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3월호

마스크 사러 약국 24곳 가보니… “현장 모르는 탁상행정 결정체”

  • 이현준 기자

    mrfair@donga.com

    입력2020-03-03 18: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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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마스크 찾아 점심도 걸렀으나 허탕

    • ‘공적 마스크’ 0개, 마스크 구매 가능 약국 단 3곳

    • 약사는 ‘억울’… 화풀이하는 손님도

    • 생산 공장서 직접 사와 판매하는 약국도

    “사람 갖고 장난치는 것도 아니고….” 

    2월 28일 서울 여의도 한 증권사 직원 윤모(35) 씨는 분통을 터뜨렸다. 비를 뚫고 마스크를 구매하러 약국에 들렀는데 허탕을 쳤다는 것. 그는 “나라에서 약국에 마스크를 배포한다고 해 사러왔다. 품절 걱정에 점심까지 거르고 뛰어왔는데 마스크 공급 자체가 없었다더라. 속은 기분이라 허탈하고 불쾌하다”면서 쓴 웃음을 지었다. 

    2월 27일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마스크 수급 관련 브리핑을 갖고 “국민의 접근성이 높은 2만4000여 개 약국에 대해 점포당 평균 100장씩 총 240만 장을 공급할 계획”이라면서 “내일(28일)부터 우선 120만 장이 전국 약국을 통해 판매되며 이중 23만 장은 대구‧경북 지역에 우선 공급된다”고 말했다. 

    기자는 2월 28일 서울지하철 여의도역, 광화문역, 시청역 인근 약국 24곳을 찾았다. 방문 시간대는 오전 11시 20분에서 오후 2시 30분. 이날 ‘공적 마스크’를 공급받았다는 약국은 24곳 중 단 한 곳도 없었다. 마스크 구매가 가능했던 약국도 3곳에 불과했다. 공적 마스크는 국민 불편을 해소하기 위해 정부가 확보해 공급하는 마스크를 말한다. 

    약사들은 입을 모아 답답함을 토로했다. 여의도에서 약국을 운영하는 A씨는 “마스크를 당장 공급해주지도 못할 거면서 왜 공급한다고 발표했는지 모르겠다. 약사들이 모인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도 성토가 가득하다”고 토로했다. 



    정부가 생산 공정에 대한 이해 없이 무리한 일정을 계획했다는 의견도 있었다. 역시 여의도에서 약국을 운영하는 약사 B씨는 “무상으로 나눠주는 마스크가 아니라 판매하는 마스크다보니 약국 입장에서도 기존 공급처와의 계약이나 가격 등 중요한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그러니 정부가 발표한다고 하루아침에 대규모 공급이 가능하겠나”라고 되물었다.

    1시간 동안 마스크 있냐는 질문만 208명

    서울 여의도의 한 약국. 비축된 마스크는 없었다. [이현준 기자]

    서울 여의도의 한 약국. 비축된 마스크는 없었다. [이현준 기자]

    광화문에서 약국을 운영하는 C씨는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그는 마스크가 있냐는 기자의 질문에 질렸다는 듯 “1시간 전부터 세어봤는데 손님이 208번째”라면서 이렇게 부연했다. 

    “전화는 수시로 울리고 지나는 분들도 들어오셔서 마스크 들어왔냐고 물어보세요. 수백 번씩 대답하다 보니 저도 지치네요.” 

    역시 광화문에서 약국을 운영하는 약사 D씨는 억울한 일을 당했다고 하소연했다. 손님에게 공적 마스크가 없다고 말했더니 “정부에서 분명히 100개씩 준다고 얘기했는데 어디서 거짓말이야! 문 열자마자 왔는데 없을 리가 있어? 일부러 안 팔다가 더 비싸게 팔려는 수작이지?”라는 폭언이 돌아왔다고 한다. 

    D씨는 정부가 무책임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는 “약국에 책임을 전가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약사들만 시달리고 있지 않나. 현장 상황도 모르는 탁상행정의 결정체”라고 일갈했다. 이에 기자가 ‘그래도 정부가 28일에는 공급되게끔 하겠다고 하지 않았나요’라고 묻자 “아직도 정부를 믿으세요?”라는 답이 돌아왔다. 

    시민 역시 지치기는 마찬가지다. 서울 서대문구에 거주하는 최모(63) 씨는 “온라인에서 구매하는 방법을 몰라 직접 방문해 사야 한다. 정부가 마스크를 공급해준다고 해서 벌써 5곳을 찾아갔는데 약국은 아직 받은 게 없다고 하거나 품절됐다고 한다. 갖고 있던 건 다 떨어졌는데 내일부터는 막막하다”고 말했다. 

    서대문구에 사는 한모(72) 씨는 “기초연금을 받아서 근근이 살아가는 처지라 지금 책정된 마스크 가격을 감당할 수가 없다”면서 이렇게 하소연했다. 

    “나라에서 마스크를 싸게 공급한다고 해서 기대하고 왔지. 그런데 가는 곳마다 아직 안 들어왔다고만 하더라고. 있는 것을 빨아서라도 써야 될 지경이야. 대체 공급되기는 하는 거야?”

    답답한 마음에 공장에서 직접 사와서 팔아

    마스크를 구매할 수 있었던 약국 세 곳 중 한 곳은 2개, 또 다른 한 곳은 3개로 1인당 구매 물량을 제한하고 있었다. 재고량이 얼마 남지 않았기 때문이다. 물론 이마저도 공적 마스크는 아니었다. 

    반면 서울 시청역 인근 한 약국은 구매량에 제한을 두지 않았다. 마스크 25개 들이 박스가 수십 개 보일 만큼 재고량이 풍부한 편이었다. 약사 E씨는 정부 공급물량을 기다리다 지쳐 직접 생산 공장에 가서 구입해왔다고 밝혔다. 판매 가격은 4000원. 저렴하지는 않았지만 이마저도 순식간에 팔린다는 것이 E씨의 말이었다. 기자가 약국에 머무르던 5분 남짓한 시간동안 5~6명의 손님이 마스크를 사러 왔다. 30만원 어치 마스크를 한 번에 사가는 손님도 있었다. 

    기자가 ‘오늘쯤 마스크가 공급된다는 말을 듣지 않았나’라고 묻자 E씨가 이렇게 답했다. 

    “어제는 어제 공급된다고 들었고, 오늘은 오늘 공급된다고 들었다. 아마 내일도 그럴 것이다. 그 다음날도 그럴 것이다. 그 다음 주도 그럴 것이다. 전혀 기약이 없다. 오죽하면 직접 가서 사오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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