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11월호

심리분석으로 본 ‘오징어 게임’ 열풍 4가지 키워드

‘경쟁’ ‘죽음’ ‘의미’ ‘선악’…공포와 희망의 2중주

  • 손석한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의학박사

    입력2021-11-10 1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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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현실 정확히 반영…미래까지 보여주는 드라마

    • 경쟁 구도와 죽음으로 각성 수준과 공포감 극대화

    • 드라마 굿즈 히트, 불안 잠재우려는 무의식의 발로

    ※이 원고에는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 게임’의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오징어 게임’의 한 장면. [넷플릭스 제공]

    ‘오징어 게임’의 한 장면. [넷플릭스 제공]

    한국 드라마 ‘오징어 게임’ 열풍이 참으로 대단하다. 가히 전 세계를 휩쓸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넷플릭스를 통해 방영되는 ‘오징어 게임’은 출시 열흘도 되지 않아 TV 프로그램 시청률 부문에서 세계 1위를 기록했고, 넷플릭스 회사의 주가도 크게 끌어올렸다. 그뿐만이 아니다. ‘오징어 게임’에 등장하는 각종 의류와 게임 도구가 날개 돋친 듯 팔리고 있다.

    드라마는 삶이 죽음보다 더 지옥 같은 사람 456명이 인생의 재기를 꿈꾸며 목숨을 걸고 6가지 게임을 치르는 과정을 그린다. 이 게임에 걸린 상금은 총 456억 원. 끝까지 살아남은 사람만 상금을 차지할 수 있다.

    도대체 ‘오징어 게임’의 그 무엇이 사람들을 그토록 열광하고 빠져들게 하는 걸까. 이 드라마는 언뜻 황당한 내용 같으면서도 우리가 처한 현실과 다가올 미래를 있는 그대로 정확하고도 날카롭게 그리고 있다. 시청자를 사로잡는 가장 강력한 흡인력도 그러한 공감대에서 나온다. 좀 더 세밀한 심리학적 분석을 위해 네 가지 키워드를 제시한다.

    경쟁 구도와 죽음으로 긴장·공포감 극대화

    첫 번째 키워드 ‘경쟁’

    경쟁이라는 말을 들을 때 어떤 생각과 감정이 드는가? 이기고 싶은 마음이 들면서 온몸의 근육은 긴장하고 정신의 각성 수준은 최고로 올라간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피곤함이 몰려오고 심지어 두려움도 동반된다. 경쟁이 지속되면 될수록 더 지칠 것이고, 언젠가는 경쟁에 뒤처져 내가 가진 무엇인가를 잃게 될까 무섭다. 참가자 456명 중 한 명이 살아남는 ‘오징어 게임’은 무한경쟁의 연속이요 승자독식이다.



    시청자들은 게임이 진행될수록 결국 1명만 생존한다는 걸 알아차린다. 드라마 중간에 참가자들은 종종 말한다. “우리 함께 여기서 살아나가서 456억을 나누어 갖자.” 이런 대사를 들으면서 시청자들은 ‘맞아. 그렇게 되면 참 좋겠다’며 그들의 희망에 공감하고 응원도 하지만, 곧바로 ‘그런데 결국 1명만이 살아남을 텐데…’라는 안타까운 감정을 느낀다. 그리고 마지막 1명이 누가 될지 궁금해하면서도 ‘만일 내가 저들 중 한 명이라면 과연 끝까지 살아남을 것인가?’라고 자문하게 된다. 곧바로 내가 처한 현실을 인식하며 ‘나도 탈락하게 될 것이다’ 내지는 ‘나는 절대로 탈락하지 않을 것이다’라는 생각을 한다.

    ‘세상의 모든 고통을 안고 빚에 몰려 벼랑 끝에 놓인 사람들, 즉 이미 경쟁에서 진 패배자들을 모아놓고 또다시 경쟁을 시키다니!’

    하지만 한켠엔 그들을 마치 경주마로 여기면서 보고 즐기는 VIP들이 등장한다. 시청자들은 그들을 보면서 최고 권력자나 상위 0.1% 부자를 떠올리면서 ‘그들이 나도 말로 여기는 것 같다’고 느낀다. 사회 양극화가 점차 심해지는 지금, 나는 사회의 상위 10%는커녕 중간에도 속하지 못할 것 같다. ‘나는 이미 경주마거나 언젠가 경주마가 될지 모른다’는 불길한 예감이 스친다.

    성관계 때의 ‘69체위’를 떠올리게 한다는 이유로 69번 참가자에게 베팅하는 VIP는 다음에 그것을 뒤집은 96번 참가자에게 베팅한다. 그에게는 거액의 돈을 들여 사람의 목숨에 베팅하는 게 그저 재미일 뿐이다. 황당하다. 하지만 어느 시점이 되면 이 처절한 생존 경쟁의 드라마에 빨려 들어가 재미를 느끼는 나 자신을 발견한다. 참가자들의 목숨 건 경쟁을 보면서 ‘누가 과연 살아남을까’ 예측하고, ‘과연 어떤 방식으로 승리를 쟁취할까’라며 그 과정을 흥미진진하게 분석한다.

    드라마가 끝나면 ‘경쟁은 인간의 삶에서 피할 수 없는 요소야’라며 자신을 위로한다. 그러면서 인간의 삶에서 단결, 협력, 역할분담, 의견 교환, 토론, 아이디어 짜내기 등의 긍정적 요소 외에 배신, 속임수, 암투, 내통, 선동, 공격, 폭력 등 부정적 요소도 작용한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는다. 진행요원들의 ‘공평’에 대한 강조는 그저 공허한 외침일 뿐이다. 이는 현실 세계의 슬픈 자화상이기도 하다.

    두 번째 키워드 ‘죽음’

    ‘오징어 게임’에서는 죽음이 전면에 등장한다. 첫 번째 게임인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에서 수많은 사람이 간발의 실수로 총에 맞아 쓰러지는 장면은 충격적이다. 드라마의 내용을 이미 알고 있었더라도 사람들이 피를 흘리며 죽는 모습을 보면 놀랄 수밖에 없다. 그리고 ‘죽음의 이유가 게임 탈락이라니…말도 안 된다’고 생각한다. 어린 시절 게임하다 탈락하면 “죽었다”라고 말했었는데, 그것이 진짜 죽음을 의미하지는 않았다. 그런데 여기서는 진짜 죽임을 당한다. 이 지점이 바로 드라마적 파격이고 극적인 흥행 요소일 수도 있다. 드라마는 처음부터 한 번 지면 패자부활전도 없이 죽임을 당해야 한다는 절박함과 공포를 시청자에게 주입한다. ‘저것은 드라마일 뿐’이라고 생각하면서도 ‘끝없는 경쟁에 내몰린 현실의 삶이 죽음과 별반 차이가 없다’고도 인식한다. 게임이 진행될수록 죽음의 방식은 더 자극적으로 변해간다. 시청자들이 죽음에 둔감해지지 않게끔 만들려는 장치다.

    다음에 진행된 ‘설탕 뽑기’ 게임 내용도 호기심을 불러일으킨다. 설탕 뽑기는 설탕을 불에 녹이고 소다를 넣어 부풀린 ‘달고나’를 다양한 모양의 쇠틀로 찍어낸 후 그 모양대로 뜯어내는 게임이다. 이 게임에서 참가자들은 장기나 체스에서 말이 죽는 것처럼 죽어나간다. 그들의 생사엔 실력보다 운이 크게 작용한다. 군더더기를 뜯어내기 쉬운 세모 모양을 선택한 사람들은 대부분 살아남고, 가장 어려운 우산 모양을 선택한 이는 주인공 ‘기훈’(이정재 분)을 제외하고 거의 다 죽는다.

    강화유리와 일반 유리가 섞인 ‘징검다리’를 건너는 게임에서는 출발 순서가 늦은 뒤쪽 번호를 고른 3명이 살아남는다. 주인공 역시 다른 사람의 부탁으로 맨 마지막 번호를 손에 쥐는데 뚜껑이 열리기 전까지는 그것이 행운인지 불운인지 모른다. 그리고 참가자들은 자신이 건널 징검다리의 안전 여부를 확인하고자 앞 번호 사람에게 압박을 가하고 급기야 밀어내기까지 한다. ‘저들이 죽어야 내가 산다’거나 ‘내가 살려면 저들이 죽어도 상관없다’며 저지르는 행동을 지켜보면서 시청자들은 죽음의 공포를 실감한다.

    ‘오징어 게임’에서 패자는 모두 죽지만 모든 죽음이 게임 탈락 때문만은 아니다. 게임 참가자 ‘한미녀’(김주령 분)가 ‘덕수’(허성태 분)를 끌어안고 함께 추락하는 자발적 죽음은 복수심에서 비롯됐다. 그리고 2인1조 ‘구슬 놀이’에서 아내를 이긴 남편은 ‘자신이 이겨 아내를 죽게 만들었다’는 죄책감을 견디다 못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죽음은 VIP도 피할 수 없다. 뉴스를 보면 복수심, 증오, 죄책감 때문에 사람이 죽는 사건사고가 끊이지 않는다. 우리는 죽음을 별로 떠올리고 싶지 않고, 죽고자 하는 마음도 없으며, 어떻게든 살아보려고 발버둥질하지만 이런 뉴스는 돌발적인 죽음이 내게도 일어날지 모른다는 불안감을 자극한다. 아울러 삶의 가치를 높이고 삶에 대한 의지를 더욱 강하게 만들기도 한다. 시청자들은 수많은 죽음을 목도하면서 그것이 드라마라서, 또는 나는 이렇게 살아서 드라마를 볼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안도한다.

    ‘오징어 게임’ 달고나 키트가 전 세계에서 선풍적 인기를 끌고 있다. [이베이 캡처]

    ‘오징어 게임’ 달고나 키트가 전 세계에서 선풍적 인기를 끌고 있다. [이베이 캡처]

    ‘오징어 게임’ 굿즈 히트, 불안 잠재우려는 무의식의 발로

    세 번째 키워드 ‘의미’

    드라마는 ‘우리는 왜 사는가?’ 혹은 ‘삶의 목적이 무엇인가?’라는 근원적 물음에 대해 생각하게 만든다. 사람들은 흔히 쉽게 앞일을 계획한다. 이를테면 ‘내일 저녁에는 친구를 만나고, 주말에는 가족과 여행을 갈 것이며, 이번 달 운동과 식사 조절로 체중을 줄일 것이며, 연내 업무 실적을 높이겠다’고 다짐한다. 당장 이룰 수 없더라도 이 모든 것이 삶의 의미다. ‘구슬 놀이’ 참가자 ‘지영’(이유미 분)은 연배가 비슷한 같은 조 ‘새벽(정호연 분)’에게 자신이 겪은 끔찍한 과거를 이야기하며 “여기서 나가면 할 것이 없다”고 말한다.

    탈북자인 새벽은 ‘모친을 북한에서 하루빨리 데려오고, 보육원에 있는 동생을 찾아 셋이서 함께 살 집을 구하고, 제주도 여행을 가고 싶다’는 소망을 품고 있다. 삶의 의미가 분명한 새벽을 위해 지영은 일부러 게임에서 진다. 둘 중 하나만 살 수 있는 절박한 상황에서 타인을 위해 자신을 희생한 것이다. 무한 경쟁을 멈추게 만드는 힘은 바로 인간의 마음이다. 희생이나 헌신은 자발적 선택이다. 그 선택은 지영의 삶에 마지막 의미일 수 있다. 시청자는 이 대목에서 인간 행동의 복잡함과 인간의 위대함을 느낀다.

    죽기 직전 새벽은 기훈에게 자신의 동생을 부탁하고, ‘상우’(박해수 분) 역시 자신의 어머니를 부탁한다. 그들에게 가족은 삶의 의미였다. 그들을 보면서 시청자들은 사랑하는 가족을 떠올리고 가족이 삶의 중요한 의미임에 공감했을 터이다. 오스트리아 출신의 유대인 정신과 의사인 빅터 프랭클은 독일 나치군이 집단학살을 감행한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죽음의 문턱을 넘나들었다. 그는 삶의 의미를 찾으면서 우울증을 극복했고, 마침내 수용소 시절을 되돌아보며 ‘의미치료(로고테라피·logotherapy)’를 창시했다. “왜 살아야 하는지 알고, 삶의 의미를 찾는 사람은 어떤 시련도 견뎌낼 수 있다”는 그의 말처럼 주인공 기훈은 아픈 어머니와 사랑하는 딸을 떠올리면서 죽음의 고비를 넘겼다. 살고자 하는 본능도 중요하지만 살고자 하는 이유와 삶의 의미가 더해질 때 우리는 삶을 더 소중하게 여기게 된다. 그런 의미에서 ‘오징어 게임’은 시청자에게 삶의 의미를 되새겨 볼 기회를 선사한 셈이다.

    네 번째 키워드 ‘선악’

    선과 악은 우리 마음속에 공존한다. 그러나 우리는 선을 키우고 악을 누르고자 노력한다. 이는 인간이 지닌 보편적 도덕성이다. ‘오징어 게임’은 본질적으로 악의 장르다. 사람을 잔인하게 죽이고, 목숨을 우습게 여기는 폭력적인 내용이다. 그런데 아이로니컬하게도 드라마는 악이 판치는 가운데서도 선을 찾는다.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 게임에서 기훈의 목숨을 구한 외국인 노동자 알리에게 선뜻 차비를 준 상우. 그러나 그는 게임에서 이기기 위해 알리를 배신한다. 앞에 가던 참가자를 밀어 징검다리 밑으로 떨어뜨리며 차츰 악인으로 변해간다.

    주인공 기훈이 그런 상우를 칼로 찔러 죽이려 할 때 새벽이 만류한다. “아저씨는 그런 사람이 아니지 않으냐?”는 새벽의 말에 기훈은 자신의 살의를 거둔다. 선이 악을 이기는 순간이다. 우리는 ‘누가 더 선한 사람인가’ 또는 ‘누가 더 악인인가’에 대해 늘 파악하고자 애쓴다. 그렇기에 상우가 아닌 기훈이 최후의 승자가 되는 결말을 맞이함으로써 마음의 안정을 찾는다. 권선징악으로 보기는 어렵지만 더 나쁜 상우가 덜 나쁜 기훈을 이기는 것은 용납되지 않기 때문이다. 기훈은 456억 원의 상금을 받지만 죄책감으로 1년간 돈을 쓰지 않고 약속대로 새벽의 동생과 상우의 어머니가 전보다 편하게 살 수 있도록 돕는다. 기훈의 선한 마음과 행동은 보는 이들에게 안도감을 안긴다. ‘오징어 게임’을 통해 인간의 탐욕과 계급의 존재를 확인하고 암울한 미래를 예측하면서도 우리는 탐욕을 거부하고 사람을 소중하게 여기는 주인공이 있음에 또 한 번 희망을 가진다.

    시청자들은 드라마에 등장하는 트레이닝복과 도시락, 게임 기구 같은 굿즈를 구매함으로써 ‘오징어 게임’이 그저 만들어진 ‘허구의 세상’임을 확인하고 안도한다. 굿즈를 구입함으로써 ‘오징어 게임’이 그려낸 무서운 세상을 희화화하며 굿즈를 가지고 놀면서 무의식적인 불안을 잠재운다. ‘오징어 게임’ 굿즈 열풍은 어쩌면 드라마 속 비인간적 사회에 대한 시청자의 심리적 조롱이자 저항의 또 다른 표현일지도 모른다.

    #오징어게임 #이정재 #달고나 #신동아


    손석한
    ● 연세신경정신과 원장
    ● 연세대학교 대학원 의학박사
    ● 대한소아청소년정신의학회 이사
    ● 저서 ‘부모와 아이 마음 간격 1MM’ ‘지금 내 아이에게 해야 할 80가지 질문’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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