 K를 보내야 하는 자신이 참을 수 없을 만큼 미웠다. 그때 벽에 걸려 있던 넥타이가 눈에 들어왔고 그것으로 한 사람의 운명은 끝이 났다. 그는 술에 취한 채 숨진 K를 안고 잠이 들었다.

며칠이 지났는지 몰랐다. 잠을 깨고 보니 여자의 입에서 피가 흘렀다. 날짜를 세어보니 사흘이 지났다. 배고픈 것도 모르고, 내처 잠만 잔 것이다. 몸은 깨고 싶었지만, 정신이 이를 말린 것 같았다. 겨울이어서 시체는 부패하지 않았다. 그는 여행용 가방을 구입해 시신을 넣고, K의 고향집 맞은편 냇가에 암매장했다. 그로부터 그는 매일 여자의 무덤 앞에서 K가 좋아하던 사이다를 부어놓고 대화했다. 그가 살인범으로 체포되던 날까지….

K가 죽은 뒤 Y의 삶은 뒤죽박죽이었다. 과거의 그와 완전히 결별한 채 값비싼 자동차를 사들이고 운전기사도 고용했다. 가진 돈이 다 떨어질 때까지 미친 사람처럼 써댔다.

결국 돈이 떨어지자 그는 고향친구와 범행을 계획했다. 초등학생 아들을 둔 과부를 사귄 그는 돈을 빼앗기 위해 여자도 죽이고, 그 여자의 아들도 죽였다. 나중엔 공범마저 살해했다. 증거를 없애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K의 무덤 앞에서 살인혐의로 체포됐다.



그가 수감된 경찰서에 가보니 Y는 사흘 동안 단식 중이었다. 형사에게 물어보니 범죄 사실을 털어놓는 것보다 먼저 자신의 시신을 기증하겠다고 했다는 것. 우선 그를 설득해 밥부터 먹여야 할 것 같았다. 안 먹는다고 버티는 그에게, 애인과 즐겨 먹던 음식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부대찌개라고 했다. 그와 함께 부대찌개를 먹으며 과거를 들었다. 삶을 포기한 상태였다. 두려움이 없었다. 만약 경찰에 잡히지 않았다면 계속 살인을 저질렀을 가능성이 높았다.

태어날 때부터 엄마의 부재를 경험하고 아버지나 계모로부터 사랑을 받지 못한 Y. 중학교 때 가출한 탓에 그는 마음을 털어놓을 친구도 없었다. 의지할 사람은 오직 자신뿐이었다. 독일의 화학자 리비히는 “식물은 단 한 가지의 영양소가 부족해도 제대로 자라지 못한다”고 했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사랑이란 요소가 결핍되면 육체는 성장해도 정신은 성장하지 못한다.

눈이 삐뚤다고 마음까지…

왜소한 몸집의 W는 20대 중반이었다. 태어날 때부터 사시(斜視)였다. 그는 “어머니가 임신했을 때 술을 많이 마신 탓에 사시로 태어났다”고 원망 섞인 말을 토해냈다. 아버지는 그가 크는 것을 보지 못하고 일찍 세상을 떠났다. 생활은 어머니 혼자 도맡아야 했고, 가난한 탓에 눈 수술은 생각지도 못했다.

눈이 삐뚤어졌다고 마음까지 삐뚤어진 것은 아니다. 그러나 세상은 그를 평범하게 대하지 않았다. 학교에서 친구들로부터 따돌림을 당했다. 중학교 3학년 때 결국 자퇴했다. 집을 나가 남의 집 농사일을 거들고, 염전에서 소금도 캤다. 싱크대 운반 등 힘든 허드렛일도 했다. 배운 것이 없어 여러 직장을 전전했고 친구도 생기지 않았다. 사람은 부모 슬하를 떠나면서 사회화 과정을 겪는데, W는 온통 부정적인 경험으로 사회화 과정을 밟았다. 자신을 업신여기는 사람들 속에서 그는 사람에 대한 부정적 시각을 조금씩 키워갔다.

20대 중반 무렵 그는 온라인 게임을 통해 한 여자를 알게 됐다. 얼굴도 모른 채 모니터로 대화만 주고받으며 애정을 키워갔다. 만나고 싶었으나 자신의 눈을 보면 그녀가 어떻게 생각할지 두려웠다. 그러던 어느 날 둘은 만났다. 아니나다를까, 여자는 W를 보자 표정이 일그러졌다.

하지만 여자는 생각이 깊었다. W를 그냥 돌려보내지 않고, 함께 PC방에도 갔고, 집이 멀어 그날 귀가할 수 없는 그에게 여관도 잡아줬다. 동정하는 마음이었을 것이다. 여관방에서 함께 TV를 보고 12시쯤 되자 여자는 W에게 다음날 아침에 다시 오겠다고 약속하고 돌아갔다. 그는 방에서 뒤척거리며 그 여자가 자신을 좋아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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