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1월호

금융 인사이드

DLF 사태, ‘규제 만능’ 덫에 빠질라

소비자의 ‘中수익 상품 투자’ 제한할지도

  • 나원식 비즈니스워치 기자

    setisoul@bizwatch.co.kr

    입력2019-12-19 14: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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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금융위원장 “당국 협박 말라” 으름장

    • 금융위, 고위험 금융상품 규제로 범위 넓혀

    • 신탁까지 ‘사모 성격’ 있다고 규제

    • ELT, 일부 판매 허용됐지만 총량 제한

    • “처벌 강화하되, 투자자 진입 문턱 유지 정책 고려했어야”

    은성수 금융위원장이 2019년 11월 14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브리핑룸에서 파생결합펀드(DLF) 사태의 재발 방지를 위해 ‘고위험 금융상품 투자자 보호 강화를 위한 종합 개선방안’을 발표하고 있다. [뉴스1]

    은성수 금융위원장이 2019년 11월 14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브리핑룸에서 파생결합펀드(DLF) 사태의 재발 방지를 위해 ‘고위험 금융상품 투자자 보호 강화를 위한 종합 개선방안’을 발표하고 있다. [뉴스1]

    “신탁은 다 죽었다고 금융 당국을 협박해서는 안 된다. 얼마 전까지 잘못했다고 사과하던 은행들이 맞나 싶다.” 

    2019년 11월 26일 은성수 금융위원장이 국내 시중은행들에 으름장을 놨다. 앞서 금융위가 ‘파생결합펀드(DLF) 사태’ 대책을 내놓자 은행들이 반발했고, 은 위원장이 이에 대해 다시 경고의 메시지를 던진 것. 정부 부처 수장이 한 발언치고는 꽤 수위가 높은 편이다. 은 위원장은 왜 이처럼 발끈했을까. 

    얼마 전 우리은행 등 일부 은행은 복잡하고 이해하기 어려운 금융상품(DLF)을 법을 어기거나 규제를 우회하는 식으로 소비자에게 판매했다. 실제로 많은 소비자가 피해를 보면서 여론의 질타를 받았다. 이에 금융 당국이 재발 방지책을 내놓자 은행들이 “그건 너무 과하다”며 반발한 모양새다. 

    은행이 반발한 이유는 이렇다. 문제가 된 영역(DLF)의 시장 규모는 4조 3000억 원가량이다. 그런데 금융위는 이뿐만 아니라 43조 원 규모 시장(신탁)에 대해서도 규제하겠다고 나섰다. 은행들로서는 졸지에 어마어마한 시장을 잃게 된 셈. 각 은행은 정부가 ‘빈대 잡으려다가 초가삼간 태운다’며 반발했다.

    43조 원 규모 신탁 시장 규제

    금융위가 규제 영역을 넓힌 데에는 이유가 있다. 앞으로 은행에서는 고위험의 금융상품을 팔지 못하도록 하겠다는 ‘큰 원칙’을 세웠기 때문이다. 원칙을 세우고 보니 43조 원 규모의 신탁 시장이 모두 규제 영역에 포함돼버린 것. 



    소비자는 은행이 파는 상품을 두고 ‘고수익·저위험’이라 여기곤 한다. 그런데 DLF 사태에서 일부 은행은 이런 믿음을 저버렸다. 이에 정부는 은행이 위험 요소가 있는 금융상품을 원칙적으로 팔지 못하도록 했다. 은행에 ‘기회’를 더는 주지 않겠다는 뜻이다. 반면 은행은 일부에서 벌어진 한 번의 잘못으로 잘 돌아가는 시장까지 규제하는 것은 과하다고 반발했다. 누구 손을 들어줄지 쉽게 판단할 문제는 아니다. 

    DLF는 DLS(Derivative Linked Securities·파생결합증권)라는 파생 금융상품을 편입한 펀드를 말한다. DLS는 주식, 주가지수, 신용, 실물자산, 통화 등의 기초자산 금리가 특정 기간 정해진 구간을 벗어나지 않으면 약정 수익률의 환급금을 지급하고, 구간을 벗어나면 원금을 손해 보는 상품이다. 

    문제가 된 은행들은 이 복잡한 금융상품을 사모펀드로 판매했다. 사모펀드란 49인 이하의 투자자로부터 모은 자금을 운용하는 펀드다. ‘고위험·고수익’을 전제로 하기 때문에 이른바 ‘선수’들을 위한 무대라고 보면 이해하기 쉽다. 불특정 다수를 상대로 자금을 모아 투자하는 공모펀드의 경우 많은 규제를 받고 있다. 반면 사모펀드는 상대적으로 느슨한 규제를 적용한다. 선수들이 마음껏 놀 수 있게 해주는 셈이다. 

    그런데 금융 당국은 DLF가 사실은 공모펀드로 판매돼야 하는데, 해당 은행이 이를 사모펀드 형식으로 팔았다고 보고 있다.

    신탁으로 풍선효과 나타날 우려

    해당 은행들은 개별 DLF를 사모펀드처럼 투자자 49인을 모아 판매했다. 그런데 유사한 구조의 DLF 여러 개를 동시에 판매하는 식이었다. 수백 명의 일반 투자자가 사실상 같은 구조 상품에 투자한 셈인데, 은행들은 이를 쪼개서 각각 다른 상품인 것처럼 판매했다는 얘기다. 49인씩 나눠 팔면 규제가 느슨한 사모펀드로 운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금융 당국은 이를 두고 ‘규제 우회’라고 판단했다. 

    이에 금융 당국은 공모펀드를 공모펀드처럼 팔고, 사모펀드를 사모펀드처럼 팔았으면 사달이 나지 않았을 텐데, 은행이 편법을 쓰니 투자자 보호 장치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고 봤다. 규제를 회피한 은행들의 행태가 문제라는 인식이다. 그렇다 보니 은행에서 규제가 느슨한 사모펀드는 팔지 못하도록 하겠다는 방안이 도출됐다. 구체적으로는 원금 손실 가능 범위가 20%를 넘는 고난도 사모펀드는 판매할 수 없도록 했다. 

    그렇다면 금융위가 신탁까지 규제한 이유는 무엇일까. 금융 당국은 신탁을 일종의 사모 금융상품으로 보고 있다. 신탁의 경우 은행과 소비자가 1대 1로 계약하는 데다가 은행이 권하는 포트폴리오대로 운영되기 때문에 사모의 성격이 있다고 판단한 셈이다. 불특정 다수를 상대로 투자자를 모집하는 공모와는 다르다는 의미다. 

    금융위 관계자는 “사모펀드 판매만 규제할 경우 은행들이 신탁을 이용한 우회 판매에 나설 가능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결국 사모펀드만 막으면 신탁으로 풍선효과가 나타날 수 있기 때문에 그 가능성을 사전에 차단하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금융위는 이를 통해 궁극적으로 공모 금융상품을 중심으로 판매 채널을 전환하겠다는 계획이다. 

    이에 대해 은행들은 ‘공모형’ 신탁 상품에 대해서는 판로를 열어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금융위가 공모 상품 판매에 대해서는 딱히 제한을 두지 않자 이런 주장을 내놓은 것으로 분석된다. 구체적으로는 주가연계증권(ELS)이라는 공모형 상품을 담은 주가연계신탁(ELT)의 경우 ‘공모형’으로 볼 수 있다는 게 은행들의 주장. 

    ELS란 개별 종목의 주가나 주가지수를 기초자산으로 하는 상품이다. 이를 펀드로 팔면 ELF라고 한다. 신탁으로 거래하면 ELT가 된다. ELS는 상품 구조상 원금 손실 가능성이 20%를 넘어서기 때문에 금융위가 내놓은 기준에 따르면 은행에서는 팔 수 없다. 

    이와 관련해 금융위는 신탁을 ‘사모’ 금융상품이라고 본다. 반면 은행들은 신탁에도 일부 공모형 상품이 있다는 주장을 내놓는다. 이런 인식차가 발생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초저금리 시대에 소비자 선택권 제한

    윤석헌 금융감독원장이 2019년 10월 8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정무위 국정감사에서 제시된 DLF 관련 자료를 살펴보고 있다. [뉴스1]

    윤석헌 금융감독원장이 2019년 10월 8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정무위 국정감사에서 제시된 DLF 관련 자료를 살펴보고 있다. [뉴스1]

    사실 신탁은 펀드와 달리 공모와 사모의 개념이 없는 상품이다. 그런데 금융위가 앞으로 은행에서 ‘사모 금융상품’을 판매하지 못하도록 하려다 보니 이 신탁의 성격이 어떤 것인지 해석해야 했고, 그 과정에서 양측간 이견이 생겼다. 

    이런 복잡한 논의 끝에 금융위는 결국 한발 물러서기로 했다. 금융위는 2019년 12월 12일 은행들의 요구를 일부 반영한 최종안을 내놨다. 일부 ELT에 대해 판매를 허용하기로 한 것. 다만 기초자산을 주요국 대표 주가지수 5개로 한정하고, 공모로 발행한 상품 등으로 제한을 뒀다. 판매 규모도 2019년 11월 말 은행별 잔액 이내로 제한하기로 했다. 총량 이내에서 신규 가입을 받을 수 있지만 이를 넘을 수는 없다. 같은 해 11월 말 기준으로 ELS를 담은 신탁 상품(ELT)의 규모는 40조 원가량이다. 은행 입장에서는 한숨 돌린 셈이다. 

    금융위의 이번 결정은 소비자와 시장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먼저 소비자 선택권이 제한될 수 있다는 지적을 살펴보자. 요즘 같은 초저금리 시대에 은행에서 중수익 상품에 투자하는 게 까다로워졌다는 점은 아쉬운 부분이다. ELT의 경우 일부 판매가 허용되긴 했지만, 총량이나 구조가 제한되기 때문에 활성화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전망된다. 

    이번 조치가 추가 사고를 방지하는 데에는 어느 정도 효과가 있을지 몰라도 국내 자본시장 발전을 저해하는 부작용이 있을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2019년 11월 열린 국회 정무위원회 전체회의에서도 이런 지적이 쏟아졌다. 최운열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이번 규제와 관련해 “판매 자체를 금지해버리면 잘나가는 은행은 발전하지 못한다. 잘하는 회사는 세계적인 금융회사로 클 수 있도록 해야 하는데, 부족한 곳에 규제의 초점을 두면 클 수 없다”라고 지적했다. 김선동 자유한국당 의원 역시 “이렇게 되면 모든 금융회사가 규제를 피하기 위해 원금 손실 20% 이하의 상품을 개발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며 “이러면 하향 평준화가 가속화할 것”이라고 했다. 

    정부가 이번 사태와 관련해 감독을 제대로 하지 못한 책임이 있는데도 은행에만 잘못을 떠넘기고 있다는 비판도 나온다. 예를 들어 DLF와 관련해 금융감독원에 민원이 처음 제기된 시기는 2019년 4월. 그러나 관련 건이 금감원장에게 보고된 것은 7월쯤이고, 그사이 DLF는 추가로 판매됐다. 지난 2018년 10월에도 경고등을 울릴 기회가 있었다. 당시 금감원은 파생 금융상품 암행 감사를 하면서 DLF를 판매한 은행들이 고령 투자자 보호를 제대로 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이후 신속한 조치가 이뤄지지 않았다. 금감원에 따르면 이번 사태에서 개인투자자 중 60대 이상 고령자 비중이 48.4%에 이른다. 

    DLF·DLS피해자 비상대책위원회와 민주노총 등 시민단체들은 이번 대책에 대해 “금융소비자의 이익을 최우선으로 고려할 책무가 있는 금감원의 책임이나 관련 제도 개선이 포함되지 않은 반쪽짜리 대책에 불과하다”라고 혹평했다. 금감원이 감독 기능을 철저하게 했다면 이런 사태를 충분히 예방할 수 있었을 것이라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문제 터지면 금지한다’ 식 대책

    정부가 상황에 따라 정책 기조를 오락가락하고 있다는 점에서 정책 신뢰도에 금이 갔다는 점도 문제로 지적된다. 사실 금융위원회는 지난 2015년 투자 활성화 대책으로 사모펀드의 최소 투자금액을 5억 원에서 1억 원으로 낮추며 투자자 진입 장벽을 낮춘 바 있다. 그랬다가 이번에 사고가 터지자 다시 이를 3억 원으로 올렸다. 

    최소 투자금액을 다시 올리는 과정에서도 오락가락 행보를 보였다. 금융위는 사모펀드 최소 투자금액을 상향할 가능성이 있다는 보도에 “이번 사태는 고위험 상품이 편법적으로 판매됨에 따라 발생한 사안”이라며 “사모펀드 최소 투자금액 수준 그 자체를 주된 원인으로 보기에는 어려운 측면이 있다”라고 했다. 그러면서도 결국 금액을 올린 셈이다. 

    이런 점들을 고려하면 정부가 조금 더 세밀한 대책을 내놓지 못했다는 점이 아쉽다는 분석이 많다. ‘문제가 터지면 금지한다’는 식의 대책은 부작용이 따를 수 있다는 지적이다. 황세운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의 지적이다.
     
    “은행에서 고위험 상품을 판매하지 못하게 하고 사모펀드 최소 투자금액을 올리는 식으로 투자자 진입 장벽을 높이면 문제의 싹을 자를 수는 있을 것이다. 다만 이 경우 은행은 물론 전체 자본시장이 위축되는 부작용이 예상된다. 불완전판매 등에 대해 처벌 강도를 높이는 식으로 소비자 보호는 강화하고, 투자자 진입 문턱에 대해서는 현 상태를 유지하는 방식의 정책을 고려할 필요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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