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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의 대한민국, ‘强小國’ 핀란드에서 무엇을 배울 것인가

냉철한 실용주의, 창의력 개발, 지속적 개혁으로 국가경쟁력 키워라

  • 글: 이인호 명지대 석좌교수, 전 駐핀란드·러시아 대사 posolee@hotmail.com

위기의 대한민국, ‘强小國’ 핀란드에서 무엇을 배울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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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핀란드인은 스웨덴으로부터 물려받은 정치문화적 유산의 긍정적 측면을 인정하는데 주저함이 없다. 핀족은 스웨덴의 군사력과 발달된 법제도의 보호를 받으며 평화롭게 살 수 있었을 뿐 아니라 법치주의와 지방자치 전통을 수립하는 데 큰 도움을 받았다. 1734년에 채택된 스웨덴 법전의 내용 일부가 오늘날까지도 핀란드에서 작동하고 있는 것이 좋은 예다.

핀란드인 사이에서 민족의식이 싹트고 독립에 대한 필요성이 대두되기 시작한 것은 1695∼97년 대기근으로 핀족 인구의 3분의 1이 사망하고, 18세기 들어 두 차례나 러시아가 핀란드를 침략해도 세력이 약해진 스웨덴 왕이 이를 막아주려 하지 않으면서부터였다. 핀란드인이 자구책으로 독립을 생각하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그러나 핀란드가 스웨덴과 결정적으로 결별하게 된 것은 핀란드인의 항거가 아닌 러시아의 힘에 의해서였다. 1809년 나폴레옹과 러시아의 알렉산더 1세 사이에 유럽 분할에 관한 합의가 이뤄지고 러시아는 나폴레옹의 대륙봉쇄 작전에 협조를 거부한 스웨덴에 대한 응징으로 핀란드를 장악할 수 있는 구실을 얻었던 것이다.

그러나 제정말기 혁명운동의 확산에 위협을 느낀 러시아 전제정권은 19세기말부터 탄압적인 러시아화 정책을 추진했고 이에 핀란드도 완전독립 아니면 완전예속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상황임을 알게 됐다.

독립의 쟁취와 수호

1917년 11월 러시아 전제체제가 두 차례의 혁명으로 무너지고 볼셰비키가 정권을 장악한 직후 핀란드는 볼셰비키 러시아로부터의 독립을 선포했다. 이 당시 핀란드는 사실상 독립이라는 형식만 못 갖췄을뿐 국민정신, 민족문화, 시민사회 자치의 경험, 법치전통 등 모든 면에서 독립국가로서 기능할 수 있는 준비를 갖추고 있었다. 따라서 레닌도 핀란드의 경우는 독립을 인정하여 우호적 방벽국가로 활용하는 것이 강압적으로 공산화시켜 러시아에 통합하려는 시도보다 현명한 정책이라는 점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핀란드는 1920년 소비에트 러시아와 평화조약을 체결했고 1932년에는 그것을 상호불가침조약으로 대체하여 중립국가로서 독자적 노선을 지켜나갈 것을 다짐했다. 그러한 조약에도 불구하고 소련은 1939년 독일과 비밀리에 불가침조약을 체결한 후 핀란드를 침공했다. 국토의 12%를 양도하는 조건으로 4개월 만에 전쟁을 끝냈던 핀란드는 제2차 세계대전이 시작되자 히틀러와 동맹함으로써 소련으로부터 실지(失地)를 회복하려 시도했으나 결국 실패, 카렐리야의 절반을 빼앗기고 막대한 전쟁배상금을 지불하는 수모를 겪었다. 그러나 핀란드는 독립을 지키는 데 성공했으며 전후 어려운 사정 속에서도 미국이 제시하는 마셜플랜도 사양하며 다시 중립국 지위를 고집함으로써 공산화되는 위험을 막아낼 수 있었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핀란드의 처지가 동구의 위성국가들과 별 차이가 없었다는 뜻에서 ‘핀란드화(Finlandiza tion)’라는 말을 쓰기도 하지만 오늘의 중소국가 중 핀란드는 1918년에 채택한 헌법을 지금까지 지니고 있는 몇 안 되는 나라이며 소련과 국경을 맞대고 있으면서도 공산당의 득세를 막고 시장경제의 이점을 활용하여 사회주의적 이상에 접근하는 데 성공한 나라라는 사실은 그러한 해석이 타당성 없는 것임을 잘 보여준다.

작은 나라로서 주변의 정세를 정확히 파악하여 신속하고 이성적으로 대처하는 능력은 오랜 역사적 시련을 겪는 과정에서 핀란드인들이 터득한 귀한 지혜였다. 그것은 또한 민의를 이끌고 수렴하여 성실하게 정책에 반영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지도층의 존재, 신뢰받는 정치지도층을 선출해낼 수 있는 정치제도의 구축과도 무관하지 않은 것이다.

복지국가 건설을 위한 노력

독립의 쟁취와 수호과정에서 핀란드 국민이 보인 지혜로운 현실대응양식은 경제선진국으로 발돋움하며 복지국가를 건설하는 과정에도 적용됐다. 핀란드는 스스로 작은 국가임을 자각하고 국제적 정세 변화, 특히 강대국과 선진국들의 정책동향과 국제적 협력관계를 면밀히 분석해 자신을 둘러싼 국제적 환경변화를 객관적으로 파악하며 새로운 추세에 신속히 대응함으로써 자국 이익을 최대한 확보하는 일을 국정의 최우선과제로 삼았다. 또한 경제사회적 여건이 어렵고 사회갈등의 첨예화 가능성이 높은 때일수록 사회안전망 구축에 박차를 가해 국가 권위를 강화하고 사회통합의 도덕적 기반을 공고히 다진 일은 민주정치의 제도적 기틀을 마련하는데 성공한 핀란드의 발전과정에서 나타나는 중요한 특징이다.

복지국가 건설을 향한 핀란드의 노력은 독립을 성취하기 전부터 시작됐다. 독일의 비스마르크가 사회주의에 대한 대응책으로 과감한 사회보장제도를 도입한 데 자극받은 핀란드는 이미 1895년에 재해보험제도를 도입했다. 그후 새로운 의회의 탄생과 독립으로 지속적 개혁이 가능해졌다. 8시간 노동제가1917년 여름 유럽 최초로 도입됐고, 1918년엔 토지상환법의 통과로 거의 10만명의 소작인이 독립농가로 변신할 수 있었다. 의무교육법도 1921년에 통과됐다. 제2차 세계대전 전에 마련된 가장 획기적인 사회보장대책은 1937년의 국민연금법이었다. 일반재해와 퇴직보험을 골간으로 한 이 법의 통과는 국민의 복지에 대한 책임을 국가가 진다는 복지국가 이념의 본격적 수용을 의미하는 중요한 한 걸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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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이인호 명지대 석좌교수, 전 駐핀란드·러시아 대사 posolee@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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